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8 (366/372)

외전-8

그의 입에선 낯선 단어들이 언급됐다.

문제는 말을 뱉어 내는 그의 표정 속에서 얼핏 증오가 엿보였다는 점.

뭐랄까, 꼭 철천지원수를 언급하는 것만 같은 느낌?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결국 넌지시 되묻자 그가 입술을 앙다물며 말한다.

[그 전에 내 궁금증을 먼저 풀어 주는 것이 순서 아닙니까? 대체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뭔지에 대해서. 난 분명 당신의 파트너인데, 답답하게도 아직까지 그걸 모르고 있어요.]

[아니요, 난 아직 회장님에 대한 확신이 더 필요합니다. 불쾌하실 수는 있지만, 앞으로 내가 벌일 일들은 서로 간에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하니까. 솔직히 회장님 같은 존재가 아직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있다는 것도 저로선 좀…….]

[그건 정보 루트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순간 리암이 입술을 앙다물며 대꾸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한때 그랬던 것처럼 미국 내 대부분의 정보부처에서 내 수족들이 점차 잘려 나가고 있어요. 그 배후는 카자리안 마피아들. 진 회장의 표현대로라면 글로벌리스트들에 의해서. 그로 인해 현재 내 정보력에는 한계가 온 상황입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십니까.]

[처음엔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했었소. 하지만 그게 예상보다 쉽지 않았고, 이후 내 주변 상황은 급격히 변해 갔죠. 감시 및 방해가 내 상상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 솔직히 오늘 이 자리에 온 것도 쉽지는 않았어요.]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했다.

리암 같은 존재가 저렇듯 곤란한 지경에 처할 정도면 이미 미국 내 힘의 균형은 또다시 깨졌다고 봐야 하니까.

[좋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진 회장의 의심을 확실하게 풀어 주죠. 한데 각오가 필요할 겁니다. 지금부터는 우리 유태인들의 역사를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이니까.]

[쯧, 꽤나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 군요.]

웃으며 대꾸하자 그가 따라 웃었다.

그도 잠시,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 그가 본격적인 설명을 잇는다.

[현재 전 세계 유태인들은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히브리를 뿌리로 하여 이슬람권과 북아프리카에 상주 중인 세파르디와 유럽계 ‘아시케나지’. 여기서 아시케나지를 바로 카자리안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함의 자손들입니다.]

[함? 혹시 아버지인 노아에게 저주를 받았다는 아들 말입니까?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용케 알고 계시는군요.]

[어릴 적 주일학교를 다닌 자들은 아마 다 알고 있을 부분일 겁니다.]

웃으며 반문하곤 그를 쳐다봤다.

습관처럼 수염을 쓰다듬은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문제는 카자리안들의 역사입니다. 함의 자손들은 비록 그 뿌리는 유태인이었지만 대를 거치며 바빌론 비밀 종교를 따랐죠.]

[…….]

[담무스와 세미라스. 한때 바빌론의 지배자들로서 스스로를 신이라 표방한. 바로 그들을 추앙하는 종교단체를 바빌론 비밀종교회의라고 칭합니다. 모르시겠지만 그 뿌리는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인신공양을 비롯하여 여타 고대의 잔인한 풍습과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종교죠.]

[미친! 지금 같은 세상에 인신공양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도 주로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삼고 있죠. 아마 진 회장께서도 들어서 알고는 있을 텐데요? 간혹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아이들의 집단 실종사건이 벌어졌다는 뉴스라던가. 공해상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을 태운 배가 체포되었다던가. 그게 실은 제물로 쓰일 아이들이거나 카자리안들의 비틀린 성적 욕구를 해소시켜 줄 희생물들입니다.]

[그걸 정부가 가만둔다는…….]

말을 끝맺지 못한 이유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이면을 내가 너무도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글로벌리스트들의 행태를.

한때는 그게 음모론으로 대중들 사이에서 떠돌기도 했는데, 이미 여러 경험을 통해 저들에 대한 진실을 파악하고 있는 나로서는 단순한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정부 곳곳에 저들의 수족들이 깔린 마당에 누가 그걸 들춰내겠습니까. 게다가 저들은 역정보의 달인들입니다. 설사 누군가 사실을 폭로한다 해도 그걸 음모론으로 만들어 내는 것에는 귀재들이죠.]

[이해합니다.]

이어진 그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국가 주요 기관의 내부 폭로자도 한낮 범죄자로 만들어 내는 것에 도가 튼 인물들이니까.

그 마당에 인지도도 없는 민간인들의 폭로 정도야 정신병자로 만들어 매장시키는 것이 무에 어렵겠는가.

[아무튼 그런 이유로 우리 정통 세파르디로서는 절대로 저들과 섞일 수가 없는 겁니다. 적어도 세파르디들은 율법을 목숨처럼 따르는 존재들이고, 그 율법에 따르면 저들의 모든 행위가 죄악이니까.]

무슨 말인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율법을 목숨처럼 여기는 정통 유태인들이 저들의 행태에 동조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겠지.

하면 리암과 야콥사와의 연루는 이것으로 의심을 저버려도 되는 상황.

난 비로소 리암을 향해 사안의 전말에 대해 말했고, 그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해져 갔다.

[미친! 아무리 기업의 미래 먹거리가 중요하다지만 어떻게 그런 짓을…… 그게 잘못되면 자칫 대량 학살이 될 수도 있어요.]

이를 앙다문 채 욕설을 뱉어 낸 리암은 이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얼 생각하는지 내내 중얼대는 입술.

귀를 기울이려는 차에 그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해서, 앞으로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그냥 넘길 수 있는 사항은 아니죠. 뭐 나로선 이미 야콥사의 주요 인물들을 날려 버린 상태고.]

[하지만 야콥사의 인물들이야 카자리안의 하수인들에 불과하고, 본격적으로 카자리안을 건드리면 양쪽 모두 피해가 막대할 겁니다. 내가 다리를 놓을 테니 일단은 저들과 대화를 먼저 해 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리암은 끝내 나를 만류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세상을 움직이는 두 그룹이 본격적으로 충돌했을 경우 몰아칠 파급력이 걱정되는 모양새.

단숨에 그와 시선을 맞추곤 말했다.

[왜 피해가 발생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네?]

[말씀대로 양쪽이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서 맞붙었을 때야 피해가 크겠죠. 하지만 난 저들과 그렇게 신사적으로 붙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쉽게 말해서 총과 칼이 대화보다 효율적일 때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저들을 죄다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리암은 기함을 토하며 나를 쳐다봤다.

차마 예상치 못했던 대꾸였겠지.

하지만 저들을 응징하는 것은 그게 최선이며 가장 성공 가능성이 크기도 하다.

이제껏 세상의 왕으로 군림했던 저들로서는 감히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할 존재가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할 터.

바로 그 부분이 저들에게는 큰 약점이 될 것이기에.

“힉!”

곁에서 내내 대화를 듣고 있던 안 부회장의 입에선 딸꾹질 소리가 들려왔다.

그 역시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새.

역시나 단호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순간 리암의 말이 다시 끼어들었다.

[하지만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뒷일을 왜 걱정합니까. 일이 종료되면 고작 잔뿌리만 남아 있을 조직을. 그때 가서 뭔가를 하려 한들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맙소사! 저들을 아예 괴멸시키겠다는 거요?]

[기왕 시작했으면 그래야죠. 해서 말인데, 그게 가능하려면 다방면에서 회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리암은 대답 대신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마치 자신의 삶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던 위기가 도래하기라도 한 듯.

안타깝게도 그건 나와 한배를 탄 운명으로서 받아들여야만 할 부분이다.

[내 도움이라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겁니까.]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들은 그 뿌리가 꽤 곳곳에 뻗어 있습니다. 해서 그들을 모두 제거하다 보면 잡음이 들릴 텐데, 우리 역시 언론 통제와 역정보에 능해야 혼란해질 사회를 잠재울 것 아니겠습니까?]

[허어 나 이런……. 결국 나보고 뒤치다꺼리를 하라는 거군요.]

[물론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건 꼭 해야만 하는 정리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아니, 그걸 떠나서 저들도 이젠 알아야죠. 자신들도 결국엔 신이 아니라 죽으면 썩어질 몸뚱이를 가진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말을 뱉어 내는 내내 리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모한 내 결정에 놀란 탓도 있겠지만 뭔가 따로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

아니나 다를까, 곧 그의 입이 열린다.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군요.]

[…….]

[게다가 지금의 내 입장에선 어차피 선택의 여지도 없고. 앞서 말했듯 내 입지가 말이 아닌데, 이대로라면 진 회장 말처럼 내가 먼저 당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리암의 눈빛은 완연하게 변해 있었다.

마치 그동안 그를 억누르던 봉인을 해제하기라도 한 듯.

덕분에 정작 내가 더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려는 순간 그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들려왔다.

[사실 이 이야기는 차후 저들의 움직임이 보다 확실해지면 하려 했었는데, 카자리안들은 조만간 또 전쟁을 조장할 계획 중에 있습니다. 그에 따라 식량을 비롯한 각종 원자재 위기를 촉발하여 재화를 빨아들일 생각이죠.]

[그건 또 무슨?]

절로 찌푸려지는 눈살을 억지로 펴며 대꾸했다.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표정과 함께 리암의 말이 이어졌다.

[최근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아시겠죠? 문제는 인도의 경우 무려 2억 9천만 톤에 달하는 거대 곡물 생산지라는 거죠. 만약 두 나라가 전면전을 치르는 경우 파종에 영향을 받을 테고, 그땐 전 지구적으로 대대적인 식량위기가 올 겁니다.]

[설마, 그걸 찬성하셨다는 말입니까?]

황당한 마음에 되물었다.

그런 중대한 결정은 그림자 정부의 한 축을 이끄는 리암과 그의 그룹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실행 불가능한 일이니까.

아무리 두 그룹이 반목해도 어느 한 그룹의 독단적인 결정은 배제한다는 원칙만큼은 지켜져 왔던 것이 저들의 역사인데, 그걸 무시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우리의 룰을 말씀하시고 싶으신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이번엔 그게 무시됐습니다.]

그때 리암이 자조 섞인 투로 말한다.

[이유가 뭡니까.]

한껏 가늘어진 눈매를 하고 되묻자 그가 말한다.

[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카자리안들이 미국의 카자리안 세력과 손을 잡은 터라 힘의 균형이 완전히 깨져 버렸거든요. 쉽게 말해서 정통 히브리 출신들을 아예 그림자 정부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의도죠.]

[왜 그런 일이…….]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이번 한중 전쟁의 영향 때문입니다.]

[…….]

[진 회장도 아시다시피 미국 정부가 최근 중국을 불법 지원한 유럽 국가들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지 않습니까? 문제는 그 제재의 영향을 받는 업체들 대부분이 유럽을 기반으로 한 카자리안들의 소유라는 겁니다.]

[목에 칼이 들어온 유럽의 카자리안들이 미국의 세력과 손을 잡고 아예 판을 뒤집으려 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 기회에 정통성을 강조하는 우리 세파르디들도 제거를 하자는 심보이기도 하고.]

[허, 나 이거 원. 그래서요?]

[아무튼 두 세력이 힘을 합쳤다면 전쟁은 끝내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 결과 시중에 넘쳐나던 재화는 급속하게 다시 저들에게 흡수될 테고, 그로 인해 세계는 다시 한 번 각종 경제 위기를 겪을 겁니다.]

[단지 그게 전부는 아닐 텐데요?]

무심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난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전 지구적인 식량위기가 더해 갈 때쯤 새로운 펜데믹이 발생하겠죠. 하면 저들은 위기해소와 질병예방을 담보로 디지털 아이디를 도입할 테고, 그로 인해 정부와 자신들에게 반발할 수 없는 사회를 구축한다. 실은 그것이 최종 목적 아닙니까?]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리암의 눈이 커다래졌다.

회귀 전에 이미 겪어 봤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그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해보였다.

‘쯧, 그나저나 이제야 알 것 같군. 야콥사가 저 물질을 어떻게 백신으로 위장시켜서 사람들의 몸에 주사할 것인지. 식량위기에 이어 발생할 새로운 펜데믹.’

그게 최고의 기회가 아닐까?

[하면 더더욱 확실해졌군요. 내가 칼춤을 춰야 하는 이유 말입니다.]

힘이 들어간 턱에서 빠득 소리가 났다.

리암 역시도 잔뜩 각오의 빛을 엿보이는 상태.

그때, 정적을 깨고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요란한 진동을 거듭했다.

우웅!

“응?”

그저 평범한 전화였다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지 않았을 거다.

문제는 하필 상대가 에바였다는 것.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던 터라 상황파악이 쉽지 않다.

“무슨 일이지?”

<죄송합니다, 회장님. 보안을 위해 제가 직접 회선을 중계 중입니다.>

“누구에게 온 전화기에?”

<카를로스입니다.>

카를로스는 얼마 전 프랑스에서 작전 중 실종되었던 PMC 대원이었다.

지금껏 이렇다 할 소식이 없던 탓에 죽음을 예감했었던.

역시 불사조는 쉽게 죽지 않는 모양이다.

“연결해.”

-생존신고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회장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들려온 목소리는 확실히 카를로스의 것이었다.

한동안 체한 것처럼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살아 있어 줘서 무척이나 고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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