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54화 (35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54화

인민해방군 북해함대는 마치 표류하듯 바다 위를 떠돌고 있었다.

한국의 연이은 미사일 세례로 인해 이미 기지를 비롯한 많은 호위함들과 구축함들의 절반이 반파된 상황.

결국 온전한 것은 출동을 위해 기지에서 떨어져 있던 덕분에 살아남은 이 스무 척의 함선이 전부였다.

“빌어먹을 EMP탄이라니.”

생각할수록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이미 중국의 모든 함선이 EMP 차폐 능력을 갖춘 상태였음에도 당했다는 것은.

사실 남은 20척도 항구와 제법 떨어져 있었기에 살아남았던 것이지.

아니었다면 그 빌어먹을 EMP에 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테고, 북해함대는 손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전멸하는 비극을 맞았을 거다.

“출항 명령을…….”

륭진 사령원은 몇 번이고 거듭된 요구에도 묵묵부답인 지휘부의 태도가 갑갑했다.

남은 함선들만으로는 한국 해군의 공세를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야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동해함대의 합류를 기다려 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사이 또 한국에서 EMP탄을 터트려 버리면 그날로 상황은 종료가 되어 버리는 마당에.

“그러고 보니 왜 아직 2차 공격이 없는 거지?”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문득 그 점이 떠올랐다.

이미 EMP의 효과는 저들이 더 잘 파악하고 있을 터.

그럼에도 왜 후속 공격이 없는 것인지.

“영향 반경 때문 아니겠습니까?”

용케 의미를 이해한 참모 중 하나가 그의 말에 대꾸했다.

휙 하고 시선이 돌아간 순간 참모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파악된 바에 따르면 한국의 EMP탄의 영향 반경은 수백 미터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함대의 함선들은 지금 꽤 먼 거리를 두고 퍼져 있지 않습니까. 하니 각 함선을 향한 투발이 아니라면 효과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개함방공함들을 상대로 그게 쉽지는 않죠.”

제법 근거가 있는 말 같았다.

사실이라면 그나마 한시름은 더는 상황.

아니, 동해함대와의 합류는 정말로 이 상황을 극복할 열쇠가 될 수 있다.

어차피 함선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이동하는 경우는 없는 터.

영향 반경이 적은 EMP탄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할 테니까.

“사령원 동지, 북상하던 동해함대가 한국의 기동전단과 교전을 벌이고 있답니다.”

때마침 들려온 소식은 드디어 동해함대가 인근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럼 이쪽에서도 지원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

륭진은 지체 없이 남하를 명령했고, 생존한 그의 호위함과 구축함들은 본격적으로 남하를 시도했다.

쾅!

그때, 후미에 있던 호위함 중 한 척이 영문 모를 폭발과 함께 가라앉았다.

당황한 륭진의 시선이 꽂힌 곳은 관측 장교.

뭣 때문인지 넋이 나간 관측 장교가 떨리는 손으로 통합 콘솔창을 손가락질한다.

“대, 대함미사일들이…….”

“여태 미사일이 접근 중인 걸 몰랐다는 거야!”

륭진은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관측 장교를 향해 달려갔다.

뒤이어 그가 확인한 것은 레이더상에 나타난 무수한 미사일들의 접근.

당황스러운 것은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는 것이었다.

“맙소사!”

쾅!

그사이 또 한 척의 호위함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접근을 확인한 지 불과 십수 초 만에 벌어진 일.

이게 가능한 것은 단 하나의 경우뿐이었다.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쾅! 쾅! 쾅!

뒤이어 때려 박히는 미사일들로 인해 함대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어 갔다.

가뜩이나 파괴력이 좋은 것이 한국의 대함미사일들이 운동에너지까지 더했으니 그 큰 구축함들이 격침되는 것은 순식간.

당황하는 사이, 이번엔 또 어디선가 포탄의 비가 쏟아진다.

쾅! 쾅!

“전열화학포?”

정황상 그것 외엔 답이 없었다.

이토록 먼 거리를 날아올 포탄은 없으니까.

반격조차도 못 해 보고 몰살당하는 치욕만은 피하겠다는 생각에 륭진은 결국 공격 명령을 내린다.

“확인 가능한 모든 표적들을 향해 대함미사일을 발사한다.”

슈슉!

살아남은 구축함들은 가용한 모든 대함미사일를들을 죄다 쏟아부었다.

한 가닥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은 현재 살아남아 있는 함선들의 대부분은 유럽제 기술을 도입하여 완성한 055B형과 055C형이 대부분이라는 것.

055B형의 경우는 APAR 함대방공용 레이더시스템의 도입은 물론 유럽제 대함, 대공미사일 복제품을 장착한 상태고, C형은 BMD체계까지 갖춘 첨단 구축함들이다.

즉, 지금까지와는 달리 적도 긴장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거지.

‘그런데 과연 먹힐까?’

비록 방금 쏘아 보낸 미사일이 유럽제라 해도 한국의 방어시스템은 초음속 대함미사일마저도 무력화할 정도인데…….

“젠장.”

륭진은 떠올랐던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려 한 차례 고개를 흔들었다.

-미사일들의 신호가 모두 끊어졌습니다! 반격에 대응해야 합니다.

그때 들려오는, 예감을 적중하는 보고들.

“적 함선에서 대함미사일발사 신호가 확인되는 대로 곧장 ‘둥양’을 발사해!”

결국 륭진은 재빨리 방어태세로의 전환을 주문하곤 잠수함 지대(支隊)를 콜했다.

현존하는 어떤 방어시스템도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할 터.

이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잠수함 세력들을 동원하여 적의 공세를 분산시키는 것뿐이기에.

치직!

“응?”

하지만 정작 그의 유일한 희망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을 시도해도 그건 마찬가지.

“당한 건가?”

순간 륭진의 등줄기로는 주룩 하고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그 타이밍에 관측 장교의 경악에 찬 외침이 날아들었다.

“극초음속 순항미사일들이 또 날아옵니다. 이 속도면 레이더가 둥양에 표적 지시를 끝마치기도 전에…….”

쾅!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또 한 척의 055B형 구축함이 들썩이며 폭발했다.

하필이면 가장 가까이 있던 함선이 당한 상황.

즉, 다음 목표는 자신의 함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륭진의 입에선 절로 욕설이 뱉어졌다.

“빌어먹을 빵즈들.”

쾅! 쾅!

***

쾅! 쾅!

북해함대와의 합류를 위해 북상 중이던 동해함대의 피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 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쏘아 보낸 미사일들이 죄다 막히기 일쑤라는 것.

때문에 이쪽은 당장이라도 1선 함선들의 보급을 진행해야 하지만, 적이 가장 먼저 격침시킨 것이 바로 그 보급함인 터라 난감하기만 하다.

쾅!

이쪽의 상황과는 반대로 적은 계속해서 미사일과 장거리 포탄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불필요한 소모 없이 방어와 공격이 이루어지다 보니 나온 결과.

상황이 이러면 한국은 이 전쟁을 통해, 특히나 해상전에서 꽤 중대한 교훈을 남기게 된 국가로 남지 않을까 싶다.

무장의 효율성이 결국엔 보급의 부담을 줄이고, 그건 곧 전황을 바꿀 수도 있다는.

“그렇다 해도 이 정도까지 완벽한 방어력과 공격력의 조합은 기가 찰 지경이군. 이러면 우리로서는 더 이상 교전을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동해함대 사령원 장첸은 갈수록 기울어 가는 전황을 보며 자조적인 투의 말을 뱉어 냈다.

불만스러웠던 걸까, 함장이 발끈하며 그의 말을 반박한다.

“철수를 결정하기엔 이릅니다.”

스윽.

장첸은 그 말에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지나치게 철저한 사상 교육으로 인해 근거 없는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

장첸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는 눈앞의 함장을 향해 되물었다.

“그럼,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으로 한국의 전력을 상대할 수 있지? 이미 잠수함 지대들은 죄다 연락 두절이고, 제공권마저 넘어가서 항공 지원도 못 받고 있는 판국에.”

“…….”

“그나마 지금은 해상 전력만으로 우리를 상대하고 있지만 곧 한국 공군의 대함미사일 지원이라도 시작되면 함대 전체가 날아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걸 모르나?”

“하지만 이대로 철수한다면 사령원께서만 곤란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저도 문책을 받을 겁니다.”

장첸은 비로소 함장의 근본적인 걱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전시 상황에서 최고 지휘부의 허락 없는 철수는 명령 불복종과 동일한 처분이 가해지는 범죄.

즉,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걸.

하지만 여태 스스로를 진정한 군인이라 자부하던 장첸으로서는 부하들의 헛된 희생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죄다 개죽음을 당할 텐가? 지금 후퇴하면 자네와 나만 죽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죽어.”

“무슨 그런…….”

함장은 또다시 반발했다.

여전히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에서 나온 태도.

장첸은 결국 노기를 토했다.

“자네 같은 무모한 충성심이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을 이 꼴로 만들었다는 걸 알아야지!”

함장의 표정은 와락 일그러졌다.

이내 무전기를 든 그는 베이징에 있는 최고 지휘부와의 교신을 시도했고, 그 모습을 본 장첸 사령원은 갑자기 함장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철컥!

“사령원께서야말로 뭐 하시는 겁니까. 전시에 명령 불복종은 사형에 처해진다는 걸 모르십니까? 전 그런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장첸은 답답한 마음에 지그시 제 입술을 짓씹었다.

삐이!

일촉즉발의 순간에 들려오는 레이더 경고음.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정보창을 향했고, 이후 관측 장교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지원기가 뜬 모양입니다.”

“빌어먹을, 결국 항공 지원이 시작됐군. 대공미사일 발사해!”

장첸은 즉시 함장을 겨누고 있던 총을 거두곤 대책을 명령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일사불란한 움직임.

하지만 그 순간 인근에 있던 055형 구축함들이 갑자기 폭발을 일으키며 온 사방에 파편을 흩뿌렸고, 그 모습을 본 장첸과 함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쾅! 쾅!

그사이 함대 곳곳에서 폭발이 이어졌다.

발악하듯 CIWS들이 요동쳤지만 늦은 대응이었을 뿐.

그때 또 한 번의 폭음과 함께 함이 휘청하더니 곧 장첸의 눈앞에선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주변의 모든 움직임이 느리게 스쳐 지나갔다.

두 동강 나는 함교의 벽.

날아다니는 파편들.

그리고 치솟는 불길과 사방으로 찢겨 나가는 부하들의 모습들이.

쾅!

***

진저우만.

인민해방군 해군육전대 소속 716, 722, 726급 중형 공기 부양정 수십 척이 본부에서 하달될 출동 신호를 대기하고 있었다.

초기 한국의 순항미사일 공세와 이후 이어진 탄도미사일 공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육전대 전력들.

닥친 현실이 절망스러웠던 걸까, 고작 절반만 살아남은 휘하 병력을 지켜보던 리셴 대교의 얼굴은 좀처럼 펴질 줄은 몰랐다.

“이 정도나마 살아남은 것도 하늘이 도왔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내 상관의 표정을 살피던 작전참모 이빈은 조심스레 말을 던졌다.

힐끗 그를 향해 시선을 준 리셴이 허탈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천운이 따랐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저 정도 전력으로 상륙을 시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군.”

그 말엔 이빈도 동감했다.

목표인 신의주는 이미 한국 7군단의 뒤를 받치기 위해 올라온 기계화 부대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

고작 천을 넘지도 못할 병력으로 그들을 뚫고 보급 차단을 시도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할까.

이건 말 그대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다.

스윽.

하지만 한 가닥 기대는 존재한다.

그가 탑승한 부양정에 자리 잡고 있는 EMP 폭탄.

그건 중국이 과거 한국의 EMP 개발에 자극을 받아 개발을 진행했던 물건인데, 현재는 무려 25킬로미터까지 영향 범위를 끌어올린 상태다.

쉽게 말해서 저걸 해안 근처까지만 접근해서 터트린다면 이후 안전한 상륙은 물론 최종 목적지까지의 침투도 노려 볼 만하다는 거지.

“아주 땅을 집어삼킬 듯 쏟아지는군요.”

더군다나 오늘은 날씨도 그들을 돕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폭우 속에선 탐색과 추적의 한계로 인해 고속으로 내달리는 부양정을 격침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니까.

물론 쉽지 않을 뿐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각오해야 하지만, 사실상 이 작전은 절반만 살아남아도 성공이나 다름없다.

“맞아, 확실히 날씨는 우리 편이지. 그러니 저 병력들의 절반만이라도 인근 수역에 도착하여 EMP를 터트리는 것에만 성공한다면…… 출발한다!”

대꾸를 뱉어 낸, 리셴은 단호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무전을 통해 차례로 그 명령을 하달받은 부양정들은 일제히 바다를 내달리기 시작.

다행히도 목표지점을 불과 30킬로미터 정도 남겨 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적의 공격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리셴은 부양정에 탑승해 있는 로켓 발사 차량을 쳐다보며 중얼댔다.

애초 대구경 방사포의 투발을 목적으로 제작된 차량이지만 지금은 EMP를 탑재한 로켓을 대신 장착하고 있는.

‘사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유도미사일을 통한 투발이겠지만, 지금처럼 대공방어망이 확실한 한국에게 그게 먹힐 리가 없지.’

결국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지금처럼 최대한 목표지점에 접근하여 저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뿐이다.

아무리 대응 수단이 좋아도 코앞에서 솟아오른 로켓을 방어할 시간적 여유와 수단은 없을 테니까.

“10킬로미터만 더 가면 도착입니다!”

들려오는 이빈의 보고에 리셴은 즉시 EMP탄의 폭발 고도를 설정했다.

광범위한 전자기파의 확산을 바란다면 지상에서 2.5킬로미터 이상의 고도에서는 터져야 할 상황.

하지만 리셴은 조금 더 욕심을 부렸고, 입력된 고도는 결국 4킬로미터였다.

“발사!”

슝!

드디어 로켓이 하늘로 치솟았다.

작전의 성공을 거의 코앞에 둔 상황.

기쁜 마음으로 본부에 무전을 날려는 차, 갑자기 치솟던 로켓이 불길에 휩싸이며 폭발해 버렸다.

“무슨…….”

리셴은 즉시 함교를 뛰쳐나왔다.

엄청난 폭우로 인해 사방을 분간하기 힘든 상태.

순간 또다시 쾅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앞서 질주하던 부양정 한 척이 불길에 휩싸였고, 대체 어디에서 숨어 있었던 건지 이후 저편에선 한국군의 공격헬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사(Fossa)!”

당황한 리셴은 무전을 통해 부양정들의 산개를 명령했다.

솔직히 공격헬기를 상대로 도망쳐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 불어치는 엄청난 강풍과 폭우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것.

하지만 동축반전 로터를 장착하고 있는 포사는 순간순간 기체를 때리는 측풍에도 전혀 요동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미사일을 날려 댔다.

쾅! 쾅! 쾅!

이후 벌어진 사태는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그나마 날려 보낸 휴대용 대공미사일들은 포사의 지향성 방해 장비는 물론 그토록 자신의 편이라고 자부하던 날씨의 영향을 받아 목표를 잃고 떨어지기 일쑤.

그에 반해 부양정들은 그저 바다 위에 떠 있는 타겟일 뿐이었다.

“빌어먹을…….”

쾅!

***

베이징.

시 주석이 주관하는 주요군 지휘관회의는 침묵으로 물들었다.

계속되는 교전에서의 패배와 한국의 순항미사일 및 탄도미사일 공세로 인한 피해 보고가 줄을 이었던 탓.

특히나 방금 들려온 북해와 동해함대의 교전 결과는 앞이 캄캄할 정도였다.

“러시아가 방금 내몽골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입니다. 북동부에선 총 2,500대의 8군단 소속 전차가 베이징을 향해 진군 중이라는데, 다행히도 그들은 폭우로 인한 도로 유실과 산사태로 진군이 더뎌진 상태랍니다.”

“현재 미 7함대와 남부함대가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만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만약 남해함대가 붕괴된다면 사실상 상하이 이남까지는 대만과 미 육군에게 내주어야 한다고 봐야 합니다.”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들은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중 최악은 두 연합국의 참전 소식.

애초 한국만을 전쟁의 늪에 빠트려 빠르게 협상을 끝내겠다는 계획은 이로써 물거품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아니, 이젠 중국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만 할 정도.

“지금이라도 협상을 하시죠.”

침묵을 깬 것은 새로이 국무원 총리에 오른 유등이었다.

시 주석의 오랜 동반자이자 핵심 심복.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시 주석에게 현실적인 의견을 전달할 만한 자는 그뿐이었기에 나선 차였건만 돌아오는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뭘 대상으로 협상을 하라는 거요.”

유등은 시 주석의 날 선 시선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선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는 터.

끝내 용기를 가지고 직언한다.

“유전을 포기하는 수밖에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 주석의 시선이 다시 날아들었다.

하지만 유등은 끝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한참의 눈싸움 끝에 시 주석이 결국 조금은 누그러든 태도로 말을 뱉어 냈다.

“서한만 유전을 포기하라는 것은 보하이만 유전 역시 포기하라는 뜻이고, 그건 곧 북부 영토 전체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소. 그 경우 과연 우리 지도부가 온전할 것 같습니까?”

“…….”

“대만통일을 강조하던 우리 공산당 지휘부가 그 수백 배에 달하는 영토를 잃게 됐다면 인민들이 과연 그걸 인정할 것이냐는 뜻이오.”

사실 그 경우 공산당의 붕괴는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게 중국의 완전한 붕괴를 막는 유일한 길.

유등은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나저나 러시아와 한국기동군단들이 폭우에 발목이 잡혔다고요?”

다시 침묵이 이어질 무렵 시 주석이 넌지시 북부의 상황을 물었다.

사람들의 뇌리에 저건 또 무슨 의도에서 하는 말일까 싶은 생각이 들려는 순간, 이번엔 그의 입에서 더 뜬금없는 말이 뱉어졌다.

“보고에 따르면 최근 계속되는 이상 기후로 인해 산샤 댐의 수위도 위험한 수준이라더군요.”

“…….”

상임위원들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를 쳐다봤다.

순간 자리에서 일어선 시 주석은 지도에 표기되어 있던 산샤 댐부터 시작해서 중국의 허리 부분을 주욱 손으로 가로지르며 당황스러운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엔 이 비가 그토록 지겹더니…… 이젠 왠지 하늘이 우리를 돕는 느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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