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9 (367/372)

외전-9

부우웅!

이튿날 카를로스를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성남 공항이었다.

사전에 기별을 해 둔 덕분에 활주로는 텅 비어 있는 상황.

관계자들에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사안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었다.

“너무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어차피 성남 공항은 이전 문제로 인해 거의 운영이 중지된 상태니까요.”

내내 찡그리고 있는 내 표정을 본 공군군수사령관이 넌지시 다가와 말했다.

하긴, 바로 그 문제로 인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초등훈련기 교육과정조차도 더는 운영을 안 한다고 했었지.

그나마 나로선 꽤 정이 든 공항이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묘하다.

“그렇다 해도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군요. 더군다나 사령관께서 이렇게 직접 공항까지 나오실 줄도 몰랐고요.”

“국방위원장님께서 오신다는데, 당연히 제가 직접 와야죠. 그나저나 대체 어느 귀빈이 오시기에 이렇게 직접 마중을 나오신 겁니까?”

이어진 공항 책임자의 질문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작 PMC 대원 중 한 명의 귀환을 챙기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그가 과연 이해할까 싶은 마음에.

사실 직책만을 두고 보면 카를로스와 난 함께 서 있는 것조차도 그림이 이상할 상황이지 않던가.

“내 친구입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카를로스는 단순히 상하관계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물론 그야 정색을 하며 내 말에 손사래를 치는 입장이지만 정말로 내게는 몇 안 되는, 믿을 수 있는 동지라고나 할까?

그건 나로 인해 그가 몇 번이고 생사를 넘나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고, 애초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운명적으로 끌리게 된 것이 원인이었다.

‘동지라.’

그와의 첫 만남은 폴란드에서였다.

중국과의 전쟁을 끝내고 안정기에 접어든 시점이었을까?

당시 폴란드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문 중이던 우리 일행의 동선에 뛰어든 그는 제압을 시도하는 폴란드 대통령 경호원들을 불과 수 초 만에 무력화.

이후 강 소령마저 하늘을 보게 만들곤 한다는 말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나를 데려다 키우시죠.”

“네?”

불현듯 튀어나온 말에 사령관이 동그란 눈을 하고 쳐다봤다.

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치려는 차, 저편에서 대형수송기 하나가 날아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북유럽 거점 미 정보부 블랙요원 절반의 추적과 방해를 뚫고 나를 찾아온 것도 모자라서 그런 황당한 요구라니.’

그때만 생각하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자신들이 불과 수 초 만에 당했다는 것에 당황한 강 소령과 PMC 대원들의 당시 그 얼굴이란.

아니 그걸 떠나서 대뜸 자신의 능력을 사라는 그 당찬 태도는 나로 하여금 절로 호기심을 갖게 만들었다.

“곧 활주로에 진입하겠군요. 그럼 전 이만 복귀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령관님.”

이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알아낸 카를로스의 정체는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CIA와 함께 남미 마약조직 소탕작전에 참여했던 브라질 정보부 출신.

하지만 우연치 않게 CIA의 일부 조직들이 오히려 마약밀매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부분을 폭로하려다가 쫓기게 된 인물.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게 벌써 5년 전의 일이었는데, 나를 만난 1년 전까지 그 혹독한 추적과 생명의 위협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버텨 냈다는 사실이다.

‘단지 버텨 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 정보부 내의 마약 밀거래자들이 글로벌리스트들의 하수인들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냈지.’

휘이잉!

나로서도 그 때문에 부담이 더 컸었다.

비록 불법행위들 저지른 범죄자들이라곤 해도 명목상 미 정보부 소속의 인물들이 죽어 나간 상황.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를 살려 둘 수 없는 입장이 아니던가.

‘흠.’

하지만 난 결국 리암을 동원.

미국 정부기관 내의 비리를 문제 삼았고.

자칫 정보부 내에서 제 하수인들의 뿌리가 통째로 뽑혀 나갈 것을 두려워한 글로벌리스트들은 카를로스의 사면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영악했던 거지. 오로지 나만이 그걸 가능하게 할 존재라는 걸 알고 덤벼들었던 거니까.’

솔직히 당시 재우PMC가 남미 마약단속에 가담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내가 미국을 상대로 그들 정보부의 비리를 따지고 드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지만 당시 재우PMC는 유엔과 남미 대부분의 국가로부터 마약소탕의 전권을 위임받았던 상태.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당당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척!

열린 문을 통해 수송기에서 내린 카를로스는 나를 보자 대뜸 경례를 올렸다.

숱한 성형수술로 첫 만남 당시와는 많이 달라진 얼굴.

나로서야 저게 익숙하지만 아마 그를 알던 대부분의 자들은 정체를 파악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성공한 신분세탁 케이스다.

[회장님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시다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네의 귀환이라면 당연히 직접 마중을 나와야지.]

카를로스는 그 말에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얼굴.

그와는 영혼의 파트너였던 루시의 생사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원인일 듯싶었다.

[난 아직 루시의 생환을 믿고 있네.]

나와 보폭을 맞춰 걷던 카를로스는 슬그머니 뱉어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줄 테니 그녀를 찾아 나서게.]

그나마 위안이 될 만한 것이라고는 이제부터라도 그녀의 소재파악에 나서라는 제안을 하는 것뿐.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루시를 찾는 것은 조금 미뤄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회장님께서 아셔야 할 것들에 대한 보고와 그에 대한 대처 준비가 우선이니까요.]

[…….]

***

[이게 사실인가?]

몇 시간 후, 내 집에서 이어진 카를로스의 보고는 절로 턱이 떨어질 정도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당장 카를로스가 다시 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

굳이 루시의 소재파악을 미루겠다는 그의 의도가 비로소 이해가 된다.

[사전에 보고했다시피 생존신고가 늦었던 것은 추가로 알아내야 할 사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파리에서 탈출 후, 곧바로 레오를 찾아갔었죠.]

[굳이 우리의 제안을 거부한 인물을 다시 찾아간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필요이상으로 과했던 저들의 대응이 마음에 걸렸거든요. 솔직히 기업기밀 하나 유출됐다는 이유로 파리 한복판을 그렇듯 난장판을 만들면서까지 저를 쫓는다는 것은 수상쩍은 일 아니겠습니까?]

이젠 야콥사의 목적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프랑스 정보국의 과한 대응쯤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막말로 저들이 만든 백신의 진정한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야콥사만이 아니라 프랑스 정부까지 곤란에 처하게 될 상황인 마당에 뭔들 못할까.

하지만 당시 자신이 입수한 백신의 정체에 대해 몰랐던 카를로스가.

그것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다급한 순간에 그런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게 바로 내가 카를로스를 높이 쳐주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럴 수밖에. 그 물질의 정체가 밝혀지면 세상이 뒤집어질 사안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레오라는 자가 살아 있었다고?]

[네, 다행히 살아 있더군요. 해서 그의 입을 통해서 저 역시 사안의 전말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회사의 존폐는 물론 자칫 프랑스라는 나라 전체를 곤란에 빠질 정도로 중대한 기밀을 유출한 인물을 살려 두었다는 것이 나로선 이해가 안 가는 군.]

[저도 그게 의외이긴 했습니다만 알고 보니 레오는 그 백신. 아니 유전자 조작물질을 개발한 핵심 인물이더군요. 문제는 그게 완성단계에 접어들지 않았다는 건데, 그 때문에라도 살려 둘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야, 한데 그 샘플을 넘겨준 것도 레오가 아니었던가?]

[그렇습니다. 이후 파리에서 유전자조작물질의 기전 전체를 담은 데이터를 넘겨주는 것이 약속이었지만 결국엔 틀어졌죠. 후에 알고 보니 당시 그도 저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오는 도중 체포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흠, 이거 뭔가 앞뒤가 안 맞는데?]

[뭐가 말입니까?]

[레오가 체포되었다면 결국 프랑스 정보국은 물론 야콥사도 샘풀이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하지만 내가 받은 보고에 따르면 저들은 수뇌부가 모두 죽어 나갈 때까지도 샘플 유출사실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어.]

[그건 레오의 또 다른 조력자 덕분입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샘플의 보안을 담당하는 인물이죠. 그가 로트번호를 조작하여 야콥사와 정보국을 속인 결과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대단한 인물들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양심에 따른 행동이었다 한들 내부폭로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

그것도 걸리는 날이면 자칫 제 목숨이 날아갈 위험을 무릅쓰고.

예상과는 달리 아직까지 세상은 악마에게 완전히 잡아먹히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면 지금은? 그들이 아직도 살아 있나?]

[다행히 제가 옛 동료용병들의 도움을 받아 정보국 안가에서 탈출시켰습니다. 해서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안전한 곳에서 거주 중입니다.]

[그럼 차라리 함께 입국을 하지 그랬나. 그 정도로 우리에게 도움을 준 자들이라면 나도 안전보장은 해 줘야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죠. 우리도 저쪽에 프락치를 심어 둔 마당에 이곳에 저들의 프락치가 없다는 보장은 못 하지 않습니까. 해서, 보다 철저한 보안과정을 거쳐서 데려올 생각입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제 한국은 아시아의 맹주.

그 탓에 각국의 정보부들이 판을 치는 마당에 프랑스 정보국의 눈이라고 없을까.

굳이 카를로스의 귀국을 이곳 성남공항으로 한 이유도 실은 그 때문이지 않던가.

[저 그런데…….]

지그시 고개를 끄덕이던 와중 카를로스가 다시 운을 띄웠다.

뭣 때문인지 찡그린 표정이 되어 나를 쳐다본다.

[한 가지 아셔야 할 점이 더 있습니다. 이것 역시 레오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 엑슨 소프트사가 이 일과 연관이 있다는군요.]

[…….]

이건 또 무슨 이야긴가 싶어 그를 빤히 쳐다봤다.

엑슨 소프트는 컴퓨터 운영 체제분야의 독보적인 업체.

그런 곳이 왜 야콥사 같은 제약사와 연을 맺는다는 말인가.

스윽.

그때 카를로스가 주머니에서 메모리 하나를 꺼내어 내게 건넸다.

앞서는 궁금증을 참아 내며 조용히 그걸 랩탑에 꽂자 황당한 내용의 보고서 하나가 모니터를 장식한다.

[엑슨 소프트가 암 치료제를 개발 중이라고?]

[그렇습니다. 비밀리에 영국에 설립한 엑슨 바이오라는 회사를 통해 암 치료제를 개발 중인데, 아마 조만간 그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 합니다.]

[암 치료제가 무슨 영양제도 아니고, 고작 수년 만에 어떻게 그걸…… 게다가 모든 종류의 암에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건가?]

나로선 그 부분이 더더욱 황당했다.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모든 종류의 암에 효능을 보이는 치료제라니.

문제는 엑슨 소프트 같은 거대 회사가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런 황당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인데, 해답은 바로 다음 보고서에서 찾았다.

‘세포를…… 프로그래밍해?’

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런 천재적인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기에.

막말로 세포를 프로그래밍하여 명령에 따르게 하고, 그걸 질병 치료에 활용한다는 발상을 누가 쉽게 할 수 있을 거란 말인가.

‘그나저나 상황이 이러면 엑슨 소프트 역시 카자리안 마피아들의 계획에 동참하고 있다는 건데…… 그러고 보니 윌리엄 머레이 회장 역시 유태인으로 알려진 인물이었지, 아마?’

비록 스스로는 부정했었지만 그의 뿌리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문제는 왜 이제 와선 그토록 혐오하던 제 뿌리를 따라가느냐는 것.

도무지 저의를 짐작할 수가 없다.

‘혹시 이젠 유태인이라는 굴레가 자신에게 이익이 될 상황이라도 주어진 건가?’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은 그게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그가 자신의 뿌리를 부정한 것은 유태계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피하고자 했음이 분명한데, 이젠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까.

오죽했으면 칼슨사의 회장 역시도 최근엔 자신의 뿌리를 인정하지 않았던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보고서대로면 결국 암 유발 물질은 야콥사가. 그리고 치료제는 엑슨 소프트가 만든다는 건데, 그럼 야콥사는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다른 제약사들은 인수한 거지? 혹시 대량 생산을 위한 포석인가?’

정황대로면 앞으로 발생할 암 환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일 터.

그걸 감당하려면 어지간한 캐파로는 불가능하니까.

“결론은 정해졌군. 윌리엄, 그 역시 제거대상 중 하나라는 것.”

[네?]

생각의 끝에 튀어나온 혼잣말에 카를로스가 반응했다.

이 정도 심각성을 가진 문제라면 그의 도움이 더더욱 필요한 상황.

짧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네.]

[…….]

[잘하면 이번에도 저들이 개발한 물건을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마치 야콥사의 경우처럼 말입니까?]

[맞아, 응징수단으로서는 이번에도 그게 최선이지 싶어. 해서 미안하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자네가 해 줄 일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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