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33화
“이거 해당 직원으로서는 꽤 당황스러웠겠는데요?”
전날의 소란을 전해 들은 김 실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하긴,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던 상황에서 에바를 마주했으니 당사자로서는 당황스러웠을밖에.
때문에 보안 팀에서는 오전 중 에바의 존재에 대한 전면적인 홍보에 나선 상태다.
“처음엔 거부감이 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점차 적응을 하게 되겠죠.”
“뭐, 아무래도. 그나저나 정말로 인공지능에게 회사 전체의 보안 관리를 맡겨도 되는 겁니까?”
김 실장은 염려스러운 표정과 함께 다시 말했다.
딱히 이해 못 할 바도 아닌 것이 본사는 재우의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니까.
비단 그만이 아니라 나이가 지긋한 임원들은 대부분 같은 염려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전 영 안심이…… 혹시라도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서 곤란을 겪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권한을 넘어선 행동을 한다거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군요.”
계속되는 염려에 웃으며 대꾸했다.
듣고 있다 보니 이건 지금의 기술 수준이 만들어 낸 인공지능의 성능을 지나치게 높게 보는 느낌이 들었기에.
결국 난 한동안 현실과 영화의 차이점을 설명해야만 했다.
“그런가요?”
대꾸를 하는 김 실장은 끝내 안심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잠시 들고 있던 팬을 내려놓은 후 그가 가장 이해하기 쉬울 근거를 들어 다시 설명을 이었다.
“영화와 같은 일이 발생하기 위해선 갖춰야 할 조건이 꽤 많습니다.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된 하드웨어는 물론 알고리즘의 다양성 등. 하지만 에바는 아직 그런 영화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낼 만한 수준의 기반이 없습니다.”
“…….”
“쉽게 말해서 침팬지가 아무리 똑똑해도 절대 인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김 실장은 그제야 이해를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스피커에서 다시 에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저를 침팬지와 비교하신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난 웃으며 대꾸하곤 문으로 향했다.
내 움직임을 감지한 에바가 이번엔 비서실에 외출을 통보했고, 미리 소식을 접한 비서들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 중인 상태였다.
“흠…… 이건 나도 영 적응이 안 되는군.”
***
“3번 게이트에 차량 준비되었습니다.”
로비까지 따라나선 김 비서는 오늘의 차량 위치를 안내했다.
아무리 인근 부지 전체가 본사 소유라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한 대처는 필요한 법.
결국 김 비서는 내 안전을 위해 차량의 대기 장소를 매번 변경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해 둔 상태였다.
“참, 차지환 대원은 어떻게 됐습니까?”
안내에 따라 이동하는 와중 문득 그 점이 궁금해졌다.
내 경호 인력으로 보직을 바꾼 것이 벌써 오래전.
지금쯤이면 교육 기간을 거쳐 임무에 투입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났건만, 어찌 된 일인지 영 소식이 없지 않던가.
“안 그래도 오늘 교육센터에서 출소해서 오후부터는 본사로 출근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내일 있을 회장님의 미국 출장에도 차지환이 동행할 예정이기도 하고요.”
대답은 강 소령으로부터 들려왔다.
미국 동행에 뽑힐 정도면 확실히 실력만큼은 갖추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준비된 차량을 향해 다가가려는 순간, 저편에서 때마침 차지환이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도착한 모양이군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차에 올랐다.
왜였을까, 갑자기 드는 장난기에 다시 내려서선 이제 막 나를 향해 다가서는 차지환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무사히 교육을 마치고 복귀했음을 보고드립네다.”
시선이 마주친 차지환은 재빨리 경례를 하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안 그래도 깡마른 몸이 더 마른 것을 보니 교육과정이 꽤 만만치 않았던 모양새.
웃으며 그간의 수고에 대해 치하하려는데, 그가 곁눈질로 사방을 살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에바를 찾습니까?”
“아, 그거이…… 본사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해서 말이디요.”
난 그 말에 웃음을 내비치곤 귀에 꽂혀 있던 리시버를 눌러 에바를 호출했다.
지하에 자리 잡고 있는 본체가 아닌, 시스템의 통제를 받아 건물 곳곳에서 활동 중인 수많은 자율 객체 중 하나를.
철컥, 철컥!
그때, 저편에서 사람의 덩치보다 조금 더 큰 다각 전차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고, 순간 눈이 동그래진 차지환이 재빨리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저거이…… 애미나이라는 말입네까?”
“정확히는 그 애미나이의 분신들 중 하나죠. 이제 본사에서 보게 될 저런 형태의 보안로봇들 모두가 에바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참고로 에바는 이제 위성을 통해 언제 어디서건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이 됩니다.”
난 슬쩍 귀에 꽂혀 있던 리시버를 손으로 두드려 보여 주곤 다시 차량에 올라탔다.
“그럼, 저는…….”
차지환의 얼굴에는 마치 연인이라도 빼앗긴 듯한 표정이 지어졌고, 난 옅은 웃음과 함께 창문을 열곤 그에게 또 하나의 리시버를 건넸다.
“받아요, 내 경호를 맡게 된 기념선물입니다.”
“…….”
차지환은 대번에 화색을 밝히며 리시버를 받아 들었다.
웃으며 다시 창문을 닫으려는 차, 차지환의 외침과 그에 답하는 에바의 음성이 동시에 들려왔다.
“행색이 이게 뭐이가? 왜 이렇게 난쟁이 똥짜루만 해졌네?”
<그건 차 대원이 하실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전 잠시 제 사물탐지 센서가 오류를 일으킨 줄 알았습니다.>
“그거이 무슨 말이네?”
<인간이 아니라 좀비가 출몰한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
휘이잉!
다음 날, 특별기편으로 워싱턴 공항에 도착한 재건위원 일행들은 미 정부가 준비한 차량을 통해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경호를 위해 투입된 차량의 수만 10여 대.
갑작스러운 무장차량들의 이동에 시민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끼익!
도착한 회의장은 백악관 인근에 있던 호텔이었다.
주변 전체가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도착과 동시에 우릴 맞은 것은 역시나 리암 회장이었다.
[이거 얼마 만입니까.]
리암의 얼굴엔 그새 부쩍 주름이 더해져 있었다.
딱히 마음고생 할 일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노화의 흔적일 터.
그 나이에도 이렇듯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이 새삼 대단하다 싶을 정도다.
[대만 문제에 대해선 백악관과 이미 합의를 봤습니다. 참고로, 오늘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대화는 전적으로 미국 정부의 의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됩니다.]
회의가 시작됨과 동시에 리암이 운을 띄웠다.
굳이 대통령을 만나지 않아도 회의 내용의 결과는 보증된다는.
뭐, 어차피 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기에 딱히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대만의 백악관은 대만의 합류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겁니다. 다만, 제반 문제들은 해결해야겠죠. 예를 들면 지금 대만의 무장 수준으로는 중국의 견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핵위협에 대한 우산 제공과 같은.]
왠지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의도 같았다.
저렇듯 단도직입적으로 화두부터 꺼내 드는 것을 보면.
잠시 이유를 추론하던 난 불현듯 하나의 사실을 떠올리곤 헛웃음을 뱉었다.
우리의 핵보유 공인.
지금 저들은 그걸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것.
해서 대만 문제보다는 그 부분에 집중하려는 의지라는 것을.
[대만의 부족한 무장력은 일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상황이 그렇다면 나 역시 대만 문제를 빨리 처리하고 넘어갈 생각이다.
한 가지 안심되는 것은 곧 핵이라는 민감한 주제가 거론될 상황이었음에도 그의 표정이 제법 여유롭다는 건데.
그건 사안의 본질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결국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일본에 답을 찾는다고요?]
[그렇습니다. 과거 자위대는 한국을 제외하면 아시아 최고라 자부할 만큼 현대적인 무장력을 갖추고 있었죠. 특히나 재래식 잠수함들은 그 성능이 중국의 것들과는 비교불가 수준이었고.]
[…….]
[물론 이번 전쟁을 통해 상당수의 전력이 증발해 버리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대만이 대중국 방어선을 구축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 아닐까 싶군요.]
[그래서, 그걸 대만에 제공하겠다는 말입니까?]
[우리와 체계가 맞지 않는 일부 무장들의 경우는 가능합니다.]
리암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그걸 왜 양보하느냐는 눈빛.
잠시 오해가 있다는 생각에 팔짱을 끼고 다시 말했다.
[그렇다고 공여를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자위대의 무기들까지 죄다 운용하게 되면 지나치게 체계가 복잡해지기에 그중 일부를 개수하여 수출하겠다는 거죠.]
[일본의 것을 수출한다고요?]
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리암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럼 우리가 미쳤다고 그 비싼 무장들을 무상으로 공급할까.
당연한 것을 반문한다는 투의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거야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닙니다만, 일본의 무장을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 가능은 한 겁니까? 그건 일본의 헌법에 위배되는 문제일 텐데요?]
[아니요, 어차피 일본은 과거에 이미 법을 틀어서 무기 수출이 가능한 국가가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현용 자위대의 무기들은 이미 협정에 따라 한국의 소유가 된 물건이라서 그들의 법과는 상관도 없고.]
그 말에 리암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이내 힐끗 나를 쳐다보는 이유는 이제부터 다룰 주제에 대한 무게감 때문.
먼저 선수를 치고 나갔다.
[우리의 핵보유국 공인을 더는 미룰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
[다른 걸 떠나서, 우리가 ‘전략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공인해 버리는 것이 대만을 향한 중국의 핵 위협을 자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테니까요.]
[흠.]
리암의 얼굴이 부쩍 당황한 빛을 띠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뜻 수긍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것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일 터.
굳은 표정으로 그를 주시하자 예상처럼 그가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건…… 미안하지만 진 회장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고작 전술핵 몇 개 가지고 있는 것과 공인된 핵보유국 인정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
일단 그게 인정되면 핵에 대한 연구 활동에 대해서 제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비록 대놓고 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삼가야 하겠지만 전략핵의 보유마저도 관여를 받지 않게 되고.
우스운 것은 그게 고작 몇몇 핵 강국들에 의해 정해진, 자기들만의 리그요 원칙이라는 건데, 이거야말로 가진 자들의 횡포가 아닐까 싶다.
뭐, 그 덕에 핵확산이 억제되고 있다는 점만큼은 할 말이 없지만.
[하지만 이미 우린 전략핵도 보유 중이죠.]
[그건…… 뭐 좋습니다. 솔직히 우린 상관없죠. 러시아 역시도 그건 마찬가지일 테고. 하지만 프랑스는요. 영국에게는 한국의 전략핵 보유 사실을 또 어떻게 설득할 겁니까.]
[미국과 한 몸이나 다름없는 영국을 설득하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요. 물론 잠시 유럽과 합을 맞추기는 했지만 그것도 이미 과거의 일이고, 결국 그들은 미국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하면 프랑스와 중국이 문제인데, 중국이야 어차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국가니 굳이 신경 쓸 필요 없고, 프랑스가 우리를 제재한다? 그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
[뭐 인도와 파키스탄 같은 여타 비공인 핵보유국들의 경우는 자신들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기는 하겠지만 그건 어불성설이고,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의 핵보유국 공인을 반대하고 나설 명분은 없죠.]
리암은 한참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사이 내 머릿속을 스친 것은 확실히 대한민국의 위상이 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게 커졌다는 사실.
솔직히 전 같았다면 이런 일이 가당키나 했을까?
일본을 점령하고, 동아시아의 패권국이 되는, 지금 같은 상황.
그리고 대중국전략의 선봉에 선 국가가 되어 미국마저도 눈치를 보게 되는, 이 꿈과 같은 상황이.
[그 문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봅시다.]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리암의 말이 날아들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지지고 볶아 왔던 내가 그 속내를 모를까.
저 주저함이 우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달리 바라는 것이 있어서라는 것을.
난 힐끗 김 수석을 쳐다봤고, 눈이 마주친 그의 고개가 가만히 끄덕여졌다.
[미안하지만 난 이 자리에서 결판을 봐야겠습니다.]
다시 리암에게 시선을 주곤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워낙 시니컬한 태도였던 탓에 리암의 눈이 한껏 커졌지만, 난 상관하지 않은 채 다시 말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에 대해선 이미 알 만큼은 아시는 분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