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58화 (완결) (358/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58화

[중국의 전면적인 항복에 따라 베이징에서는 현재 전후 처리 문제를 두고 협상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베이징에 입성한 우리군 7군단과 8군단은 현재 질병 피해에 따른 재건과…….]

시 주석의 사망과 동시에 베이징은 전면적인 항복을 선언했다.

치열하게 저항하던 베이징 북부의 군벌 세력들은 중앙정부의 명령에 따라 무장을 해제했고, 7군단을 필두로 구성되었던 한러 연합군은 점령군의 자격으로 베이징 입성에 성공.

이후 대략 한 달 가까이 치안 유지와 전후 처리. 그리고 질병 사태의 해결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맡았다.

[그럼, 지금부터 종전 선언을 위한 사전 협상을 시작하겠습니다.]

쉬량 부주석을 중심으로 한 중국 측 협상단은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비록 막후 협조로 인해 전범재판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면했어도 이제부터 시작될 협상의 내용은 그야말로 살을 찢는 고통일 테니까.

특히나 향후 중국이라는 나라가 대륙의 일부분에 불과할 정도로 쪼그라드는 것에 자신이 협조했다는 점에선 아마 두고두고 역사의 죄인이 된 심정일 거다.

[현 시간부로 티벳과 내몽골 그리고 위구르의 독립을 선언한다. 또한 50여 개의 소수민족이 독립국가 건설의 의지를 드러낼 경우, 향후 연합과의 조율을 통해 영토를 할양한다.]

첫 시작은 역시나 억지스럽게 유지해 오던 중국의 해체였다.

‘중국’이라는 이름하의 국가 존립은 하남과 호북 그리고 호남지역을 한계로 제한.

이후 대부분의 영토는 한동안 연합의 임시관리를 따르며 이후 독립을 원하는 민족별로 영토할양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흑룡강성과 길림성, 그리고 요녕성을 비롯하여 발해만을 중심으로 한 천진과 산둥반도는 영구히 한국에게 귀속된다.]

우리가 차지할 땅에 대해서는 연합의 임시관리 지역에서 제외되었다.

전쟁의 승리에 대한 기여도는 차치하고 애초 그 지역의 경우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흔적이 깃들었던 땅이었음이 강조된 덕분.

뭐 사실 그 흔적이라는 것은 단지 핑계일 뿐, 사실상 연합의 의지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향후 발해만 유전개발을 위해서는 그 지역의 지배권이 우리에게 있어야만 하고, 최소한의 이권이라도 얻어 내기 위해선 연합도 협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지.

[전쟁 배상금은 20년에 걸쳐 총 10조 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하며…….]

이후 테이블에 올라온 안건은 전쟁배상금에 관한 것이었다.

이 전쟁의 목적 자체가 다시는 패권야욕을 드러내지 못하는 중국으로 만들겠다는 것.

때문에 배상금의 규모 역시도 GDP의 절반 수준까지 이르렀는데, 그건 이면합의 따라 지불해야 할 금액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중국이 보유한 대외채권을 비롯하여 해외자산 대부분이 암암리에 연합에게 넘어올 테니까.

어디 그뿐일까?

지하에 잠자고 있는, 무려 3,000톤에 달하는 금은 조만간 ‘전쟁 중 행방불명’이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몫이 될 텐데, 그건 이미 연합의 합의가 끝난 상항이다.

사실상 이 전쟁을 주도한 것은 우리였고, 결론을 맺은 것도 우리니까.

[옛 발해 영토에 거주 중인 중국인들은 전원 새로운 중국의 영토인 정저우와 후베이 그리고 우한으로 이동시킨다.]

무려 2시간에 달하던 협상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우리가 차지할 영토에 거주 중인 중국인들의 처우 문제였다.

사실상의 추방.

애초 이 부분이 우리로서는 가장 골칫거리였지만, 그건 중국 특유의 정책에서 답을 찾았다.

어차피 중국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 인정이 되지 않는 나라.

때문에 재산권 보상은 건물 부분에 대해서만 이루어지면 되는데, 우리가 그걸 제대로 쳐줄 리가 만무하지 않던가.

[끄응.]

중요한 것은 그 재산권. 정확히는 이주 문제 역시도 새로운 중국 정부가 떠안을 몫이 될 예정이며, 그게 딱히 무리도 아니라는 거다.

그동안 무리한 부동산 개발로 인한 중국 내 빈집의 수는 무려 1억 채.

그중 새로운 중국으로 지정될 3개의 성에만도 무려 3천만 채가 존재하는데, 어차피 중국은 지금 인민들의 재산권 전체가 리셋될 상황이기에 그걸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던가.

[사인하시죠.]

넌지시 뱉어 낸 총리의 말에 쉬량이 떨리는 손으로 문서에 손을 가져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내 한참을 협정서를 노려보던 그는 질끈 눈을 감고 펜을 휘갈겼다.

[충칭은 독립국으로서 존재하게 될 겁니다. 또한 항저우는 30년간 미국의 관리하에 있겠지만 이후 상하이 독립국에게 할양되는 형태가 될 테고.]

이후 이어진 회의는 충칭과 상하이 파벌들과의 약속에 대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예정대로 각 지역을 독립국으로 인정.

사실상 대륙에서 중국은 3개 국가로 찢어졌고, 앞으로 독립을 이룰 국가들까지 포함한다면 이제 중국 대륙에는 최소 20개 이상의 국가가 난립하게 될 거다.

“저들이 다시 통일을 시도하는 일은 없겠죠?”

회담을 끝내고 돌아서는 길.

총리가 조금은 우려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비록 지금은 외세에 의해 분리되었지만 미래는 모르는 거라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거다.

“충칭과 상하이는 이미 저들만의 왕국을 구축한 마당에 그걸 포기할 리가 없죠. 게다가 새로운 중국은 재통일을 주도할 만큼 여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물론 세계의 공장 역할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 점차 사정은 나아지겠지만, 어차피 최하 30년간은 연합이 대륙을 관리는 하는 마당에 통일을 꿈꾸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웃으며 이어진 내 대꾸에 총리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뭣 때문일까, 이내 뒤를 돌아 다시 회담장을 쳐다본 그가 회한에 찬 투의 말을 뱉어 낸다.

“오늘이 한민족 역사상 가장 의미가 깊은 날인 것 아십니까?”

난 그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긴, 역사상 이보다 뜻깊은 날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

우리 손으로 중국을 해체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안주하면 곤란하다.

우린 이제 지킬 것이 더 많아졌고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법이기에.

***

그로부터 3개월 후.

뿌우우우!

거제 앞바다엔 수없이 많은 군함들이 줄을 이어 입항을 대기하고 있었다.

전쟁 과정에서 반파된 중국의 구축함들과 각종 지원함. 하다못해 건조만 해두고 정작 전장에는 투입도 못 한 항공모함까지 죄다 끌고 온 덕분.

반파라고는 하지만 수리를 거치면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기에 해군은 잔뜩 입이 찢어진 상태다.

“저 항모 좀 보십시오.”

해군참모총장은 수많은 함선 중 유독 항공모함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배수량 67,500톤에 달하는, 001급 항모.

그리고 중국이 공식적으로는 8만 톤급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질적으론 13만 톤급에 달하는 003급 항모.

그중 003급의 경우는 비록 중국산이라고는 해도 서방의 건조 기술을 도입한 덕분에 함의 내구성은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함상형 고스트이글이 완성되면 이제 우리 해군도 진정한 대양해군으로 거듭나겠군요.”

“그렇죠. 예상컨대 앞으로 3년 정도만 지나면 저 항모에서 고스트이글이 뜨는 것을 볼 수 있으실 겁니다.”

“하아…… 아쉽군요. 내 임기 내에 그 모습을 봐야 하는 건데.”

그 말에 넌지시 웃음을 뱉어 냈다.

농담이었음을 표현하려는 듯 마주 웃어 보인 총장은 뭣 때문인지 금세 표정이 어두워진다.

“왜 그러십니까?”

“아! 다른 게 아니라, 중국 조선소에서 발견했던 프랑스산 원자로들 말입니다. 미국 정부에서 지금 그 문제를 두고 프랑스 제재안을 결의 중이랍니다.”

그 문제는 사실 나로서도 골치 아픈 문제였다.

엄중했던 경고를 날렸던 연합의 입장에선 약속을 어기고 원자로를 수출한 프랑스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터.

그렇다고 아직 전쟁의 여파가 남아 있는 와중에 그들을 제재하여 분란을 더하는 것도 부담스럽지 않던가.

“흠.”

해서 내려진 결정은 결국 프랑스가 무기기술 판매와 부품판매 대금으로 중국으로부터 그동안 받아먹은 금융자산과 채권을 동결하는 것.

즉, 그동안 중국을 통해 빨아먹던 단물을 죄다 게워 내게 하겠다는 건데, 현재 그 문제로 미국과 프랑스의 실랑이가 극에 달했다.

“뭐 그거야 미국에서 알아서 하겠죠. 그렇다고 프랑스의 그 이중적인 태도를 이대로 묵과하고 넘어갈 수는 없으니 아마 우리 정부는 치료제의 수출에 일정 부분 제약을 둘 겁니다.”

“그건 과도한 처사라는 비난이 날아들 가능성이 있을 텐데요?”

넌지시 뱉어 낸 내 대답에 총장이 반문했다.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후환.

막말로 생명을 담보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잔혹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 텐가.

하지만 우린 판매를 아예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순번을 제일 나중으로 미루겠다는 것뿐.

“그에 따른 자국 내 피해와 비난은 일을 이렇게까지 만든 프랑스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겠습니까.”

이어진 내 설명에 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뿌우우!

그사이 도크로 들어서는 항모들.

이제 저 항모들은 우리가 만든 한국형 원자로와 전투기를 탑재하고 대양을 누비게 될 테고, 그건 곧 이 나라의 힘을 대외에 증명하는 핵심 수단이 될 거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될 통일 한국의 힘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겠지.’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진정한 G3로서.

***

2021년 5월, 송도 재우 제약 컨소시엄 연구실.

“저 먼저 퇴근합니다.”

차인호는 오늘도 연구실에 홀로 남았다.

벌써 2년째 이어진 혼자만의 야근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게 더없는 즐거움.

무리도 아닌 것이 이번 실험이 성공하게 될 경우 기존의 세포치료방식의 코로나치료제는 구시대적인 유물이 될 상황이기 때문이다.

“후우…….”

물론 기나긴 임상과정은 남아 있었다.

1, 2상을 통과한다 해도 대부분 3상에서 좌절하게 되는 것이 신약의 운명인 것을 감안하면 지나친 기대감은 금물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건 애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닌 상황.

이미 증명된 기존 치료제를 바탕으로 발전된 형태기에 성공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큰 편이다.

부스럭!

“응?”

한창 자료를 서버에 이관하던 와중 어디선가 수상쩍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태식?”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아까 전 퇴근을 알리고 나갔던 동료의 이름을 불러 봤지만 묵묵부답.

갑자기 밀려드는 불안감에 차인호는 재빨리 서버의 보안장치를 가동했다.

“…….”

이후 그는 한참 동안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고요한 연구실.

그럼에도 끝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차인호는 보안 시스템에 접속하여 현재 퇴근하지 않은 인력들에 대한 출입사항을 체크했고, 현재 B동에는 그 홀로 근무 중인 것을 확인했다.

“이거 곤란한데…….”

홀로 남아 있는 연구소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는 사실이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수백 평이 넘는 공간에 숨어든 자를 찾는 것도 힘들뿐더러, 그 홀로 침입자를 제압할 자신도 없다는 것.

차라리 헛것을 들었다면 좋으련만,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확실한 인기척이었다.

스윽.

생각의 끝에 내린 결론은 보안요원을 부르는 것이었다.

괜한 착각이었다면 입장이 난처해지기는 하겠지만 그편이 맘은 편할 테니까.

그런데 그때, 입구 저편에 있던 기둥에서 이태식이 쑥 얼굴을 비추더니 잔뜩 너스레를 떤다.

“아이고, 제가 우산을 두고 갔지 뭡니까.”

“자네였어? 깜짝 놀랐잖아 이 친구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차인호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이내 들고 있던 수화기를 내려놓던 차,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생각과 함께 휙 하고 다시 돌아섰다.

“자네, 다시 들어온 기록이 왜 안 뜬 거지? 보안시스템에는 이미 퇴근한 것으로만 되어 있었는데…….”

그 말에 우산을 챙기던 이태식이 멈칫했다.

이내 힐끗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꺼져 버린 CCTV.

순간 차인호의 뇌리엔 불길한 예감이 스쳤고, 그걸 증명하듯

이태식이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 들곤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미친!”

깜짝 놀란 차인호는 책상 사이사이를 누비며 도주했다.

정황상 놈이 노리는 것이 뭔지 야 빤하고, 그걸 막기 위해선 목에 걸려 있는 서버 접속용 보안칩을 어떻게든 지켜야 하니까.

이미 서버접속 코드까지 알고 있는 놈에게 보안칩마저 내주면 연구소의 모든 자료가 넘어가게 되는 건데, 그걸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자네 대체 왜 그래? 혹시 또 카드빚에 시달리기라도 하는 거야? 그래서 돈이 필요한 거라면 내가 얼마든지…….”

차인호는 어떻게든 놈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들은 이태식은 잔뜩 짜증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이죽댔다.

“그 성인군자 행세는 이제 그만 좀 하지? 솔직히 당신에게 그동안 신세는 많이 졌지만 그때마다 고마움은커녕 치욕만 느껴왔었어.”

그동안에는 볼 수 없던 표정이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느낀 차인호는 슬금슬금 다시 그와의 거리를 벌리며 어떻게든 문을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 중. 불현듯 중요한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가만, 그런데 저놈이 출입데이터는 어떻게 조작한 거지?’

순간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그쪽 방면으로는 전문가도 아닌 놈이 보안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할 터.

그렇다는 것은 조력자가 있다는 건데, 그럼 곧 그 조력자도 들이닥칠 수 있지 않던가.

힐끗.

차인호는 생각과 동시에 문을 쳐다봤다.

운 좋게도 순간 이태식의 시선이 따라 돌았고, 그걸 기회로 여긴 차인호는 득달같이 자신의 책상으로 달려가 비상 버튼을 눌렀다.

삐이 삐이!

“비상 버튼이 있었어?”

당황한 이태식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차인호를 덮쳤다.

“억!”

막아 내려 했지만 찰나의 순간 가슴에 꽂힌 칼.

차인호는 이렇다 할 저항조차도 해 보지 못한 채 무너졌고, 이태식은 재빨리 그의 목을 더듬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사이 어디에 숨긴 거야.”

어쩐 일인지 보안칩은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이태식은 재빨리 문을 빠져나지만, 이미 복도 양 끝에선 총을 든 보안요원들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런…….”

***

노을 진 하늘의 모습이 유독 장관이었다.

이맘때면 늘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도 최근 들어서는 전혀 넘어오지 않는 상황.

현재 중국이 무너진 영향으로 전 세계의 경제는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사실 이것 하나만큼은 마음에 든다.

“쿨럭! 어유 연기가 죄다 나한테만 오네.”

현재 내 집 정원에선 한창 피어오르는 숯불로 인해 그 상쾌한 공기를 오염시키는 중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들로 인해 파티가 벌어진 덕분.

처음엔 단순히 우리 식구들과 장인. 그리고 몇몇 재건위원들의 간단한 식사 자리로 마련된 자리였건만, 점점 그 규모가 커져 이젠 무려 50여 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정원을 꽉 채운 상태였다.

“제가 하면 안 되갔습니까? 고조 저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고기가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갔습네다.”

내 경호를 담당하는 강 소령과 차지환도 손님들 중 하나였다.

현장에서 궂은일을 하는 인물들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고마워해야 할 존재들임을 주장한 나타샤의 권유로 인한 결과.

하지만 그들은 정부 고위인사들과의 합석을 부담스러워했고, 결국엔 부탁하지도 않은 바비큐 트레이를 서로 붙잡겠다고 난리들이다.

“아빠!”

어느덧 제법 말이 유창해진 율이 놈은 어디서 가져온 건지 손에 펜 하나를 들고 달려왔다.

얼핏 봐도 고급스러운 느낌의 물건.

의아함에 주변을 둘러보자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던 장인이 헛웃음과 함께 말한다.

“누가 자네 아들 아니랄까 봐 협상을 걸어오더군. 쯧, 덕분에 10만 불짜리 만년필만…….”

“무슨 협상을 하셨기에 그 비싼 만년필을 뺏기신 겁니까.”

“그건 둘만의 비밀일세.”

장인은. 아니 푸틴은 찡끗 율이 놈을 향해 한쪽 눈을 감아 보이며 말했다.

뭐 그래 봐야 애 기분을 맞춰 주려 장단에 춤을 춰 준 거겠지.

옅은 미소와 함께 곁에 앉아 있던 나타샤에게 율이를 건네려는데, 장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오전에 백악관과 통화를 했는데, 이번 유엔 총회에서 한국을 중국 대신 상임이사국 지위에 추대하는 것으로 결정됐네.”

순간, 주변에 앉아 있던 재건위원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나 역시 그건 마찬가지.

예상했던 반응이었던 듯 푸틴이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다시 말한다.

“어차피 중국은 이제 상임이사국을 유지한 능력도 힘도 없어. 하니 그 자리를 한국이 차지하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을까?”

“하지만 프랑스가 순순히 동의할지 걱정이군요. 하필 치료제 순번 문제로 잔뜩 뿔이 나 있는 상황인 터라.”

“그래서 더 동의할 수밖에는 없지.”

푸틴은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왠지 한 방 먹은 느낌이었던 터라 입매를 뒤틀려는 순간 갑자기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진동을 한다.

“응?”

발신자는 제약컨소시엄의 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던 메르칸이었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좀처럼 전화를 거는 일이 없던 인물이었던 터라 재빨리 통화버튼을 누르자 다급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제약 연구소에…….

***

끼익!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곳은 병원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책임연구원은 부검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

그사이 난 메르칸으로부터 사건의 경위를 전달받았다.

[이태식이라는 자가 현재 연구 중인 세포 치료제의 자료를 빼돌리려 했었던 모양입니다. 그 과정에서 차인호 팀장과의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근 처리된 이태식이가 어떻게 흔적도 안 남기고 다시 연구소에 들어올 수가 있었던 거죠?]

메르칸은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대답을 못 했다.

막상 질문은 했지만, 그 답이야 이미 예상 가능한 것.

난 재빨리 김 실장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조력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게 누군지 반드시 밝히세요. 그리고 앞으로 제약컨소시움 연구소의 보안시스템도 최소 탈레스의 보안시스템 수준까지 끌어올리시고요.”

“네, 회장님.”

김 실장은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

배후를 잡는 것이야 시간문제.

어딘지 대충 짐작은 간다만, 그게 확실해질 경우 각오는 해야 할 거다.

“프랑스를 의심하십니까?”

내 표정을 읽은 안 실장이 넌지시 물었다.

지그시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만약 정말로 배후가 프랑스라면 어쩌시려고요.”

“어쩌긴요. 그런 명령을 내린 자.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놈과 또 위에 있는 놈까지 뿌리를 찾아 죄다 부숴 버려야죠.”

“…….”

안 실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나를 쳐다봤다.

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게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란 것을 그도 알고 있는 거지.

드륵!

그때, 수술실의 문이 열리며 부검을 담당했던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의아한 것은 손에 무언가 들고 있었다는 것.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자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사망자의 위에서 이게 발견됐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 일행의 눈은 죄다 의사가 들고 있던 것으로 향했다.

아무리 봐도 낯익은 물건.

예상이 틀리지 않았던 걸까, 곁에 있던 메르칸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서버를 지키려고 보안칩을 삼킨 모양이군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상황.

예전. 아니 회귀 전 내가 겪었던 일과 무척이나 닮아 있지 않던가.

스윽.

난 무심코 부검실 안쪽을 향해 시선을 줬다.

이곳에선 보이지 않지만 저 안에 시체가 되어 누워 있을 연구원의 모습을 상상하며.

혹여 그도 지금쯤 혼돈의 계곡을 떠돌고 있을까?

아니면…….

씨익!

“어쩌면, 그럴 수도…….”

“네?”

상황과 걸맞지 않게 미소를 짓는 나를 보며 안 실장이 되물었다.

퍼뜩 표정을 바꾸곤 다시 부검실 안쪽을 향해 시선을 줬다.

‘궁금하군. 당신이 만들어 갈 세상은 어떨지.’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完.

***

작가의 말.

그동안 묵묵히 연재를 따라와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예정을 넘어선 장기연재.

그리고 혼돈으로 치닫는 주변 상황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책임감만이 아니라 독자분들의 응원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도 여운이 남는 것도 사실이고.

하여 얼마간의 휴식 후에 이번엔 무기 및 각 분야의 디테일을 조금 더 살린 외전을 올릴 예정이오니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 따라와 주실까 싶어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모쪼록 다시 한번 진심을 담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여러분도 항상 건강하시고, 다시 뵐 날까지 모두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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