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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5 (363/372)

외전-5

들어선 것은 꼭 소형화된 AESA레이더처럼 생긴 물체였다.

가로세로가 대략 30센티미터 정도에 두께는 10센티미터에 불과한.

개중 눈치 빠른 강 소령이 정체를 깨닫곤 반문한다.

“저건 음파무기(sonic weapon)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재우 탈레스가 한때 개발 중이었던 비살상 대인무기의 일종이죠. 청력 이상 및 두통, 그리고 구토를 유발하는. 최근 그 크기와 범위를 다운사이징하는 개량을 지시했었는데, 이게 그 결과물입니다.”

사람들은 눈을 끔뻑이며 음파무기를 쳐다봤다.

대부분은 이 시점에 저게 왜 등장한 것인지 싶은 의문의 표정.

슬쩍 기기에 손을 대며 말을 이었다.

“참고로 이건 원래의 스팩보다 영향 범위를 대폭 좁힌 상태입니다. 해서 특정 표적에게만 증세를 발현시킬 수 있을 정도죠.”

“…….”

“앞으로 우린 저걸 SUV 같은 차량에 탑재하여 타겟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병원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지속적인 고통에 시달리겠죠.”

“그 말씀은, 저들 스스로 병원을 찾게 만든다는 겁니까? 그 기회를 이용해서 저 산화 그래핀이 함유된 유전자조작 물질을 주사한다는…….”

제일 뒤편에서 설명을 듣고 있던 재우PMC의 이창훈 공동 대표가 탄성을 뱉어 냈다.

이후의 내 계획을 완벽히 이해했다는 표정과 함께.

이번 PMC 운영진의 개편에 있어서 판단력을 가장 중점적으로 뒀었는데, 확실히 그를 선택한 것은 옳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그렇습니다.”

“그럼 결국 병원 내에서 약을 바꿔치기 해야 한다는 말씀인데, 그건 누가 합니까.”

“끄응.”

이창훈 대표와의 문답이 한창 이어지던 와중 갑자기 강 소령이 앓는 소리를 뱉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고, 그가 도리질을 하며 말했다.

“회장님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상 의사나 간호사를 포섭하지는 않으실 거고, 결국 우리 팀이 약물을 바꿔치기 해야 한다는 소리죠.”

난 수긍의 표시로 입매를 뒤틀어 보였다.

강 소령의 입에서는 다시 긴 한숨이 뱉어졌고, 난 그가 납득할 만한 이유들을 제시했다.

“돈으로 누군가를 포섭하는 것은 언젠가는 들통이 날 겁니다. 뭐 표적의 사체에서 발견된 약물이라고는 그들이 만든 ‘백신’ 정도일 것이기에 의사가 혐의를 부인하면 그만이지만 정작 경찰이 맘먹고 달려들면 결국 배후를 불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해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의사조차도 자신이 관여한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병원 관계자 모르게 약물을 바꿔치기 하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의사가 뭘 처방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뭘 처방할지 모른다…… 확실히 그게 어려운 문제기는 하죠. 하지만 답은 찾으면 있습니다.”

강 소령은 그 말에 눈을 끔뻑였다.

슬쩍 표적들에 대한 자료를 들고 그를 향해 흔들어 보였다.

“특이하게도 표적들은 하나같이 약에 대한 거부감을 극도로 가지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다들 제약사 대표 또는 핵심연구원인 점을 감안하면 우스운 일이기는 한데, 다시 생각하면 또 이해를 못 할 바도 아닙니다. 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인 만큼 그 부작용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사실 이제껏 만들어진 그 어떤 약도 부작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건 비단 표적들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유독 제 건강에 관심이 많은 권력자들은 어지간한 질병에는 합성 화합물의 복용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고, 하다못해 FDA의 핵심 인물들도 마찬가지.

사실 우리 같은 비전문가들의 입장에선 그게 병적인 염려가 아닌가 싶은데, 제약업계의 오랜 관행과 비윤리적인 행태들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웃기는 인간들이군요. 그러면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조금만 높으면 고지혈증 약을 처방하도록 의사들을 종용하지 않습니까.”

강 소령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히죽 미소를 내비치곤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저들은 자신들의 전담 주치의가 있는 병원 외에는 가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또한 어지간한 병에는 합성 화합물로 이루어진 약을 처방받은 경우가 없었죠. 고용량 비타민이나 여타 병원에서 취급하는 천연성분의 통증저하제 같은 것 외엔.”

“…….” 

“아! 물론 증세가 심한 질병의 경우엔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지만 명확한 병명도 밝혀지지 않고 단지 통증만을 유발하는 상황에서라면 무리한 처방은 없을 테고, 결국 우리가 바꿔치기할 약물의 범위는 그만큼 좁아지는 셈입니다.”

“비타민이요?”

강 소령은 딱히 이해는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 곧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또 뭔가가 떠오른 듯 휙 하고 나를 쳐다본다.

“그런데 저 ‘백신’을 표적에게 주사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체내로 들어간 그래핀 화합물의 분자구조는 무엇으로 깨트려서 혈전을 유발하죠?”

“그건…….”

대답을 하려다가 희원을 쳐다봤다.

그 부분에 대한 답은 마침 희원이 만지작거리고 있었기에.

나와 눈이 마주친 희원은 곧바로 강 소령을 향해 말했다.

“저들의 몸에 주입된 산화 그래핀 화합물의 분자구조를 깨트리는 것은 이 60기가 헤르츠의 고대역 주파수 발생장치가 담당합니다. 해서 작전에 투입될 대원들은 이 장비를 특수 제작된 차량에 실어 표적에 조사하면 끝. 이후 저들의 체내에서 분자형태가 변한 그래핀 파편들은 급격한 속도로 혈전을 유발하여 짧으면 보름 안에 심장마비를 비롯한 다양한 급사원인을 제공할 겁니다.”

“허어, 고작 고주파 장비가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고요?”

내내 듣고 있던 이창훈 대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단호한 희원의 대답.

순간 이창훈 대표가 부쩍 당황한 투로 이번에는 나를 향해 묻는다.

“저, 회장님. 말씀을 듣던 와중에 문득 떠오른 건데, 향후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이 최대 60기가 헤르츠 대역폭을 통신규격으로 사용할 예정으로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지금 한창 통신 중계기를 곳곳에 설치 중이고요.”

“그렇습니다.”

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수염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지나치게 빠른 수긍 때문이었을까, 그의 눈빛이 크게 흔들린다.

“하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거죠? 만약 저들의 계획이 성공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사를 맞았을 경우 말입니다. 결국 고대역의 주파수에 노출된 사람들은 죄다 혈전을 일으키게 되는 것 아닙니까?”

“마침 나도 그 부분을 말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저 유전자 조작물질로 인한 숨겨진 폐해가 바로 그거죠.”

“…….” 

“물론 우리처럼 특정 대상을 향해 집중 조사하는 방식은 아니다 보니 반응이 그렇게 급속하게 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끝내 혈전 반응은 일어날 테고, 결과적으로 암 발생의 증가만이 아니라 혈전을 통한 각종 질병도 대량 확산되겠죠.”

“미친! 설마 그것마저 의도한 겁니까?”

“그건 아닐 겁니다. 짧은 시간 사망자가 걷잡을 수 없이 속출하는 경우 대중들이 그 원인을 추궁하기 시작할 테고, 그건 결국 저들이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결과를 낳을 테니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저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컨트롤할 수 있는 질병 유발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지 맹목적으로 대량학살을 하자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점을 고려하면 고대역 주파수에 의한 혈전 피해는 의도적이었다기보다는 설계 과정에서의 실수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입술을 앙다물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거리를 서슴없이 행하는 저들에 대한 분노가 일고 있는 거겠지.

그래서 인간과 악마는 백지장 차이라는 거다.

“때문에 이번 사안은 단순히 보복작전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손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달렸죠.”

* * *

2022년 3월 프랑스 파리.

똑똑!

“사뮈엘 이사님,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늦은 저녁 퇴근을 앞두고 있던 사뮈엘은 비서의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와는 달리 유독 굳어 있는 비서의 얼굴. 그리고 방문객의 신원조차 미리 밝히지 않는, 비서의 태도로 인해서.

“들어오시라고 해.”

하지만 그는 비서의 실수를 굳이 탓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건 실수라기보다는 약속된 행동이었기에.

애초 정부 비밀 기관 측 인사의 방문의 경우 신분을 밝히거나 방문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쯧,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사뮈엘의 입에선 짧은 불평이 터져 나왔다.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내연녀와의 오붓한 저녁 약속이 깨지게 생긴 것은 둘째 치고, 하루 종일 몸을 괴롭히던 두통과 몸살 기운으로 인해 오늘만큼은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가는 만남을 피하고만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입니다 사뮈엘 이사님.”

“어서 오십시오. 휴고 국장님.”

예상처럼 방문자는 프랑스 정보국 소속의 인물이었다.

미국 CIA에 비견되는. 그것도 수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존재.

사실 사뮈엘의 입장에서는 그리 호감이 가는 인물은 아니었는데, 그건 늘 앞뒤 없는 휴고의 화법에서 비롯됐다.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서두를 잘라 낸 휴고의 화법에 사뮈엘의 인상이 절로 찌그러졌다.

하지만 명색이 국가의 정보부 수장씩이나 되는 존재를 상대로 짜증을 내비칠 수는 없는 터, 인내심을 발휘하며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가 말입니까?”

“정보부가 얼마 전 파리에서 실패한 작전 말입니다.”

“…….”

사뮈엘은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답답했던 듯 휴고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설마 보고를 못 받으신 겁니까? 언론에서 그 난리를 피웠던 문제를?”

“그거야 중동에서 유입된 테러분자의 체포를 위한 작전 아니었습니까?”

“이런 답답할 때가 있나. 그건 단지 언론 잠재우기용 성명이었고요. 실은 야콥사의 책임 연구원인 레오라는 사내를 포섭하려 접근하던 스파이를 색출하는 작전이었어요.”

“무슨, 그게 우리 회사 연구원인 레오와 연관된 사건이었다고요?”

사뮈엘은 황당하다는 투로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중대한 문제를 여태 그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

이건 명백히 정보국이 자신을 무시한 처사.

분노로 인해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그 중요한 사실을 왜 이제야 내게 알리는 겁니까!”

“아무래도 전달 과정에서 실수를 한 모양인데, 그 부분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젠장, 전달 책임자가 대체 누굽니까? 그런 사소한 일도 똑바로 못 하는 자가 정보국에 앉아 있으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습니까?”

“…….”

“아무튼 그래서요, 또 무슨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겁니까?”

“그게, 당시 스파이를 검거하는 것에 실패했는데, 아무래도 그 스파이가 진현승 회장의 수족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실의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꼬리를 밟혔단 말입니까? 아니 어떻게요? 어차피 재우 사태의 범인은 내부자로 결론지어진 것 아닙니까?”

“표면상으로는 그런데, 당시 재우제약의 보안시스템을 건드리는 과정에서 뭔가 실수가 있었나 봅니다. 해서 진 회장이 우리 정보국을 의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처음부터 누누이 당부하지 않았습니까. 어설픈 작전으로는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막말로 세계 최고의 PMC를 보유한 존재를 상대로…… 그나저나 이제 어쩌시렵니까. 레오에게 접근했다면 우리 야콥사도 의심하고 있다는 증거인 마당에.”

분노한 사뮈엘은 격한 태도로 따지고 들었다.

좀처럼 보지 못했던 그의 흥분하는 모습에 휴고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물증이 없으니 괜찮을 겁니다. 다행히 레오와의 만남도 저지했기에 야콥사를 향한 의심은 그저 심증에 불과할 겁니다.”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이미 진 회장이 우릴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 몰라요? 아무튼, 이 문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보국에서 책임을 지세요.”

“이것 보세요, 사뮈엘 이사. 우리 정보국이 이번 일에 왜 가담한 것인지 잊으셨습니까? 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잊었을 리가 없다.

애초 그 일은 프랑스 정부도 우려를 표했던 것.

하지만 결국 사뮈엘과 그의 윗선인 그룹회장이 ‘카자리안’들의 입김을 동원하여 정부를 굴복시켰고, 정보국이 총대를 멨던 사건이 아닌가.

“젠장.”

하지만 진 회장이 야콥사를 파고드는 것만큼은 피해야만 한다.

현재 야콥사의 배후와는 절대 섞일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리암.

그런 리암과 한 몸이나 다름없는 진 회장이 이번 계획을 눈치채게 되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모르니까.

“이사께서 정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정보국. 아니 정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연이어 불만을 토로하는 휴고의 눈빛은 매서웠다.

마치 이제 와서 발뺌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인 터라 사뮈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되묻는다.

“뭘 어쩌려고요.”

“상대가 하필 진 회장이라면 나도 살아남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니 그와 협상이라도 해야죠. 그 덕에 프랑스 정부는 아주 많은 것을 잃게 되겠지만.”

“쯧쯧.”

사뮈엘은 혀를 찼다.

한 국가의 정보부 수장이라는 자가 저렇게까지 사태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이 짜증스러웠기에.

한숨을 내뱉은 그는 결국 이죽거리며 말했다.

“진 회장은 그렇게 두려워하는 분께서 정작 우리 배후의 인물들은 두렵지 않은 모양이군요. 장담하는데 일이 그렇게 돌아가면 프랑스정권이 뒤집히는 것은 물론 휴고 국장 당신도 온전하지 못할 겁니다.”

순간 휴고의 몸이 움찔했다.

하긴, 한 나라의 정부가 이렇듯 불법적인 일을 서슴지 않게 만들 정도의 인물들이 뒷배라면 그게 딱히 불가능할 일은 아닐 터.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있는 와중 사뮈엘이 다시 말한다.

“하니 진 회장과 충돌을 피하겠다는 생각은 접으시고 무조건 그가 우리 야콥사를 파고드는 것을 막으세요.”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피해는 어쩌고요. 어차피 우리가 먼저 건드린 마당이면 앞으로 발생할 피해에 대해 비난도 못 한다는 것 모릅니까?”

“뭐 프랑스 정부로서는 비난은커녕 언론에서 사태를 알까 봐 숨기기 급급해지겠죠.”

“그걸 아는 분이…… 다 떠나서 재우는 말만 기업이지 한 국가와 맞먹는 무력을 가진 집단이에요. 대놓고 하는 전쟁이라면 모를까, 음지에서 그들을 상대하며 발생할 피해가 얼마나 클지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피해가 얼마나 나건, 지금은 무조건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가 개발한 백신이 미국으로 넘어갈 때까지만.”

“…….”

“참고로 국장님의 노력은 반드시 보상이 주어질 겁니다. 또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장님의 안전만큼은 보장하죠.”

내내 불쾌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휴고는 그 말에 눈을 빛냈다.

안전보장도 그렇지만 보상이 주어진다는 그 말.

현재 그에게 있어 주어질 보상이라면 그건 대통령의 자리 하나뿐이지 않던가.

“약속하시는 겁니까?”

생각해 보면 그건 딱히 무리도 아니었다.

현 대통령도 그와는 대학 동기인 마당에 그라고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

문제는 그가 처한 태생적 한계인데, 지금 사뮈엘은 그걸 깨 주겠다는 것이기에 가능성은 더 컸다.

“솔직히 약속은 하지 못합니다. 저 역시 아직은 그들의 일원이 아니니까. 다만 이 일이 성공할 시에는 나와 우리 회장님도 저들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테고, 그땐 당연히 국장님의 공로도 인정될 겁니다.”

휴고는 그 말에 턱을 앙다물었다.

동의한다는 의지의 표명.

덕분에 후끈했던 방 안의 분위기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나저나 혹시 최근 의심스러운 일은 없었습니까? 정말로 진 회장이 움직였다면 뭔가 낌새가 보일 텐데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사뮈엘이 테이블 위에 있던 차를 입에 머금으며 물었다.

그를 따라 찻잔을 들어 올린 휴고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다행히 특별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다만 최근에 재우 글로벌을 통해서 파리로 반입되는 통신장비들을 비롯하여 여타 정부 관리항목의 부품들이 부쩍 늘어서 경계하는 중이죠.”

“그게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사뮈엘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었던 듯 대답을 하는 휴고의 입술이 우물거린다.

“문제 될 것은 없죠. 단순히 이동통신장비의 반입이니까. 더군다나 재우 글로벌은 프랑스 이동통신사들을 상대로 한 삼정전자 표준장비 납품 대리처이기도 하고. 하지만 뭔가 꺼림칙한 것이 떨쳐지지 않아요.”

“…….”

“보고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의 어느 통신사들도 통신장비들을 발주한 곳이 없거든요.”

“재우 글로벌에 추궁은 해 보셨습니까?”

“저들의 공식적인 해명에 따르면 곧 있을 통신사들의 장비교체에 미리 대비하기 위한 샘플 확보라고 하더군요.”

“그럼 문제 될 것이 뭐가 있습니까. 무기도 아니고 고작 통신장비들 몇 개 들어온 걸 가지고.”

사뮈엘은 끝내 별스럽지 않다는 표정으로 손사래 쳤다.

“끄응.”

한데 그때, 갑작스럽게 찾아온 엄청난 두통에 그의 인상이 다시 찌푸려졌고, 영문을 모르는 휴고가 깜짝 놀라 그를 향해 다가온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그게…… 며칠 전부터 컨디션이 영 안 좋더니 이렇듯 부지불식간에 두통과 몸살이 찾아오는군요.”

“몸살이요?”

휴고는 사뮈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다.

아직 프랑스는 코로나의 유행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한 상태.

의심의 눈초리를 마주한 사뮈엘이 헛웃음을 뱉어 낸다.

“왜요, 코로나에라도 걸렸을까 봐요? 미안하지만 이미 몇 번이고 음성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럼 마냥 참고만 있지 말고 병원을 가는 것이…… 혹시 다른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병원은 어제 이미 다녀왔습니다. 뭐 그래 봐야 비타민 주사를 처방받은 것이 고작이었지만.”

휴고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래를 보장받았기 때문일까.

비록 앞으로 발생할 지옥이 걱정이긴 해도 표정만은 밝았다.

“윽!”

그때, 뒤편에서 그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섰던 사뮈엘이 갑자기 뒷목을 잡고 주저앉았다.

놀란 휴고가 재빨리 그를 부축하는 순간, 휴고가 제 눈을 움켜잡으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눈! 눈이 빠질 것 같아.”

“이런 맙소사!”

당황한 휴고는 재빨리 문을 열고 사뮈엘의 비서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사이 스르륵 하고 바닥에 쓰러진 사뮈엘.

이후 재빨리 병원으로 옮겨진 그에게는 지주막하출혈로 인한 뇌사라는 진단명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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