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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27화 (327/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27화

따르릉!

여당 소속 한주영 의원은 늦은 밤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최근 가뜩이나 나라 안에 불어닥친 과거사 청산 열풍으로 인해 마음이 불안한 상황.

“미치겠군.”

특히나 대대로 일본의 자본과 지원으로 커 왔던 교육재단을 운용 중인 그로서는 매일매일이 가시방석이나 다름없었다.

“전화 안 받을 거야?”

다행인 것은 지금 울리는 전화가 아내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고작 가정주부에 불과한 여인에게, 게다가 이 늦은 시간 전화가 걸려올 이유만큼은 알 수 없지만.

의아함과 짜증스러움이 동시에 올라오며 아내를 깨우는 손길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봐!”

“아, 왜요.”

“이 사람이 진짜. 아, 당신 전화잖아.”

미동조차도 없는 아내의 반응에 울컥 한 한주영은 반쯤 몸을 일으키곤 여전히 누워만 있는 아내를 내려다봤다.

늘 집안일은 내팽겨 두고 밖으로만 도는 제 아내의 모습에 또다시 심사가 뒤틀린 상태.

사실 잠들기 전까지도 바로 그 문제로 인해 한바탕 부부 싸움이 있었던 터였다.

“쯧, 기껏 할 일 없는 여편네들이랑 수다나 떨고 돌아다니는 주제에 뭐가 피곤하다고.”

“뭐예요?”

잠결에도 용케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발끈하며 몸을 일으켰다.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그녀의 입에선 그동안 쌓여 왔던 불만들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당신이 요즘 힘든 이유 정도는 나도 알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니에요?”

“당신이 알긴 뭘 알아? 당장 재단이 과거 일본의 자본으로 설립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무슨 태풍이 불어닥칠지 모를 판국에.”

“그게 무슨 수로 알려진단 말이에요. 당신 할아버님 대에서부터 철저하게 과거를 세탁해 온 마당에. 그게 그렇게 쉽게 밝혀질 거였으면 당신이 오늘날 그 자리에 있기나 했겠어요?”

그 부분만큼은 사실이었다.

미래를 예측한 조부의 빠른 조치로 지금의 재단은 일제의 잔재를 찾아내기 힘든 상태.

문제는 최근까지도 자신이 사사키 재단과 연을 이어 왔었다는 점이었다.

“빌어먹…….”

따르릉!

불안감에 절로 탄식이 뱉어지는 순간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도 다행히 그의 것은 아닌 상황.

힐끗 눈치를 주자 아내는 재빨리 제 전화기를 쳐다봤고, 뭣 때문인지 이내 확 어두워진 얼굴로 통화버튼을 누른다.

“한민재! 너 이 시간까지 어디에서 뭘 하기에…….”

날 선 목소리로 따지고 들던 그녀는 어느 순간 말끝을 흐렸다.

이내 한주영을 쳐다보는 눈빛에선 낭패라는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민재가 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한주영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순간 툭 하고 아내의 손에서 떨어져 내리는 전화기.

곧 그녀의 입에선 잔뜩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재가 음주 사고를 일으켰대요.”

“뭐가 어째?”

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만약 이 사실이 대외에 알려질 경우 발생할 일들이 뇌리를 스쳤기에.

결국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언론부터 틀어막는 것이었다.

“정 회장님? 나 한주영입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좀 합시다.”

***

“수고가 많으십니다. 한민재 군의 일 때문에 왔는데, 담당 팀장님 어디 계십니까.”

늦은 밤, 한주영 의원의 연락을 받고 경찰서를 찾은 김태호 변호사의 얼굴엔 짜증스러움이 가득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만 벌써 세 번째.

그것도 하필 매번 이런 늦은 시간에만 사고를 쳐 대다 보니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는 중이다.

“어? 김 변호사님 또 뵙네요? 팀장님께선 지금 대면조사 중이십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여기가 그의 입김이 제법 잘 먹히는 구역이라는 점이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한주영 의원의 입김이 잘 먹히는 곳이라고 해야겠지.

더군다나 이번엔 음주 사고 정도의, 제법 넘어가기 쉬운 문제.

아마 피해자와의 합의만 잘 이끌어 내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없을 거다.

“그러게요, 우리 너무 자주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경사님.”

“쯧쯧, 김 변호사님도 참 바쁘게 사시는군요. 그 사건 해결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그 사건이라 함은 한민재가 불과 석 달 전 일으켰었던 성폭행 사건을 의미했다.

약물을 이용하여 클럽에서 만났던 여자를 강제로 범했다가 고소를 당했었던.

우스운 것은 그토록 심각한 사건이 소리 소문도 없이 해결되었다는 건데, 그건 한주영의 권력과 돈 그리고 일부 경찰들의 이해타산이 맞아 든 결과였다.

“그 여자애, 아직 조용하죠?”

잠시 주변을 살핀 이 경사가 넌지시 김태호를 향해 물었다.

이미 묻힌 사건이 거론되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김태호는 난처한 표정과 함께 대꾸했다.

“그 이야기는 왜 또 꺼내십니까.”

“아, 우리끼린데 뭐가 어때서요. 그나저나 그 여자아이도 참 어지간해요. 그냥 적당히 합의금 받고 넘어가면 될 것을 끝내…… 결국 쓰레기 취급만 받고 사건이 종결됐잖아요.”

김태호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합의를 거절한 것은 피해자가 아니었기에.

합의는 결국 제 자식의 범죄를 인정하는 꼴이라는, 그로 인해 제 정치생명에 타격을 받을 것을 염려한 한주영 의원은 결국 피해자를 세상에 둘도 없는 쓰레기로 몰아갔고, 사건은 그렇게 흐지부지 끝을 맺었었다.

“그나저나 이번엔 한주영 의원께서도 좀 골치가 아프시겠는데요?”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이 경사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들려왔다.

의아한 마음에 김태호의 고개가 갸웃해지려는 순간, 저편이 갑자기 시끄러워지며 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김 변호사, 잠시 나 좀 보지.”

김태호는 순간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서장이 직접 조사실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그렇고, 막상 자신을 발견하자 불러 대는 태도도 그렇고.

아니나 다를까, 곧 다가선 그를 향해 서장이 청천벽력 같은 말을 뱉어 낸다.

“이번엔 좀 힘들겠는데?”

“힘들다니 왜요?”

“방금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피해자가 병원 이송 도중에 죽었다는구먼. 게다가 현장 CCTV에선 사건 당시 정황이 그대로 찍혀 있는 상태야.”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했다.

피해자가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사건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니까.

이건 아무리 한주영 같은 거물도 혼자서는 해결하기 난감한 상황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내가 한 의원님을 좀 만나봐야 할 것 같아.”

서장은 비릿한 미소로 한주영 의원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눈치 빠른 김태영이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상황.

그는 속삭이듯 서장을 향해 물었다.

“도와주실 수 있는 겁니까?”

“그럴 생각이니 한 의원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것 아니겠나.”

김태호는 순간 눈빛이 돌변했다.

담당 경찰서가 나선다면 도움의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는 상황.

문제는 저 능구렁이 같은 서장이 이번 사건을 통해 또 얼마나 요구할지 알 수가 없다는 건데, 뭐 그 부분이야 그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다.

“즉시 연락드리죠.”

***

끼익!

그로부터 대략 1시간 후, 한주영은 자신의 비서를 대동한 채 경찰서로 들어섰다.

이미 변호사를 통해 사안에 대해서는 듣고 온 상태.

그 때문인지 닥친 문제에 비해 그의 표정은 그다지 어둡지만은 않은 상태였다.

“아니, CCTV 자료를 좀 보여 달라는데 그게 뭐가 어렵습니까?”

막 들어선 경찰서 입구에선 소란스러움이 전해져 왔다.

때마침 한주영을 향해 달려온 그의 변호사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속삭였다.

“민재 군 음주 사고의 피해자 가족들입니다. 오토바이 배달원이었다고 하더군요.”

“쯧.”

한주영은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단지 한시라도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이곳을 나서는 것.

운이 좋은 건지 마침 서장 역시도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서장의 안내를 따라 그가 도착한 곳은 교통과였다.

무슨 의도에선지 서장은 사건 당시의 CCTV 자료들을 한의원에게 보여 주었고, 이후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보시다시피 이 CCTV 자료에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담겨 있습니다. 때문에 이게 노출될 경우…….”

한주영은 끝이 흐려진 서장의 말에 힐끗 그를 쳐다봤다.

의미심장한 표정.

그제야 의도를 깨달은 한주영의 얼굴에 주름이 지어지는 사이 서장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피해자도 처지가 참 그렇더군요. 당장 건사해야 할 가족들이 6명이 넘는 상황에서 그렇게 됐으니…… 우스운 것은 그 조부가 과거 독립운동가 출신이랍니다.”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지?”

듣고 있던 한주영의 입에선 노기가 뱉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하필 독립군 후손들은 왜 하나같이 비루함을 못 벗어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당황한 서장은 어색한 표정으로 변명을 이었고, 표정을 바꾼 한주영은 지그시 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뭐 그거야 내내 시대가 팍팍해서 나라가 챙겨 주지 못했었던 것을 어쩌겠나. 그나저나 정 총경도 이제 중앙에 진출하셔야지. 안 그래도 조만간 청장과 식사 자리가 약속되어 있기는 하네만.”

그 말에 서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무리도 아닌 것이 상대는 현재 전폭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여당의 핵심 실세 중 하나.

더군다나 오랜 관록으로 정부 기관과의 연줄 또한 막강한 존재다 보니 그의 말은 곧 보증수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힘을 써 주신다면야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죠. 이 CCTV 자료들은 제가 책임지고 폐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넌지시 뱉어 낸 말과 함께 서장의 손이 바빠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주영의 입에선 우려 섞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대부분의 언론사 데스크들이야 나와는 워낙 가까운 인물들이니 설사 이 문제가 노출된다 해도 걱정할 일은 없다 치고, CCTV 자료가 사라진 것에 대해선 검찰에 어떻게 해명할 생각인가.”

“의원님 위치에서 검찰을 두려워하실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검찰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해도 현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인 마당에.”

서장은 웃으며 대꾸했다.

딱히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한주영은 금세 몸을 일으켰고, 이내 조사를 마친 제 자식을 대동하여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이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인 놈을 이대로 풀어주다니요.”

막 차량에 오르려는 차에 경찰서 입구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명백히 죄가 성립되는 가해자를 제 마음대로 풀어주는 경찰의 태도에 분노한 피해자 가족들의 오열.

기세가 어찌나 대단하던지 막아서는 경찰들의 바리케이드를 뚫고 결국엔 한주영의 차량 앞까지 도달한 상태다.

“비키세요!”

당황한 보좌관들은 온몸으로 피해자 가족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내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민재의 입에선 차마 상상하지 못할 말이 뱉어졌다.

“구질구질하네, 진짜.”

“…….”

순간 사위가 정적에 휩싸였다.

이건 누구도 편들어 줄 수 없을 상황이었으니까.

결국 피해자 가족들의 악다구니는 더더욱 거세졌고, 보좌관들은 재빨리 한민재를 차량으로 구겨 넣다시피 하며 자리를 벗어나려 애썼다.

부우우웅!

그때, 경찰서 입구로 갑자기 다수의 군 병력을 실은 차량들이 들이닥쳤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에 다들 시선이 돌아갈 무렵, 하필 차량에서 내린 무장 병력들이 일제히 한주영과 그 주변 인물을 향해 다가왔다.

“한주영 의원님, 이 늦은 시간에 꽤 활동이 활발한 편이시군요. 찾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

“당신을 전시 특별법에 의거하여 간첩행위 및 국가기밀 누설죄로 긴급 체포 하겠습니다.”

“간, 간첩 행위라니!”

한주영은 깜짝 놀라 저항했다.

곧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마침 그를 마중했었던 경찰서장.

하지만 그 역시 군 병력들에게 둘러싸인 것은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정수경 총경?”

“그, 그렇습니다.”

다짜고짜 묻는 군 지휘관의 질문에 서장은 깜짝 놀라 대꾸했다.

순간 뒤틀리는 지휘관의 입술.

이내 지휘관은 서장을 향해 무어라 읊조렸고, 이후 한주영과 마찬가지로 호송 차량에 오르는 신세가 되었다.

우르르!

이후 군 병력들에 의해 체포되어 끌려 나오는 경찰들의 수는 부지기수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한주영은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 도움을 줄 만한 사람들을 상대로 연신 전화를 걸었지만 정작 통화가 이루어지는 인물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너 이놈들. 책임자가 대체 누구야! 혹시 수도방위 사령관이야? 내가 마, 어제도 그 친구랑…….”

한주영은 끌려가는 와중에도 연신 소리를 높였다.

더는 못 들어 주겠던 걸까, 결국 지휘관이 툭 하고 한마디를 뱉어 낸다.

“대통령님이십니다.”

“…….”

“책임자가 대통령님이시라는 말입니다.”

***

[어제 늦은 밤, 여당 한주영 의원이 긴급 체포 됐습니다. 혐의는 국가 주요 기밀 누설 및 간첩 행위에 따른…….]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밤새 체포가 진행된 사회지도층의 수만도 수백여 명.

언론을 비롯한 여타 단체들에서 체포된 사람들의 수까지 포함하면 무려 천 단위에 달하는 인물이 하룻밤 사이 재건위원회에 의해 연행이 된 상황이었다.

[조양일보는 오늘 자사의 기자들과 대표가 체포된 사안에 대해 정부가 군사 쿠데타에 버금가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당연히 저항도 뒤따랐다.

특히나 사주를 비롯한 간부급 기자들이 잡혀간 언론사들과 각종 단체들의 경우는 거의 발악에 가까울 정도의 반응을 쏟아내는 상태.

하지만 여야는 물론 정부 관료들이라 해도 체포를 주저하지 않는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

그리고 국민적 열망이 가득했던 어용언론들과 반국가적 행위가담자들의 청산 소식은 다수의 호응을 얻었고, 오히려 해당 언론들이 폐간 시위에 몸살을 앓는 결과만 낳았다.

“전시특별법에 의거하여 피고 한주영을 이적행위 및 국가기밀 누설죄로 종신형에 처한다.”

이후 이어진 법의 선고는 신속했다.

평시였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길고 지난한 최종심까지의 과정이 불과 두 달 만에 종결.

형량 역시도 평시와는 비교조차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빌어먹을, 고작 돈 몇 푼 받아먹었다고 해서 종신형을 때리다니. 당신 미쳤어?”

최종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한주영 의원은 판사를 향해 호기롭게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너무도 명확한 증거들.

특히나 몇 년 전 시작된 한국군의 국방력 증가 사업에 관한 기밀자료들을 일본에 유출한 부분에 대해선 판사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당신이 사사키 재단에 유출한 기밀자료들로 인해서 우리 군의 주요 전략들이 죄다 일본에게 노출된 것을 모릅니까? 그로 인해 불필요한 희생이 발생한 것에 대해선 누가 책임을 질 겁니까!”

판사의 호통은 법원 내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정작 소리를 내지른 판사마저도 스스로의 태도가 과했음을 느낄 정도.

하지만 판사의 입장에선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풀리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애국심과 같은 거창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 그 누구보다 법의 집행을 공정하게 해야 할 법관들마저도 무더기로 피의자가 되어 있는 이 현실 때문에.

그토록 많았던 자정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그래서 결국 사법기관들 역시도 이젠 외부의 힘을 빌려야만 거듭날 수 있게 된 이 상황이 그에겐 뼈가 아픈 일이었다.

***

“자 자, 지체하지 말고 탑승합니다. 눈깔 굴리다가 대가리 깨지는 수가 있으니 앞사람 다리만 쳐다봅니다.”

한주영은 법원의 판결이 떨어진 이튿날 곧바로 구치소를 벗어났다.

형이 확정된 만큼 당연한 결과.

그런데 막상 죄수들을 실은 차량이 향한 곳은 자유로.

그것도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봐! 대체 우릴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내뱉은 질문이었지만 누구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후로도 한참을 더 내달리던 호송 차량이 멈춘 곳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남북 간 출입국 관리사무소였다.

“설마…… 북으로 가는 건가?”

당황한 한주영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퍽!

그 즉시 정강이에 꽂히는 군홧발.

고통에 주저앉은 그가 부당한 대우를 따지고 들려는 차, 충격적인 말이 날아들었다.

“얌전히 좀 있지 말입니다. 앞으로 최소 8시간은 더 가야 하는 마당에.”

“……8시간?”

8시간이면 한반도 최북단으로 향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곳에 죄인들을 수용할 만한 곳이 있던가 싶은 의문을 가지려는 차, 문득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가 있었다.

“아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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