“자, 스타팅 블록에서라.”
나를 포함한 학생들이 스타팅 블록 에 섰다. 이번 수업은 400m 달리기 다. 개인 기록에 따라 성적이 정해 진다.
내 옆에는 박인환이 있었다. 힐끔 박인환이 나를 본다. 나를 보는 눈 빛이 영 좋지 않다.
얘는 또 왜 저래?
“ 야.”
아까부터 이상한 시선으로 나를 바 라보던 박인환이 결국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얘가 나한테 말 거는 건 이번이 처음인 거 같은데.
“왜?”
“왜 주특기 안 바꾸냐?”
“내 마음인데.”
“너 발현계에 재능도 없잖아. 재능 있는 거로 해. 존나 답답하니까.”
스타팅 블록에 선 박인환이 허리를 숙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말 했다.
“신경 꺼.”
“너 같은 애들 보면 이해가 안 돼
서 그래. 다른 분야에 재능있는데 왜 발현계를 하는지. 발현계가 우습 냐?”
초반부의 미친놈 포지션을 담당하 는 박인환답게 이유 없이 시비 거는 게 아주 일품이다.
상이라도 주고 싶네.
한마디 하려는 사이 장안철의 외침 이 들렸다.
“자, 준비해라!”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고 스타팅 블록에 발을 대고 몸을 숙였다.
그래, 굳이 지금 감정 소모할 필요 는 없다.
모든 수업에 성적이 걸려 있는 만 큼, 이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마력을 끌어모아 하체에 집중 했다. 하체의 근육이 천천히 단단해 지는 게 느껴졌다. 손끝을 바닥에 얹었다. 그리고 출발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다.
장안철이 신호총을 쥔 손을 하늘로 뻗었다.
긴장되는 순간.
모두가 숨을 참고 신호를 기다렸다.
_ 탕!
“흐읍!”
모든 학생이 마력이 담긴 발을 박 차고 튀어 나갔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 다. 마력으로 강화된 다리의 근육이 팽창한다.
강화계는 신체 부위의 마력을 잘 분배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달리기 같은 경우는 허벅지와 종아 리, 발끝에 마력을 모으되, 다른 부 위로 퍼지거나 외부로 발산되지 않 게 잘 관리해야한다.
나는 계속해서 바닥을 박차며 앞으
로 나아갔다.
강화계 역시 부특기로 오래 익혀왔 기 때문에 단순한 달리기라면 자신 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뛰었을까.
골인 지점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 삑!
“김선우! 24초 03!”
허어억!
참았던 숨이 터지며 그대로 달리던
몸을 멈췄다. 하체를 강화하던 마력 을 전부 풀어내고 그대로 바닥에 주 저앉았다.
하체에서 끔찍한 고통이 퍼졌다. 역시 신체 근육이 덜 발달해서 그런 지 육체가 견디지 못한다. 마력을 너무 과하게 사용했다.
나는 허벅지를 부여잡고 눈을 찡그 렸다.
“끄윽…… 아파 죽겠네…… 허 억……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내가 일등인가?
_삑!
“박인환! 25초 75!”
잠시 후 박인환이 도착했다. 박인 환 역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바닥 에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박인환이 바닥에 주저앉아 나를 노 려본다. 그 눈빛에 분기가 담겨있다.
박인환은 2학년 전체 5위다.
주특기는 발현계지만 강화계에도 어느 정도 재능이 있던 녀석이다.
주특기 수업도 아닌 부특기 수업에
서 자신이 1등을 빼앗길 줄은 생각 못 했겠지.
— 삑!
“정세찬! 30초 23!”
뒤를 이어 다른 학생들이 골인 지 점에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정하기라도 한 듯, 모두가 도 착하는 순간 바닥에 주저앉고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허억…… 허억…… 무슨…… 전교 꼴찌가 저리 빨라……
“야…… 너 뭐야? 왜 강화계로 안 가‘?”
아까는 보조계더니 이번엔 강화계 냐.
“300m 24초밖에 안 나오는데 무 슨 강화계야.”
“……24초라고? ……겁나 빠르네.”
내 대답에 숨을 헐떡이던 학생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것도 하체 근육이 덜 발달해서 늦어진 시간인데.
회귀 전 내 달리기 속도를 들으면 아주 기절하겠네.
“빠르긴. 24초면 강화계로 가도 중 상위권 밖에 안 되는구만.”
“……야 ……중상위권이 우습냐? ……너 발현계는 꼴찌잖아.”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수업이 끝난 뒤 교무실.
김윤진은 책상에 앉아 혼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 흐음......
그렇게 고민을 하던 김윤진은 허공 에 학교 정보가 담긴 홀로그램을 켰 다. 그러곤 교사용 학생 정보 조회 시스템에 접속했다.
[2 학년 A 반]
[김선우]
“흐으으음……
김선우의 개인적인 정보가 담긴 그 곳에는 특별하다고 할 만한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작년도 성적.
실기 최하위권.
이론 최하위권.
4계통 중 강화계가 그나마 중하위 권이고,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 두 최하위권이다.
“……뭔가 특별한 게 있을 텐데.”
아니, 지금도 특별하긴 하다.
작년만 해도 이런 성적인데 갑자기 올해부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확실히 이상해.”
턱을 괴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조계 재능은 진짜란 말 이지.”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김선우가 보조계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발현계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집안이 잘사나?”
엄청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그럴 수도 있다.
5천만 원의 장학금 따위는 신경 쓰이지도 않을 만큼 돈이 많아서.
남은 여생을 그냥 편안히 보내고 싶은 걸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김선우에 대한 정보를 읽던 김윤진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웅? 가족이 없네?”
이렇게 되면 집안이 부유한 것도 아니다.
가족 기록이 아예 없는 걸 보아하 니 아마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면 더더욱 5천만 원이라는 돈에 혹하지 않나?
하지만 김선우는 그러지 않았다.
그에겐 5천만 원이라는 돈보다.
보조계의 역대급 천재라는 명예보
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요한 건 아마 보조계를 주특 기로 삼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심상치 않은데.”
보조계를 주특기로 삼으면 이룰 수 없는 것.
혼자서 해야 하는 것.
“……남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일이라.”
김선우.
저 학생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 까?
늦은 밤의 마나 연공실.
오늘도 나는 2시간가량의 마나 연 공을 끝내며 눈을 떴다.
[마력이 0.02 상승했습니다.]
[대자연의 축복 효과로 0.03의 마력을 추가 획득합니다.]
[대자연의 축복 수련치가 12% 상 승합니다.]
“ 후.”
매일 보는 메시지라 특별한 감상은 없었다.
나는 그것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 났다.
으, 피곤해.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네.
그렇게 간단히 몸을 풀고 마나 연 공실 밖으로 나오려는 때였다. 갑작 스럽게 내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 졌다.
“뭐야?”
빛은 잠깐 사이에 사라졌다.
그리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특성, ‘대자연의 축복’의 둥급이 2 로 상승했습니다.]
[특성, ‘대자연의 축복’의 사용 효 과가 해금되었습니다.]
[‘대자연의 심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 효과가 해금됐다고?
기숙사 침대에 누워 특성창을 보고 있었다.
[대자연의 가호 (A)] [등급 :
2(0%)]
[지속 효과]
►대자연의 축복
마나 연공 시, 마력을 추가로 획득
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최대 160%까지 추가로 획득합니다.
►대자연의 휴식
마나 회복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사용 효과]
►대자연의 심장
1분간 마나 회복 속도가 1000% 증가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24시간
특성의 등급이 오르며 잠금 되어 있던 ‘대자연의 심장’의 사용 효과 가 해금되었다.
그리고 지속 효과의 능력도 조금 올랐다.
사용 효과는 원작에서의 그것과 똑 같았다.
1분간 마력 회복 속도를 무려 1000%나 늘려주는 버프형 효과였다.
이것만 있으면 마력이 부족한 상황 에서도 1분간은 마음껏 마법을 사용 할 수 있었다.
“딱 필요했는데. 잘됐네.”
나는 특성창을 치우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으음.”
내일부터 토, 일로 이틀간 휴일이 다. 나에겐 처음으로 주어진 48시간 이라는 자유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단순히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헛되 이 사용할 순 없었다. 학교에서는 얻을 수 없는 업적을 이날을 이용해 달성해야 한다.
“내일 마인 출현은 어쩌지.”
마인 출현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인, 장한의 둥장은 원작에서도 다뤄진 스토리였으니까.
하지만 느닷없이 메인 스토리에 끼 어들자니 뭔가 망설임이 생긴다.
어쩌면 나의 개입으로 뒤에 있을 전개가 확 바뀌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렇게 숨다가 이서준이 죽었었 지……
완전히 개입하진 않더라도 근처에서 상황은 지켜보는 게 좋겠다.
‘그래, 멀리서 지켜본다고 크게 변 하는 것도 없으니까.’
괜히 이서준이 7년 뒤에 죽는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이전처럼 행동하다 가 또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적당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멀리서 지원 공격으로 공헌을 쌓든 해야지.
일단 나도 포인트를 벌긴 벌어야 하니까.
그러고 보니 주말에 밖으로 나가려 면 돈이 있어야 할 텐데…….
지금 내가 가진 돈이 얼마나 있 지?
“얼마 없긴 할 텐데.”
과거에도 이때 계좌를 확인하다가 크게 실망한 기억이 있었다.
크게 기대는 안 하지만 일단 확인 해볼까.
나는 학생 수첩을 켜고 개인 계좌 에 들어갔다.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 나에 게 계좌는 이것 하나밖에 없었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과연 얼마나 있을까.
[김선우]
[계좌 조회]
[30,200원]
전 재산 3만 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적을 줄이야.
상당히 실망스럽다.
“……3만 원으로 뭐하냐.”
이 돈이면 주말에 대중교통만 이용 해도 절반 이상은 사라지는 돈이다. 그리고 식사 한 두 번 하면 아마 돈이 남지 않을 것이다.
학교 내에서는 모든 게 무료라 돈 걱정 없이 살았지만, 그래도 주말엔 무언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 을 구해야 한다.
“돈을 어디서 구하지.”
나는 침대에 누워 천천히 생각했다.
‘포인트로 돈을 사버릴까?’
……아니다.
포인트를 돈으로 교환하는 건 그렇 게 효율이 높지 않다. 거기다 귀중 한 포인트를 쓸 만큼 돈의 가치가 나에겐 크지 않고.
돈은 시간만 있다면 언제든지 벌 수 있으니까.
그렇다는 건, 돈을 직접 벌어야 한다는 건데.
생각해보면 마법사의 기초적인 돈 벌이 수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는 던전을 도는 것이다.
던전을 돌아 몬스터를 처치하고, 마정석이나 특별한 아이템을 보상으 로 얻어 그것을 팔아 돈을 버는 방 법이다.
수입 자체는 아주 좋지만, 단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던전의 위치를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건 나에게 단점이 되지 않았다. 미래의 정보와 소설 속 내 용을 아는 나에겐 이 세계에 숨겨진 던전의 위치를 몇 군데 알고 있었으 니까.
‘……그래도 이건 아직은 안돼.’
혼자서 던전을 돌자니 부족한 마력 이 발목을 붙잡는다.
던전 마다 난이도는 다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던전들은 기본적으로 어 느정도 난이도가 높은 던전들이었다.
아직 완전한 마력 양이 형성되지
않은 지금. 혼자서 높은 난이도의 던전을 도는 건 너무 위험한 행동이 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
두 번째 방법은 탑을 오르는 것이다.
탑은 난이도가 정해져 있어, 낮은 난이도의 탑을 오른다면 나라도 이 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프로 마법사 자격증이 있어야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
프로 마법사 자격은 성인이 되어야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실력이 뛰 어나다고 하더라도 미성년자인 나는 자격 미달로 절대로 입장할 수 없었다.
“아, 장학금……
문득 오늘 아침에 제안받은 장학금 5천만 원이 떠올랐다.
저 돈만 있었다면 기초 자금으로 얼마든 부풀릴 수 있었을 텐데.
쓰읍. 입맛이 쓰다.
“......어?”
순간 내 머릿속에 기가 막힌 생각 이 떠올랐다.
마법사 자격증이 없어서 탑을 오르 지 못하는 거라면, 자격증 따위 새 로 만들면 그만인데!
“와. 왜 이 방법을 생각 못 했지?”
나는 곧바로 ‘외부자의 혜택’을 발 동했다.
[포인트 상점에 입장합니다.]
[검색기능을 활성화합니다.]
[‘신분’을 검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