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6
며칠 후 프랑스 파리 13구.
엘리엇의 불안한 출근길은 오늘도 계속됐다.
벌써 3명에 달하는 ‘야콥’사의 간부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결과.
사실 말이 의문의 죽음이지, 그게 진현승의 복수에 의한 결과임은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알고 있다.
“너무 얕봤어.”
스치는 차창 밖의 정경을 보며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그건 후회 따위로 인한.
즉, 진현승이라는 존재를 건드렸다는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보다 치밀하지 못했던 작전으로 인해 꼬리가 밟힌 것에 대한 후회.
“빌어먹을.”
그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귀찮은 일들과 무너진 자존심에서 나오는 한숨이었다.
‘미친, 아무리 리암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권력을 가진 인간이라지만 야콥사의 배후가 어딘지 빤히 알 만한 자가 어떻게 겁도 없이…….’
엘리엇은 치를 떨었다.
자칫하면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할지 모를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대담함에.
사실 지금쯤이면 진현승도 이 사건의 진정한 배후가 누구인지쯤은 짐작을 할 터.
그럼에도 저렇듯 거칠 것 없는 행보를 보인다는 것은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 일이었다.
‘설마 카자리안 마피아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잘 모르는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때 있었던 리암과 카자리안들의 미국 내 권력싸움을 제외하면 그동안 진현승이 그들을 본격적으로 대척할 만한 사건은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이제 내가 표적이 될 것은 분명한데, 빌어먹을, 더럽게 초조해지는군.’
스윽.
문득 드는 불안감에 그의 시선이 잠시 하늘로 향했다.
과거 진 회장이 보인 행적이 워낙 파격적이었기에 이번에도 혹시 그럴지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으로 인해서.
예를 들면 이란 과학자들을 드론으로 폭사시킨 그 사건처럼.
“내가 무슨 생각을…….”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하늘은 고요했고, 결국 쓴웃음을 지은 그는 기사를 향해 물었다.
“프랑스 정보국에서는 별다른 소식은 없었나?”
“어떤…… 아! 사뮈엘 이사님의 죽음은 뇌출혈로 밝혀졌습니다.”
뒤늦게 질문의 요지를 깨달은 기사는 급히 대답했다.
이어 룸미러를 통해 둘의 시선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엘리엇의 질문이 다시 이어진다.
“역시나 또 질병에 의한 사망인가?”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선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에단 이사님의 경우는 급격한 폐색전증에 의한 사망이었고, 밀로 이사님은 갑작스러운 심정지. 그리고 또 사뮈엘은 뇌동맥류파열에 의한 사망. 이런 일이 과연 가능은 한 것인지…….”
“정보국에서 내린 결론은?”
“정보국에서도 사망 원인에 대해선 좀처럼 결론을 내리기가 난감한 모양입니다. 처음엔 약물로 암살을 시도했다고 판단했었던 것 같은데 정작 그런 다양한 질병을 유발할 만한 약물은 검출된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거든요.”
“약물에 의한 암살이 아니라면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있나. 진 회장이야 그런 방면에선 도가 튼 인물이니 뭔가 검사를 회피할 수 있는 다른 수를 썼겠지.”
“하지만 고작 방산업체 대표가 무슨 수로 말입니까.”
기사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방산업체의 대표가 그런 분야까지 도가 텄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그때, 엘리엇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자네답지 않게 진현승에 대해선 영 둔감한 편이군. 그는 한국 재계서열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던 기업을 불과 이십여 년 만에 세계 최대 방산기업으로 만든 인물이야. 게다가 가진 재산은 추산하기조차도 불가능할 정도에다가 한국이 아시아의 맹주가 된 것도 바로 그가 있었기 때문이지.”
“…….”
“하지만 이번 사태는 정말로 의외란 말이야. 대체 뭔 수로 사람을 급사시킬 수 있는 거지? 그것도 흔한 질병에 의해서.”
엘리엇은 도무지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 문제를 두고 한참이나 고민했다.
심정지의 경우 특정 약물을 사용하면 가능하다지만 이후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없는 것이 상식.
더군다나 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급작스러운 폐색전증은 대체 무슨 수로?
뇌출혈은 또 어떻게?
‘가만!’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무언가 뇌리를 스쳤다.
죽은 자들의 사망 원인은 죄다 달랐지만 그래도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
폐색전증과 심장마비. 그리고 뇌동맥류 파열의 원인이 하나같이 과도한 혈전 때문이었다는.
‘설마…….’
생각을 곱씹던 차에 그의 눈이 번뜩였다.
급격한 혈전 생성.
그게 가능한 유일한 수단이 떠올랐기에.
‘우리가 약물 운반수단으로 이용한 산화 그래핀 화합물! 한때 연구원들의 조언에 따르면 그건 양날의 검이라고 했었지. 최고의 약물운반수단이지만 분자구조가 깨질 경우 자칫 혈관에 과도한 염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그럼 설마 MTG를 이용한 건가?
“빌어먹을.”
생각이 그에 미치자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 연구원 중 하나가 수상한 낌새를 보여 정보국에 체포되었었다는.
또한 그와 접촉을 시도했던 신원미상의 사내를 체포하려는 과정에서 파리 시내가 발칵 뒤집어졌었던 사건까지도.
꾹!
생각이 그에 미치자 그는 즉시 연구소에 전화를 걸었다.
비록 아니라는 보고는 받았지만 MTG의 유출이 아니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 것 같지 않기에.
물론 혈전 유발이야 조건만 주어지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 조건이 될 만한 다른 수단이나 약물의 검출은 없는 상황 아닌가.
-보관 중인 샘플들 중 로트번호가 빈 것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담당 연구원은 거듭된 샘플 숫자 확인과 철저한 보안절차를 이유로 유출 가능성을 일축했고, 결국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것들…… 아니라고 발뺌은 해도 MTG가 유출된 것이 확실해. 하면 내부자의 소행이라는 건데……. 들어가는 즉시 확인을 해야겠군. 그나저나 정말 MTG가 유출됐다 해도 진 회장은 대체 MTG의 부작용을 어떻게 알고 그걸 이용한 거지?’
그 부분을 생각하면 기가 찼다.
아무리 재우에 인재들이 많다지만 야콥사 같은 거대 제약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신기술을. 그것도 이토록 짧은 시간에 약점을 파악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던가.
게다가 정황상 그 부작용을 이용한 것은 분명한데, 하면 분자구조를 임의로 깨트릴 수단은 또 뭐란 말인가.
“빌어먹을, 다 떠나서 그걸 무슨 수로 이사들의 몸에 주사한 거야? 어지간하면 주삿바늘에 가까이도 가지 않는 자들을 상대로.”
“네?”
무심코 튀어나온 엘리엇의 중얼거림에 기사가 반응했다.
말만 기사일 뿐 누구보다 야콥사의 비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존재 중 하나.
힐끗 그를 쳐다본 엘리엇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묻는다.
“혹시 죽은 이사들이 최근 MTG를 투약했다는 소식 들은 적 있나?”
“그럴 리가요.”
기사는 황당하다는 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MTG를 어떤 목적으로 개발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죽은 이사진들인 마당에 미치지 않고서야 그들이 스스로의 몸에 그걸 주사하겠는가.
정작 질문을 뱉어 낸 엘리엇도 결국엔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그럴 리가 없지. 그럼 누군가 이사진들이 인지하지 못할 수단을 동원하여 그걸 주사했다는 건데, 아니 경구치료제도 아니고 대체 무슨 수로 주삿바늘을 본인도 모르게…….”
이후 엘리엇은 한참을 더 생각에 잠겼다.
단 15년 만에 야콥사를 제약업계의 선두주자로 만들어 낸 인물답게 두뇌회전이 빨랐던 그는 끝내 그럴듯한 답을 하나 도출해 냈다.
“자넨 회사에 도착하는 즉시 죽은 세 이사들의 최근 의료기록을 확보하도록 해.”
“갑자기 의료기록은 뭣 때문에 말입니까?”
기사는 고개를 갸웃하곤 되물었다.
그러다 곧 의도를 깨달은 듯 당황한 표정.
그건 역시나 기사가 단순히 운전을 위해서만 고용된 존재가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혹시 이사들이 부지불식간에 MTG를 자신들의 몸에 투약한 상황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맞아, 만약 저들이 다른 질병에 의해 꼭 병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해서 누군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치료제가 아닌 MTG를 저들의 몸에 투여한 것이라면 내 가설이 모두 맞아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
기사는 그 말에 재빨리 엘리엇을 쳐다봤다.
“갑자기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이어 의문을 표하는 엘리엇의 시선에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한다.
“그게…… 며칠 전 대표님께서도 과도한 피로를 이유로 닥터 니노에게 고용량비타민 처방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
엘리엇은 그 말에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생각해 보니 그 역시 최근 지나친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전담병원을 찾았었던 상태.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급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니노는 내가 믿고 있는 유일한…….”
엘리엇은 말을 맺지 못한 채 가슴을 움켜쥐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몸이 꺼져 버리는 듯한 느낌으로 인해.
빠른 판단으로 그게 심장마비 증세라는 것을 감지한 그는 다급히 기사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의식이 사라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대, 대표님!”
놀란 기사는 즉시 차를 멈추고 엘리엇의 몸을 흔들었다.
곧 그의 심장을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엘리엇의 숨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맙소사!”
당황한 그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때마침 떠오른 생각 하나.
그건 자신도 불과 어제 병원을 찾았었다는 사실이었다.
견딜 수 없는 이명 현상과 두통으로 인해.
“이런 빌어먹을…….”
***
“표적 제거 완료.”
차지환은 도로 한가운데서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엘리엇의 수행원을 보며 무전을 날렸다.
-철수한다.
동시에 그의 귀에 꽂혀 있던 리시버를 통해 상부의 명령이 떨어졌고, 그는 재빨리 차량을 몰아 예정되어 있던 건물로 향했다.
끼익!
“수고했어.”
도착한 곳에서 그를 맞은 것은 최익현 대장이었다.
실종된 채 생사를 모르는 카를로스와 함께 재우 PMC의 드러나지 않은 핵심전력 중 하나.
그가 재우 PMC 내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한중 전쟁에서였는데, 특히나 중국의 핵을 제거하는 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거, 다음번에는 대장 동지께서 직접 좀 나서시라요. 이러다 얼굴 알아볼 사람이라도 있을까 봐 걱정입네다.”
“누가 자네 얼굴을 알아본다고 난리야?”
최익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순간 발끈한 표정의 차지환이 반발한다.
“내래 이래 봬도 영화까지 출연한 몸입네다. 눈썰미 좋은 사람은 알아볼 수도 있디요.”
“아! 그 외계인 분장하고 출연했던 영화 말인가? 설마 그런 엄청난 분장을 했던 얼굴을 지금 자네 얼굴과 매치시켜서 알아볼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차지환은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더는 반말할 말이 없었을까,
애꿎은 차량의 바퀴를 발로 툭 건드리는 차지환을 향해 최익현의 말이 이어진다.
“뭐 솔직히 위험부담이 아주 없지는 않지. 하지만 작전을 총괄하는 에바의 컨트롤러는 자네가 최적이잖아.”
“누가 뭐랍니까. 그나저나 이번 작전은 몸은 편하지만 서도 영 성에 차지 않는구만요. 내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이 장비들을 들고 표적 주변에서 알짱거리면 끝이니 말입네다.”
늘 몸으로 때우기 일쑤였던 차지환의 입장에선 그랬을 거다.
특히나 고작 음파와 고출력 통신장비 따위가 살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일.
그때, 최익현의 말이 이어졌다.
“세상이 그만큼 바뀐 거지. 그렇다 해도 우리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니 너무 자괴감을 갖지는 말라고. 막말로 아무리 사전 작업이 완벽해도 결국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우리니까.”
“방아쇠라면, 이 장비들 말입네까?”
차지환은 연신 고개를 갸웃하며 귀에 꽂혀 있던 리시버에 손을 가져갔다.
에바를 호출하려는 의도.
이어진 작전개요에 대한 설명요구에 따른 에바의 답변은 곤란함을 표출하는 거였다.
<그 부분을 차지환 팀장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무려 보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입니다. 그래도 들으시겠습니까?>
“…….”
“킥킥.”
상황을 지켜보던 최익현 대장은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순간 차지환의 시선이 확 하고 최익현에게 꽂혔고, 그는 헛기침과 함께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한다.
“자, 그럼 이제 여섯 번째 표적을 위한 세팅을 시작하자고.”
“여섯 번째가 아니라 다섯 번째 아닙니까?”
함께 장비를 세팅하던 차지환은 의문을 표했다.
슥 하고 고개를 돌린 최익현이 입매를 뒤틀며 말한다.
“엘리엇의 운전기사가 다섯 번째 표적이었던 걸 잊었어? 아마 지금쯤이면 그도 길바닥에서 시체가 되어 있을 거야.”
차지환은 그제야 아 하는 탄성을 발했다.
그러다 뭣 때문인지 또 고개를 갸웃한 그가 다시 입을 연다.
“그런데 그 기사는 왜 표적이 된 겁네까? 그다지 핵심 인물도 아닌 것 같은데 말입네다.”
“핵심 인물은 아니라도 제거할 대상이었던 것은 확실하지. 애초 그가 재우 제약연구소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뒤에서 진두지휘했었던 인물이거든. 뭐 비록 저들은 꼬리를 밟히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결국 본사에서 그와의 연관성을 찾아낸 것 같더라고.”
“그렇습네까? 간나새끼, 그럼 충분히 죽을 만한 놈이었구만요. 그나저나 여섯 번째가 마지막 표적이니 슬슬 복귀준비도 해야 하갔디요?”
차지환은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무려 보름에 걸친 해외활동에 지친 탓.
하지만 막상 들려오는 대답은 그의 기대를 무참하게 깨 버렸다.
“미안하지만 복귀는 미뤄야 할 것 같군. 오전에 강 소령님에게 전화가 왔는데, 처리대상이 늘었다는군. 그것도 꽤 많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