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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46화 (346/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46화

“오랜만입니다.”

량뤼진 총리는 갑작스러운 허뎬의 방문에 경계심을 높였다.

그가 속해 있는 상하이방과는 오랜 정적 관계에 있는 태자당 소속의 정치국 국무위원.

물론 공산당 서열로 보면 그보다는 한참 아래에 있지만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인물이 아니었던 탓에 긴장감은 더해진다.

“미국에 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소파에 앉은 허뎬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혔다.

원래부터 말을 돌려 하지 않는 타입이기는 했으나 이건 지나친 직진.

표정을 굳힌 량뤼진이 슬며시 그를 떠본다.

“주석께서 이미 동의한 일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야 많지요. 아무리 우리가 책을 잡힌 상황이라고는 해도 이렇듯 사건이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득달같이 미국으로 달려가는 것은 모양이 좀 빠지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날아들 칼날들을 온몸으로 받아 내자는 겁니까. 착각하시나 본데,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직 완성된 국가가 아닙니다.”

그건 덩샤오핑의 유훈을 따르는 량뤼진 자신의 사상적 기반에 따른 대꾸였다.

뜻을 이룰 힘을 기를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는.

그리고 아직까지 중국에게 그런 힘은 주어지지 않았다는.

하지만 시 주석이 이끄는 지금의 중국은 온통 중화중심주의에 사로잡혀 현실을 망각하는 중이며, 그게 시 주석과 량뤼진이 반목하는 이유 중 하나다.

“주석께서야 당연히 동의하실 수밖에요. 상하이방 원로들을 그 누구보다 존중하는 입장이니까.”

허뎬의 대꾸에 량뤼진은 속으로 헛웃음을 뱉었다.

까놓고 말해서 시 주석이 상하이방 원로들을 존중하는 이유가 진심에서 나온 것이겠는가.

단지 그들에게 진 빚이 있기에 그런 것일 뿐이지.

하지만 그걸 이 자리에서 들춰낼 필요는 없을 터.

량뤼진은 태연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내 미국행이 원로들을 존중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이번 일은 명백한 실수라는 거죠. 난 그걸 바로잡으러 가는 것뿐이고.”

그 말에 허뎬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도 잠시, 뭣 때문인지 다시 표정을 푼 그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입을 연다.

“총리께선 이 나라에서 몇 안 되는 현인이십니다. 원로들께서 굳이 총리를 그 자리에 추대한 이유도 바로 그 점 때문이고, 주석께서야 총리의 능력을 더더욱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반목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마 마지막 말이 허뎬이 그를 찾아온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회유.

더 이상의 욕심은 버리고 그 자리에 만족하라는.

그렇게 되면 시 주석이 권력을 죄다 틀어쥐었을 때 그의 영화가 이어질 것을 보장해 주겠다는.

“반목이 없으면 나라의 발전도 없는 법이오.”

하지만 량뤼진은 단호히 거절했다.

비단 그의 욕심이 더 높은 자리에 있었던 것 때문이 아니라 이 나라가 망국의 길을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애초 이 나라의 정치 시스템은 분열을 막기 위한 집단 지도 체제를 택한 것이 현실.

하지만 지금처럼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가는 상황이면 이후의 일은 불 보듯 빤하지 않던가.

“흠…….”

허뎬은 한동안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량뤼진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스칠 무렵, 허뎬이 뜬금없는 말을 뱉어 냈다.

“총리께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까?”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미안하지만 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 쿨럭!”

말을 잇던 허뎬은 터지는 기침을 참지 못하고 쿨럭댔다.

마치 중증 폐병 환자가 내뱉은 기침 소리 같은 느낌이었던 터라 량뤼진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그 모습을 본 허뎬은 변명처럼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합니다. 최근 지독한 감기가 찾아와서…… 아무튼, 총리의 생각은 잘 들었습니다. 부디 몸 조심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

돌아서는 그의 마지막 말은 왠지 뼈가 있었다.

뭐랄까, 꼭 반어법적인 표현인 느낌.

하지만 고작 그 정도 협박에 쫄 량뤼진이 아니었다.

막말로 아직 군벌들의 삼 할은 상하이방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상황.

나라가 쪼개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감히 딴짓을 획책할 수는 없을 테니까.

“주석께서 욕심이 많군. 감히 황제가 되시겠다니.”

***

같은 시각 워싱턴.

중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던 토미는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약속장소에 들어섰다.

정통 중국식 식당인 약속장소엔 이미 그의 바이어가 도착해 있는 상태.

한걸음에 다가선 그는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민다.

“미스터 장, 늦어서 미안합니다. 사무실에서 일찍 나온다고 나오기는 했는데, 보시다시피 워싱턴의 교통이 워낙 지옥이라서 말이죠.”

“마침 나도 지금 도착한 참이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러시아워는 피할 걸 그랬습니다.”

바이어. 아니,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 대교이자 베이징 무역의 대표인 장준걸은 별스럽지 않다는 표정과 함께 토미가 내밀었던 손을 맞잡았다.

이후 꼬박 2시간 동안 장준걸은 쉬지 않고 수출품에 대한 설명을 이었고, 그사이 그의 입을 통해 분출된 바이러스들은 식당 전체에 퍼져 나갔다.

“중국 제품도 이젠 퀄리티가 제법이군요.”

상황을 모르는 토미는 연신 그가 들고 온 제품의 상품성을 칭찬하기 바빴다.

기존 제품에 비해 단가는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질은 또 전혀 떨어지지 않는.

이 정도면 사실상 미국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였기에 그는 잠시도 흥분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향은 없겠습니까? 미국 정부에서 이번에 중국 내에서 터진 문제로 인해 공업부품류에 대한 추가 제재를 할 모양이던데요.”

한창 샘플을 살펴보던 차에 장준걸의 말이 날아들었다.

토미로서도 그 점이 염려되기는 했던 것.

하지만 오늘 아침 관련 부처에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일반 공구류에 사용되는 부품에 대해선 제재 계획이 없다는 확답을 받아 온 터라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대신 납기일은 꼭 준수하셔야 한다는 것 아시죠?”

마지막 남은 관문은 그거였다.

애초 중국과의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항상 발목을 붙잡았던 납기지연.

“저를 못 믿으십니까?”

하지만 상대가 장준걸이라는 점에서 그 부분은 안심해도 될 듯했다.

지금까지 꼬박 스무 번의 거래에서 단 한 번도 납기지연을 해 본 적이 없던 존재였기에.

오늘 이렇듯 큰 금액의 거래가 성사된 것도 바로 그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거다.

“장 대표님이라면 당연히 믿죠.”

토미는 서둘러 자신의 말을 수습하곤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어진 악수를 끝으로 토미는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그는 심한 몸살과 오한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

[현지 시각 어제 오후 3시. 워싱턴에서는 량뤼진 중국 총리와 에밋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이 열렸습니다. 량 총리는 이번에 중국에서 벌어진 소수민족 봉기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인민해방군의 학살 사건에 대해 불가역적인 사고라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2018년 10월 5일.

국정원의 정보대로 량뤼진이 미국을 방문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알려진 바대로 중국군의 소수민족 학살 사건에 대한 해명.

뭐, 겉으로야 떳떳한 척 언론에 떠들어 대고 있지만 정작 에밋과의 회담에선 아마 읍소를 하고 있는 중일 거다.

부디 사태를 조용히 넘어가 달라는.

더불어 이 기회에 친미 성향의 상하이방이 다시 중국 권력의 핵으로 떠오르는 것에 일조해 달라는.

“리암 회장은 뭐라고 합니까?”

뉴스를 보고 있던 안 실장은 불현듯 나를 향해 물었다.

행여 미국이 상하이방의 회유에 넘어갈까 싶은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는 탓이겠지.

일말의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기에 마침 나 역시 리암과의 통화를 시도했었던 참이었다.

“전화를 안 받더군요.”

하지만 통화는 좀처럼 연결되지 않았다.

비록 13시간의 시차가 있다지만 아직까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은 아니었음에도.

어쩌면 다른 이유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통화 연결은 되지 않는 상태였다.

그쪽은 이미 출근 시간을 넘긴 상황에서도.

[국제유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에선 현재 전기요금이 급격히 치솟고 있으며…….]

그사이 이어진 저녁 뉴스에선 중국의 에너지난으로 인해 촉발된 유럽의 위기에 대한 소식이 전해져 왔다.

불과 사흘 전 베럴당 80달러를 밑돌던 국제유가가 어느새 100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

덩달아 뛰어오른 천연가스 요금의 급격한 인상 덕에 러시아는 미소를, 그리고 유럽은 울상을 짓고 있는 상태였다.

“우린 천만다행이군요.”

안 실장은 국제적인 석유파동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사우디를 비롯하여 UAE와 맺은 장기계약. 그리고 러시아 야말반도 가스전 개발투자로 인해 우린 문제와는 상관없는 입장.

뭐 그렇다 해도 정부의 세수 안정을 위해 시장공급가의 인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게 유럽이 겪고 있는 위기에 비할 바는 아닐 거다.

“미국에서 서해 유전지대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군요. 아마 청와대와는 벌써 실무진들 사이에 교류가 시작되었을 겁니다.”

난 그 시점에 넌지시 얼마 전 리암으로부터 들려왔던 소식을 전했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을까, 안 실장의 눈이 순식간에 화등잔만 해졌다.

“드디어 서해 유전개발을 시작하는 겁니까?”

“때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저탄소 정책으로 인해 석탄과 석유 자원에 대한 기피가 심해지는 마당에 왜 굳이…….”

“아무리 저탄소 정책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어 간다지만 그걸 한순간에 적응할 수야 있겠습니까. 당장 유럽만 봐도 위기가 오자 나 몰라라 하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

“게다가 아무리 저탄소 정책을 펼친다 해도 결국 석유 자원의 수효는 어쩔 수 없습니다. 하니 개발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죠.”

안 실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또 뭐가 생각난 건지 순간 표정을 바꾼 그가 몰랐던 소식을 하나 전해 온다.

“그래서 독일과 프랑스가 뜬금없는 방한을 하겠다는 거군요.”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어라? 김 비서가 아직 보고 안 했습니까? 독일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이 수요일쯤부터 연달아 청와대 방문을 예고했답니다. 전 그게 중국에서 터진 문제로 인한 저들의 대중국 정책 변화 때문인 줄 알았더니…… 상황이 이러면 사실상 그보다는 에너지확보가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군요. 아무튼 약아 빠진 족속들입니다.”

순간 호기심이 돋았다.

저들의 방문 목적이 과연 안 실장의 말처럼 우리의 석유 개발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정책의 변화로 인해 연합에게 손을 내밀려는 것인지에 대해.

그런데 왜지?

둘 모두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뭐, 이유가 뭐든 우리로서야 밑질 것 없죠.”

생각의 끝에 넌지시 중얼댔다.

이내 쳐다본 시계는 어느덧 밤 9시.

혹시나 싶어 다시 리암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마침 휴대폰이 긴 번호와 함께 요란한 울음을 뱉어 냈다.

“양반은 못 되는군.”

웃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상대로 발신자는 리암.

혹여 잠을 깨운 걸까 싶어 미안함을 전하려는데,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진 회장, 큰일 났습니다.

“갑자기 또 무슨…….”

-국무부를 방문했던 량뤼진 중국 총리가 회의 도중에 쓰러졌는데, 응급 이송을 하는 도중 사망했습니다.

“…….”

당황스러움을 넘어 머리가 멍할 정도였다.

일국의 총리가 다른 나라와 회담진행 도중 사망해버렸다는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니까.

재빨리 원인을 물으려는데, 리암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문제는 지금 중국 측에서 사망원인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해서 부검은 손도 못 대고 있고, 그저 기초적인 혈액 검사만 진행했는데…… 총리의 혈액에서 엄청난 치명률을 가진 바이러스가 검출됐어요.

순간 머리를 강타당한 기분이었다.

바이러스.

그게 어떤 종류인지 가늠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에.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되묻자 예상했던 답이 들려왔다.

-맞습니다, 바이러스의 형태가 예전 진 회장이 백신의 공동개발을 위해 우리에게 알렸었던 그 코로나 바이러스와 흡사하더군요. 해서 지금 국무부 전체를 상대로 격리 검사를 진행 중인데, 이거 상당히 절망적입니다.

“국무부가 문제가 아니라 량뤼진의 이동 경로 전체가 위험한 상황이니 당연하겠죠. 하면 이제 어쩔 생각이십니까.”

-일단 CDC가 긴급 방역 조치에 들어갔습니다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워싱턴에 비슷한 사례로 입원한 환자가 또 있다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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