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선택은 자유니까. 다만 재능있 는 보조계 마법사가 귀하다 보니 아 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 구나. 뭣하면 부특기를 보조계로 선 택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데.”
그렇게 혼자 말하던 장안철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생각해보니 저번 체력 테스트 때 4등 했었지? 그걸 생각하면 강
화계를 포기하기도 좀 아깝기는 하 군. 3계통에 재능이 두루두루 뛰어 나다라. 흐음.”
생각에 빠져있던 장안철이 무언가 생각난 듯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 다.
“이런, 시간을 뺏었군. 아무튼. 수 고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2시까 지 이곳에 모이면 된다.”
“네, 알겠습니다.”
나와 이서준은 교내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같은 팀원인 윤하영과 신지혁. 그 리고 정진태는 다른 친구와 함께 밥 을 먹어야 한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둘만 남게 된 나와 이서준 은 식당에서 식판에 음식을 담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네.”
“뭐가?”
“결계 풀어낸 거. 어떻게 그리 빨 리 풀어낸 거야?”
이서준이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는 말투로 말했다.
“말했잖아.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 였다고.”
“아무리 관심 있는 분야라고 해도 그렇지, 보통 그렇게 빠르게 풀진 못해.”
“그럼 나는 그 보통이 아닌가 봐.”
내 무심한 말에 이서준이 웃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것도 되게 웃기네.”
“……그럼 어떤 반웅을 보여야 하 는데?”
“아니, 보통 이렇게 주변에서 칭찬 해주면 내가 그렇게 이 분야에 재능 이 있나? 이쪽으로 길을 바꿔야 하 는 건가? 이런 고민 하지 않아?”
으음……
들어보니 그렇긴 하네.
하지만 이제와서 그런 반응을 보이 기엔 이미 늦었다.
“나는 발현계가 더 맞아.”
“큭큭. 작년이랑 너무 다른데. 같은 사람 맞아?”
“……아마 맞을걸.”
“아마는 뭐야?”
“당연히 농담이지.”
나와 이서준은 식판을 들고 적당한 빈자리에 앉았다.
그 이후로는 별다른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나와 이서준은 조용히 식사를 시작 했다.
그때였다. 내 뒤에서 익숙한 목소 리가 들렸다.
“어? 서준 선배님! 여기서 식사하 고 계셨네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이서준이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어? 안녕.”
“선배! 옆에서 밥 같이 먹어도 돼 요?”
“어, 그래. 상관없어. 너도 상관없 지?”
이서준이 내게 물었다. 나는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내 뒤에는 최서윤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식판을 들고 온 최서윤이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내 옆에 앉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쏟아진다. 누군가 는 귓속말로 속닥이고, 어느 누군가 는 설렘에 얼굴을 붉혔다.
이서준과 최서윤.
학교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잘생 기고 이쁜 두 미남 미녀가 한곳에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 수
도 있겠다.
저들 사이에 낀 나는 저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왠지 생각하기 싫다. 분명 좋은 시 선은 아니겠지.
”안녕하세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살갑게 눈 웃음을 지었다. 그 눈웃음을 보자 저번과 같이 불편한 감정이 느껴졌다.
마치 상대가 목적을 가지고 연기하 는 걸 알고 있는데 속아주는 기분이 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가식적인 웃음을 떠나서 눈
웃음 자체는 참 이쁘다.
“어, 안녕.”
“저번에 한 번 인사드렸죠? 승아 랑.”
“기억나네. 이틀 전이었나?”
“네, 맞아요. 복도에서 만났잖아요. 선배님 반응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어요.”
내 반웅? 특이할 게 있었나.
“설마 서준 선배랑 단둘이 밥을 먹 을 정도로 친한 사이인 줄 몰랐는 데.”
최서윤이 힐끔 이서준의 눈치를 보
며 중얼거렸다.
맞다. 얘 이서준 좋아하지?
“그렇게 친한 건 아니고.” 내 말에 이서준이 웃었다.
“아니야. 우리 친해.”
“정말요?”
[등장인물 ‘최서윤’에게 당신에 대 한 관심이 증가합니다.]
[등장인물 ‘최서윤’에게 당신에 대 한 관심도가 추가됩니다.]
[등장인물 ‘최서윤’의 당신에 대한
관심도 Lv : 1]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뭐야.
관심도 레벨. 이서준에게 떠올랐던 게 최서윤에게도 떠올랐다.
단순히 이서준과 친하다는 이유로 관심이 생긴 건가?
“언제부터 친했는데요?”
“한 이틀 됐나?”
“이틀이라…… 으음. 그렇구나.”
무언가 고심하듯 최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친해진 거예요?”
최서윤이 이서준에게 물었다.
친해지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녀에게는 납득할 이유가 필요한 모양이다.
“던전 탐험 수업에서 같은 팀이 됐 거든.”
“아…… 던전 탐험……
최서윤이 슬쩍 나한테 시선을 돌렸다.
“아, 그……
나를 바라보던 최서윤이 갑자기 말 끝을 흐렸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 조심스러운 눈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김신욱 선배님?”
홉. 이서준이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최서윤은 살짝 당황 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김신우 선배님!”
“……김선우.”
“ 아.”
최서윤이 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제가 기억력이 나쁜 건 아닌데 헷갈렸어요. 얼굴은 똑똑히 기억했었는데.”
“......그래.”
“화나신 건 아니죠?”
“어, 신경 쓰지 마.”
“……화나신 거 같은데.”
정말로 화 안 났는데 저 말을 들 으니 화가 날 것 같기도 하다.
고개를 돌려 최서윤을 바라보니 밝 은 갈색빛의 머리카락을 앞으로 쏟 으며 고개를 다시 숙이고 있었다.
“근데 왜?”
“아니요, 그냥 기분 나쁜 일이 있 으신가 해서요.”
기분 나쁜 일? 없는데.
“음. 딱히 없는데.”
“그래요? 아까부터 표정이 굳어 있 으셔서. 혹시나 했죠.”
“그런 거 없어.”
내 말에 최서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궁금한 게 있는데 던전 탐 험이면 팀은 학교에서 짜준 거예 요?”
“아니, 학생들끼리 짜는 거야.”
이서준의 말에 최서윤이 고개를 갸 웃했다.
“그럼 팀은 선배가 짜자고 제안했 어요?”
“아니, 선우가.”
최서윤이 나를 힐끔 쳐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데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다.
“1학년이라 잘 모르겠지만 이 학교 에는 보정 점수가 있거든.”
“보정 점수요?”
“높은 순위의 사람이랑 낮은 순위
의 사람이 팀을 짜면 높은 순위의 사람에게 보정 점수로 가산점이 들 어가.”
“아, 그렇구나. 몰랐어요.”
최서윤이 나와 이서준을 번갈아 바 라본다. 이내 이제야 이 상황이 이 해됐다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1시 30분. 오후 던전 탐험
까지 아직 30분이 남아있었다.
최서윤은 아직도 이서준에게 붙어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와. 그래서 그걸 단 1분 만에 풀 어 냈다고요?”
최서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의 외라는 눈빛이다.
“못 믿겠는데…… 그게 가능한가?”
“이해해. 나도 직접 보지 못했으면 믿지 못했을 거야.”
“그럼 보조계에 엄청 재능있는 거 아닌가? 거의 역대급 재능인데요? 보조계 엄청 어렵잖아요. 천재네.”
……천재는 무슨.
진짜 천재인 녀석들이 전교 꼴찌에 게 천재라며 추켜세워주다니 어이가 없다.
“선배님, 발현계죠? 이참에 보조계 로 바꾸시는 게 어때요?”
이번으로 두 번째다.
나보고 보조계로 주특기를 바꾸라 는 말이.
하지만 결계를 빠르게 해제한 건, 어디까지나 특성의 도움 때문일 뿐 내가 재능있어서가 절대 아니다.
그 중거로 나는 마법 수식을 해석
하는 데만 강점이 있지, 마법 수식 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전혀 재능이 없다.
“난 보조계에 재능 없어. 발현계가 맞아.”
“들어보니까 보조계에 재능 없는 건 절대 아닌 거 같은데요.”
최서윤의 말에 이서준이 끼어들었다.
“됐어. 아까도 장안철 선생님한테 보조계로 주특기 변경하는 걸 권유 받았는데 자기는 발현계가 맞다고 그러더라고.”
“……으음. 뭔가 아까운데.”
최서윤이 괜히 아쉬워하는 말투로 혼자 중얼거린다.
물론 저들의 마음은 이해된다. 나 에게 특별한 특성이 있어서 마법 수 식을 빠르게 해석했다는 건 전혀 예 상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아마 나에게 남들에게 없는 뛰어난 재능이 있는데 그것을 묻히고 있다 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 맞다. 지금 몇 시지?”
갑자기 생각났다는 둣, 최서윤이 학생 수첩의 시간을 확인했다.
“1시 33분…… 저 이만 가봐야겠 네요. 수업 준비를 미리 해야 해서
요.”
“그래, 어서 가봐.”
“네, 선배님들도 수고하세요!”
최서윤은 이서준과 나에게 꾸벅 인 사를 하고는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 뒷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최서윤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뒤돌아 우리를 향해 다시 다가왔다.
이서준에게 뭔가 할 말이 남은 건 가 싶었는데 그녀는 내 앞으로 다가 왔다.
최서윤이 특유의 가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내게 말했다.
“선배님. 뭐 물어볼 게 있는데 나 중에 학생 수첩으로 연락해도 되 죠?”
오후 1시 50분.
다음 수업까지 10분 정도 남은 1 학년 A반 교실엔 학생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교실의 문이 열리며 밝은 갈 색 머리의 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동시에 모든 학생의 시선이 그녀에
게 쏠리기 시작했다. 특히 남학생들 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야, 서윤이 왔다.”
“서윤아. 너 이서준 선배님이랑 밥 먹었다며?”
“진짜? 서윤아 너 이서준 선배님이 랑 밥 먹었어?”
최서윤이 등장하자 교실에 있던 학 생들이 그녀를 향해 질문을 쏟아냈 다.
귀찮은 상황일 법도 한데 그녀는 웃으며 한 명 한 명씩 대답을 해줬 다.
“너 이서준 선배님이랑 잘돼가는
거야? 부럽다.”
“에이,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밥만 같이 먹은 거야.”
“옆에 남자 그 2학년 그 선배 맞 지? 전교 꼴찌.”
“김선우 선배님? 어, 아마 맞을 거 야.”
“그 선배는 왜 이서준 선배랑 같이 밥 먹는 거래?”
중간중간 이상한 질문이 들려왔지 만, 그녀는 친절하게 질문을 받아 줬다.
‘그래, 이게 정상인데.’
최서윤은 자신을 향한 관심을 느끼 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원래라면 자신이 이렇게 밝게 웃어 주고 친절하게 대하면 자신과 친해 지지 못해서 안달 나야 한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남학생들 만 해도 그렇다.
자신과 조금이라도 말을 더 섞어보 기 위해 온갖 행동을 다 하고 있었 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그 둘은 그러지 않았다.
이서준과 김선우.
아니, 이서준까지는 이해한다.
이서준은 교내에서 가장 뛰어난 실 력과 외모를 가졌고, 그의 주변에는 자신에게 절대 꿇리지 않는 뛰어난 여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니 자신이 그의 눈에 성에 차 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예전부 터 이미 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선우. 그 사람은 달랐다.
전교 꼴찌에 외모도 평범하고 딱히 뚜렷한 장점도 없다.
보조계에 재능이 있어 보이기는 하 지만 그것 역시 그의 주특기가 아니 었다.
따로 여자가 있는 거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김선우는 이렇게 자신이 친 절하게 대해 주는 데도 뭔가 불편하 다는 듯한 반웅을 보였다.
그를 처음 봤을 땐, 단순히 인터넷 에 악의적인 영상이 퍼져 기분이 나 쁜 상태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 사건은 평범한 10대 학생 이 견디기에는 힘든 상황이었으니 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김선우는 그냥 자신을 불편해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불편하다니.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 을 향한 감정 중 불편해하는 감정을 처음 느껴봤다.
남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데!
뭔가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다.
‘설마 남자를 좋아하는 건가?’
최서윤은 진지하게 그것에 대해 고 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항상 혼자 다녔던 것 같은데 이번에 이서준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
다.
‘……으음. 이건 아니야.’
김선우가 남자에게 관심이 많다고 하기엔 이서준 앞에서도 딱히 별 감 정이 없어 보였다. 거의 무심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적당한 최소한의 친분만 유지하는.
쉽게 말해 전교 1등이라 이용하는 느낌이 맞겠다.
“아…… 내가 왜 이런 거로 고민해 야 해.”
갑자기 짜증이 났다. 한숨을 내쉬 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서윤아. 무슨 고민 있어?”
이런. 실수로 입 밖으로 속마음을 말해버렸다.
순간 부끄러움을 느낀 최서윤의 얼 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뭐야. 부끄러워하네. 귀엽다.”
“이서준 선배 고민이지? 맞지?”
“뭐야. 뭐야. 아 설렌다.”
“뭔데. 나도 알려줘.”
“자, 이제 곧 2시다. 2시가 되자마 자 모두 던전에 입장할 거니 다들 미리 준비하도록.”
50명의 학생이 모인 학교 뒷산에서 장안철이 크게 외쳤다.
나를 포함한 팀원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후 던전 탐험 수업이 시작된다.
“으아아!”
“얼마 안 남았으니 빠르게 끝내버 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