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1 (359/372)

*FBI WARNING.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의약품의 성분 및 작용 기전에 대한 해설 등은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믿거나 말거나.

* * *

외전-1

2022년 2월.

“이건 마치 내 고향 마을을 보는 기분이군.”

파리 6구역의 뒷골목 노천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즐기던 카를로스는 지저분한 주변의 환경을 보며 중얼댔다.

아무리 대로를 벗어난 곳이라곤 해도 거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는 쥐의 모습이 왠지 모를 위화감을 주는 상태.

대체 이런 곳이 왜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 중 하나가 된 건지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많은 여행자들이 제시한 의견에 따르면 파리에 대한 평가는 거품이 심하다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일종의 중세 도시들에 대한 향수가 그 외의 평가 기준들을 무시하게 만든 거죠.>

순간 그의 귀에 꽂혀 있던 리시버를 통해 대꾸가 들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AI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투와 대화 수준으로 인해 카를로스는 속으로 또 한 번 감탄을 뱉어 낸다.

“AI의 진화 속도는 일 년에 열 배 정도 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군. 확실히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어. 그 말투는 물론 정보전달 능력과 순간적인 판단 능력까지. 자네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 인간 오퍼레이션 요원이라 해도 믿지 않을까 싶군.”

<칭찬의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꼬박꼬박 대꾸를 잇는 AI의 태도에 카를로스는 헛웃음을 뱉어 냈다.

무엇이 생각난 걸까, 이내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입으로 털어 넣은 그가 사뭇 장난조의 질문을 던진다.

“그나저나 자네가 욕을 그렇게 찰지게 한다던데, 난 왜 한 번도 자네가 욕하는 것을 들어 보지 못한 거지?”

<카를로스 님과 작전을 하면서 욕을 해야 할 만한 일은 없었으니까요>

“그 말인즉, 자네의 전담 컨트롤러였던 차지환 대원과의 사이에선 서로 욕할 일이 많았다는 의미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제가 초기 학습단계에서 차지환 대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해서 그와의 교류에선 욕설이 일정 부분 서로 간의 신뢰를 드러내는 수단이 된 거죠.>

“그런가?”

대꾸를 하는 카를로스의 표정엔 부러움의 표정이 엿보였다.

힐끗!

그도 잠시, 대화와는 상관없이 내내 주변을 살피던 그의 눈이 날 선 빛을 발하며 주변 곳곳에 꽂힌다.

“흠…….”

가장 먼저 시선이 닿은 곳은 근처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노부부였다.

대략 8미터의 거리.

그가 15도 각도쯤 고개를 틀어야 정면에서 마주 볼 위치에 있는.

문제는 애써 이쪽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저들의 태도였는데.

무려 30분 가까운 시간 동안. 그것도 몇 번이고 그가 의식적으로 시선을 주었음에도 단 한 번도 눈이 마주친 적이 없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주변에서 자신을 의식하면 한 번쯤은 그쪽으로 시선을 주는 것이 보통인데 말이야…… 자네 생각엔 어때?”

최대한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중얼댄 그는 에바의 판단을 기다렸다.

현재 그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통해 현장상황을 인식 중인 에바는 잠시 후 스스로가 분석한 바를 말해 왔다.

<의자의 방향이 카를로스 님 쪽으로 향해 있는 남자의 경우 내내 테블릿만 보고 있는 중이네요.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가방에는 미세한 구멍이 존재합니다. 아무래도 카메라 렌즈 구멍 같은데, 그것과 연결된 테블릿을 통해서 카를로스 님을 감시 중이라 짐작됩니다.>

“빙고!”

짧은 탄성을 뱉어 낸 카를로스의 시선이 이번엔 저 멀리서 조깅 중인 사내에게로 향했다.

벌써 3번째 이곳을 지나친 상황.

정해진 운동루틴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매번 그를 스쳐 간 시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쯧쯧.”

이제까지의 상황판단에 따르면 단순한 감시가 아님은 확실했다.

아무리 경험이 없는 집단이라 할지라도 이렇듯 어설픈 감시 방법은 쓰지 않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기습체포나 제거를 염두에 둔 움직임.

그런데 정작 궁금한 것은 자신 같은 특급 현장요원을 상대로 왜 저렇듯 노쇠한 인물들을 투입했느냐는 점이다.

스륵!

그때, 주변 상황이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탈출로가 될 만한 모든 공간마다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

게다가 힘없는 노인들이라 생각했던 두 남녀 역시 단숨에 기세가 달라졌다.

“이런! 이제 보니 프랑스 정보부의 늑대 ‘마리우스’였군. 하긴, 그 정도 인물은 되어야 성공확률이 높을 테니까. 그나저나 상황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약속은 펑크 난 것 같은데?”

약속 시간이 20분이나 지났음에도 나타나지 않았을 때부터 짐작은 했었다.

뭐 사실 그 역시 레오라는 자를 완전히 믿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기대를 했었던 이유는 그가 레오에게 했었던 약속 때문이었는데, 결국엔 별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진 회장님이 이 사실을 알면 자존심이 꽤 상하시겠군. 그 양반이 친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가족들의 안전을 약속했었던 상황에서 이런 결과라니.”

<이해는 합니다. 당장 가족이 인질로 잡힌 상황이다 보니 위험을 최소화하고 싶었겠죠. 하지만 그 결정이 레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후회로 남을 겁니다.>

“그렇겠지. 놈들이 얼마나 약속을 하찮게 여기는 존재들인지 알게 된다면.”

<제 판단에 따르면 우리로선 굳이 상관없다고 여겨집니다. 비록 최종적인 증거는 날아갔어도 이미 필요한 것은 전부 손에 넣은 상태니까요.>

“빙고, 그런 의미에서 이만 여길 뜨자고.”

삑!

에바는 그 말에 재빨리 카를로스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에 맵을 띄웠다.

적색경보 상황에 대비한 프로토콜을 발동한 것.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 오퍼레이터들에 비하면 대처속도가 무척이나 빠른 편이다.

스윽!

순간 카를로스의 움직임을 눈치챈 주변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마치 이젠 굳이 숨길 것이 없다는 듯 대놓고 그를 향해 시선을 주는 행동들.

우습게도 그건 목표를 확실히 포획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만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는데, 모든 탈출로를 저렇듯 죄다 틀어막아 버린 상황이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아무래도 지원을 기다렸던 것 같군요. 위성사진 판독 결과, 현재 주변 3개 블록을 중심으로 압박 전술을 시행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상황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제 책임입니다.>

카를로스는 전해져 오는 에바의 보고에 재빨리 눈을 굴렸다.

에바마저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였다면 보통의 조직이 움직인 것은 아님을 증명하는 것.

생각보다 힘든 탈출길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아니, 자네 잘못이 아니야. 여긴 건물들의 밀집도가 워낙 높고 차량 이동도 많아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는 상황파악이 쉽지 않은 지역이니까. 더군다나 이런 인구밀집 지역에서 대범하게 제거 작전을 시행할 거라 예상하기는 더더욱 어렵지.”

<포획이 아니라 제거를 목표로 한다고요?>

“포획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총에 소음기를 장착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군요. 하면 왜 진즉에 공격을 하지 않은 거죠?>

“장소가 애매했으니까. 아무리 막 나가는 놈들이라곤 해도 민간 피해는 최소화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아마 내가 레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암암리에 민간인들의 출입을 통제했을 거야.”

<꽤 피곤한 하루가 되시겠군요.>

그 말에 넌지시 미소를 내비친 카를로스는 쉼 없이 주변을 훑었다.

끼익!

그사이 접근하는 트럭은 BNP PARIBAS의 로고가 박힌 현금수송차량.

말이 현금수송차량이지 아마도 저 안에는 필시 중무장한 지원세력이 타고 있을 거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놈들을 봤나.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놈들이 중무장 병력을 동원한다고?”

그는 읊조림과 동시에 빠르게 내달렸다.

휙!

이후 가장 가까운 골목을 향해 몸을 날리자 마침 그곳을 막아서고 있던 사내 하나가 순식간에 총을 뽑아 든다.

쉬익!

상대의 침착함에 혀를 내두른 카를로스는 빠르게 손을 휘저었다.

우득!

곧 총을 든 사내의 손을 강한 악력으로 뒤틀자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내질러진다.

“끄윽!”

사내는 뼈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몸을 틀었다.

쉬익!

이후 반대편 손에 쥔 나이프를 휘두르며 혹시 이어질지 모를 카를로스의 공격을 차단하는 사내의 행동은 확실히 보통의 훈련을 받은 인물은 아님을 뜻했다.

“제법인데?”

하지만 카를로스는 마치 뱀처럼 사내의 칼질을 피하며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우득!

이내 잡아챈 사내의 목을 순식간에 부러트린 그는 행여 날아올지 모를 총알에 대비하고자 재빨리 사내의 몸을 방패막이 삼았다.

퍽!

순간 그의 발밑에 있던 경계석에서 불똥이 튀더니 죽은 사내의 몸이 들썩였다.

조준실패로 인해 바닥경계석을 때린 유탄이 사체의 몸에 틀어박힌 것.

저들의 대담함에 카를로스가 다시 혀를 내두른다.

“아군과 뒤엉켜 있는 상황에서 저격을 해 버린다? 이거 보통 미친놈들이 아니네.”

쉬익!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느낀 카를로스는 기둥 사이에 몸을 숨기며 저격수의 위치를 가늠했다.

그사이 탈출로를 찾아낸 에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최대한 가능성 높은 탈출로를 맵에 띄워 드리겠습니다.>

“글쎄, 이 블록 전체를 통제 중인 상황에서 과연 안전한 탈출로가 있기는 할지 모르겠군.”

짧은 대꾸를 뱉어 낸 카를로스는 즉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희생자가 발생한 탓일까.

이젠 저들도 앞뒤 가리지 않고 포위망을 좁혀 온다.

<이 길로 가다간 곧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겁니다.>

에바는 자신의 제안을 따르지 않는 카를로스를 향해 연신 경고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은 채 골목 끝을 향해 달리던 그는 재빨리 선글라스에 표시된 맵에서 주변 건물들의 위치를 살폈고, 곧 의미심장한 말을 뱉어 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길은 상대가 따라오지 못하는 길이지”

휙!

카를로스는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담장 벽을 밟고 뛰어올랐다.

무려 190센티미터의 키와 90킬로그램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도약력.

단숨에 3미터나 되는 담장 위로 올라선 그는 이후 또 한 번의 도약을 시도했고, 곧 벽에 있던 작은 돌출물들을 발판 삼아 순식간에 4층 건물의 옥상까지 이르렀다.

“후우…….”

짧은 숨을 몰아쉰 카를로스는 다시 도움닫기를 시도했다.

휙!

그러곤 마치 날다람쥐가 나무 사이를 이동하듯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하는 그는 설사 파쿠르 장인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도전할 수 없을 만한 장면들을 연출했다.

<존경스럽군요. 확실히 카를로스 님은 재우PMC 최고의 대원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입니다.>

어느새 안전지대라 할 만한 곳에 다다른 카를로스의 귓가에 에바의 탄성이 들려왔다.

무려 다섯 블록이나 거리를 벌린 탓에 숨 돌릴 여유가 생긴 상황.

그럼에도 카를로스는 여전히 주변의 움직임을 주시한 채 대꾸를 뱉어 낸다.

“과한 칭찬이군. 그렇다 해도 강채훈 소령은 꽤 버거웠어.”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특전사 대원이었으니까요. 그런 강 소령님을 고작 수 초 만에 제압한 인물에게 이 정도 치사가 과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마 저 말을 차지환이 들었다면 아연실색했을 거다.

에바는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칭찬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건 에바가 그만큼 카를로스의 능력을 높게 사고 있다는 증거인데, 어쩌면 그게 잦은 참견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예상보다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는 작전들.

그로 인해 혹여 최고의 블랙요원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싶은 조바심에서.

“저 건물만 넘으면 탈출이 가능해지겠군.”

숨을 고른 카를로스는 재빨리 벽을 타고 아래로 향했다.

건물에 박힌 돌출물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그의 모습은 ‘규격 외의 인간’이라는 별명이 유독 잘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후우.”

대로에 도달한 카를로스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그가 한 행동은 사람들의 틈에 스며드는 것.

혹시 모를 저격수의 배치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뉴욕에 있는 루시에게 이 상황을 전해 주도록. 아무래도 우리 작전 상황을 죄다 파악하고 움직이는 모양인데, 그녀라고 안전할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막 지나치는 버스를 잡아탄 카를로스는 의자에서 한껏 몸을 숙이며 에바에게 명령했다.

여전히 놓지 못한 긴장감과는 달리 평화로운 차량 내부의 분위기.

이대로 다리만 건너면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광장이기에 탈출은 보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은밀하게 골목을 통제하면서까지 조심성을 보여 준 놈들이 자칫 대형 사고가 벌어질 상황은 만들지 않을 테니까.’

쾅쾅!

그때, 뒤편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며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본 그의 눈에 뜨인 것은 예의 그 현금수송차량.

악다구니에 받친 듯 승용차들을 밀어 대며 접근하는 차량의 모습에 카를로스가 혀를 내두른다.

“이 새끼들, 돌아 버리기라도 한 건가?”

스윽.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댄 카를로스는 즉시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곧 들려오는 에바의 음성.

잠시 다가오는 트럭과의 거리를 가늠한 끝에 카를로스의 대답이 뱉어진다.

“자넨 지금 즉시 지금껏 모아 둔 자료들을 진 회장님의 서버에 업로드하도록. 내 은신처에 있는 상자 역시 본사로 호송하도록 하고. 아! 그리고 현 시간부로 리시버는 파괴하겠다. 혹시 내가 놈들에게 잡혀서 이게 증거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곤란하니까.”

말끝에 리시버를 빼낸 카를로스는 단숨에 그걸 부숴 버렸다.

휘잉!

뒤이어 다리 밑을 지나치는 강을 향해 그걸 던져 버린 그는 곧 자신도 뛰어내릴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쯧, 이렇게까지 하면 앞으로 후회할 텐데…… 미친 걸로 따지자면 진 회장님이 너희들보다는 몇 수는 위거든.”

쾅!

순간 트럭이 버스를 추돌하며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시민들의 안전은 이제 관심 밖의 사안이 된 걸까?

끝까지 차량을 밀어내는 트럭의 기세로 인해 결국 버스가 전복된다.

“으으…….”

벌컥!

조금 후 아비규환이 된 버스로 일단의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곧 쓰러져 있던 승객 하나하나를 살피던 사내들의 입에선 비명과도 같은 고함 소리가 뱉어졌다.

“빌어먹을…… 설마 그사이 강으로 뛰어내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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