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4 (362/372)

외전-4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눈이 동그래진 메르칸이 되물었다.

앞으로 그가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워낙 정신적 부담감을 줄 문제였던 탓에 난 운을 먼저 띄웠다.

[박사님은 제약 산업계의 추악한 이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갑자기 그런 질문을…….]

메르칸은 차마 대꾸를 하지 못했다.

하긴, 오로지 특정 목표가 주어지면 그것에만 매달려 왔던 실험실의 학자에게는 무리일 수 있는 질문이었지.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주 숙맥은 아닐 터.

내 질문은 사실상 그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자는 의도에서 뱉어진 거다.

[아무래도 제약업계의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저도 그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부작용이 없는 약은 존재하지 않는 법. 수많은 제약사들이 그걸 무시하는 행태가 다반사죠. 그런 의미에서 질책을 날리시는 거라면 저 또한 양심의 가책을 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어진 그의 대답은 상식 수준의 것이었다.

양심을 가진 자라면 당연히 느끼고 고민할 수 있는.

하지만 내가 엿보고자 하는 것은 레드라인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는 거다.

[오해하신 모양인데, 난 지금 그 정도 수준의 문제를 들춰내고 또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무기 산업을 이끌고 있는 나야말로 양심의 가책을 면할 수 없죠.]

[…….]

[마침 무기 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걸 예시로 들죠. 아시다시피 난 다양한 종류의 무기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역설적이게도 평화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다짐하죠. 강한 국방력이 곧 평화와 직결된다, 는 사상이랄까?]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저로서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메르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옅은 미소와 함께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 한계를 넘어선다면? 즉, 나 스스로 수효를 창출하기 위해 전쟁을 조장하면서까지 무기를 팔아먹는 지경에까지 이른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메르칸의 눈은 한없이 커졌다.

이제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전적으로 이해한 듯.

굳어진 얼굴로 쐐기를 박았다.

[제약업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야콥사는 지금 한계에 다다른 성장을 벗어나고자 병을 유발하고 약을 팔아먹기로 한 것이죠.]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어지간히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뭐 나로서도 차마 그걸 현실화시키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확실히 글로벌리스트들은 인간의 상식으로 판단할 존재들이 아님은 확실하다.

[인간을 너무 선하게만 보시는 모양인데, 악마와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고작 종이 한 장의 양심 차이입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저들이 대체 무슨 수로 전 인류를 상대로 병을 유발한다는 말입니까?]

메르칸은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슬쩍 그가 분석 중이던 앰플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게 수단이 되지 않을까요? 인간의 유전자 일부를 삭제하는 물질. 박사님은 만약 저게 사람들의 몸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암 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겠죠.]

[하면 그 이후는? 당연히 암 치료제 산업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지 않겠습니까? 예상컨대, 전 인류가 대상이라면 아마 수조 달러를 벌어들일 정도로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될 겁니다.]

스윽.

메르칸은 순간 떨리는 시선으로 앰플을 쳐다봤다.

다양한 표정의 변화로 봐선 지금까지의 대화에 대해 이해한 것을 넘어서 자신의 직업에 회의감마저 느끼는 듯한 낌새다.

[아무튼, 내 예상이 맞는다면 앞으로 야콥사는 저 물질을 전 인류에게 보급하기 위해 백신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겁니다. 새롭게 등장할 전 지구적인 질병에서 벗어날 백신으로.]

[…….]

[놀라신 모양인데, 딱히 어렵지 않습니다. 막말로 펜데믹에 의해 당장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상황이면 지푸라기라도 붙잡자는 것이 인간의 심리 아니겠습니까.]

그건 이번 펜데믹이 증명한 사안이었다.

공포가 극에 달했던 상태.

만약 그 시점에 저들이 만든 물질이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공급되었다 해도 그걸 따져 가며 받아들일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거다.

[참고로 방금 들어온 정보실의 보고에 따르면 프랑스 야콥사가 최근 수십조 원을 들여 각종 암 치료제를 개발 중인 제약사들을 인수했다는군요. 하니, 지금까지의 내 추론이 허튼소리는 아니라는 증거죠.]

쐐기를 박고자 한 말에 메르칸이 눈살을 찌푸렸다.

반발할 말이 많은 듯 연신 입술을 달싹이더니 결국 부정적인 말을 뱉어 낸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바보는 아닙니다. 막말로 저 물질이 백신이 아님은 어느 학자를 통해서든 밝혀질 텐데, 그 이후의 일은 어떻게 감당하려는 거죠?]

[밝혀진다 해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주장쯤은 낭설로 치부하면 그만이니까.]

[…….]

[사실 이 일의 배후는 단순히 거대 제약사만이 아닙니다. 뭐 이 자리에서 그걸 다 말하긴 좀 그렇고, 어쨌건 저들은 언론조장은 물론 각국 정부들을 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들이죠.]

[아무리 압박이 심하다 해도 정부가 국민들을 팔아먹는다는 말입니까?]

꽤 격한 표현이었다.

뭐 국가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자들로서는 무리도 아니겠지.

하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의 양심이 대중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거다.

쉽게 말해서 지구상 어느 권력자도 정말로 국민만을 위한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게 여당이 됐건 야당이 됐건 간에.

[아쉽지만 권력을 잡은 자들의 대부분은 돈에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제 목숨을 담보로 선택해야 하는 결정이라면 누구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죠.]

막상 말을 뱉고 나니 뭔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우리 역시 결국엔 그 검은 손이 뻗어 올 가능성이 큰 상황.

결국 저들과의 싸움은 애초부터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쯧, 앞으로 꽤 피곤해지겠군.”

하지만 이 나라에서만큼은 쉽지는 않을 거다.

적어도 내가 동의하지 않는 한에는.

[네?]

갑작스러운 내 중얼거림에 메르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난 터.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메르칸의 입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이 뱉어졌다.

[그나저나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군요.]

[……뭘 말입니까?]

[저들이 우리 치료제의 데이터를 노린 이유 말입니다.]

이건 또 무슨 갑작스러운 상황인가 싶어 그를 향해 다가갔다.

때마침 찾아낸 서류를 손에 든 그는 재빨리 그걸 내게 들이밀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세포 치료제는 유전자를 복원하는 것을 기초로 합니다. 때문에 비단 코로나 치료제로 활용 가능한 것을 넘어서 유전자 이상으로 오는 대부분의 질병에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죠. 오죽했으면 현재 우리 연구소에서도 개발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할 정도 아닙니까.]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대체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난 즉시 되물었다.

[하면 저 야콥사의 유전자 조작물질로 인한 유전자 손상도 복구가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사실이라면 확실히 이유가 됐다.

저들로서는 우리 치료제의 존재가 기껏 뿌려 놓은 씨를 갈아엎어 버리는 물건으로 여겨졌겠지.

때문에 우리 치료제의 기전을 확실히 알아내고 그걸 뚫을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

때문에 무리수인지 알면서도 데이터 입수에 목숨을 걸었던 거다.

“그렇다면야 나로선 관여할 이유가 더더욱 확실하군요.”

절로 턱에 힘이 들어간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상한 듯 그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듣자 하니 꽤나 힘겨운 싸움일 것 같은데, 재우의 희생을 최소화할 방법은 있으신 겁니까?]

[그 부분은 박사님 덕분에 답을 찾았습니다. 해서 말인데, 앞으로 한동안은 박사님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

* * *

“다들 일찍 왔군요.”

며칠 후, 다시 찾은 제약 연구소에는 몇몇 인원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강 소령과 공동으로 PMC의 책임자 자리에 오른, 최근 국정원에서 영입된 이창훈 대표와 그 외 PMC 주요 간부들.

면면을 살피곤 곧장 메르칸을 쳐다보자 그가 대형 모니터를 켠다.

[최근 회장님께서는 야콥사가 개발 중인 백신. 아니 백신을 가장한 물질의 분석을 제게 의뢰했습니다.]

사람들은 메르칸의 입을 주시했다.

부담스러웠던 듯 콧등을 잠시 매만진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시간 관계상 자세한 사항에 대해선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여러분들 정도의 위치면 이미 회장님에게 들어서 알고 계실 것이기에 또다시 설명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눈빛으로 수긍하자 그가 화면을 넘긴다.

[보시다시피 이 물질 속에는 산화그래핀 화합물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건 저들이 약물 전달 시스템으로 활용하는 물질인데, 회장님께서는 그걸 보복수단으로 활용하신다는 생각입니다.]

메르칸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를 쳐다봤다.

보다 확실한 전달을 위해 이후의 설명은 내가 하는 편이 빠르지 않겠냐는 눈빛.

슬쩍 몸을 일으키곤 설명을 이었다.

“애초 저 앰플에 담겨 있는 산화 그래핀 화합물은 그물망 형태의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건 앞서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약물을 담아 세포까지 운반하기에는 훌륭한 수단이죠. 한데 여기서 난 한 가지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

사람들은 눈을 빛내며 내 입술을 주목했다.

몇 차례 키보드를 두드려 화면을 전환시키곤 다시 설명을 이었다.

“화면에서 보시다시피 원래는 그물망 구조를 이루던 그래핀 화합물이 지금은 깨져 있습니다.”

“그러네요, 마치 칼날 같은 모습인데요?”

대꾸를 한 이는 이창훈 대표였다.

잠시 그를 쳐다보곤 다시 말했다.

“맞습니다. 꼭 칼날 같은 형태죠. 이건 그래핀 화합물이 전자기력과 고대역 주파수에 노출되어 분자구조가 변한 결과입니다.”

“…….”

사람들은 여전히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나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난 마침 책상 위에 있던 커터를 손으로 들어 올리며 다시 설명을 이었다.

“저 그래핀 조각들은 이 커터날과 같습니다. 비록 미세한 크기이기는 하나 만약 저런 것이 조 단위의 숫자로 혈관을 돌아다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순간 사람들이 웅성댔다.

이미 결과를 이해한 듯.

난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고, 이후 수술을 통해 환자의 몸에서 빼낸 혈전들의 사진이 화면에 등장했다.

“…….”

“이건 혈관을 틀어막은 환자의 몸에서 빼낸 혈전입니다. 만약 저 미세 칼날 조각이 혈관을 타고 돌면 상처로 인한 무수한 미세혈전이 발생할 테고 그건 곧 뭉치고 뭉쳐서 저런 혈전 덩어리가 되죠. 저게 만약 각종 장기에 틀어박히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허어…….”

“문제는 저 칼날들이 만들어 낸 혈전들은 자연발생적인 혈전들과는 증상발현 속도의 차원이 다르다는 겁니다. 특히나 저 칼날의 움직임을 극도로 활성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고작 수일 만에도 대상은 죽음에 이를 수가 있죠.”

“그러니까 회장님께선 저 그래핀 화합물인지 뭔지 하는 물질의 반응을 보복작전에 이용하시겠다는 겁니까?”

이번에 질문을 한 이는 강 소령이었다.

역시나 눈치가 빠른 인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어차피 저 물질은 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그걸 활용하여 보복작전을 실행한다면 그보다 더 안전한 방식은 없는 셈이니까.”

“하긴, 자칫 작전이 틀어진다 해도 우리가 개입한 증거가 남지 않을 테니까요. 더군다나 굳이 위험부담이 큰 침투작전이나 직접적인 암살을 실행할 이유도 없고,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 해도 우리 정부에 부담을 줄 일도 없겠군요.”

강 소령은 예상보다 확실하게 의도를 이해한 모양새였다.

그와는 달리 몇몇은 아직도 멍한 표정이지만 상관은 없다.

어차피 이 작전의 핵심은 강 소령이 주도하는 PMC 대원들이고, 그 탓에 강 소령만 확실하게 이해시키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저걸 무슨 수로 대상에게 주입하죠?”

그때 강 소령이 다시 핵심을 짚었다.

막말로 제 손으로 유전자 조작물질을 만든 자들이 그 폐해를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자진해서 저걸 맞을 이유는 없지 않겠냐는.

역시나 강 소령답다는 생각이 들려는 차에 또다시 그의 질문이 이어진다.

“그렇다고 저들을 납치하여 저 물질을 강제 주입하는 것은 결국 저들의 죽음에 누군가가 개입했다는 증거가 되는데, 그건 암살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자연스러운 죽음을 유도하겠다는 회장님의 노력에 반하지 않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때문에 강제 주입은 말이 안 되죠. 해서 전 그들 스스로가 주사를 맞게 되는 상황을 만들 겁니다.”

“네?”

강 소령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윽.

대답 대신 내 시선이 향한 곳은 막 준비를 마친 창밖의 물건.

신호를 주자 때마침 대기 중이던 희원과 연구원들이 몇몇 장비들을 앞세우고 랩으로 들어선다.

“저게 동원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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