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535)

‘귀여운 녀석들.’

나는 이번 테스트에 자신이 있었다.

나름 이전 삶에서 B급 승급 제의 도 몇 번 받은 나다.

프로 마법사로서 살아온 경력이 있 는데 고작 이런 애기들 상대로 평균 치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목표는 2학년 10위 안에 드는 것.

이번에 확실히 눈도장을 찍고 순위 도 높여 업적과 명성 포인트를 모두 챙길 생각이다.

긴 줄이 끝나고 다른 학생들처럼 식판에 음식을 담아 빈자리에 앉았 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친구들 끼리 모여 즐겁게 식사하고 있다.

어째 분위기를 보아하니 혼자 먹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어, 이거 좀 서러운데.

아, 아니구나.

잘 찾아보니 나처럼 혼밥하는 애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저 구석에서 고고한 자세로 혼밥 중인 유아라다.

동질감 담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 보는데 그때 딱 그녀와 눈이 마주쳤 다.

유아라의 눈이 못 볼 것은 봤다는 둣 찌푸려졌다.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하나둘씩 대 강당에 모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있을 순위 평가 테스트 때문에 다소 경직된 분위기다.

얼마 안 가 모든 학생이 대강당에 모였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되자 강당 안에 마이크 소리가 울려 퍼렸다.

[1 학년 테스트를 먼저 진행하겠습니다. 2, 3학년 학생 여러분은 2층 관중석으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

다.]

나를 포함한 2, 3학년 학생들은 모 두 2층 관중석으로 이동했다.

“아, 나 너무 떨려.”

“나도…… 2, 3학년 선배들은 이거 어떻게 했대?”

잔뜩 긴장한 1학년들의 대화가 2 충까지 들려왔다.

아마 1학년들에게는 이 테스트에 대한 압박이 다른 학년보다 더 심하 게 느껴질 것이다.

단순한 순위 테스트처럼 보여도 1

학년들에겐 선배들에게 보이는 신고 식 같은 개념도 함께 포함되니까.

[지금부터 1학년 평가 순위 테스트 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슬슬 시작하는 건가.

[최서윤 학생, 전민기 학생, 고정환 학생……]

단상 위의 부름에 1학년 1위인 최 서윤이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올랐다.

그녀의 당당한 발걸음에 모든 관중 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린다.

1학년은 주특기가 정해지지 않아 마법의 4계통을 모두 시험 본다. 그 리고 그중 가장 높은 점수의 계통을 점수로 매긴다.

“최서윤 학생. 시작하겠습니까?”

“네!”

첫 테스트는 그녀가 가장 자신 있 어 하는 발현계 마법이었다.

그녀 앞에 인간 모형의 움직이는 표적 하나가 떠올랐다.

소환계열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

형’이다.

그녀는 그것을 보더니 두 손을 앞 으로 뻗었다.

동시에 그녀의 등 위로 새하얀 얼 음 창 하나가 구현되기 시작했다.

“와. 창 크기 봐.”

“괜히 1위가 아니네.”

“진짜 미쳤다.”

아직 마법도 날리지도 않았는데 벌 써 관중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그녀의 재능에 감탄이 나왔다.

발현계에서 파괴력을 담당하는 첫 번째 단계 ‘구현’이 거의 완벽했다.

1학년이 저 정도의 마법을 구현하 다니.

디테일이며 선명도며 부족한 게 하 나도 없었다.

아마 2, 3학년 중에서도 저 정도의 구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같 은 발현계 마법사인 유아라 밖에 없 겠지.

“핫!”

그녀의 짧은 기합에 거대한 얼음 창이 표적을 향해 날아들었다.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 그 거대한 소리가 감탄하는 학생들 의 소리를 집어삼켰다.

인형은 도망치기 위해 움직였지만,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얼음 창을 피 할 순 없다.

—콰직!

표적이 잔인하게 박살 나자 관중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감탄이 터졌다.

“진짜 잘한다.”

“쟤는 2학년 와도 10등 안에 들겠 는데?”

“10둥은 무슨. 5둥 안에 무조건 들 걸?”

테스트는 계속 진행됐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다른 계열인 강화계, 소 환계, 보조계 테스트가 모두 끝났다.

역시 타고난 재능을 가진 그녀답게 주특기인 발현계 말고도 다른 계열 에서도 준수한 실력을 선보였다.

[1 학년 A반 최서윤 테스트 종료.]

테스트가 끝난 최서윤은 옆의 교사 에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2충의 관중석을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 특유의 계산된 미소가 관중을 향해 쏘아진다.

양손을 들어 관중에게 흔들자 남학 생들 사이에서 환호가 일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눈에 받자 행 복해하는 얼굴이다.

‘……쟤는 진짜 관종이네.’

시간이 홀러.

1학년 순위 평가가 끝나고 2학년 순위 평가가 시작되었다.

[2학년 A반 유아라 테스트 종료.]

“와! 미쳤다 진짜. 저게 어떻게 2 위야?”

“진짜 이번 2학년은 역대급 기수라

더니 진짜 장난 아니네.”

유아라의 차례가 끝나자 2층 관중 석에서 놀라움과 경악이 담긴 반웅 이 터졌다.

1위도 아닌 2위인 그녀가 보여주 는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크게 열광 했다.

나 또한 그녀의 마법을 보며 감탄 이 나왔다.

“대단하긴 하네……

뜨겁게 타오르는 화염 구체. 그 안 에 담긴 거대한 마력은 10대 학생 의 마법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유아라가 또각또각 시험대에서 내

려왔다.

완벽한 마법을 보였음에도 대기실 로 이동하는 그녀의 표정이 영 밝지 않다.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이서준에게 또 밀렸다고 생각 했을 거다.

방금 전 유아라의 마법은 정말 환 상적이었지만, 그전에 이서준이 보 인 모습은 그냥 프로 현역 마법사를 보는 듯했으니까.

이서준만 아니었다면 분명 어느 세 대에서도 1등 할 재능.

하필 이서준과 같은 세대에 태어나 분해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신영준 학생. 그리고 박인환 학생. 미리 대기하시길 바랍니다.]

“인환아, 이제 너 차례다.”

“하…… 짜증나네.”

다음 호명을 부르자 내 앞 좌석에 앉은 박인환이 짜중을 토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어.”

“무슨 일인데?”

박인환이 힐끔 자신의 추종자들을 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몰라도 돼.”

“말해봐. 무슨 일인데 그래?”

“……어제 길거리에서 어떤 놈이랑 시비가 붙었거든. 근데 그 녀석 좀 패주다가 협회에 걸렸어.”

“협회에 걸렸다고?”

박인환의 추종자1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 덕분에 학교에서 경고가 내려 왔어.”

“너 이번이 경고 두 번째 아니야?”

“맞아. 다음에 또 받으면 최소 정 학이야. 당분간 사려야지.”

“……조심해야겠네.”

박인환은 한숨을 토해내더니 의자 뒤로 누웠다. 그러다 가까운 옆자리 의 한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뭘 봐?”

박인환의 날카로운 말에 옆자리의 학생이 눈을 깜빡였다.

“뭘 보냐고.”

“......아, 미안.”

옆자리의 학생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던 박인환은 한심하다 는 듯 고개를 저었다.

“ 에휴.”

“야, 너 애들 괴롭히지 말랬지?”

그때 박인환의 만행을 보던 이서준 이 나섰다. 박인환은 아니꼬운 눈으 로 이서준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이내 박인환이 먼저 꼬리를 내렸다.

“예예. 이서준 님이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죠.”

비꼬는 듯한 박인환의 행동.

이서준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박인환.”

[2학년 A반 박인환 학생 올라오시 길 바랍니다.]

때마침 단상 위에서 박인환을 부르

는 소리가 울렸다.

박인환은 어깨를 으쓱했다.

“위에서 부르네. 이만.”

그대로 박인환은 대기실 전체를 쓱 노려보더니 단상 위로 올랐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자 대기실은 원 래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테스트는 계속 진행됐다. 상위권의 실력 있는 학생들 차례가 모두 끝나 자 지루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흐아암.”

내가 하품을 하자 내 앞에 앉은 박인환이 나를 향해 돌아본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영 곱지 않다.

예민하기는.

하품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괜히 한마디 하려다가 시비 걸리면 귀찮아져서 무시했다.

박인환은 소설 속 초반부에서 미친 놈 포지션을 담당한다. 엮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까. 혼자 고 민하다가 문득 내 능력치가 궁금해

져 능력창을 확인했다.

[능력치]

체력 : 42.02

근력 : 34.01

마력 : 21.91

속도 : 30

순발력 : 32

손재주 : 28

미미하지만 능력치에 변화가 생겼 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마력이다.

회귀한 첫날에 21이었던 마력이 3 일 만에 21.91 이 되었다.

휴일인 토, 일을 이용해 이틀간 마 나 연공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 문이다.

덕분에 1에 가까운 마력을 올렸다.

물론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매일 이렇게 마나 연공을 하다 보면 언젠간 내 마력도 쓸만해 지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혼자 미래에 대해 설계를 하는 중, 단상 위에서 마이크 소리 가 들렸다.

[조민영 학생, 김선우 학생. 나와서 미리 대기하시길 바랍니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1층 구석에 자리 잡은 교사 대기 실.

간식과 차가 잔뜩 놓인 이곳에서 20명의 교사가 모여 테스트의 감상 을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2학년이 대단하네요.”

“그렇죠? 역대급 기수라잖아요.”

발현계 담당 교사, 이희영이 눈을 빛냈다.

“아까 유아라도 대단하긴 했는데 이서준 봤어요? 걔는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검을 너무 잘 다루더라고요. 그 검에서린 마력이 얼마나 아름답던 지.”

“저는 걱정이에요. 강화계를 주특 기로 삼은 다른 학생들이서준이 보 고 기죽을까 봐.”

그 말에 교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방학 사이에 더 늘었더라 고요.”

“더 늘었죠. 물론 한창 실력이 늘 나이이기도 하고요.”

“거기다 방학 동안 김진철 회장한 테 가르침도 받았을 테니 실력이 안 늘 수가 없겠네요.

그때 조용히 커피를 마시던 한 교 사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이서준은 김진철 회장이랑 무슨 관계래요?”

“3번째 제자잖아요.”

“아니요. 그거 말고 뭔가 다른 관 계가 있지 않나 싶어서요.”

“아. 그건 모르죠. 소문에 의하면 김진철 회장이서준이를 어릴 때부 터 키웠다고 듣긴 했는데. 워낙 그 분이 비밀이 많아서.”

그러자 이희영이 갑자기 생각났다 는 듯 말했다.

“혹시 김진철 회장의 숨은 핏줄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저 재능도 이해 가 되는데.”

“에이, 너무 소설 쓰는 거 아니에 요?”

“그런가?”

[2 학년 A 반 김선우.]

단상 위에서 마이크 소리가 들리자 교사들은 잡담을 멈추었다.

“저희 반 학생이네요.”

교사들 사이에서 침묵을 지키던 A 반 담임, 장안철이 말했다.

“김선우? 누구지? 작년에 1학년을 제가 담당했었는데.”

“작년에 저희 반이었어요. 선우가 크게 존재감이 없어서 기억 못 하실 수도 있어요.”

“으음. 그래도 학생들 얼굴은 다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교사들이 떠드는 사이, 시험대 위 로 김선우가 올라왔다.

교사들은 그를 보며 각자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생각보다 여유로워 보이네요.”

“그러게요.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데요?”

교사 중 하나가 학생 리스트를 보

더니 말했다.

“작년 성적 기록 보니까 강화계에 재능있던 학생이에요. 순위는 112 위.”

그 말에 한 교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화계? 보니까 빈손인 거 같은 데.”

“격투술이나 신체 강화 계열인가 보죠.”

“여기 표에는 검을 사용했다고 적 혀있는데.”

그때 단상 위 김선우의 앞에 인형 이 소환됐다.

인형이 소환됐다는 것은. 그가 발 현계 테스트를 본다는 이야기였다.

“발현계인데요?”

교사 중 하나가 예상 못 했다는 듯 웃었다.

“뭐, 저런 학생들 가끔 있죠. 자기 가 잘하는 계열보다는 좋아하는 계 열을 특기 삼는 애들이요.”

“가끔 있기는 한데……

교사가 말을 하던 사이 시험대 위 에 있던 김선우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 위로 새하얗게 빛나는 구 체 하나가 생성됐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구체.

그때 조용히 지켜보던 발현계 교 사, 이희영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 아。]……

김선우가 구현한 마력 구체.

그 작은 구체에서 압축된 마력이 느껴졌다.

“압축 구현술?”

압축 구현술. 발현계 마법의 첫 번 째 단계인 ‘구현’ 단계에서 마력을 작게 압축하는 기술이었다.

마법의 크기를 작게 만들어 구현의 다음 단계인 ‘방출’과 ‘조작’을 좀

더 편히 사용할 수 있었다.

“……오. 2학년이 저런 기술을.”

하지만 압축 구현술은 어느 정도 경력 있는 베테랑 마법사들이나 사 용하는 기술이었다.

어린 학생들에겐 ‘파괴력’을 담당 하는 구현보다는 ‘속도’를 담당하는 방출과 ‘명중’을 담당하는 조작에 중요성을 더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112위. 심지어 몇 달 전만 해도 강화계에 특기를 보이던 학생이 저 고난도의 기술을 사용하 고 있었다.

그것도 어설프지 않고 완벽하게.

“저 학생. 꽤 실력 있네요.”

옆에서 들리는 한 교사의 말에 이 영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작게 압축해서 구현한다는 건, B급 마법사에게도 쉬운 일이 아 니었으니까.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