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57화
“끄으으.”
홍수의 영향으로 고통받던 청두는 최근 괴질이라는 또 하나의 악재에 시달렸다.
무려 천오백만이 넘는 인구 중 오 분의 일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 버린 상황.
그럼에도 감염자는 계속해서 속출했고, 거리 곳곳에는 방치된 시체들로 넘쳐나서 마치 문명이 붕괴된, 종말의 시대를 보는 듯한 분위기였다.
타타타타타!
어디선가 들려온 로터 소리와 함께 대형 수송헬기 한 대가 나타났다.
잠시 도시를 관찰하듯 주변을 돌던 그것은 이내 한복판에 내려섰고, 곧 한 무리의 미군 병사들을 쏟아 냈다.
[주민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현재 연합군은 변종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는 여러분들을 위해 치료제를 보급할 예정입니다. 증세를 보이는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보급품을 수령하시기 바라며…….]
방송은 무려 30분이나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연합군의 등장에 경계심을 보이던 시민들은 어느덧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후 헬기 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라가 망해도 할 말이 없군.”
“그러게, 우린 군은 인민들을 버리고 도주해 버리고, 정작 적군은 우릴 살리려고 약을 제공하는 이 상황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어? 솔직히 이 빌어먹을 전염병만 아니면 폭동이 나도 몇 번은 났을 거야.”
몰려든 시민들 사이에선 현실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내내 보급 상황을 지켜보며 분위기를 파악하던 한국군 소속 한창완 소령은 즉시 본부에 무전을 날린다.
“*445 지점 보급 완료.”
-접수. 이로써 청두 지역은 클리어.
들려온 무전에선 청두 각 지역의 치료제 보급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엇이 불만이었던 걸까, 한 소령은 슬그머니 무전기를 내려놓곤 곁에 있던 상관을 향해 넌지시 묻는다.
“비록 전세가 완전히 기울었다곤 해도 아직까지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 왜 우리가 치료제까지 공급하는 겁니까?”
힐끗.
그 말에 상관의 시선이 돌아왔다.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
이내 상관은 긴 한숨과 함께 말한다.
“여긴 차후 충칭의 군벌들이 지배하게 될 도시 중 하나다. 때문에 정부에서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거지. 그에 더해서 변종에 대한 우리 치료제의 효능 입증과 여론의 악화를 막기 위한 조치의 의미도 있고.”
“충칭 군벌들과의 약속과 치료제의 효능 입증은 그렇다 쳐도, 여론의 악화는 무슨 의미입니까?”
되묻는 한 소령의 말에 상관이 힐끗 허공을 향해 턱짓했다.
연합군의 허락을 받아 도시를 촬영 중이던 서방 언론사들의 헬기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한 소령은 넌지시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하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연합군이 오로지 베이징 압박에만 힘쓰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골치가 아픈 것은 사실이죠.”
“맞아, 그래서 우리가 할 도리는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거지.”
“이해는 갑니다만, 국제사회의 여론을 다독이는 것이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지가 걱정입니다. 지금처럼 중국 전 도시가 질병 사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오래가지는 않을 거다.”
상관은 한 소령의 우려에 즉시 대꾸를 뱉어 냈다.
의미 전달이 왜곡된 듯, 한 소령의 고개가 끄덕여졌고, 그걸 본 상관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여론 안정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이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말이야.”
한 대위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 시선을 다시 군중들에게 돌린 상관이 자조적인 투의 말을 뱉어 냈다.
“모르긴 해도 이 질병이 베이징이라고 피해 가지는 않았을 거야. 더군다나 중국 군부가 베이징 방어선을 완전히 틀어막은 상태에서. 그럼 과연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
“…….”
***
베이징 남부.
“끄으으.”
진혜양은 타는 갈증에 눈을 떴다.
밤새 끓어오르는 열과 기침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잠을 잔 시간은 고작 30여 분 남짓.
아니 사실상 그 30분도 잠이라는 정의를 내리기엔 무리가 있는 시간이었다.
“진홍?”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이끌고 딸의 방으로 향했다.
점점 심해지는 증세는 당장이라도 죽음의 위협을 느낄 정도.
같은 증세로 앓아누워 있던 딸의 상태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진홍!”
바닥에 널브러진 딸은 미동조차도 없었다.
다행히 아직 숨은 붙어 있는 터라 재빨리 구급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불가능.
하긴, 이런 전쟁 통에 사회 시스템이 온전하게 돌아가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 거다.
“끄응.”
진혜양은 아픈 와중에도 어떻게든 딸을 살리겠다는 의지로 그녀를 들춰 엎었다.
이내 문을 나서 복도를 향해 힘겹게 걸어갔지만 이미 전원이 나간 승강기는 요지부동이다.
덜컥!
그때, 이웃집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기다시피 그를 향해 다가온다.
“끄으…….”
마치 도움을 청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당장 그도 누군가를 도울 입장은 아니었기에 서둘러 돌아서선 계단으로 향한다.
“억!”
막 2층에 도달했을 무렵 계단 한편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체라는 것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굳어 있는 모습.
병과 싸우느라 집 밖을 나서지 못했던 3일 사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길을 열어라!]
순간 계단 유리를 통해 바깥의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진혜양은 이내 거리 저편에 몰려있는 수없이 많은 시민의 모습과, 반대편에서 총부리를 겨눈 채 대치 중인 군인들을 발견했다.
타타타타탕!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에 고개가 갸웃해질 무렵, 갑자기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친!”
당황한 그는 혹여 시간을 끌다 저 난리에 휩쓸릴까 싶어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누군가 그의 목덜미를 덥석 붙잡는다.
“지금 나가면 죽어.”
아랫집에 사는 천유였다.
그와는 대학동기이자 최근까지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었던.
최근 같은 증세를 호소하는 전화를 받은 기억이 있었던 터라 안 그래도 소식이 궁금했었건만, 왠지 우려와는 달리 멀쩡한 모습이었다.
“여기서 더 머뭇거리다간 오히려 시위대와 군의 충돌에 휩쓸려서 오도 가도 못할 거야. 난 지금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천유는 울먹이는 제 등에 업혀 있던 딸을 눈짓했다.
흔들리는 천유의 눈동자.
하지만 끝내 붙잡고 있던 손은 놔주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지금은 방법이 없어. 공안들이 이미 발포를 한 이상 누구라도 사정을 봐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빌어먹을, 대체 무슨 일인데 이 난리들인 거야?”
천유는 발악하듯 소리쳤다.
힐끗 창밖을 한 번 쳐다본 천유의 입에선 청천벽력 같은 소리들이 뱉어졌다.
“베이징 북부가 한국군의 포격으로 초토화 직전이라는군. 그나마 온전한 이곳 남부도 괴질이 돌아서 사망자의 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모양이야.”
“얼마나 죽었기에…….”
“그건 나도 몰라. 중앙정부에서 정보를 차단해 버렸으니까. 하지만 우리 옆집에 사는 정공의 말에 따르면 베이징에서만 현재까지 오십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 같다는군. 해서 저 시위대는 지금 남부의 문이라도 열어 달라고 난리인 거야. 어차피 여기 있다간 포격으로 죽든 괴질로 죽든 죽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그렇다고 정부에서 괴질을 다스릴 시도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진혜양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베이징에서만 무려 오십만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면 그건 분명 일반적인 전염병은 아닐 터.
증세의 정도로 봐선 필시 자신과 딸도 같은 질병에 걸린 것이 분명한데, 대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천유 자네는? 자네는 이제 괜찮은 건가?”
문득 드는 생각에 되물었다.
가만히 고개가 끄덕여지는가 싶더니 자조적인 투의 말이 들려온다.
“난 괜찮지만 내 아내가 많이 아파. 이대로라면 며칠 못 버틸 거야.”
“…….”
진혜양은 괜한 질문을 했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정작 천유는 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후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무튼 지금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말고, 혹시라도 딸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일단 이거라도 먹이게. 예전에 받아 뒀던 감기약인데,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니까.”
“자넨 어디 가는데? 설마 자네도 베이징 밖으로 나가려고?”
그 말에 돌아서던 천유가 멈칫했다.
이내 씨익 하고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여전히 총소리가 난무하는 창밖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나가려는 것은 맞아. 하지만 난 저 시위대와는 달리 북부로 갈 거야.”
“…….”
“북부가 뚫리면 한국군이 곧 베이징으로 밀려들 것 아닌가. 소문에 의하면 한국에는 치료제가 있다는데, 그들에게 사정을 해서라도 내 아내를 구해야지.”
“…….”
***
쿠구구구궁!
무려 수천 대가 쏟아 내는 포탄의 비가 베이징을 향해 날아갔다.
어디 포탄뿐일까.
대구경방사포는 물론 전술 지대지미사일까지.
벌써 30분째 이어지는 무지막지한 포격에 이미 적 기갑세력들은 대부분 와해된 상황이었다.
“발사!”
쿠구구구궁!
그럼에도 포격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미 가루가 된 목표지점들에 더 이상의 포격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포격은 일종의 시위라고 보는 것이 옳다.
더 이상 항복을 미루면 베이징 북부는 남아나는 것이 없을 거라는.
쐐애액!
하지만 베이징 북부 방어군은 끝내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디서 끌고 온 건지 또다시 날아오는 포탄과 방사포들.
하긴, 그 넓은 대륙을 커버하기 위해 그동안 만들어 낸 지상 무기들의 수가 오죽할까.
더군다나 최근엔 베이징 방어에만 치중하느라 병력과 무장들을 죄다 끌어모았으니 아직 남아 있는 방사포들이 가히 상상을 초월할 수준일 거다.
퍼버버벙!
하지만 소용없는 저항이었다.
이곳은 7군단과 8군단은 물론 러시아의 기갑세력들까지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서쪽은 인도가, 또 남쪽은 내부반란 세력들인 충칭과 상하이 군벌들이 치고 올라오는 판국에 저들이 무슨 재주가 있어서 버티겠는가.
쾅! 쾅! 쾅!
결정적인 것은 무장 수준의 차이였다.
“요격 성공!”
HVP를 비롯한 레이저 요격 시스템에 의해 이쪽으로 날아오는 포탄과 방사포들은 죄다 요격되고 있지만, 반대로 저쪽은 쏘는 족족 피해를 보고 있는 상태.
아마 이대로 3시간만 더 포격이 지속되면 현재 저들이 지키고 있는 북부최후방어선도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
“군단장님, 베이징에서 우리 지휘부에 휴전을 제안했답니다.”
피식.
7군단장은 들려오는 참모의 보고에 코웃음을 쳤다.
사정은 알겠지만 그걸 들어줄 우리 지휘부가 아니기에.
막말로 이젠 적의 심장을 찌르는 것만 남은 상황에서 어느 미친놈이 상대가 내민 손을 잡아 주겠는가.
“상황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군.”
물론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홍수와 질병으로 당장 민간인 수천만이 목숨을 잃었고, 앞으로도 더 얼마나 목숨을 잃게 될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중국을 계속 압박하는 것은 미국은 물론 우리도 부담스러운 일.
그래서 지휘부도 베이징 함락을 더 서둘렀던 것이고, 이제 그 결과가 코앞에 있는 거다.
“우리 지휘부에선 뭐라고 했다던가.”
“휴전이야 당연히 불가하고, 전면적인 항복을 요구했답니다. 그 경우, 홍수로 인한 민간인 구제는 물론 치료제 공급을 최대한 서두르겠다고 했다는군요.”
영악한 대처였지 싶었다.
상황이 이러면 공은 이제 중국에게 되돌려진 것이니까.
막말로 우리로선 최선의 제안을 한 상황.
그걸 거부하면 이제 국제적인 여론의 화살은 중국 지도부로 향할 것이 아닌가.
끝내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겠다는 저들의 독선을 향한 비난.
“그나저나 핵이 문제군.”
7군단장은 생각의 끝에 넌지시 읊조렸다.
이미 모든 핵 투발 수단과 탄두들은 제거가 된 상태라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누구라도 최후의 카드는 하나쯤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특히나 시 주석 같은 영악한 존재라면 그건 더할 마당에.
“쯧.”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지휘부라면 당연히 그 정도쯤은 감안하고 있을 터.
필시 대책쯤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사실 그게 아니면 이런 식의 적극적인 공세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군단장님!”
그때, 또 다른 참모 중 하나가 다급히 그를 향해 달려왔다.
손에 들린 것은 또 하나의 전문.
재빨리 받아 확인한 군단장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참모들을 향해 말했다.
“베이징 지휘부에 최후통첩이 전해졌다.”
“…….”
“1시간 내에 항복하지 않으면 고위력 탄두를 가진 현무가 베이징에 쏟아질 거라는군.”
***
베이징 남부 다싱구 지하 벙커.
“침수에 이은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해 각 지역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쌓여 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우한 이남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이미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질병이 퍼진 상태라는군요.”
“상하이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주일 전쯤부터는 베이징 곳곳에서도 우리가 만들었던 R12와 R13이 합쳐진 변종 코로나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 때문에 베이징 곳곳에서 시민들이 폭도로 돌변하고 있습니다.”
“창사와 난창은 이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합군에게 협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유엔의 권고에 따라 한국군이 가장 질병 피해가 심한 그 두 곳에 치료제를 공급하기 시작했다는군요. 결국 상황이 이러면 대륙 중남부 일대는 이미 연합군의 손에 넘어갔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보에 시 주석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
이후 들려오는 보고들은 더더욱 그의 심장을 쥐어짜는 것들이었다.
“인도 육군이 위현까지 도달한 상태입니다.”
“인도가?”
시 주석은 와락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대꾸했다.
서슬 퍼런 눈빛에 당황한 듯 보고자의 음성에서 떨림이 느껴진다.
“빠른 베이징 함락을 위해 한국에서 요청한 모양입니다. 이미 전황이 기운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니 실상 인도도 기회라고 생각한 거겠죠.”
“전황이 왜 기울…….”
버럭 큰 소리로 대꾸를 잇던 시 주석은 말끝을 흐렸다.
지금은 고작 말꼬투리를 잡아 화를 낼 상황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도 잠시, 이번엔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쉬량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충칭의 군벌들과 상하이방의 군벌들이 결국 연합군과 손을 잡았습니다.”
순간 휙 하고 시 주석의 눈이 쉬량 부주석에게로 향했다.
마치 사태가 왜 이렇게까지 되도록 묵과하고 있었느냐는 눈빛.
억울함을 느낀 쉬량은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반발했다.
“애초 두 군벌을 끝까지 억압했던 것은 주석이셨습니다.”
“…….”
“게다가 그들을 베이징 남부까지 끌어 올린 것도 주석이셨고요. 저들을 중앙군과 조기에 합류시켜야만 지휘권한을 뺏을 수 있다고 하셨던 것 잊으셨습니까?”
“그래서,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전적으로 내 오판에 따른 결과라는 거요?”
쉬량은 대답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곧 표정이 변한 그는 마치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도 되는 듯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 냈다.
“아니라고는 할 수 없죠. 차라리 충칭과 상하이 군벌들을 그대로 뒀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랬다면 두 군벌들의 병력 역시 홍수에 길이 막히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테고, 그럼 우린 진즉에 남부를 통한 지휘부의 이동에 성공했을 것 아닙니까.”
순간 시 주석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단순한 반발이라기엔 도가 지나친 태도였으니까.
사실 쉬량을 그 자리에 앉힌 것은 그동안 그가 보여 주었던 무한한 충성심 때문.
한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충칭과 상하이 군벌들을 지금이라도 회유해 보는 것은 어떻소.”
잠시 노기를 가라앉힌 시 주석은 넌지시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코웃음뿐이었다.
“무얼 조건으로 말입니까.”
“…….”
“막말로 저들이 바라는 것은 현재 주석께서 차지하고 계신 그 자리입니다. 그걸 과연 내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 주석은 그 말에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리고 그때, 쉬량의 말이 비수와도 같이 날아와 꽂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내 자리에 연연하시는군요.”
“이보시오, 부주석!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오?”
순간 끼어든 것은 장유였다.
쉬량과는 같은 서열을 가진, 또 다른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이자 시 주석의 영원한 충견.
평소 껄끄러운 관계를 증명하듯 두 인물 사이에선 불꽃이 튀었고, 그 분위기에 잔뜩 긴장한 주변 지휘관들은 일제히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스윽.
순간 시 주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조용히 전황 정보를 전달하는 스크린을 향해 다가선 그는 한참의 고민 끝에 다시 돌아섰다.
“만약 여기에 전술핵이 떨어진다면, 길이 뚫리지 않겠소?”
그가 지목한 곳은 북부를 압박 중인 러시아와 한국군의 진영이었다.
핵이 언급됐기 때문일까, 일순 통제실 내의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맞습니다. 기왕 전술핵을 쓸 요량이면 북부를 압박 중인 적의 병력 들을 죄다 날려 버려야죠.”
대꾸를 한 이는 역시나 장유 부주석이었다.
말투로 봐선 이미 주석과 그 사이에서는 핵 사용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 느낌.
당황스러운 마음에 쉬량이 다시 반발했다.
“그랬다간 한국도 핵을 사용할 거라는 걸 모릅니까? 그건 둘째 치고 이미 우리의 모든 핵 기지가 한국군에 의해 진압된 상황에서 전술핵을 어떻게 동원한다는…….”
스윽.
순간 시 주석의 시선이 그를 향해 꽂혔다.
비릿한 표정.
쉬량은 순간 마른침을 삼켰고, 그 타이밍에 장유가 시 주석을 향해 검은색 가방 하나를 가져다 바친다.
“맙소사!”
통제실에 있는 사람들 중 가방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긴장감이 장내를 휘감아 돌던 차.
철컥!
갑자기 쉬량 부주석 휘하의 지휘관들이 일제히 품에서 권총을 꺼내더니 장유와 시 주석을 향해 겨눴다.
“무슨…….”
당황한 장유와 그의 휘하 지휘관들은 재빨리 손을 들었다.
하지만 정작 시 주석은 여전히 여유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쉬량을 향해 말한다.
“통제실에 총을 숨겨 들고 왔다는 것은 이런 일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쉬량은 눈빛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대꾸했다.
“쯧, 키우던 개가 주인을 물려고 달려드는 격이군.”
“주인이 잘못된 길을 가면 옷자락 정도는 물고 당겨야 하는 것이 진정한 충견의 역할인 겁니다.”
시 주석은 이어진 쉬량의 말에 눈빛이 흔들렸다.
그도 잠시, 곧 그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슥 하고 손을 들었고, 순간 통제실의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장 병력들이 들이닥친다.
“다들 움직이지 마시오.”
들어선 이는 정치 공작부 주임 ‘마오’와 그의 병력들이었다.
시 주석의 또 다른 심복.
쉬량은 낭패라는 생각과 함께 시 주석을 쳐다봤고, 시선이 마주친 시 주석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제법 머리는 썼더군. 통제실 책임 장교까지 구워삶아서 여기에 총을 가지고 들어온 것 말이야.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함부로 믿는 것이 아니야.”
철컥 철컥!
시 주석의 일장 연설이 뱉어지는 사이 들어선 마오와 그의 병력들은 일제히 쉬량과 그의 휘하 지휘관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이대로 끝인 건가?
죽음을 예감한 쉬량은 짧은 후회와 함께 제 부하들을 쳐다봤고, 이내 죽음을 예감한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차라리 주저하지 않고 쏴 버렸다면…….’
탕!
그때, 난데없이 총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쉬량이 움찔하고 눈을 떴지만 정작 눈앞에선 황당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쿵!
그토록 서슬 퍼렇던 시 주석의 몸이 무너지고 있는.
“…….”
당황한 장내의 인물들은 일제히 턱을 떨어트린 채 총을 쏜 인물을 쳐다봤다.
놀랍게도 범인은 방금 전 시 주석의 부름으로 사태진압에 나섰던 정치 공작부 주임 마오.
이후 그가 씨익 하는 미소와 함께 제 부하들을 향해 눈짓하자 쉬량과 그의 일파들을 향했던 병력들의 총구가 대번에 장유와 그의 휘하 지휘관들을 향해 돌아선다.
“이런 미친…….”
장유는 넋이 나간 얼굴로 죽어 버린 주석과 마오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 상황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싶은 표정.
아니, 영원할 줄만 알았던 시 주석의 권좌가 이렇듯 허무하게 끝이 났다는 사실이 끝내 믿겨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 명언이었소.”
그때, 마오가 죽어 버린 주석을 향해 이죽거리며 말하곤 장유를 향해 다가왔다.
마치 ‘다음은 네 차례다.’라는 듯한 눈빛으로.
놀란 장유는 재빨리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하, 항복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