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2 (360/372)

외전-2

“여보!”

다급히 몸을 흔드는 손길에 눈이 떠졌다.

“하아…….”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나타샤의 얼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손을 내밀자 한껏 걱정스럽다는 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쁜 꿈이라도 꾼 모양이죠?”

“단순히 나쁜 정도가 아니라 최악의 꿈이었어.”

짧은 대꾸와 함께 일으킨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잠옷뿐만이 아니라 누워 있던 자리 전체가 눅눅할 정도로.

슬쩍 내가 떠난 자리에 손을 가져갔던 나타샤의 목소리가 떨려 온다.

“건강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네요. 최근 들어 계속해서 악몽만 꾸잖아요.”

“벌써 일주일째 이 모양이군. 너무 걱정할 것은 없어. 몸에 이상이 있는 것보다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문제인 것 같으니까. 그런데 율이는 어쩌고 안방으로 건너온 거야?”

별스럽지 않다는 투로 말하곤 되물었다.

슬쩍 건너편 방을 한번 쳐다본 그녀가 도리질을 하며 쳐다본다.

“느낌이 이상해서 혹시나 싶어 와봤죠. 율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기도 하고. 그나저나 오늘도 또 같은 꿈이에요?”

“그러게, 희한하게도…….”

대답과 동시에 의자에 걸터앉자 물 한 잔이 건네진다.

양껏 들이키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자 질문이 날아든다.

“대체 무슨 꿈이기에 당신처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거죠?”

“…….”

순간 헛웃음이 뱉어졌다.

최근 들어선 좀처럼 본 적이 없던 표정이었기에.

뭐랄까, 꼭 전투에 나서기 직전의 표정?

하긴, 벌써 일주일째 같은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그 내용을 말해 준 적이 없었으니 아마 그녀로서도 궁금함이 극에 달했을 거다.

“그냥…… 잡스러운 꿈이었어.”

하지만 이번에도 얼버무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리도 아닌 것이 꿈의 내용들은 죄다 내 전생에 관한 것들이었으니까.

여전히 강대국에게 둘러싸여 고전하고 있던 한국의 모습과 점차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던 국제사회의 모습.

그건 결국 이 세계에서는 삭제된 역사인데, 그걸 말해 줘 봐야 그녀로서는 이해 자체를 못 할 일들이 아닌가.

“흠…….”

나타샤는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내가 뭔가를 숨기려 한다는 것을 짐작하는 표정과 함께.

그럼에도 끝내 추궁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듯 이내 표정을 풀곤 내 무릎에 걸터앉는다.

“스트레스가 그렇게 심하면 이젠 좀 적당히 내려놓으세요. 신임 대통령도 당신과 마음이 맞는 분이 선출된 상황이면 걱정할 일들은 크게 없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내 스트레스는 단지 일 때문에 오는 것은…….”

대꾸를 하는 와중 슬그머니 그녀를 다시 쳐다봤다.

어쩌면 내 꿈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지금은 비록 평범한 주부지만, 한때는 세계질서의 틈바구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온몸으로 겪어 왔던 것이 바로 그녀이지 않던가.

“최근 꾸고 있는 내 꿈속의 세상이 현실과는 무척이나 달랐어.”

결국 한참을 우물쭈물한 끝에 넌지시 말을 뱉어 냈다.

“…….”

느닷없는 고해성사 때문인지 나타샤가 호기심 어린 표정과 함께 내게서 떨어졌고, 곧 건너편 의자에 자리를 잡은 그녀의 눈이 초롱초롱해질 때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의 현실과는 달리 미국이 여전히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 남아 있는 세상이었지. 그리고 이 나라는 여전히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의 등쌀에 고전하고 있고.”

“흠…… 그 정도면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을 만도 하네요. 한국이 애써 미국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국가로 등극한 마당에 하필이면 그런 꿈을…… 그래서요? 아니, 그보다 그 꿈속에서의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데요?”

“난 국방과학 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 중이었어. 그러다가 기밀을 노리는 스파이로 인해 살해당하더군.”

“맙소사! 아무리 꿈이라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본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나타샤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대꾸했다.

옅은 미소와 함께 다시 말했다.

“맞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지. 한데 말이야, 몇 번이고 거듭되는 꿈속에서 난 한 가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어.”

“의문?”

“사실 의문이라기보다는 질문이라고 해야겠지.”

“…….”

“어느 순간부터 상식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꿈속 세상의 국제정세. 그게 과연 누구의 의도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일까 싶은.”

예를 들면 펜데믹을 기점으로 부쩍 통제정책을 추구하는 각국 정부들의 태도.

그리고 이어진 디지털 통화의 보급과 글로벌 경제의 단일화 방향 같은.

사실 그런 의문을 갖게 된 것은 현재 내가 처한 위치가 큰 몫을 했다.

즉, 한 나라의 그림자 정부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내 위치.

만약 내가 이곳에서도 그저 국방과학 연구소장에 불과한 존재였다면 아마 지금도 그런 질문은 떠올려 보지도 못했을 거다.

“국제정세가 어땠기에?”

되묻는 나타샤의 표정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하긴, 보통 꿈이라면 앞뒤가 이상하거나 단편적인 장면들이 짜깁기 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

그 마당에 매번 스토리가 전혀 빈틈이 없는 장편 소설 같은 꿈을 며칠째 거듭하는 것이 내 상황이다 보니 관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 터다.

“그 꿈속의 세상에선 현실과 달리 여전히 코로나로 인해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었어. 문제는 그 고통이 정작 질병 자체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각국 정부들의 필요 이상의 통제 정책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점이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봐요.”

나타샤의 눈에선 한층 빛이 났다.

“꿈속에서 각국 정부들은 펜데믹을 철저하게 이용하여 정부의 힘을 강화했어. 캐나다의 경우 백신여권이 없으면 금융활동은 물론 쇼핑조차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유럽과 호주는 그게 없으면 모든 경제활동이 금지되었지. 단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던 모든 국가들이 마치 중국의 공산주의를 따라 하듯 과도한 통제정책을 시도하더군. 그리고 결국엔 디지털 아이디의 도입으로 국민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시작했어.”

그건 정확히는 2023년쯤부터 현실화되었던 부분이었다.

물론 지금의 현실이 아니라 회귀 전의 세상에서.

안타까운 것은 당시의 나로선 그게 단지 세상의 흐름이라고만 생각하고 넘겼었다는 건데, 그건 비단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랬다.

“뭣 때문에요?”

내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타샤가 핵심적인 질문을 뱉었다.

모든 결과는 원인이 존재하는 법.

굳이 그런 통제정책으로 얻을 이익이 무언인지에 대해서.

“이유라면…… 효과적인 통제를 통해 자신들만의 절대 권력을 구축하는 것?”

“…….”

“원래 기득권자들은 그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어하는 법이지. 특히나 그 기득권이 전 세계적인 권력이라면 더더욱.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득권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법. 애초 그 싹을 잘라 버리겠다는 의도겠지.”

“어렴풋하게 이해가 될 것도 같네요. 하면 당신 꿈속에서의 그 미친 기득권자들은 대체 누구였어요?”

“글쎄…… 꿈속에서의 내 위치가 워낙 변변치 않다 보니 그 부분은 잘 모르겠더군.”

“우습네요. 아무리 꿈이라지만 당신이 세상의 주축이 아니라니. 그나저나 혹시 당신과 리암도 그런 세상을 원하는 것은 아니죠?”

“그럴 리가. 한때 나와 리암에게 대적했었던 인물들. 즉 글로벌리스트들이라면 또 모를까.”

그러고 보니 그들이 바로 통제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로지 자신들만이 절대 권력을 가진 제국을 구축하는 것이 꿈인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니까.

문제는 리암인데, 그도 과연 저들과 한패가 되어 통제사회 구축에 힘을 썼을까?

아무리 노선이 다르다곤 해도 그 역시 유태인.

이 세계에서야 나로 인해서 글로벌리스트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회귀 전의 세상에선 그가 어떤 길을 갔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아니, 그건 무리이려나?’

오랜 생각 끝에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리암이 글로벌리스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그들과 협력하는 것만큼은 경계하던 그의 다짐을.

“아무튼 그게 꿈이라니 다행이네요. 듣고 있자니 사람 살 세상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나타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문득 떠오른 사실로 인해 다시 그녀를 쳐다봤다.

“참! 한 가지 첨언하자면 내 꿈속 세상에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어.”

“아버지가요?”

“꿈속에선 당신 아버지가 아니었지. 내 장인도 아니었고.”

“…….”

“아무튼 그 결과 세계엔 식량 위기가 찾아왔어. 때문에 그다음 해엔 결국 전 지구적으로 4천만이라는 아사자가 발생했지.”

“맙소사! 진짜 개꿈이네요.”

나타샤는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긴, 이미 지워진 역사인 마당에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나 역시 웃으며 다시 자리에 누우려는 순간 그녀가 휙 하고 다시 돌아선다.

“그런데 글로벌리스트들이 통제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그 디지털 아이디 말이에요. 왜 하필 그걸 백신과 연계한 거죠?”

그 말에 넌지시 시선을 맞추었다.

머리가 아프다더니 정작 그건 궁금했던 듯, 슬쩍 곁눈질을 하곤 대꾸했다.

“글쎄, 아무래도 그게 최적의 수단 아니었을까? 백신을 맞지 않으면 디지털 아이디를 부여해 주지 않는 상황이고, 그럼 사회활동이 불가능해지니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러네요. 당장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 해도 그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건데, 그걸 저항하지 않는다는 건 좀…….”

“물론 저항하는 집단도 있었어. 단지 여론몰이를 통해 저항하는 자들이 몰매를 맞았다는 것이 문제지. 게다가 디지털 아이디가 가져다주는 편리함에 대부분은 그게 통제정책의 시작이라는 사실조차도 망각했어.”

나타샤는 그 말에 고개를 털었다.

마치 현실에선 벌어지지도 않을 일을 두고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듯.

그때 테이블에 두었던 휴대폰이 요란한 진동을 해 댔다.

부르르!

“이 시간에?”

발신자는 강 소령이었다.

새벽부터 나를 깨울 만한 일이라면 재우제약 컨소시엄에서 벌어진 데이터 유출 시도 사건의 조사와 관련된 보고일 터.

즉시 통화버튼을 누르자 착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의 지시로 프랑스 ‘야콥’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 중이던 카를로스가 실종되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루시 역시 현재 소식이 끊겼고요.

“…….”

-3시간 전부터 연락 두절 상태인데, 위성을 통해 전해지던 생체 신호가 끊어진 것을 보면 안전이 의심됩니다.

“최근 그들로부터 전해진 보고사항은요?”

당황스러움을 억누르고 되물었다.

두 인물 모두 PMC 최고의 요원들이었기에 그들의 죽음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으니까.

같은 기분이었던 듯 보고를 잇는 강채훈 소령. 아니 팀장의 목소리 역시도 떨림을 숨기지 못한다.

-회장님만이 열람할 수 있는 암호로 된 메일과 화물이 하나 본사로 전달되었습니다.

“곧 그리로 가죠.”

다급한 마음을 뒤로하고 몸을 일으켰다.

이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차 수화기 저편에서 강 소령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날아든다.

-아시겠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당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도 고작 제약사의 뒤처리나 해 주는 조직들이 상대라면 더더욱.

“그렇죠. 특히나 카를로스의 경우는 한때 CIA 북유럽 전력 절반을 꼬리에 달고도 생존했던 인물이니까.

-해서 말인데,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조직의 개입이 의심스럽습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자세한 보고는 들어가서 듣죠.

꾹!

마지막 말을 되새기며 통화를 종료했다.

새어 나온 소리를 통해 이미 대화의 내용을 모두 파악한 나타샤가 내 옷깃을 붙잡는다.

“무슨 상황이죠? 루시는 그렇다 해도 카를로스가 당했다고요?”

아마 그녀로서도 충격이 컸을 거다.

한때 러시아 최고의 대외정보부요원이었던 그녀를 불과 수 초 만에 컷 시켜 버린 존재가 카를로스였으니까.

당시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그녀는 무려 보름 가까이나 식음을 전폐했었다.

“아직 사망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것에 희망을 걸어 보지.”

그나저나 하필 전생이 꿈에 등장한 시점에 이런 불상사가 벌어졌다? 이거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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