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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12

워싱턴 샘슨 메디컬.

끼익!

비서의 연락을 받고 급히 방향을 튼 달튼은 꼬박 1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사안의 중요성 탓인지 병원 인근부터 철저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후 도착한 건물 입구에서도 일반인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보안절차가 까다로웠다.

“CDC?”

막 차에서 내리려는 그의 눈에 뜨인 것은 CDC의 방역차량이었다.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달튼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고, 결국 정문을 들어서는 그의 입에선 호통이 내쳐졌다.

“대체 CDC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오셨습니까.”

소리를 듣고 달려온 병원 관계자들과 공의회 비서진들은 온몸이 땀에 젖은 채였다.

윌리엄의 갑작스러운 변고가 패닉을 불러온 듯.

하긴, 윌리엄의 경우 공의회의 공식서열과는 상관없이 주요 인물로 분류되고 있는 존재인 터라 저들로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누가 CDC를 불렀냐고 물었네만.”

“저 그게…… 윌리엄 회장님의 상태가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 병원장께서 감염성 질환을 의심하신 모양입니다. 해서 규정에 따라 다급하게 중앙정부에 연락을 취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쯧.”

아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세포의 급격한 파괴현상은 체액의 대량 배출과 출혈을 야기할 터.

그건 자칫 유행성출열열과 같은 질병으로 오해를 살 가능성이 크니까.

하지만 사태의 전말을 대강이나마 예측하고 있는 달튼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분위기인 것이 사실이다.

“지금 당장 CDC 책임자에게 가서 철수하라고 해. 이건 감염병 따위와는 상관없는 문제니까.”

달튼은 굳은 표정으로 말하곤 몸을 돌렸다.

우습게도 목적지인 특실로 향하는 사이 복도를 가득 메운 정치 경제계 인물들의 수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하는 상황.

감염을 의심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병원 측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달튼의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졌다.

드륵!

들어선 병실에도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기가 찬 달튼은 코웃음을 치며 베드를 향해 다가갔고, 마침 그를 발견한 에머슨 회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한동안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는 듯하더니 도로 악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스윽.

달튼은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윌리엄을 쳐다봤다.

당장 죽음의 문턱을 넘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얼굴.

그나마 의식은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병원장이 감염성 질환을 의심하던데, 이렇게 죄다 모여 있어도 되는 겁니까?”

“감염은 무슨. 우리 중 윌리엄을 이렇게 만든 것의 원인이 뭔지 모르는 자가 몇이나 된다고요. 더군다나 워싱턴에서 출혈열 따위에 걸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넌지시 던져진 달튼의 말에 에머슨이 코웃음을 쳤다.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 달튼만은 아니라는 증거.

시선을 돌린 달튼은 마침 자신을 보며 입을 우물거리는 윌리엄을 발견했고, 곧 그의 얼굴을 향해 귀를 가져갔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 거요?”

“케빈…… 놈을 심문 중입니다.”

비록 앞뒤가 잘려 나간 말이었지만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자의 정체를 말하고 있다는.

의외인 것은 그게 하필 윌리엄의 오랜 수족이라는 점인데, 내내 병실 분위기가 싸했던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 듯싶다.

가장 가까웠던 자에게 당한 윌리엄.

여기 있는 인물들이라고 그렇게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기에.

“확실합니까?”

질문과 함께 달튼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에머슨 회장이었다.

내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당사자는 아니라고 해도 그 집사놈 외에는 범인이라고 단정 지을 자가 없어요. 특히나 최근 윌리엄의 행동을 감안하면.”

“…….”

“박사님도 아시다시피 윌리엄이 개발한 MMS. 즉, 정상세포자살명령을 내리는 무기는 경구제로도 완성이 된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요?”

“윌리엄은 그 MMS가 우리의 적대적 세력에게 넘어가서 이용당하는 상황을 배제하지 않은 탓에 최근에는 자신이 마시는 물 한 잔조차도 철저하게 검증을 해 오던 터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됐으니 그 검증을 담당하던 자가 범인으로 의심받을 수밖에요.”

MMS에 아군이 당할 수 있다는 우려는 애초 달튼 본인이 내세웠던 주장이었다.

때문에 몇 번이고 대책이 존재하는지를 물었지만 윌리엄은 그 대답으로 명령을 무력화하는 효소가 존재함을 자랑했었고.

한데 그 결과가 이것인가?

아니, 상대는 대체 누구기에 개발자가 만든 열쇠마저도 무력화해 버린 것이란 말인가.

“회장님, 진짜 문제는 윌리엄이 현재 자신만 보유 중이었던 PPS. 즉 MMS의 작용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효소를 투여했는데도 이 지경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그 말은 곧 우리 역시 이 지경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요.”

달튼은 머릿속을 수놓던 문제를 입으로 뱉어 냈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 범인이 누구인지가 무에 그리 중요할까.

자신들을 향해 돌려진 칼자루를 막아 낼 최후의 보루마저 무력화됐다면 이젠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인 걱정거리다.

“그게 문제입니다. 지금은 비록 윌리엄뿐이지만, 앞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말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빌어먹을 우리가 만든 칼에 우리가 당하게 생겼으니…… 윌리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난 솔직히 전에 그가 주관했던 만찬에서 마신 물과 음료수들도 죄다 의심스럽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미 우리들도 당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거요.”

순간 병실에 있던 대부분의 인물이 몸을 움찔했다.

달튼도 그건 마찬가지.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 아침나절 양치질 도중 보았던 핏기조차도 마음에 걸린다.

“그나저나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박사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윌리엄은 안전장치를 투여받은 상황에서도 이 지경이에요. 하면 정황상 이 일의 배후는 그 안전장치까지 무력화했다는 건데, 대체 어떤 존재가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에머슨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답이야 빤하지 않을까.

여전히 윌리엄의 상태를 지켜보던 달튼은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진현승이겠죠.”

“…….”

“솔직히 상황이 이러면 이미 윌리엄의 기술은 유출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MMS는 물론 PPS까지. 그 결과 PPS를 무력화하는 기술마저 등장한 거죠. 이 세상에서 그걸 가능하게 할 만한 존재가 진현승 외에 또 있겠습니까?”

“하아…….”

사람들은 튀어나오는 한숨을 숨기지 않았다.

어지간히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눈치.

달튼은 입매를 뒤틀며 다시 말했다.

“참고로 재우제약 연구소는 현재 유전자 분야에 있어선 이제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입니다. 그런 자들이…….”

한창 말을 뱉어 내던 달튼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막상 제 입으로 말을 뱉어 내다 보니 확신이 더해졌기에.

막말로 저들은 고장 난 유전자를 복구할 정도로 인체 알고리즘의 이해도가 높은 자들.

그런 기술력을 갖춘 자들에게 고작 특정효소작용을 방해하는 기술 따위가 대수겠는가.

“그럼 우리로서도 가만히만 있을 수는 없죠.”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에머슨이 성토의 말을 뱉어 냈다.

어디 그뿐일까, 병실에 있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분노를 표출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상태.

달튼은 저들의 어리석음에 절로 고개를 가로젓곤 말했다.

“에머슨 회장님, 방금 전에 스스로가 한 말을 잊었습니까?”

“무슨?”

“어쩌면 우리도 이미 당했을지 모른다는. 지난번 윌리엄이 주관한 만찬 자리가 원인일 수도 있다는 말씀 말입니다.”

순간 에머슨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어느덧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가는 윌리엄을 힐끗 쳐다본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죠. 설마 우리도 당했다면 이렇듯 멀쩡하겠습니까. 아무리 약효가 사람에 따라 작용시간에 차이를 보인다고는 해도 지금까지 아무도 병증을 겪고 있지 않다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은 누가 장담합니까. 우린 이제 목이 말라도 검증된 것 외에는 물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란 걸 모릅니까?”

에머슨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자존심을 챙길 모양인 듯 끝내 진 회장을 향한 보복을 다짐한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그를 처리해야죠. 더 많은 수가 당하기 전에.”

달튼은 포기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듯 자존심을 굽히지 못하고 사태파악마저 지지부진한 인간을 상대로 더 이상의 설득은 불가능하기에.

하긴, 막상 그가 제시하려 했던 대책이란 것도 사실상 저들에게는 무리다.

이제껏 신처럼 군림해 온 저들을 상대로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걸하라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혹시라도 차도가 있다면 연락 주십시오. 전 대통령과의 면담이 있어서 이만.”

달튼은 결국 짧은 인사말과 함께 병실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복도는 문병을 온 자들로 가득한 상태.

막상 그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만큼 가졌으면 욕심을 멈춰도 되련만. 이렇게까지 해서 뭘 더 차지하겠다는 건지 원…….’

***

[오늘 이른 새벽, 엑슨 소프트의 윌리엄 머레이 회장이 별세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지병에 의한 심장마비로 알려져 있으며…….]

이틀 후, 뉴스에선 윌리엄의 죽음을 속보로 알려 왔다.

당황스러운 것은 죽음의 원인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과 그토록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었음에도 주식시장이 일절 요동치지 않았다는 점.

심지어는 온갖 음모론을 양성하는 SNS상에서도 그의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잠잠하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통제에 나섰군.”

달튼은 대번에 원인을 파악했다.

이후 그의 뇌리를 스친 것은 그게 가능할 만한 자를 유추하는 것.

우습게도 그것 또한 답을 얻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리암이 움직인 건가? 아니, 진 회장이 움직였다고 봐야 하나?”

사실이라면 꽤나 우스운 일이었다.

언론 통제와 대중들의 눈을 속이는 것은 자신들의 전유물.

마치 보란 듯이 그걸 실행하고 있지 않던가.

-박사님! 어제 늦은 저녁 뉴런 제약의 에머슨 회장께서도 윌리엄 회장님과 같은 증세를 보여서 입원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질병통제예방센터장이 급격한 피로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이틀 후, 그의 사무실엔 연속된 비보가 날아들었다.

카자리안 공의회의 회원들은 물론 그들에게 협조하는 정부부처의 주요 인물들까지 죽음의 문턱에 내몰리는 상태.

이로써 그는 진현승의 의도를 확실히 이해했다.

‘씨를 말리려는 거군.’

사실이라면 이건 인류역사 최대의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성공만 한다면 무려 수백 년 동안 세상을 움직이던 세력이 종말을 고하는 거니까.

전쟁과 경제위기. 그리고 온갖 질병을 동원하여 제 이익을 챙기던 악마들의 종말.

하필 진현승이 주도자라면 그 가능성은 충분할 테고, 덕분에 그도 이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죽느냐, 아니면 목숨을 구걸하느냐…….’

스윽.

결심을 굳힌 달튼은 즉시 몸을 일으켰다.

부르르.

그사이에도 계속해서 날아오는 문자는 연속되는 공의회 회원들의 죽음을 알리는 것들.

언제 자신의 차례가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져 갔다.

‘그런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방을 나서는 사이 불현듯 그 점이 궁금해졌다.

‘결과를 봐선 한날한시에 당한 것이 분명한데…….’

에머슨의 말처럼 윌리엄이 만찬을 주도하던 날.

그런데 죽음에 있어서 시간 차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이건 마치 대상이 죽을 시기를 제 마음대로 설정하는 느낌이 아닌가.

‘MMS가 의도한 때에 작용하는 능력까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젠장, 뭐 그거야 협상이 성사되면 알게 되겠지. 물론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는 전제하에.’

달튼은 혀를 차며 문을 닫았다.

“갑자기 어딜 가십니까, 박사님?”

갑작스러운 그의 외출에 놀란 비서 중 하나가 다급히 물어 왔지만 마음이 촉박한 달튼은 손사래를 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리암, 그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겠지? 그사이 내 몸에서 증세가 발현되었다 해도, 그에겐 대책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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