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38화 (338/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38화

[우리 군은 향후 확대될 사이버전에 대비하여 정보사령부 내에 사이버전 대응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또한 정부 주도의 정보관리청 신설을 통해…….]

앞으로 보다 치열해질 사이버전에 대비한 정부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회의를 마친 지 불과 보름 만에 군과 관에 부서를 신설.

물론 인력들을 뒷받침해 줄 시설들을 제대로 갖추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이 나라는 세계 최고의 하드웨어 제작 능력을 갖춘 국가.

게다가 빨리빨리가 생활화된 곳이다 보니 예상보다는 일찍 시스템 구축이 가능할 거다.

“그룹 정보팀의 보고에 따르면 이주환 전임 대통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곧 정치권 개혁이 시작될 것이라는 내 예상도 사실로 드러났다.

3대에 걸친, 같은 성향의 역대 대통령들과 현 대통령의 회동이 실제 이루어졌었다는 안 실장의 보고.

의외인 것은 나에게마저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는 건데, 아마도 그건 사안이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거다.

즉, 저들로서도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두고 내게 미리 알릴 필요는 없었을 거라는.

‘그나저나 합의가 된다면 결국 새로이 대통령의 물망에 오르는 것은 그럼 이번에 임명된 정무수석이라는 건가?’

그게 아니면 굳이 과거 야권의 인물을 현 정권에 편입시킬 이유가 없으니까.

“최경오 정무수석에 대해선 조사를 좀 해 보셨습니까?”

“최경오 수석은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까지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을 역임했습니다.”

“자연과학대 학장 출신이라고요?”

왠지 의외의 선택인 듯싶었다.

차기 대통령감으로 선정된 인물이 하필 자연과학대 학장 출신이라니.

하긴, 정치가 어디 전공을 따라가라는 법이 있던가.

중요한 것은 인물의 됨됨이인데, 당시 느꼈던 최경오 교수의 눈빛이 그다지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 거다.

‘그나저나 이로써 난 벌써 다섯 명의 대통령을 거치게 되는 셈인가?’

뭐 현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내후년이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상황이니까.

왠지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물씬 밀려온다.

스윽.

생각이 그에 미치자 무심코 책상 위에 있던 거울로 시선이 갔다.

여전히 40대 초반에 불과해 보이는 얼굴.

그렇다 해도 언제부턴가 다시 노화가 시작되었다는 것만큼은 확연하게 느껴진다.

‘더뎠던 노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거 왠지 내 역할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알 것 같군.’

***

[중국은 오늘 오전 범죄인 본토 송환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다분히 홍콩의 체제변화를 위한 결과이며…….]

2016년 8월.

올림픽으로 향해야 할 전 세계의 이목이 중국으로 집중됐다.

역사의 답습.

즉, 홍콩문제가 재연된 것.

언젠가 터질 문제임을 짐작하고는 있었어도 예상보다는 훨씬 앞당겨진 셈인데, 이번만은 이유를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를 향한 대만의 특사파견.

그로 인해 대만의 포지션은 확고히 드러났고, 그건 저들의 역린을 건드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때문에 저들이 주구장창 주장하던 ‘하나의 중국’을 보다 빨리 실현하겠다는.

‘하지만 그걸 알까?’

그건 오히려 중국의 고립을 더 가속화하는 계기가 된다는 걸.

띠리리!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김태익 안보수석.

용무가 뭔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 터라 웃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진 회장님. 방금 미국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조건을 수락하겠답니다.

조건이라 함은 중동문제의 해결 대가로 우리가 내세웠던 것들을 의미했다.

다탄두 기술의 이전과 항모 임대.

이로써 내부분열에 이어 해상포위망을 통한 대중국 압박 시나리오가 점점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 아직 하나가 남았군. 포위망에 참여할 국가들 중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곳들에 대한 확실한 줄 세우기.”

***

빰빠바밤!

2016년 10월.

필리핀 수비크만의 옛 미군기지에는 다시 연합군들의 주둔이 확정되었다.

협정과 동시에 이루어진 시설 개보수공사가 한창 진행 중.

그와는 별도로 이미 미국과 우리 측으로부터 파견된 함정들이 주둔기념식을 위해 바다 위에 사열해 있는 중이다.

[이제 필리핀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통해 동아시아의 책임감 있는 국가로 거듭날 것입니다.]

올해 초 필리핀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 두테르테는 기념사에서 유독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것이 앞으로 격렬해질 아시아의 변화를 대비한 포석임을 누가 모를까.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힘의 싸움에서 보다 미래가 확실해 보이는 편에 서겠다는 의미임을.

하지만 우리는 그런 솔직한 면을 오히려 환영한다.

여태 상황 파악을 못 한 채 우왕좌왕하기 바쁜 일부 동남아 국가들보다는.

[정보에 의하면 중국 외교부장이 다음 주쯤 미얀마를 방문한다는군요.]

한창 식이 진행되는 와중 리암이 넌지시 내게 말했다.

하긴,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선. 그리고 점차 형성되어 가는 연합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서는 미얀마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니까.

더군다나 미얀마 군부는 전통적으로 중국과 더없이 밀착해 왔던 입장.

예상 범주 내의 행보였던 터라 감흥이 그리 크지는 않다.

[아마 대만의 공개적인 반중 행보가 그들을 더 다급하게 했을 겁니다.]

[그랬죠, 하니 홍콩도 저토록 다급하게 완전한 흡수를 시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홍콩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규제조치로 인해서 애꿎은 우리 도박업체들만 된서리를 맞았어요.]

짧은 대꾸에 리암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린가 싶어 쳐다보자 힐끗 나와 눈을 마주친 그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말을 잇는다.

[중국 정부가 우리의 홍콩제재에 대한 대응으로 마카오에서 영업 중이던 우리 도박업체들의 라이선스를 몰수해 버렸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뭐, 어제 벌어진 일이니 진 회장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무튼, 덕분에 내가 미국 내 도박업체들로부터 원망을 꽤 많이 들었습니다.]

절로 웃음이 내비쳐졌다.

어차피 지금이 아니라도 마카오는 곧 몰락의 길을 걷게 되어 있으니까.

그 빌어먹을 코로나로 인해서.

하지만 그걸 이 자리에서 입에 올리는 것은 무리.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자 리암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그나저나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문제군요. 여태 주저하는 것을 보면 연합에 합류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아 보이니 말입니다.]

그건 베트남의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꼬집는 말이었다.

미국이 방문했을 때는 기꺼이 연합에 합류할 뜻을 내비쳤다가 이후 이어진 중국 외교부장의 방문에서는 또 친중 성향을 내비치는, 그들의 태도.

사실 현실적으로 따지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무슨 대단히 힘을 보태 주는 것도 아니기에 굳이 매달릴 이유는 없다만, 미국으로서는 그래도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좀 더…….]

말을 잇던 리암은 갑자기 뜸을 들였다.

마침 해상 사열식의 마지막인 함포사격이 시작되는 순간.

귀를 울리는 함포 소리에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쳐다보자 그가 서둘러 손사래를 친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잠시 생각난 것이 있어서…… 한데 이젠 연합의 마지막 퍼즐인 호주를 끌어들여야 할 텐데, 하필 중국의 투자가 워낙 대규모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국가인 터라 걱정이군요.]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다급하게 말을 돌리는 것도 그렇고. 무언가 꼭 숨기는 표정인 것도 그렇고.

하지만 대답을 재촉해 봐야 어차피 다시 열릴 입도 아니기에 결국 마지막으로 거론되었던 주제를 다시 입에 올렸다.

[호주가 중요하기는 하죠. 현재로서는 중국의 대양 진출을 막아서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니까. 하지만 호주만큼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

[우리가 제기한, 중국의 전자제품을 통한 정보탈취 문제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지금 호주 정부도 발칵 뒤집혔거든요.]

[뭐 그렇다고는 합니다만, 문제는 호주의 경우 갑작스레 반중 전선에 뛰어들기는 무리라는 거죠. 그동안 투자받아 온 금액이 워낙 규모가 크지 않습니까.]

[투자 규모야 엄청났던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그들도 최근 중국의 약탈적인 투자 방식에 대해서 이를 갈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이번에 그걸 무효화 할 기회가 주어졌지 않습니까.]

[…….]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정부에 납품되었던 각종 중국산 통신장비 및 관련 부속장비를 통해 호주 정부의 주요 정책 자료들이 중국으로 빼돌려졌다고 하더군요. 그 일로 인해 총리가 상당한 정치적 위기에 빠졌음은 물론이고. 하니 아마 곧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리암은 말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입꼬리를 잔뜩 들어 올렸다.

우연이었을까, 마침 그를 만나면 제안해 보리라 다짐했었던 문제 하나가 떠올라 재빨리 입에 올렸다.

[그나저나 미국의 정찰 위성 하나가 말썽을 부린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윌리엄 정찰 위성 말입니까? 아니 그 소식은 또 진 회장께서 어찌 알고…….]

[뭐, 지금 한국의 정보력 수준에서 그걸 모른다는 것이 오히려 말이 안 되죠. 아무튼 그 위성 제게 주시죠.]

리암은 이건 또 무슨 맥락 없는 말인가 싶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피곤 귓가에 속삭이자 그의 눈이 대번에 화등잔만 해졌다.

[맙소사! 그게 정말입니까?]

씨익.

[허어, 이거 중국이 또 한바탕 뒤집어지겠는데요?]

[뭐, 성공한다면 그렇겠죠.]

[‘성공한다면’이라는 가정은 진 회장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태 진 회장이 그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을 때 실패한 경우를 못 봤으니까. 그나저나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얼마든지요.]

[항상 들었던 의문인데. 진 회장께선, 아니 한국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중국을 미워하는 겁니까.]

[…….]

[솔직히 요즘 백악관은 지나치게 브레이크가 없이 질주하는 한국이 두려울 지경이란 말까지 나오는 터라 해 보는 말입니다. 뭐, 까놓고 말해서 우리 미국으로서야 환영할 만한 입장이기는 해도, 사실 중국을 향한 한국의 몸서리가 어떨 땐 지나치다 싶을 정도인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난 그 말에 잠시 허공을 쳐다봤다.

대답이 막혀서라기보다는 워낙 할 말이 많아서 어디에서부터 꺼내야 할지를 모르겠거든.

역사적으로 내내 이어져 왔던 그들과의 충돌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결국 수십 년 동안 남북으로 분열되었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이었다는 사실.

더 확실한 이유는 회귀 전 중국으로부터 받아 왔던 압박과 늘 상식 밖이었던 태도로 인한 피해겠지만, 그걸 거론하기는 무리일 거다.

[그건…….]

슬쩍 말을 던지곤 텀을 두었다.

여전히 리암의 시선은 내게 꽂혀 있던 상태.

난 빙긋이 웃으며 질문을 되돌렸다.

[만약 회장님께서 평생 이사를 갈 수 없는 입장이라고 치죠. 그런데 하필이면 옆집 주민이 상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음은 물론, 말도 통하지 않고 매사에 시비만 걸어오는 개차반이면 어쩌시겠습니까.]

리암의 입매가 잔뜩 뒤틀렸다.

이미 질문의 요지를 알아들은 모양새.

조금 후 그의 입에선 웃음기 섞인 대꾸가 들려왔다.

[힘이 없다면 모를까,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죽도록 패서 엉겨들 엄두를 못 내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겠죠.]

[빙고.]

***

“이 홍차, 아버님이 좋아하시겠죠?”

“좋아하시기는 하겠지만, 왜 하필이면 선물로 홍차를…….”

2016년 11월.

나타샤와 난 오랜만의 가족 모임을 위해 본가에 들렀다.

어느덧 아흔을 넘기신 아버지는 이제 부쩍 허리가 굽어진 상태.

그럼에도 정신만은 또렷하다 보니 여전히 내겐 그 존재감이 떨쳐지지 않는 양반이다.

“저희 왔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형님 내외는 벌써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있었다.

손주들의 재롱에 부쩍 표정이 밝아진 부모님들의 시선은 늘 나타샤를 향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흠흠, 아직 소식은 없고?”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평화로울 것이라던 내 생각은 착각이었다.

한때 ‘늘 결혼은 언제?’라는 아버지의 멘트가 단지 이젠 ‘애는 언제?’로 바뀌었을 뿐.

다행인 것은 그 부담스러운 태도에도 나타샤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인데, 역시 난 인물은 난 인물이다.

“생길 때가 되면 생기겠죠. 뭘 그런 일로 애들에게 부담을 주고 그러세요.”

“이 사람이. 누가 부담을 줬다고 그래?”

“지금 주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며늘애가 문제 있는 것도 아니고, 애들 말처럼 생길 때가 되면 생기겠죠.”

늘 그랬듯 어머니는 우리 편이다.

전과는 달리 발언권이 강해진 터라 항상 그다음이 문제지만.

“설사 며늘애가 문제가 있다고 쳐요. 그렇다고 현승이가 애 문제까지 당신을 닮으면 되겠어요?”

“풋!”

갑자기 뼈를 때리는 어머니의 태도에 형님이 들이켜던 물을 뿜었다.

이 분위기를 대체 어찌하려나.

다급한 마음에 TV를 켜려는데, 갑자기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린다.

“휴일에 무슨 일이십니까, 안 실장님.”

발신자는 안 실장이었다.

덕분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뻔했던 집안 분위기가 잡힌 것까지는 좋았지만, 정작 들려오는 소식은 내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군사 충돌을 일으켰답니다.

“…….”

순간 떠오른 것은 전에 리암이 보였던 태도였다.

아직까지 연합에 들지 않은 몇몇 나라들을 문제 삼으며 끝을 흐렸었던.

설마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무슨 전화인데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요?”

곁에서 내내 내 통화에 관심을 기울이던 나타샤가 넌지시 물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

손사래를 치며 대답을 회피하려는데 뭣 때문인지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파리해지더니 화장실 쪽으로 달려간다.

“욱!”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