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앞을 바라보니 이현주가 식사 하다 말고 내 식판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쟨 또 왜 저래?
“왜?”
내 말에 이현주가 퍼득 정신을 차 린다. 당황하는 눈으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아니긴. 분명 뭔가 있는데.
“뭔데?”
“아니,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저렇게까지 아니라고 하는데 더 물 어보기도 뭐하다.
뭐,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말을 하 겠지.
나는 이현주에게 관심을 끄고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시간이 지나자 식판 위의 음식이 거의 사라졌다.
이제 피날레를 장식해줄 마나 새우
조림을 먹을 차례다.
이 순간을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젓가락으로 내 식판 위의 마 나 새우 조림을 집었다.
달콤한 향을 풍기는 소스가 뚝뚝 아래로 떨어진다.
‘아 맛있겠다.’
그렇게 마나 새우 조림을 입에 넣 으려는 그때.
다시 한번 내 앞에서 시선이 느껴 졌다.
이현주가 내 젓가락에 집힌 마나
새우 조림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이현주와 눈이 마 주쳤다.
잠깐 사이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 다.
“……이거 줄까?”
내 말에 순간 이현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두 손 을 크게 흔들며 거부한다.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됐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과 달 리 그녀의 시선은 마나 새우에 고정 되어 있다. 어째 저 모습이 안타깝 다는 느낌 마저 든다.
그러고 보니, 이현주한테 식탐이 강하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너 먹어라. 그냥.”
툭.
이현주의 식판 위에 새우 조림을 내려놨다.
아깝긴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과 친
해질 수만 있다면 새우 하나쯤이야 양보할 수 있지.
새우를 바라보던 이현주가 나에게 로 시선을 돌렸다.
“……너.”
나를 바라보는 이현주의 눈동자에 감동이 깃든다.
“되게 좋은 애구나?”
[등장인물 ‘이현주’가 당신에게 감 동합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 99
지루했던 오전 이론 수업이 끝나고 주특기 수업 시간이 찾아왔다. 다들 실전 훈련을 할 생각에 들뜬 모습이 다.
주특기 수업은 각자 자신의 주특기 에 해당하는 훈련장으로 이동하면 된다.
나는 발현계였기에 발현계 마법 훈 련장으로 이동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 많은 학생이 미
리 마법 연습을 하는 게 보였다. 그 중 낯선 얼굴도 꽤 보인다. 이들은 나와 다른 반인 B반과 C반이다. 주 특기 수업은 ABC반이 모두 합쳐 함께 진행한다.
“아, 이날만 기다렸다.”
“나도. 이희영 선생님한테 꼭 배워 보고 싶었는데.”
2학년 발현계 담당 교사인 이희영 은 우아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는데 안 경을 싫어하는 나도 그녀만큼은 안 경이 참 치적으로 어울린다는 느낌 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 다.
태도 점수를 위해 미리 잘 보이려 는 목적이었다.
물론 포인트를 얻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자 그녀가 나를 향해 밝게 웃었다.
“아, 김선우 학생?”
아마 초면일 텐데 내 이름을 반갑 게 불러준다.
명찰을 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그때 이희영이 내 생각이라도 읽은 듯 말했다.
“순위 평가 테스트 때 인상적이라 기억하고 있었어요.”
“ 아.”
확실히 그때 내가 눈에 띄긴 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희영이 이 어서 말했다.
“아, 물론 인상적이라는 건 김선우 학생의 성적과 별개로 칭찬하는 의 미에요.”
“네‘?”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내 모습을 보 고 이희영이 미소를 지었다.
“후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그 럼 들어가서 연습하고 있으세요.”
발현계 마법 훈련장을 일자로 쭉 이어진 사격장과 비슷한 형태로 되 어 있다.
이희영은 일자로 된 그곳올 지나가 며 훈련하는 학생들에게 한 명씩 1:1 피드백 하는 방식의 수업을 한
다.
“학생. 너무 조작에 신경 쓴 나머 지 방출을 소홀히 하고 있어요. 조 금 마력에 힘을 주고 빠르게 날려봐 요.”
“구현이 잘 못 됐어요. 완벽한 대 칭이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자 꾸 이상한 방향으로 방출되는 거예 요. 완벽한 구현부터 연습하세요.”
“방출이 너무 느려요.”
“학생도 방출이 너무 느려요. 조작 에만 신경 쓰면 안 돼요.”
수업을 진행하던 이희영은 답답함 을 느꼈다.
다들 타고난 마력을 갖고 있지만, 그 타고난 마력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학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김선 우였다.
- 수우우우욱!
새하얀 빛을 내뿜으며 빠르게 날아 가는 마력 구체.
정확히 표적의 머리를 맞추며 뛰어 난 마력 방출과 조작의 실력을 보여 줬다.
‘어? 제법인데?’
이희영은 김선우의 마법을 보며 깊 은 훙미를 느꼈다.
이틀 전 공개 테스트 때와는 완전 히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그때의 김선우는 구현에 몰입한 나 머지 방출과 조작에 실패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김선우가 평소 구 현 훈련에만 집중한 나머지 다른 훈 련에 소홀히 했다고 생각했다.
저 나이에 압축 구현술을 다룬다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김선우는 자신의 마
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최소한의 마력을 이용해서 완벽한 방출과 조작 올 다루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 다.
‘……저 나이에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_ 쾅!
그때 옆에서 바닥을 울리는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유아라가 폭풍처럼 거대한 마력 구 체를 뿌리고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입을 벌리며 그녀의 마법을 구경했다.
그녀의 마법을 보던 이희영은 생각 했다.
‘진짜 괴물이네.’
18세 학생이라고 믿기 힘든 강력 한 마법 구현.
그리고 구현된 거대한 마법 구체를 겁 없이 방출해대는 대담함까지.
이건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그 녀의 타고난 재능과 자질에서 나오 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은 다소 단순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마치 값비싼 총기를 쥐고 난사하는 아이 같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김선우의 마법은 유아라와 는 정반대였다.
유아라의 마법이 사방을 포격하는 미사일이라면 김선우의 마법은 한명 한명을 정교하게 사격하는 권총이었다.
권총과 미사일은 파괴력 측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권총이 모든 상황에서 미사 일보다 안 좋은가? 그건 또 아니었
다.
권총에게도 미사일에게 없는 특별 한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김선우의 마법에도 권총처 럼 남들에게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바로 노련함이다.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적정량의 마력 구현. 그리고 완벽한 방출과 조 작.
마치 프로 마법사를 보는 둣한 마력의 완급 조절은 몇 달 전만 해도 강화계에 특기를 보이던 학생이라는 걸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다.
“김선우 학생. 컨트롤이 꽤 좋네
요? 방출과 조작 모두 홈잡을 곳이 없어요.”
“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선우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이희영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 를 지었다.
‘귀엽네.’
그러고 보니 최근 몇몇 교사들 사 이에서 김선우가 수업에 적극적이고 예의도 바르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 던 것이 떠올랐다.
지금 김선우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착한 아이의 영상을 악의적 으로 뿌린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참 못됐네.’
누군진 몰라도 평소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 분명하겠지.
“김선우 학생은 작년까지 강화계가 특기였다는데 사실인가요?”
이희영이 김선우에게 궁금했던 것 을 넌지시 물었다.
“……아, 네. 사실입니다.”
“그럼 발현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얼마 안 된 거네요?”
“어, 음……
말끝을 흐리는 김선우.
이희영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 을 기다렸다.
“네. 뭐, 그렇죠.”
“흐음…… 그래서 마력 방전이
공개 테스트 때 생겨난 마력 방전.
마력이 발현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필요로 하는 강화계 학생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발현계를 벌써 이 정도 로 다룰 수 있다니.’
이희영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압축 구현술과 노련한 방출, 조작 능력.
본격적으로 발현계를 익힌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마력 제어능력이라고 는 믿기 힘들었다.
‘이게 재능만으로 가능한가?’
“자, 주특기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학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이희영의 말에 모든 학생이 훈련을 중단했다. 길고 길었던 오후 발현계
수업이 종료됐다.
“스트레스 풀린다.”
“이게 수업이지.”
“빨리 가서 쉬고 싶네.”
학생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몸을 풀 거나 인사한 뒤, 훈련장 밖으로 빠 져나갔다.
내 옆에 있던 유아라는 마지막 마 법까지 사용하다가 짐을 싸기 시작 했다.
나도 슬슬 나가볼까.
훈련장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데 그때 이희영이 나를 불
렀다.
“김선우 학생?”
“네.”
“수업받느라 수고했어요. 요즘 훈 련은 잘하고 있나요?”
“아, 네.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마나 연공은요? 평소에도 하고 있 나요?”
생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이희 영.
저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대충 알겠다.
내가 보여준 실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마나량을 눈치채고 하는 소 리겠지.
“네, 하고 있습니다.”
“김선우 학생은 다 좋은데 마나량 이 좀 많이 부족한 거 같아서 그것 부터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아요.”
확실히 A급 마법사 출신답게 내 문제점을 정확히 집는다.
“꾸준히 해야죠. 마나를 쌓는 덴 요령이 없으니.”
“맞아요. 꾸준히 해야 해요. 김선우 학생은 성실해 보이니까 잘할 거라 믿어요.”
이희영은 잠시 나를 보더니 아, 잠 시만요. 라고 말하며 뒤의 책상 서 랍을 열기 시작했다.
“어디 뒀더라.”
뭘 찾는 거지?
이희영은 서랍을 뒤지다가 원하는 것을 찾은 듯 다시 몸을 일으켰다.
“자, 받으세요.”
이희영이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뺄간색 구슬이 3개가 얽혀있는 작 은 팔찌였다.
“마나 호흡과 컨디션 유지에 도움
이 되는 아이템이에요. 제가 예전에 연습용으로 만든 건데 드릴게요.”
“네‘?”
특수한 힘을 가진 아이템은 아무리 싸도 50만 원대를 넘어간다.
그걸 취미로 만든 것도 모자라 나 에게 준다고?
“어…… 이런 걸 받아도 될지.”
“아, 부담 갖지마요. 어차피 연습용 으로 만든 도둥급 아이템이고 직접 만든 거라 원가도 얼마 안 돼요.”
그렇다고 하니 부담이 덜하다.
준다고 하는데 안 받을 순 없지.
나는 이희영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후딱 팔찌를 받았다.
손목에 착용하니 미미하지만, 몸에 활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아, 감사합니다. 너무 효과가 좋네 요.”
“에이. 큰 변화는 거의 못 느끼실 거에요. 이런 건 보통 기본적인 마 나가 형성 안 된 어린 친구들이 사 용하는 건데. 김선우 학생 같은 경 우는 특이 케이스니 사용해도 될 것 같아요.”
“네, 잘 쓰겠습니다.”
내 말에 이희영이 만족한 듯 후후.
하고 웃었다.
“자, 수업 끝났으니 어서 이동하세 요.”
오후 6시.
학교의 모든 수업이 끝났다. 학생 들은 분주하게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나 역시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기 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 렀다.
“김 선우.”
고개를 돌려보니 이서준이 내 뒤에서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나는 이서준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별거 아니야. 팀 다 짰으니까 알 고 있으라고.”
아. 맞다.
내일이 던전 탐험 날이었지.
“팀원 구성표는 제출했어?”
“응. 방금 내고 오는 길이야.”
“그래? 남은 애들은 누구로 짰는
데?”
“신지혁, 윤하영, 정진태.”
신지혁, 윤하영, 정진태…….
원작에서 나름 중요한 포지션을 차 지하는 윤하영을 제외하면 기억에 남지 않은 이름이다.
아무래도 주요 등장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기준으로 뽑은 거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걔들이 누 구더라.”
“음. 모를 수도 있어. 너처럼 눈에 띄는 애들은 아니라.”
이서준의 장난 섞인 말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근데 걔네 순위가 어떻게 돼?”
“43, 82, 122위.”
“뭐‘?”
순간 황당함에 입이 벌어졌다.
이거 괜찮은 거 맞나?
나를 포함해 하위권 학생이 셋이나 같은 팀에 포함됐다.
아무리 이서준이라고 해도 이런 팀 구성이면 유아라 팀에게 밀릴 여지
가 생긴다.
“야, 너 이거 맞아?”
“응, 무슨 문제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