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3 (361/372)

외전-3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이른 아침 도착한 사무실엔 김 비서가 이미 대기 중이었다.

단지 그녀만이 아니라 강 소령을 비롯하여 PMC의 핵심 인사들 대부분이 대기 중인 상태.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지 하나같이 표정들이 어둡다.

탁탁!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실종된 카를로스가 보내왔다는 메일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후 눈에 들어온 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일 정도.

단순히 프랑스를 거점으로 한 거대제약사의 소행으로 여겼던 이번 사건이 사실은 프랑스 정부와 미국 내의 정치 및 경제 분야의 핵심 인물들까지 연관된 것이라는 폭로였다.

“이 정도 규모의 카르텔이었다고?”

“…….”

내가 지나치게 놀라는 것이 낯설었던 듯 강 소령의 시선이 즉시 컴퓨터로 향했다.

점점 커다랗게 떠지는 그의 눈.

차마 믿을 수 없다는 대꾸가 들려온다.

“맙소사! 정말 저들이 죄다 재우제약 사태의 배후들이라는 말입니까? 단지 ‘야콥’사 하나만이 아니고요?”

“보고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렇다고 봐야죠.”

“아니 어떻게 이런 거대한 규모의 카르텔이 여태 드러나지 않았던 겁니까?”

“드러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한때 리암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글로벌리스트들. 즉, 리암의 반대 파벌에 있던 유대계 인물들이 바로 그들 중 일부라고 할 수 있으니까.”

상황이 이러면 그들을 끝내 견제하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이미 많은 부분에서 역사가 뒤바뀌었기에 저들의 기반 또한 그만큼 약화되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상태.

쉽게 말해서 이제 리암과 내 쪽으로 기울어진 힘에 도전할 자들은 감히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이었다는 거다.

“아무튼, 상황이 이러면 두 요원들의 실종이 이해가 되는군요.”

“네, 아무리 카를로스와 루시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인물들이라고는 해도 이런 규모의 조직이 본격적으로 나섰다면 당해 낼 재간이 없었겠죠. 젠장, 그나저나 정말 두 대원이 사망한 거라면 우리로선 지나치게 손실이 큽니다.”

강 소령은 씁쓸한 표정과 함께 대꾸했다.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선 마음 한구석이 무겁기만 한 상태.

특히나 카를로스가 정말로 사망했다면 나로서도 뼈가 아프다.

“그런데 왜 치료제를 노린 걸까…….”

한동안 이어진 침묵 속에 불현듯 그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애초 우리가 의도적으로 치료제의 공급을 지연하고 있던 프랑스라면 몰라도 미국의 글로벌리스트들은 대체 왜 이번 사건에 연관되었냐는.

‘혹여 우리의 신약이 가져다줄 막대한 이익에 눈이 멀어 버린 건가?’

그 부분은 일단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 치료제의 경우 다양한 질병치료에서 쓸모가 있으니까.

잘 만든 신약 하나가, 특히나 다양한 질병에 효능이 있는 신약이 창출할 경제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누구보다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하지만 정말 그게 이유일까?’

자칫 나와 정면충돌을 하게 되는 순간이면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크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강 소령이 툭 말을 던졌다.

머리를 파고들던 생각으로 인해 비틀린 내 입매가 서늘했던 듯, 마주한 그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쩌긴요. 개에게 물렸으면 걷어차 줘야죠. 그래야 틀어박힌 이빨을 빼낼 것 아닙니까.”

“하지만 상대는…….”

“물론 버겁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이제 재우는 걸어온 싸움을 피하면 그게 선례가 되어 달려들 하이에나들이 많아지는 위치에 있습니다. 하니 피해가 크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합니다.”

강 소령의 눈빛은 그 말에 크게 흔들렸다.

이후 뭣 때문인지 그가 긴 한숨과 함께 제 부하들을 향해 무전을 날렸고, 곧 문이 열리며 들어선 대원들의 손에는 얼핏 대전차 로켓을 담는 상자 정도 크기의 물건이 들려 있었다.

“저게 뭡니까?”

“카를로스가 실종되기 전 PMC 본부로 보내왔던 물건입니다. 이 물건과 함께 전달된 카를로스의 전언에 따르면 입수 과정이 워낙 은밀해서 아직까지 야콥사에선 이게 유출됐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강 소령의 설명에 이어 확인한 상자는 예전에 내가 연구소에 주문하여 만든 것이었다.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라는 지시와 함께 카를로스에게 보냈던 것이었는데, 도색이 바뀐 상태다 보니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던 거다.

스윽.

난 즉시 상자로 다가가 손을 얹었다.

오로지 나와 카를로스만이 상자를 여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으며 전체가 티타늄 합금으로만 제작된 물건.

굳이 이걸 사용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물건을 보냈다는 의미일 거다.

철컥!

12자리의 번호를 누르자 시건장치가 해제됐다.

이후 눈에 보인 것은 냉동장치인 듯 보이는 또 하나의 상자와 봉투 하나.

다급히 봉투를 살펴보려는 순간 상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내 관심을 끌었다.

“초저온 냉동고라…….”

그건 상자에 박혀 있던 액정에 표시된 글자를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60이라는, 일반적인 냉동고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숫자.

그러고 보면 그렇듯 초저온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냉동고를 이렇게까지 작은 크기로 만들어 냈다는 것도 놀랍다.

‘연구소 작품인 것은 분명한데, 희원이 놈이 또 큰 몫을 해낸 모양이군.’

스윽.

생각과 함께 비밀번호를 누르려다간 잠시 멈칫했다.

저렇듯 초저온으로 보관되어야 할 물건이라면 이 자리에서 오픈하는 것은 무리지 않을까 싶은.

결국 난 다시 봉투에 손을 가져갔고, 이후 그 속에서 나온 종이에서 물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백신?”

“백신이라니, 무슨 백신을 말하는 겁니까?”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강 소령이 내 중얼거림을 듣고 재빨리 되물었다.

무시하고 다시 종이를 살피던 차에 당황스러운 문구들을 발견했다.

“무슨 백신인지는 적혀 있지 않군요.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안에 있는 백신이라는 것을 야콥사가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야콥사라면 현재 우리가 재우제약 컨소시엄에서 벌어진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회사지 않습니까.”

강 소령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물었다.

나라고 별다를까.

한참을 생각한 끝에 결국 난 가장 합리적이다 싶은 결정을 내렸다.

“이걸 제약 연구소의 메르칸 박사에게 보내서 분석하라고 하세요. 아무래도 그게 우선이 되어야 사안의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것 같군요.”

“…….”

* * *

끼익!

며칠 후, 성분분석을 끝냈다는 메르칸의 연락을 받고 제약연구소를 찾았다.

예전 벌어진 데이터유출 시도로 인해 거의 1급 보안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연구소에는 현재 PMC 대원들만 무려 200명이나 상주 중이다.

[어떻게 됐습니까.]

제2연구실에서 마주친 메르칸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평소와 달리 서두르는 내 태도 때문이었을까, 그 역시 서둘러 브리핑을 시작했다.

[혹시나 싶어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정확한 성분 파악은 사실상 불가능함을 알려 드립니다. 애초 생물학적 화합물들의 경우 개발사의 공개가 없으면 구체적인 성분을 100퍼센트 알아내기는 힘든 법이니까요.]

[하면 파악된 부분에 대해서만 말씀하세요.]

적잖은 실망감과 함께 다시 물었다.

한데 정작 걱정은 기우였던 듯, 이후 메르칸은 꽤 핵심적인 사실들을 풀어놨다.

[우선적으로 알아낸 성분들을 기초로 추론해 보자면 이건 절대 백신이라 명명할 수 없습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유전자 조작물질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유전자 조작물질?]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나로선 그쪽 분야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니까.

마침 그 점을 염두에 둔 듯 메르칸의 설명이 계속됐다.

[쥐를 통한 실험 결과 이 물질은 체내에 투여된 이후 고작 수 시간 만에 거의 모든 세포에 침투했습니다. 그리고 E1 유전자와 E2, 그리고 E3 유전자를 삭제했죠. 문제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 외에 또 다른 유전자 삭제가 가능할 수도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 백신. 아니 물질이 유전자를 삭제한다고요? 대체 뭣 때문에요?]

[목적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E2 유전자의 경우 종양 억제 유전자로서, 그게 삭제되면 우리 몸은 암을 비롯한 각종 종양에 대한 저항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종양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삭제해 버리는 물질.

그 말을 듣자마자 저들이 왜 그런 것을 개발한 것인지를 알아채 버렸기에.

[단단히 미쳤군.]

치솟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욕을 뱉었다.

자신에게 한 말이라 착각한 걸까, 순간 메르칸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박사님에게 한 말이 아니라 그 물질을 만들어 낸 야콥사의 수뇌부에게 한 말입니다. 왠지 저들의 목적을 알아 버린 것 같거든요.]

[무슨…….]

메르칸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대답 대신 품에서 전화를 꺼내 들었고, 곧장 그룹 정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즉시 프랑스 야콥사가 최근 기업 인수를 시도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조사를 해 주세요. 특히 암 치료제를 생산하는 제약사들 같은. 대략 1시간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겠죠?”

수화기 너머에선 자신 없어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하지만 워낙 단호한 내 태도 때문이었을까, 최대한 시간을 맞춰 보겠다는 대답이 들려온다.

[자, 그럼 계속해 보세요.]

다시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메르칸을 향해 물었다.

통화 내내 눈만 끔뻑이던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되묻는다.

[그 전에 저들의 목적이 대체 뭔지 말씀 좀 해 주시죠.]

[그 부분은 조금 후에 말해 드릴 테니 일단은 브리핑부터 마저 끝내세요.]

메르칸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잠시, 곧 노트북을 만지작대며 다시 설명을 잇는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약물. 즉 유전자 조작물질의 운반방식인데, 야콥사는 그 수단으로 바틸리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바틸리움이라면 그래핀 합성물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산화 그래핀 화합물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죠. 문제는 이게 물에 잘 녹는 특징이 있어 초저온에선 식염수 같은 것에 섞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저 물질을 초저온으로 보관하지 않았던 건가 싶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메르칸의 손이 냉동장치로 향했다.

이후 그것에서 엠플 하나를 꺼내 온 그는 내 눈앞에서 그걸 흔들어 보였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투명한 물처럼 보입니다만 상온 상태가 되면 이렇게 변하죠.]

뒷말과 함께 그가 또 하나의 엠플을 내게 내밀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건 책상 위에 두었던 물건이었다는 점.

아마도 비교실험을 위해 상온을 유지해 두었던 모양인데, 확실히 상온에 두었던 것에선 부유물들이 떠돌고 있었다.

[원래 산화 그래핀을 물에 녹여 극저온 상태로 두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만, 한데 그게 약물전달 물질에 활용된다고요?]

짧은 대꾸와 함께 되물었다.

뒤늦게 내가 금속공학자 출신이라는 점을 떠올린 듯 메르칸이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을 잇는다.

[그게, 최근 다수의 빅 파마들이 나노물질을 활용한 효과적인 세포 내 약물 전달시스템을 연구 중입니다. 한데 아시다시피 그래핀은 그 특유의 분자구조와 특성으로 인해서 약물을 세포까지 전달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죠.]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자력을 수단으로 하면 체내 이동이 원활할 테고, 이후 근적외선을 통한 광열효과를 주게 되면 내포하고 있던 물질을 방출하는 것이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그래핀은 탄소화합물입니다. 그게 몸에 들어갔을 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글쎄요, 현재 학계에선 그래핀에 대해 생각만큼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메르칸은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보며 변명하듯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세 화합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박사님께선 제약업계가 자주 실수하는 부분이 뭔지 아십니까?]

[…….]

[각종 합성화합물에 대한 인체의 반응을 지나치게 무시한다는 겁니다. 때문에 정작 자신들이 만들어 낸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관대하죠. 미안하지만 탄소화합물은 그리 우습게 볼 물질이 아닙니다. 특히나 그래핀은 조건이 갖춰지면 분자구조가 변형되는데, 그게 자칫 인체에 치명적인 형태로까지 바뀌게 되죠. 예를 들면…….]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한 이유는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친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저들이 생각해 낸 약물 운반수단. 즉, 산화 그래핀 화합물을 내 보복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그렇게 되면 적의 물건을 가지고 적을 제거하는 건데, 나로선 그보다 손쉽고 깔끔한 방법은 없는 셈이지 않던가.

부르르!

그때 그룹 정보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적이야 당연히 내가 부탁했던 정보에 대한 보고일 터.

한동안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말에 절로 입매가 뒤틀렸다.

탁!

[좀 전에 내게 물었죠? 야콥사가 백신을 가장한 저 유전자 조작물질을 개발한 목적이 뭐냐고.]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메르칸을 향해 말했다.

또다시 반짝이는 그의 눈.

난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들은 확실한 미래 먹거리를 찾은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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