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41화
휘이잉!
밤 8시 30분.
푸틴을 태운 전용기는 예고했던 시간보다 30분쯤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식적인 방문이 아닌 터라 환영 행사 따위는 없는 상황.
그렇다 해도 러시아의 대통령이 직접 날아온 탓에 최소한의 정부 관계자들만큼은 함께 대기 중인 터였다.
철컥!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푸틴은 늘 그랬듯 혼자였다.
2013년 아내 류드밀라와의 이혼 이후 재혼보다는 그저 은밀한 연애에만 관심을 둔 덕분.
그 때문에 최근엔 러시아 내에서도 말들이 많지만, 그게 그의 권좌를 흔들리게 할 만한 흠은 아니었다.
[그새를 못 참고 오시면 어떡해요.]
[너희가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알아. 더군다나 내 첫 손주가 생겨난 판국인 마당이면 당연히 서둘러야지.]
이제 막 계단을 내려선 푸틴은 다가선 나타샤와 한차례 실랑이를 벌였다.
말투와는 달리 한없이 반가운 표정으로 포옹을 나눈 두 사람은 누가 봐도 부녀지간임을 부인할 수 없을 정도.
비록 입양된 딸이라고는 해도 나타샤를 향한 푸틴의 애정은 확실히 남달랐던 모양이다.
힐끗.
이후 나를 향해 눈인사를 하는 푸틴의 눈매는 매서웠다.
뭐랄까, 꼭 천하에 다시없을 정적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
하긴, 나 같아도 자신의 딸을 임신시킨 사내에 대한 감정이 무턱대고 좋게 느껴지지만은 않았을 거다.
뭐랄까, 결혼이라는 태두리 안에서 벌어질 당연한 결과지만, 생물학적인 과정만큼은 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뭐 그런.
쉽게 말해서 감히 내 딸과 관계를 가진 놈에 대한 분노?
아마도 그건 딸을 가진 아버지라면 한 번쯤은 느끼고 지나갈 만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타시죠.]
서슬 퍼런 그의 눈빛을 뒤로하고 차량으로 안내했다.
목적지는 미리 보안 조치가 준비되어 있는 서울 시내의 호텔.
가는 내내 나를 향해선 일언반구도 없던 그는 차량이 공항 고속도로를 빠져나갈 때쯤이야 말문을 텄다.
[이제부터는 진 회장에 대한 호칭을 바꿀 생각이오. 또한 그동안 썼던 존칭 또한 그만둘 생각이고.]
[그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사위에게 존칭을 쓰는 장인이 오히려 이상했던 거죠.]
별스럽지 않게 대꾸하곤 그를 쳐다봤다.
내내 찌푸려져 있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풀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내게 반지 하나를 건넨다.
[그건 내가 평생을 끼고 있던 반지일세. 우리 가문의 진정한 일원이 된 것에 대한 증표라고 할 수 있지.]
[…….]
순간 나도 몰래 눈이 커졌다.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는 말.
뭐 보통 사람들이 듣기에야 그게 무슨 대단한 것이랴 싶겠지만, 상대가 푸틴이라면 문제가 다르기에.
단지 그가 가진 권력과 지위 때문이 아니라 그처럼 의심이 많은 인물이 누군가를 가족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남다르지 않던가.
[자, 그리고 이건 내 딸에게 주는 선물.]
당황하는 사이, 푸틴은 또 하나의 반지를 꺼내어 나타샤에게 건넸다.
저건 또 뭘까 싶은 생각이 들려는 차,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내 어머니께서 끼시던 반지야. 한때는 류드밀라가 끼고 있었지만, 뭐 다들 알다시피 이제 그녀는 내 아내의 자리에서 물러났으니 당연히 첫째 딸이 가져가야겠지.]
[…….]
그 말에 나타샤의 눈망울이 크게 흔들렸다.
멋쩍었던 걸까, 푸틴은 그답지 않게 너스레를 떨기 시작한다.
[다들 반응이 왜 그래? 선물이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던 모양이지?]
나와 나타샤는 동시에 어색한 웃어 보였다.
사실 우리에게 있어 이보다 큰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돈 그리고 권력.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은 현시점에서.
특히나 나타샤의 경우는 자신이 누군가의 진정한 딸이라는 것을 인정받은 입장.
아마 감격스러움은 더했을 거다.
스윽.
표정을 눈치챈 푸틴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처음으로 세 사람의 손이 한곳에서 포개지는 순간.
그런데 어째 예상과 달리 기분이 좀 거시기하다.
[젠장, 역시 난 이런 오글거리는 상황이 너무 싫어.]
뒤늦게 현타가 온 푸틴은 재빨리 손을 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 역시 헛웃음으로 위기를 넘기려는데, 그가 대뜸 화두를 돌린다.
[미국은 여전하더군. 말 안 듣는 애들을 싸움 붙여서 길들이는 그 못된 버릇 말일세.]
아마도 그건 인니와 말레이시아의 분쟁을 의미하는 말이지 싶었다.
역시나 그도 두 나라의 분쟁 원인이 미국이라는 것쯤은 눈치를 채고 있는 거지.
문제가 있다면 차라리 대놓고 쳐들어가 버리는 푸틴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 태도였던 터라 더더욱 심기가 거슬렸던 모양이다.
[좀 음흉한 수단이었기는 해도 저로서야 잘된 일이지 싶습니다.]
난 무심코 말을 뱉어 냈다.
이내 힐끗 나를 쳐다보는 푸틴을 향해 그동안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던졌다.
[결국 나를 지키는 것은 스스로의 힘뿐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해 준 귀중한 경험이었으니까요.]
아마도 푸틴이라면 그 말의 의미쯤은 눈치채고도 남았을 거다.
아무리 동맹이라도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법이고, 끝내 내 편은 없다는 것.
결국 세상에 믿을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
예상대로 그의 입매가 씰룩이더니 나지막한 대꾸가 들려온다.
[나 또한 그걸 알기에 몸부림쳤던 것일세. 비록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기는 했지만 그들을 끝까지 의지할 생각이 없음도 바로 그 때문이고.]
[…….]
난 가만히 푸틴을 쳐다봤다.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친 것은 앞으로의 미래가 어찌 펼쳐질지에 대한 의문.
지금이야 중국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두고 협력하고 있지만, 그 이후엔.
과연 미국의 욕심이. 아니 미 자본가들의 욕심이 과연 세상의 안정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과연 3국 동맹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있을지.’
역사에 따르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것이 진리인데, 과연 3국 연합이 끝내 협력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대략 반세기. 그 이상은 무리겠지.’
그건 역시나 흘러온 역사를 기초로 내린 결론이었다.
경험에 따르면 어느 연합이건 하나의 거대한 세력을 무너트리고 그 열매를 거두어 누리는 기간이 대략 그쯤이었으니까.
이후론 욕심 많은 미 엘리트 자본가들은 항상 다음 타겟을 만들어 냈고,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문제는, 차후 그 타겟이 우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거지.’
[그나저나 베트남은 아직 소식이 없는 모양이지? 이쯤이면 슬슬 손을 들 때도 됐지 싶은데.]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푸틴이 다시 화두를 전향했다.
혹여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미간에 잔뜩 주름이 잡혀진 상태였다.
[베트남이야 크게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어차피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들로서도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까.]
[그렇다 해도 워낙 자긍심이 강한 친구들이지 않은가. 한때나마 미국을 꺾었다는, 그 알량한 자긍심.]
[그것도 과거의 일이지, 설마 아직까지 그런 자긍심만으로 현실을 외면할 만큼 어리석겠습니까. 아니 그걸 떠나서, 흘러가는 세계경제의 흐름이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도 결국엔 손을 들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하긴, 나 역시 그래서 손을 들었던 거니까.]
푸틴은 또다시 입매를 뒤틀었다.
어느새 차량은 도착 직전.
왠지 뒤끝이 남는 그의 말로 봐선 아마 오늘 밤은 밤새 술잔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먼 미래에 펼쳐질 세계의 운명을 안주 삼아서.
***
[오늘 오전 호주 총리는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과격한 대응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비난을 가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 정부는 과거 호주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문제를 비꼬았으며…….]
2017년 3월.
예상처럼 호주와 중국의 대립은 점점 더 격화되어 갔다.
호주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미국의 압력 때문임을 모를 리 없는 중국은 실력행사에 나섰고, 역사에서처럼 호주산 석탄과 소고기 그리고 해산물 수입에 대한 전면 수입 금지조치를 내렸다.
“자충수를 두는군.”
다른 건 몰라도 석탄 수입의 전면 금지는 분명 자충수였다.
역사적으로도 그로 인해 곤란을 겪었던 것은 오히려 중국이었으니까.
사실 그 부분은 오히려 내가 호주 정부를 설득할 판국이었는데.
대중국 석탄 수출 금지 조치에 대해서.
뭐 결과적으로는 역사를 따랐고, 나로선 손을 더는 셈이 됐다.
‘중국의 최대 약점은 인민들이지. 만약 돌아올 겨울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해서 이후 몇 년간 계속해서 전력난과 난방난을 겪게 된다면?’
아마 그때는 내부 붕괴가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그건 곧 우리가 가장 바라마지 않던 시나리오다.
[호주 정부는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한 3국 연합체의 가입을 결정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6월 계획되어 있던 연합의 군사훈련에 참여를 결정했으며…….]
이후 시작된 호주의 맞불은 연합과의 협력을 통한 무력시위였다.
중국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대양 진출의 길을 막아서는 것.
이로써 대중국 전략의 마지막 퍼즐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뿌우웅!
2017년 6월.
호주 북부에선 예정되었던 연합 해군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측에서 참가한 함정들의 수는 총 16척.
광개토대왕함을 비롯하여 손원일급 핵추진 잠수함을 주축으로 구성된 잠수함 집단.
그리고 지금은 ‘명량’이라는 이름으로 함명을 바꾸고 개량이 진행된, KVLS를 무려 120셀이나 때려 박은 일본판 줌왈트급 구축함을 비롯하여 우리군 최신의 호위함 및 지원함들로 구성된 제1 원정군이다.
[미국에서 키티호크를 임대했다더니 그건 이번 훈련에 참여를 못 한 모양이군요.]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항모 운용에 대한 교육이 진행 중인 함을 훈련에 끌고 올 수는 없었겠죠.]
[그것도 그렇군요. 그나저나 저 정도면 가히 미 해군 원정단과 맞먹는 규모가 아닐까 싶은데, 저기 저 광개토대왕함이라 명명된 함선은 진짜 무시무시한 무장력을 갖추었더군요.]
그중 유독 관계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역시나 광개토대왕함이었다.
엄청난 규모는 둘째 치고 과무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욱여넣은 다양한 무장들과 규모에 기가 질린 모양새.
하긴, 내가 생각해도 우리 해군의 무장에 대한 집착이 좀 과한 것은 사실이니 그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연합함대의 훈련에 참가한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훈련은 총 일주일간 진행될 예정이었다.
내가 굳이 참가를 한 이유는 훈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리 무장에 대한 성능 점검 때문.
아니, 보다 정확히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광개토대왕함의 무장체계로 인해 뒤바뀔 전투교리의 확립을 위해서다.
[회의 결과에 따라 홍군에는 한국과 러시아가 주축이 되는 것으로 결정지어졌습니다.]
훈련은 전통 방식에 따라 홍군과 청군으로 나뉘어 진행될 예정이었다.
우리와 한편이 된 것은 러시아와 필리핀. 그리고 그사이 미국의 중재로 분쟁을 끝내고 결국 연합에 합류한 동아시아의 두 국가.
그에 반해 청군은 호주와 미국 그리고 뒤늦게 연합에 합류하게 된 영국. 즉 앵글로색슨족의 연합이었다.
[이거 팀 구성이 제법 흥미진진하군요.]
호주군 합참의장은 하필 우리와 러시아가 한 팀이 된 것에 유독 흥미를 드러냈다.
나 역시 조금 다른 의미에서 흥미가 돋은 상황.
이 결과는 전적으로 미국의 주장에 의해 이루어진 건데, 왠지 그게 의도적인 것이 아닌가 싶은 의심 중이다.
솔직히 다른 동남아국가들의 전력이야 무슨 도움이 될까.
이 기회에 미국은 우리와 러시아가 한 팀이 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보일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는 거지.
[팀을 바꿔 보면 어떻겠습니까?]
혹시나 싶어 넌지시 의견을 제시했다.
[아니요, 현재로서는 이 구성이 적합할 듯합니다. 만약 중국과의 분쟁이 현실화되면 가장 먼저 대응에 나설 국가들이 한국과 러시아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이니까요.]
하지만 미국은 끝내 현재의 팀 구성을 주장했고, 이로써 내 의심은 한층 더 확실해졌다.
‘젠장, 그럼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 7함대는 뭔데? 그래, 뭐 이게 미국의 진짜 모습이겠지. 아무리 동맹이라고 해도 종국에는 제 나라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에 대한 끝없는 의심과 확인을 거듭하는.’
그거야 사실상 우리로서도 마찬가지기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속에서 올라오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역시, 미국인들답군요.]
그때, 내내 침묵하고 있던 알렉세이가 넌지시 내 귓가에 속삭였다.
한동안 러시아 대외 사업에만 관여하던 그는 최근 들어 다시 푸틴의 부름을 받아 러시아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상태.
한때 대외정보국의 수장직을 수행했던 인물인 덕에 촉만큼은 녹슬지 않은 모양이다.
[뭐, 굳이 한국과 러시아 연합군의 실력을 확인하겠다면 최선을 다해 줘야겠죠.]
[최선을 다했다가 행여 경계심만 높여 버리면 어쩌려고요. 지금 한국의 해상 전력을 보면 그게 무리가 아니라는 것은 진 회장님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예상하건대 그때부터는 미국의 등쌀이 장난 아닐 겁니다.]
그럴 가능성이야 당연히 컸다.
혹시라도. 아니 꽤 높은 확률로 이 훈련이 저들의 패배로 끝나 버리는 경우.
그럼 아마도 훈련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서 그 원인을 찾겠지.
그리고 결국엔 부족한 자신들의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나설 테고.
하지만 우린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이젠 미국도 그걸 잘 알고 있고.
[그래 봐야 지금 같은 국제 관계 속에서는 딜을 걸어오는 것밖에 수가 더 있겠습니까. 나로서야 합리적인 수준의 딜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고. 그나저나 기대되는군요. 공방전의 첫 시작부터 당황할 저들의 모습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