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돼.”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나는 충격적인 소식에 경악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착오가 생긴 게 분 명했다. 그렇지 않고선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었다.
즈급 마법사, 이서준 씨가 임무 수행 중 숨졌습니다.
이서준 씨는 오늘 오후 8시쯤 서울 도심에 나타난 악룡, 크루아스를 토벌하는 중 화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가 다소 굳은 얼굴로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크루아스는 몬스터 역사에 전례 없던 2차 폭주를 일으키며 상황을 악화시켰는데요.
이서준 씨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필사적으로 크루아스를 막아냈지만, 2차 폭주로 강해진 크루아스를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J
「……올해 25살인 이서준 씨는 2034년 마법사로 데뷔했고, 이후 수 많은 사건을 해결하며 대중의 끝없는 관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서준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대중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몇 분간의 기사 전달이 끝나자 화면이 바뀌었다.
비장한 음악이 깔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밝게 웃고 있는 잘생긴 청년의 사진이 나왔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슬퍼했다.
전국 곳곳에 분향소가 설치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서준.
25살의 천재 마법사.
수많은 사건과 재앙을 해결한 이 시대의 젊은 영웅.
그리고 이 세계의 기반이 되는 소설〈현대 마법사〉의 주인공.
“……이걸 나보고 믿으라고?”
소설 속 세계에서 주인공이 죽었다.
이보다 더 황당한 일은 없었다.
분명 원작의 이서준은 이런 식으로 중간에 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더더욱 어이없는 건, 지금 까지 이 세계는 원작의 흐름대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서준이 어린 나이에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것도, 데뷔 2년 만에 S등 급에 오른 것도. 모두 원작의 내용 그대로였으니까.
「故 이서준 빈소J
화면 너머에서 한 여성이 서럽게 오열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이서준과 쭉 함께한 여주인공, 이현주였다.
뒤를 이어 침통한 얼굴의 한 남성이 나왔다.
그는 이서준의 동료이자 직장 선배인 S등급 마법사, 김덕현이었다.
「이서준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돈 에 움직이지 않았고, 시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비록 나이 는 어리고, 직장에선 까마득한 후배 였지만 저는 그 아이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어서 다른 조문객들의 모습이 나왔다.
그 중엔 마법사 협회장 같은 높은 직위의 사람도 있었고, 대한민국 3 대 길드 수장 같은 거물도 있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스타 마법사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들은 모두〈현대 마법사〉의 ‘주요 등장인물’들이었다.
“와, 진짜 돌겠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정해진 미래.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건, 이 세계의 외부자인 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메인 시나리오에 개입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미래를 바꿀만한 일을 한 적 역시 없었다.
나는 이곳에 떨어지고 항상 조용히 살았다.
물론 돈도 벌어야 했기에 C급 마법사로서 활동하긴 했지만, 혹시 나 때문에 미래가 바뀌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항상 메인 스토리 밖에서 활동했다.
그런 이유로 ‘주요 등장인물’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의 B급 승급기회도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부 거절했다.
이 모든 건 정해진 미래를 바꾸지 않기 위해서였다.
원작대로만 홀러가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로 이어질 테니까.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왜 죽냐고 왜......
원작에 따르면 아직 수많은 사건과 재앙이 남아있었다. 마인, 테러리스트, 탑, 재앙급 마수…… 설명하자면 끝도 없다.
문제는 앞으로 일어날 이 거대한 사건들은 이서준 없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어떡하지?”
이건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소설 속에 떨어진 초기라면 모를까.
이 세계의 기연이란 기연은 전부 양보한 난 고작 C급 마법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인 시나리오엔 S, A급의 괴물들이 수두룩했다.
C급과 S급의 차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하아……
그렇게 앞으로 벌어질 미래를 걱정 하며 괴로워할 때였다.
텔레비전 화면이 멈추며 내 주의를 끈건 그때였다.
“……이건 또 왜 이래?”
고장이라도 났나 싶어 리모컨을 집고 이것저것 눌러봤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쿠우우우웅!
“뭐야?”
하늘 위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놀라서 창밖을 바라봤다. 밝았던 세상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내 입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이, 이게 뭐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공간은 마치 깨진 유리창처럼 금이 생겼다.
지상의 모든 것들은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세상이 사라지는 듯싶었다.
“이게 뭐냐고……
그때 눈앞에 작은 창이 떠올랐다.
[이서준이 사망했습니다.]
[모든 메인 시나리오가 실패로 간주 됩니다.]
[시나리오 진행 불가. 세계를 리셋합니다.]
“......뭐‘?”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꿈을 꾸고 있었다.
때는 7년 전.
아니, 이 빌어먹을 소설 속으로 떨어지기 전의 상황인 듯했다.
꿈속의 나는 술집에서 술을 퍼마시며 무언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의문이야. 왜 소설 빙의물 주인공들은 항상 독식하려는 걸까? 그러다가 괜히 원작 전개가 꼬이면 어떻게 될줄 알고?”
“야, 미래도 알고 있는데 당연히 독식해야지. 그럼 숨어 지내냐?”
“당연히 숨어 지내야지. 괜히 나서다가 악당을 처치해야 할 주인공이 죽으면 어쩔 건데. 완전 망하는 거잖아.”
“어휴, 저 쫄보. 그럼 내가 악당을 처치하면 되지.”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그랬듯 생산적이지 않은 장르 소설에 관한 이야기였다.
만약 소설 속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기연을 독식해야 할까. 아니면 숨어서 지내야 할까.
건실한 20대 남성들의 대화라기엔 수준이 낮았지만 나는 이런 대화를 꽤 즐겼다.
“네가 악당을 처치한다고? 그게 네 생각만큼 잘될 것 같냐? 아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할 텐데. 애초에 네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부지런할 것 같아?”
“얘는 로망이 없네.”
“당장 너만 봐도 게을러빠졌는데 소설 속에 떨어지면 퍽이나 부지런 하게 기연 독식하겠다.”
“큭큭. 그건 맞지. 솔직히 막상 그 상황이 되면 귀찮아서 어디 나가지
도 않을 거 같긴 해.”
친구가 장난스레 웃으며 잔을 비웠다.
나 역시 친구를 따라 잔을 비우며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무조건 조용히 사는 게 답이야. 알아서 주인공이 다 해결해 줄 텐데 뭐하러 나서?”
이 말을 듣고 누군가는 욕심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절 나는 이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영웅의 모험담을 좋아하는 일
반인일 뿐, 영웅이 되고 싶은 사람 은 아니었으니까.
부우웅.
그렇게 술을 퍼마시던 그때, 스마 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나는 화면 을 슬쩍 보았다.
“어? 나 무슨 이벤트 당첨됐다는 데?”
“무슨 이벤트?”
“몰라. 그렇게 적혀있어. 확인해 봐 야지.”
나는 스마트폰을 쥐고 내용을 확인 했다.
발신인은 내가 즐겨 읽던 웹소설의 작가였다.
[제목 : 축하합니다.〈현대 마법사〉완결 기념 이벤트에 당첨되셨 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선우 씨.〈현대 마법사〉의 작가 01k입니다. 김선우 씨는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당첨 상품은 특별 한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여행권입니다.]
[수령 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내용은 짧았다.
요약하자면 이벤트에 당첨됐으니 여행권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나 는 별다른 의심 없이 기뻐하며 자랑 했다.
“야, 대박! 여행 보내준다는데?”
“진짜? 언제 웅모했냐? 김선우 맨 날 소설만 읽더니 완전 이득 봤네.”
이때의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 매우 지쳐있었다.
늘 새로운 자극을 원하고 있었고,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 들을 경험해볼 아주 좋은 기회였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와, 이거 낚시 아니겠지?”
나는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술에 취해 조금 충동적으로 [예]를 선택했다.
어차피 공짜 여행.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어디로 보내주려나? 설마 해외인가? 그럼 진짜 대박인데.”
나는 이 한 번의 선택이 내 인생 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전혀 몰 랐다. 그리고 다음 날. 내가 눈을 떴을 땐 세계가 바뀌어 있었다.
“……배님, 일어나세요.”
한창 꿈속에서 헤엄치던 사이.
나를 깨우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일어나세요.”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나를 말하는 건가?
“선배님!”
번뜩 눈을 떴다.
고개를 들어보니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누구?”
“저요?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인데 요.”
신입생? 뭐 교복 입은 거 보면 학 생인 건 알겠는데…….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닌데.
그나저나 이 애, 뭔가 낯이 익네.
“학교 도착했어요. 지금 내려야 해 요.”
학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버스 안이었다. 주변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어디서 본듯한 익숙한 풍경.
나는 그것을 보며 알 수 없는 기 시감을 느꼈다.
“......뭐지?”
“잠 덜 깨셨네. 오늘 입학식이잖아 요. 아, 선배님한테는 개학식인가?”
“뭐?”
“안 내려요? 전 먼저 내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여학생은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따라 내렸다.
버스에 내리자 따뜻한 태양 빛에 눈이 부셨다.
눈을 찌푸린 채 천천히 주변을 둘 러보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거대한 탑이 었다.
그 밑에는 마치 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그 앞의 정문을 지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혼미해 졌다.
내 시야에 펼쳐진 이곳은 내가 잘 아는 장소였다.
[한국 마법사관학교 2032학년도 입학식]
그야 당연한 게, 이곳은 내가 5년 전에 졸업한 학교였으니까.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 2032학년도라는 문구가 적혀있
는 거지?
2032년이면 7년 전인데…….
명색에 세계 최고의 명문 학교가 이런 잔 실수를 할 리는 없고.
“......설마.”
문득 한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것이라 면 이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내 상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순간.
“미친.”
내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나는 7년 전 학창시절에 입던 교 복을 입고 있었다.
동시에 이곳에 오기 전 마지막 기 억이 떠올랐다.
이서준의 죽음.
그리고 세계를 리셋한다는 메시지.
“이거 진짜야?”
나는 과거로 돌아왔다.
그것도 소설 속에 떨어졌던 첫날 로.
[2032년 3월 1일]
[오늘은 한국 마법사관학교의 입학 및 개학식 행사가 있습니다. 1학년 입학식과 2, 3학년 개학식을 함께 진행하오니 모든 학생 여러분은 오 전 10시 30분까지 현자관 대강당으 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돌겠네.”
황당함을 느끼며 스마트 학생 수첩
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7년 전 그날과 똑같다.
교복이며, 학교며, 문자메시지며 모 든 게.
이렇게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그나저나, 이서준 그놈은 대체 왜 죽은 거지?”
나는 어젯밤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 에 잠겼다.
아마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은 이서준의 죽음일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세계를 리셋한다는 문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상황이 이 해가 되지 않았다.
원작에 따르면 이서준이 죽을 이유 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악룡, 크루아스가 서울 도심에서 2 차 폭주를 일으키는 것마저 원작과 동일했으니까.
그렇다는 건, 그의 죽음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
“으음.…”
“아~ 모르겠다.”
탄식하며 벤치에 몸을 기댔다.
거듭 생각해보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다.
이전 삶은 이미 끝났고 단서도 부 족하다.
필연적인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 역시 모르는 일 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번 생에도 이서준이 죽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마 또다시 이렇게 과거로 돌아가 는 걸까? 아니면 세상이 멸망이라도 하는 걸까?
확실한 건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에도 이서준이 죽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이번 삶은 전처럼 겉돌 수 없다.
메인 시나리오에 개입을 하던가 해 서 미래에 있을 이서준의 죽음에 대 비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7년간 숨어지낸 나다.
인제 와서 적극적으로 하자니 자신 감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이것저것 경험해 두는 건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금방 떨 쳐냈다.
그래도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그래, 조급해지지 말자.
어차피 이서준이 죽는 건 7년 뒤 다.
시간은 많으니 그전까지 힘을 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