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535)

든 원인을 조사해서 해결하든 해서 미리 대비하면 되겠지.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거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건, 이 빌어먹 을 학교를 2년간 다시 다녀야 한다 는 거고.

오늘은 입학식 및 개학식이 있는 날이다.

중요한 행사인 만큼 늦지 않게 대 강당으로 이동해야겠지.

어디선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 렸다.

청춘과 웃음. 그 화기애애한 분위

기를 보고 있으니 가슴 깊은 곳에서 거부감이 든다.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대강당 문을 열자 거대한 단상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아직 개학 식 및 입학식 준비로 한창인 모양이 었다.

이 학교는 특이하게 1학년 입학식 과 2, 3학년 개학식을 함께 진행하 는 전통이 있었다.

각 학년의 대표가 단상 위로 올라 와 함께 선서를 외치는 아주 따분하 면서도 뻔한 그런 의식이었다.

이렇게 강당 안에 있으니 학생으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것으로 학교생활은 3번째다.

한 번은 내가 살던 현실에서, 두 번은 소설 속에 처음 떨어졌을 때. 세 번째는 바로 지금이다.

2번째까지는 설렘이 있었지만, 지 금은 아니다.

‘2학년 자리가……

아, 저기네.

각 학년 별 지정된 자리가 있어 2 학년 지정석으로 향했다.

자리는 약 절반 정도 차 있었다.

나는 적당한 빈자리에 앉았다. 앞 도 뒤도 아닌 중간보다 살짝 뒤 정 도인 애매한 위치. 이 정도가 심적 으로 안정된다.

« Q »

“o'*

이렇게 앉아 있으니 낯익은 얼굴이 몇몇 보인다.

당장 보이는 것만 해도 신영준, 이현주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현대 마법사〉의 주요 둥장인물들이다.

그리고 또 누가 있지.

“야, 저기 저거 1학년이냐?”

“어디?”

“저기 덩치 크고 살짝 탈모인 사 람.”

“미친. 저거 뭐야? 아저씨 아니 냐?”

아는 얼굴을 찾고 있는데 웅성거리 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1학년 자리에 웬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같은 교복을 입고 있음에도 혼자 눈에 띈다.

한 학생이 용기 있게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저, 신입생이세요?”

“네? 아, 네.”

“혹시 나이가?”

“17살인데요.”

“아......

학생이 탄식한다.

나는 그 대화를 지켜보며 웃음을 참았다.

저 아저씨도 주요 등장인물이었다.

1학년 2위 전민기.

신체 강화계 마법사로 극한의 노안

을 갖고 있었다. 성격도 좋고 재능 도 뛰어나서 독자들 사이에서 꽤 인 기가 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쟤는 며칠 전에 뉴스에서도 봤었는데. 어째 지금이 더 늙어 보 이냐.

끼이 익!

귀를 찌르는 마이크 소리가 강당 안을 크게 울렸다.

학생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막 았다. 시끄럽던 강당이 한순간에 조 용해졌다.

[아아. 자, 학생 여러분 자리에 앉

아주시길 바랍니다. 3분 뒤 입학식 및 개학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이제 슬슬 시작하는 건가.

무리를 지어 대화를 나누던 학생들 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비어있던 자리가 빼곡히 채워져 간 다. 학년당 약 150명 정도의 학생이 있다. 모든 학년을 합치면 약 450명 정도의 인원이 강당에 모여있는 셈 이다.

그런데 내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 는다.

괜히 뻘쭘하게 앉아 있는데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녕.”

맑은 여성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긴 혹갈색 머리의 여학생이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유아라?’

남자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청순한 외모. 2학년 2위 유아라다.

내가 멍하니 그녀를 보고 있자 시 선을 느꼈는지 획 나를 향해 돌아본 다.

“왜? 뭐 할 말 있어?”

“……아니.”

“그럼 시선 좀 다른 곳으로 돌려줄 래? 좀 부담스러워서.”

유아라는 이런 애였다. 인사성은 좋지만, 사교성이 나쁘다.

자존심도 강하고 주변 학생들을 모 두 경쟁자로 생각해 쉽게 마음을 열 지 않는다.

특히 유아라는 이서준에게 강한 경 쟁심을 갖고 있었는데, 항상 이서준 에게 밀려 교내 성적 1위를 내줘서 그러했다.

[자, 그럼 2032 한국 마법사관학교 입학식 및 개학식을 진행하도록 하

겠습니다.]

마이크 소리가 다시 강당 안을 울렸다.

의자에 앉은 학생들은 긴장한 얼굴 로 단상 위를 올려봤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유아라가 단상 아래서 준비 중인 이서준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각 학년 대표분들은 단상 위로 올 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몇 초간의 정적.

그리고 세 명의 학생이 단상 위에 오르자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 리기 시작했다.

“와. 신입생 수석 진짜 이쁘다.”

“쟨 특기가 뭐래?”

“빙 속성 발현계. 근데 강화계도 잘 다룬다던데.”

가장 먼저 단상에 오른 건 1학년 1위인 최서윤이었다.

메인 시나리오엔 큰 비중을 차지하 고 있진 않지만, 가끔 이서준올 도 와 큰 활약을 하는 녀석이었다.

그녀가 밝게 미소를 짓자 남학생들 사이에서 환호가 일었다.

아마 저 미소를 보고 안 홀릴 남 자는 거의 없을 거다.

하지만 저 미소는 다 계산된 미소 다. 자기애가 넘치는 그녀는 사람들 에게 관심받는 것을 즐긴다.

그녀의 소소한 악취미 중 하나였다.

그 뒤를 이어 내가 잘 알고 있는 그 녀석이 단상 위로 올랐다.

2학년 1등이자, 이 세계의 주인공.

이서준.

“나왔다. 이서준 선배님.”

“대박.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더 잘생겼는데?”

“와. 포스 장난 아니다.”

“김진철 회장한테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며?”

“그만큼 재능이 넘사벽인 거지.”

이서준이 등장하자 1학년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마치 동경하던 연 예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서준은 학생 신분임에도 현역 마법사들 사이에서 이미 역대급 유망 주로 통한다. 소설〈현대 마법사〉는

그런 소설이었다. 주인공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소설.

마지막으로 호리호리한 안경 쓴 남성이 올라왔다.

3학년 1위, 김창현.

앞에 나온 두 학생에 비해 외적인 포스는 조금 떨어진다.

사실 저 남자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원작에서도 워낙 비중이 작 았기에.

모든 학년 대표가 올라오자 마이크 가 다시 울렸다.

[그럼 학생 선서가 있겠습니다.]

“선서.”

“선서.”

“선서.”

따분하게 선서를 지켜보다가 슬쩍 유아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무서운 눈으로 단상 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언제봐도 대단한 경쟁심이다. 아마 저 단상 위가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 하는 거겠지.

하긴. 그녀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그녀의 재능은 강당 안에서 이서준 다음으로 재능이 뛰어나니까.

“아쉽겠네.”

슬쩍 유아라에게 말을 걸어봤다.

대답은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이서준에게 집중하느라 내가 말을 걸 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듯싶었다.

……괜히 뻘쭘해지네.

다시 말 걸기도 좀 그렇고 해서 그냥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나한테 한 소리야?”

고개를 돌려보니 유아라가 의미심 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뭐가 아쉽겠다는 건데?”

“솔직히 네가 저기 두 명보단 나은 것 같아서.”

일종의 립서비스였다. 네가 저들보 다 뛰어나다는 건 잘 알고 있다는.

앞으로 메인 시나리오에 개입할 생각이니 미리 친분을 쌓아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과 친해지면 그만큼 나에게 생기는 ‘특별한 이 득’도 있었다.

하지만 유아라는 내 말에 정색했다.

“야. 너 웃긴다. 뭘 알고 그러는데. 네가 쟤네 마법 쓰는 건 봤어?”

“아니.”

“근데 왜 멋대로 확정지어?”

“딱 보면 아니까.”

“뭐?”

내 단호한 말에 유아라의 얼굴이 순간 벙쪘다.

“내가 감이 좋거든.”

내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유아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장난치는 거야?”

“장난치는 거 아닌데.”

유아라가 기가 찬 둣 고개를 가로 저었다. 표정이 마치 상대하지 말아 야지.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대놓고 무시하니 괜히 없던 오기가 생기네.

좀 더 놀려볼까.

“진로 관련으로 요즘 트러블이 많 지?”

유아라의 어깨가 순간 움찔했다.

찌푸려진 눈살로 나를 쳐다봤다.

“너……

[이것으로 학생 선서를 마칩니다.]

유아라가 뭔가 말하려는 사이 선서 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상 위의 세 명은 그대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들을 지켜보던 유아라가 내게 말 했다.

“어떻게 알았어?”

부정할 줄 알았는데 솔직한 반응이 다.

나도 솔직하게 ‘소설에서 그렇더 라.’라고 대답할 순 없으니 대충 둘 러 말했다.

“말했잖아. 내가 감이 좋다고.”

“장난칠 기분 아니야.”

“진짜라니까 못 믿네.”

“야! ……됐다. 운 좋게 얻어걸린 건가 보네.”

그러더니 유아라가 내 가슴팍의 명 찰로 시선을 옮겼다.

“……김선우.”

이름을 외우려는 듯 몇 번을 되뇌 인다. 그 모습이 괜히 섬뜩하다.

“김선우. 너 이름 기억했어. 앞으로 나한테 말 걸지 마.”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여기서 더 놀리면 안 될 것 같아 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여기서 물러나지 않으면 뭔 짓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지루했던 학교 행사가 끝나자 졸던 학생들이 하나둘씩 잠에서 깨기 시 작했다.

“흐아암…… 어후 잘 잤다.”

“진짜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네.”

확실히 행사가 지루하긴 했다. 이 나이 먹고 선생님 훈화 말씀 듣자니 따분하기도 하고.

“으으음!”

기지개를 켰다. 당장 이 숨막히는

강당에서 나가고 싶지만 학급 예비 소집이 남아있어 가만히 있었다.

“2학년 A반! 이곳으로 모여라!”

그때 어디서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2학년 A반. 내가 속한 반의 이름 이었다.

목소리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바위같이 생긴 근육질 남성이 서 있었다.

“A반 모이래.”

“가자!”

그렇게 50명의 학생이 남성 앞으

로 모였다.

그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몇 보였다. 이서준, 신영준, 이현주, 유아라 등등. 이 세계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었다.

남성은 우리를 둘러보더니 입을 열 었다.

“반갑다. 일 년간 A반을 담당하게 된 교사 장안철이다.”

와아-!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환 호가 터졌다. 그것이 민망한지 장안

철은 손을 들어 저지했다.

“내 소개를 하려는데 혹시 나에 대 해 아는 사람이 있나?”

“철혈이요!”

몇몇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큰소 리로 외쳤다.

철혈 장안철. A급 마법사로 국내 에서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 큼 유명한 스타 마법사였다.

장안철은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다 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철혈 이라는 이명을 갖고 있다. 강철처럼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내 특기라 붙여진 별명이지.”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이 눈을 빛내 며 신기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이 어린 학생답게 순수하고 귀 엽다.

“길게 할 말은 없고 간단한 공지를 하고 마치겠다.”

“공지?”

“우선 본격적인 수업의 시작이 다 음 주 월요일부터인 건 다들 알고 있을 거다.”

장안철의 말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 마법사 관학교의 전통인 전 학년 순위 평가 테스트가 있다.”

“아......

몇몇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이 홀렀다.

전 학년 순위 평가 테스트.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든 학생이 대강당에 모여서 하는 공개 테스트 를 말한다.

실력 있는 학생은 450명의 학생 사이에서 감탄과 존경을 받겠지만, 반대로 실력 없는 학생은 야유와 비 웃음을 받는 어찌 보면 잔인한 테스 트라 할 수 있었다.

“시간은 월요일 오전 10시다. 모두 늦지 않게 이곳 대강당으로 다시 모 이도록 한다.”

“네에.”

학생들의 시무룩한 대답이 들렸다.

장안철은 웃으며 힘차게 말했다.

“자! 공지는 여기까지다. 주말 편 히 쉬고 다음 주 월요일에 이곳에서 다시 보자!”

학교 일정이 모두 끝나고 자유시간 이 찾아왔다.

남은 시간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 하다가 갑자기 허기가 생겨 교내 편

의점에 들르기로 했다.

“서준아, 올해도 잘 부탁해!”

“너 선서하는 거 멋지더라.”

이서준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가까운 학교 공원 앞에서 이서준과 그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수많은 무 리가 모여있었다.

그 오른쪽에는 이서준의 소꿉친구 인 이현주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절친 신영준이 누군가와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흥미롭게 구경하는데 어디 선가 불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서준, 이서준. 시끄럽네.”

“그러게. 저딴 놈이 뭐가 좋다고. 아 짜증나.”

“아씨. 왜 저 새끼랑 또 같은 반이 야.”

누구지?

고개를 돌려보니 한 남학생 무리가 멀리서 못마땅한 얼굴로 벤치에 앉 아 있는 게 보인다.

“인환아, 그냥 무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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