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근데 지금 우리가 2등이잖아. 1위
는 어디래?”
정진태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물 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멀리서 팔짱을 끼 고 있는 유아라를 가리켰다.
“저쪽.”
“유아라 팀? 으, 1등은 좀 힘들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힘들 것 같긴 하다. 유아라 팀은 중위권 학생이 두 명이나 있 다. 하지만 우리는 하위권만 3명이 다.
속도에서 차이가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1학기가 끝날 때까진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뭔가 방법이 생기겠지.
그렇게 1둥 할 방법에 대해 궁리 하는데 갑자기 눈앞에 작은 창이 떠 올랐다.
[등장인물 ‘최서윤’이 당신에게 짜 중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엥?
던전 지하 1층의 마지막 방.
보스 몬스터인 거대 늑대가 이서준 의 검에 단칼에 베이며 바닥에 쓰러 졌다.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정진태의 입이 놀라움으로 벌어졌다.
“와. 보스 몬스터를 무슨 일반 몬 스터 잡듯이 잡네.”
정진태의 중얼거림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거대 늑대의 등급이 높은 건 아니 라고 하나, 나름 1층의 보스 몬스터 였다. 그런데도 저렇게 단칼에 베어 버리다니.
아마 내가 이서준을 몰랐다면 18 세의 학생이라고 믿지 못했을 거다.
[3조 지하 1층 공략 완료]
[1 주 차 최종 순위 - 2위]
“어? 2위다.”
“대박! 우리가 2위야!”
평소 낮은 순위에만 있던 윤하영과 정진태는 2위라는 순위가 나오자 기 뻐하는 반응을 보였다.
반대로 이서준의 표정은 미묘했고, 신지혁은 등수엔 관심이 없는지 멍 하니 거대 늑대의 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거대 늑대였네.”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신지혁이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아까 전만 해도 그렇게 자신만만하 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살짝 기죽은 모습이다.
하긴 그렇게 무시하던 전교 꼴찌한
테 자신의 주 분야인 결계 해제에서 크게 밀렸으니 꽤나 자존심이 상했 을 거다.
[던전 탐험 종료]
[모든 학생은 집합 장소로 모여주 시길 바랍니다.]
던전 탐험 수업이 끝나고 모든 학 생이 던전 입구에 모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전체적으로 지친
기색이 느껴진다. 나 역시 상당히 지쳐있었다.
하루 전체를 소모해 실전 훈련을 하니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자! 오늘 던전 탐험하느라 다들 고생 많았다. 아마 1충부터 꽤 많은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피로가 많이 쌓였을 거다. 내일 수업을 위해 다 들 컨디션을 잘 관리하길 바란다.”
학생들은 전부 피로에 쌓여 장안철 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장안철은 그런 학생들을 이해하는 지, 말을 길게 잇지 않았다.
나는 장안철의 대화를 듣다가 학생
수첩을 켜고 순위를 확인했다.
[던전 탐험 현재 순위]
[1 위 — 7조 / 4시간 11분 22초]
[2위 — 3조 / 4시간 42분 52초]
[3 위 - 5조 / 4시간 44분 05초]
오늘 순위는 결국 2위로 마감됐다.
하지만 전혀 만족스럽진 않았다.
오전 타임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결계를 그 어느 조보다 빠르게 해제 했지만 1위는커녕, 신영준이 속한 5 조와도 1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 주 던전 탐험 때, 신영준의 조에 2위를 내줄 가능 성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던전 탐험 수업 이 끝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다 는 점이다.
매 주 한 번씩 2달간 진행되는 수 업이기 때문에 아직 7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었다.
7번이면 2위 유지는 물론, 1위까지
가져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옆을 보니 멀리서 유아라가 이서준 을 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이서준을 넘어 1위가 됐음에도 기 뻐 보이진 않는다.
하긴, 아직 던전 탐험은 많이 남았 다. 언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 니 기뻐하긴 이르지.
“그래도 네 덕에 2위 했네.”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 렸다.
이서준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 다. 나는 이서준을 보고는 피식 웃
었다.
“내 덕은 무슨.”
“아니야. 아마 네가 결계 해제를 그렇게 빨리 안 했으면 훨씬 늦어졌 을 거야. 그걸로 최소 30분은 벌었 으니까.”
그렇게 말해주니 할 말은 없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아서 괜히 부끄 럽네.
“그거 말고 난 한 게 없는데.”
“그걸로 충분해. 애초에 이런 팀 구성도 보정 점수를 위해 내가 이기 적으로 짠 거야. 넌 충분히 해줄 만 큼 다 해줬어. 아니, 그 이상을 해
줬지.”
이서준이 나를 바라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내가 못했어. 그 기회를 살려서 1위를 하든, 3위와 격차를 벌리든 했어야 했는데.”
“야, 던전 탐험 이제 1주 차가 끝 났어. 자책할 거면 1학기 끝나고 해.”
내 말에 이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아이고, 힘들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 왔다.
동시에 힘이 쭉 빠진다. 느릿느릿 움직여 평소처럼 침대로 엎어졌다.
침대 시트의 푹신함에 몸을 맡긴 다. 몸이 축 늘어지며 눈이 솔솔 감 긴다.
아. 행복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 면.
“흐으음..
멍하니 누워있다가 오늘 던전 수업
이 떠올랐다.
오늘은 이서준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의 혼자서 모든 몬스터를 잡아냈으니까.
나 역시 결계를 해제하며 공헌을 좀 쌓긴 했지만, 이서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서준이 혼 자서 모든 걸 하기 벅찬 상황이 올 것이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더 강력한 몬스 터가 나오기 때문이다.
“걔는 왜 팀을 이렇게 짜 가지고.”
원작의 이서준 팀은 중위권 학생
세 명과 윤하영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리고 평균 순위가 높은 만큼 첫 주부터 무난히 1둥을 하는 게 원작 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나의 개입으로 팀원 구성이 바뀌었고 결국 2위를 하게 됐다.
이 변화가 과연 미래에 영향을 끼 치진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제와서 원망하기도 그렇 다. 어차피 팀 구성은 내가 이서준 에게 맡긴 부분이었으니까.
“ 에휴.”
마력이 얼마나 쌓였는지나 확인해
볼까.
[고유 특성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 합니다.]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능력치]
체력 : 44.09
근력 : 34.05
마력 : 24.4
속도 : 30.04
순발력 : 32.02
손재주 : 28
“……더럽게 안 쌓이네.”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능력창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조급해진다.
이전 삶에서 충분한 마력을 경험해 서 그런가.
아니, 그전에 마력을 빨리 쌓아야 다른 업적도 빠르게 깰 수 있는데 그걸 못하니 답답하다.
“……쉬운 업적부터 하나씩 다 깨
볼까.”
강해지는 데는 역시 포인트만 한 게 없다. 그리고 포인트를 버는 덴 또 업적만 한 게 없다.
물론 명성 시스템을 통해 포인트를 얻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조건도 까 다롭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필요하 다.
그래, 쉬운 업적부터 달성하자.
쉬운 업적.
뭐가 있었지?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스마트 학생 수첩의 메모장
을 열었다.
그래, 하나씩 정리해보자.
자정이 지난 늦은 밤.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학교 교무 실에 두 명의 여교사가 남아 있었다. 이 둘은 의자에 앉아 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어? 이게 그 김선우라고요?”
“네. 저도 보고 놀랐어요.”
영상은 오늘 있었던 2학년 A반의 던전 탐험 훈련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는 김선우가 마력을 이용 해 결계를 해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1분쯤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결계가 형태를 잃어가 더니 완벽하게 사라졌다.
“말도 안 돼요. 이거 합성 아니에 요?”
보조계 교사, 김윤진은 영상을 보 며 믿을 수 없다는 둣 중얼거렸다.
아무리 결계 해제에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어도 저렇게 빠른 속도로 결 계를 해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
으니까.
“제가 무슨 이유로 합성을 해요? 자, 다시 봐요.”
이희영은 김선우가 바닥에 손을 대 는 장면으로 영상을 되돌려 재생했다.
“정확히 1분 14초 걸렸어요. 손을 대고 결계를 해제하는 데까지요! 너 무 대단하지 않아요?”
이희영의 반웅에 김윤진은 황당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니, 이희영 선생님. 대단하다 뇨? 선생님이 보조계를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저건 천재라던가, 그런
대단한 수준이 아니에요. 저건…… 말이 안 돼요. 그냥…… 그냥, 불가 능해요.”
김윤진의 말에 이희영은 눈을 깜빡 였다.
단순히 대단하다는 대답이 들려올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외의 답이 들 려와서 당황했다.
“……어? 그 정도예요?”
“당연하죠. 아무리 실력 있는 보조 계 마법사라고 해도 저걸 해제하려 면 3분은 필요해요. 물론 제가 말하 는 건, S급 이상의 보조계 마법사를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예요. A도 아
니고 S요.”
그 정도라고?
평소 발현계 마법에만 관심 있던 이희영은 설마 저게 저렇게 대단한 일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에이, 너무 오바하시는 거 아니에 요? 단순히 학교 과제 수준의 결계 라 풀기 쉽게 만든 걸 수도 있는 데.”
“선생님, 저 결계 제가 설치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쉽게 풀리게 만들지 도 않았어요. 저 아이, 마법 수식을 해석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요.”
“……설마 그 정도일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이희영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때, 김윤진이 무언가 결심한 둣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이. 보조계로 와야 해요.”
“네?”
“김선우, 저 학생 발현계죠? 내일 당장 주특기를 옮기라고 설득해야겠 어요.”
“주특기를 옮기라고 설득한다고요? 보조계로요?”
이희영의 말에 김윤진이 황당한 눈
으로 이희영을 바라봤다.
“당연하죠. 저런 재능을 갖고 있는 데.”
“선생님.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이희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방금 제가 했던 말들 잊으셨 어요? 저 아이 보조계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요. 당장 옮겨야 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선우는 발현 계에서 빛을 볼 아이예요. 보조계로 옮기라니 그건 절대로 안 돼요.”
발현계를 사랑하는 이희영이 순간 울컥해서 말했다.
“이희영 선생님. 선생님 심정 잘 알아요. 하지만 이건 재능 낭비의 문제에요. 저 아이는 보조계를 배워 야 하는 학생이라니까요?”
“그걸 누가 정하는데요? 선우는 발 현계에도 충분히 재능 있어요.”
“발현계에는 충분히 재능있는 거겠 지만, 보조계에는 역대급 재능이라 고요. 선생님. 저건 국가적 낭비에 요. 당연히 보조계로 와야죠! 저런 재능을 낭비하는데!”
하지만 김윤진의 보조계 마법을 사 랑하는 마음은 발현계를 사랑하는 이희영의 마음에 못지않았다.
이희영은 김윤진의 눈을 똑바로 바 라보며 말했다.
“선우 발현계도 재능있거든요? 제 가 직접 가르쳐서 알아요.”
“아, 그러세요? 그래서 발현계로 전교 꼴찌 했나?”
“뭐요?”
이희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단순한 김선우에 대한 시험 영상 공유가 어느덧, 감정싸움으로 커졌다.
“선우가 그냥 꼴찌 한 줄 아세요? 저 아이 압축 구현술 사용하다가 마
력 방전 난 거예요. 그것도 모르면 서 무슨!”
“말 좀 지어내지 마세요.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 말이 맞다 해도 재능 있는 발현계 마법사는 세상에 널리 고 널렸어요. 하지만 재능있는 보조 계 마법사는 귀하다고요.”
“뭐요? 재능있는 발현계 마법사가 널리고 널려?”
이희영이 무서운 눈으로 김윤진을 노려봤다.
김윤진 역시 이희영에게 지지 않는 눈빛으로 노려봤다.
“어머, 틀린 말도 아닌데 왜 그러
실까. 발현계 솔직히 단순하잖아요.”
“야.”
“ 야?”
오전 7시 30분.
첫 수업이 오전 9시인 만큼 아직 학교는 학생들이 둥교하지 않아 공 허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나는 복도를 걸어 2학년 A반 교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자 텅 빈 공간이 보 인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역시 내 예상대로 교실엔 아무도 없었다.
“♦.....과연.”
띠링!
[‘1 둥으로 둥교하기’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역시!
과거에 경험했던 것처럼 1둥으로 등교를 하자 업적이 달성됐다.
이 세계엔 이런 사소한 것에도 업 적이 숨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젯
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겪었 던 업적에 대해 전부 메모했다.
이 모든 건 이전 삶에 얻은 ‘기억 력’ 특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다음은……
나는 짐을 풀고 복도로 나왔다. 그 리고 복도 끝에 있는 청소도구함으 로 이동했다.
참고로 청소도구함은 청소부 직원 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마법사관 학교는 다른 학교처럼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키지 않아, 청소는 청소부 들의 영역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빗자루와 쓰레받 기. 그리고 대걸레를 챙겼다.
그리고 빗자루로 복도를 쓸기 시작 했다.
그렇게 청소를 시작한 지 20분 정 도 지났을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우렁각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됐다!”
나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청소 를 그만뒀다.
어차피 내 목표는 업적과 포인트였다. 이미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그 이상은 할 필요가 없다.
잠깐 사이에 1500포인트라.
들인 시간을 생각하면 꽤 짭짤한 수입이다.
이렇게 조금씩 모으다 보면 얼마 안 가 꽤 쓸만한 특성 하나를 구매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청소도구를 원래 자리로 돌려 놓아 볼까.
그렇게 청소도구를 하나씩 챙기고 이동하려는 순간 가까운 거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김선우?”
맑은 미성이 내 이름을 불렀다. 고 개를 돌려보니 유아라가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