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26화 (326/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26화

“함미 헬기 갑판에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조금 좁기는 하지만 이순신께서 일본에게도 꽤 의미심장한 인물인 점을 감안하여 내린 조치니만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막 차량에서 내린 우리 측 종전 협상단 일행을 향해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굳이 협소한 이순신급 구축함에 협상 테이블을 마련한 이유에 대해서.

하긴, 우리 민족의 역사상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협상을 앞둔 마당이니 그보다 더 적합한 장소는 없었을 거다.

게다가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서구에서도 제법 널리 알려진 존재니까.

“협소함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괘념치 마시고 안내하시죠.”

같은 생각을 한 듯 총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나갔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배에 오르는 순간, 마침 저편에서 대기 중이던 일본 측 협상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먼 걸음 하셨습니다.”

통역을 통해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즈에다 신임 총리였다.

잔뜩 굳어져 있는 얼굴.

하필 패전 책임자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운 듯한 표정이었다.

[서명에 앞서 합의된 내용들에 대한 재확인을 하겠습니다.]

착석과 동시에 협정을 주도하는 우리 측 군 관계자의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국제적인 협정서에 사인을 하는 것이다 보니 협의 사항들에 대한 재차 검증은 당연한 것.

하지만 협상에서 내려놔야 할 것이 많은 일본 측으로서는 꽤 괴로운 시간들이었을 테고, 예상처럼 협상단의 표정은 하나같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첫째, 현재 무장 해제가 진행 중인 육상 자위대는 협정서의 효력이 발효되는 현시점을 기준으로 즉시 해산하여 경찰 예비대로 편입된다.]

합의 내용이 읊어지는 사이 난 조용히 눈을 감고 음미했다.

이건 시작일 뿐, 앞으로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들이 튀어나올 것이기에.

뭐, 그렇다고 그게 미안해서는 아니고 굳이 저들의 원망 섞인 시선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다.

[경찰 예비대의 경우 30밀리 이하의 주포를 탑재한 전투차량까지만 무장을 허용하며 그건 혹시 발생할지 모를 각종 테러에 대한 대응을 고려한 조치다.]

“끄응.”

예상처럼 일본 측 협상단 곳곳에선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허용되는 무장의 한계가 지나치게 좁혀진 것에 오는 반응.

하지만 그나마도 저건 크게 양보한 거라는 점을 알아만 한다.

마음 같아서는 전면 해산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차후 치안을 비롯하여 사회복구사업. 그리고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반정부 시위나 테러에 우리가 나서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거든.

찰칵찰칵!

그때, 갑판에 있던 외신기자들이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들려오는 웅성거림 중에서도 유독 내 귀에 꽂힌 것은 향후 일본이라는 나라의 운명을 예측하는 말들.

워낙 공개적인 자리였기에 단어 선택에 신중해서 그렇지, 의미만큼은 하나로 귀결되어 있었다.

일본은 이제 영영 한국과 미국의 위성국가의 처지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아니, 보다 정확히는 한국의 위성국가가 되어 버렸다는.

[둘째, 해상자위대는 전원 해산 후 해경에 편입된다. 허용 가능한 무장은 기존 해경함의 수준에 국한. 이후 존속 중인 함정들은 전적으로 한국군의 관할로 편입된다.]

어디선가 또 끄응 하고 앓는 소리가 들려온 듯싶었다.

슬쩍 눈을 뜨자 마주친 것은 통합막료장의 눈.

그건 마치 나라를 잃은 장수의 그것과도 같아 보였다.

“이미 합의가 끝난 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의를 제기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기왕 눈이 마주친 김에 슬쩍 운을 띄워 봤다.

느닷없는 내 반응 탓이었을까, 당황한 통합막료장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대꾸한다.

“다른 걸 떠나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가 변변한 호위함 한척 없이 어떻게 나라를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었다.

맺어질 협정에 따르면 앞으로 일본 해역을 담당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이 구성될 연합군.

이로써 일본이라는 나라는 혹시 모를 외세의 침입을 방어하는 것조차도 우리에게 의존하게 생긴 마당에 어찌 불만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게 전범국이라는 전과를 망각한 채 또다시 주변국들을 자극했던 국가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운명이다.

“솔직히 나도 이런 조건까지 내세우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을 그렇게 만든 것은 결국 일본 정부라는 것을 알아야죠.”

“......”

읊조리듯 한 말에 일본 측 대표단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마침 앞에 있던 물 잔을 들어 올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과 러시아에게 있어서 일본의 핵개발 사실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걸 모르십니까? 까놓고 말해서 그 정도 조건도 일본으로서는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일 텐데요?”

순간 여기저기서 침음성이 들려왔다.

난 그들 중 유독 총리를 향해 시선을 꽂은 후 되물었다.

“아직도 현실 파악이 제대로 안 되시는 모양이군요. 그럼 만약 이대로 전쟁이 계속 되었을 경우를 가정해 보죠. 일본의 핵개발 사실이 이 전쟁에 있어서 어떤 변수를 불러오는지. 아마 미국은 둘째 치고서라도 러시아가 직접적으로 전쟁에 뛰어드는 것은 기정사실이 될 겁니다.”

“…….”

“그렇게 되면 북부는 우리가 점령에 나서지 않아도 고작 수일 만에 정리가 되었을 테고, 훗카이도를 포함한 북부 일대는 그때부터 러시아의 영토가 되겠죠.”

그건 단순한 내 추측에서 나온 말만은 아니었다.

실제 일본의 핵 보유 사실에 푸틴은 당장이라도 참전에 나설 기세였으니까.

어차피 일본의 전력 대부분은 개전 초기에 소멸.

게다가 명분도 충분한 마당에 수저 하나 얹는 것이 무에 그리 힘들겠는가.

“끄응.”

하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뭐, 솔직한 심정으로야 일본을 갈기갈기 찢어서 분할 통치해 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건 차후 많은 문제들을 야기할 부분.

난 차라리 러시아의 영향력을 일부 허용하는 선에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우리가 유지하는 편을 택했고, 그게 조기 종전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뭐 그렇다 해도 결국 러시아와 미국의 영향력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협정의 주요 주체가 우리인 만큼 향후 일본을 실질적으로 컨트롤하는 것 역시 우리가 될 테니까.

[셋째 항공자위대의 전력은 한국군의 관할 아래에 존치를 결정한다…….]

잠시간의 언쟁 후 이어진 협상 조건들은 항공자위대의 처분에 관한 것이었다.

그나마 항공자위대의 존치를 결정한 이유는 차후 중국과의 분쟁을 위한 포석.

그렇다 해도 이번 전쟁을 통해 워낙 많은 수의 전력들이 증발해 버린 터라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 것은 사실이고, 그에 대한 대처로 이미 일본이 미국과 맺었던 공급계약 물량을 허용한 상태다.

물론, 그 역시 우리의 관할 아래에 둔다는 조건으로.

[넷째…….]

이후 계속해서 이어진 자위대의 처분 내용들은 결과적으로 일본의 재무장을 원천봉쇄 하는 것에 주력되어 있었다.

과거 패전 이후 제정된 평화헌법을 어떤 방식으로든 개정할 수 없다는 조건까지.

어차피 그 점이야 사전 협의가 끝난 부분이니 크게 충격일 것은 없을 거다.

스윽.

난 군사 분야 합의서의 내용 발표가 거의 끝났을 때쯤 손을 들었다.

순간 쏠리는 시선들.

그 틈에 준비해 온 가방을 열어 서류 몇 장을 일본 측 협상단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한 즈에다는 즉시 서류를 쳐다봤다.

점점 커다래지는 눈.

그 타이밍에 우리가 준비해 온 추가 조건을 하나씩 던졌다.

“과거 위안부 동원에 대한 확실한 인정을 대외에 공표해 주셔야겠습니다.”

“그 점은 이미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의외로 흔쾌한 대꾸가 들려왔다.

하긴, 이미 도쿄 점령 당시 일본의 기밀들은 죄다 털려 나가서 그에 대한 확실한 증거 자료들이 다 드러난 판국에 빠져나갈 방법은 없겠지.

난 웃으며 다음 사항을 뱉어 냈다.

“문화재 반환을 위한 양국 위원회 구성은 이 협의가 끝나는 즉시 설치될 겁니다.”

그 말에 즈에다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해 꽂혔다.

의미만 봐선 꼭 그동안 우리가 해 왔던 밀거래자들의 처분 작전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끝내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으로 봐선 그 정도의 조치들쯤은 이미 각오했었던 모양이다.

“내각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과거 일본으로 흘러들어 온 문화재가 총 8만여 점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약속대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기구설립을 진행하여 반환을 추진하겠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런데 이미 일본에서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된 것들 중에도 우리 문화재로 판명된 것들이 다수 있다는 것은 아시죠?”

“그렇…… 습니다.”

야츠키의 대꾸는 전에 비해 힘이 없었다.

하긴, 그간 자국의 보물이라 주장했었던 것들이 결론적으로는 한국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대외에 공표되는 것은 흔쾌히 받아들일 만한 일은 아니니까.

다른 걸 떠나서 저들이 주장하던 찬란했던 자국 역사가 온통 오류투성이라는 것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한데 이걸 어쩌지?

당신들이 정말로 힘 빠질 내용들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그럼, 문화재에 대한 부분들은 이것으로 협의를 끝내고, 이제 영토 할양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가죠.”

순간 야츠키의 턱이 강하게 앙다물어졌다.

영토 문제는 사실상 그 무엇보다 현실적이고 민감한 부분이니까.

사실상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국민들로부터 돌아올 반발의 규모가 달라질 것이다 보니 긴장감은 더했을 거다.

“대마도의 영구 영토 할양이야 이미 사전 협의가 끝났으니 굳이 거론할 이유가 없고, 추가로 오키나와 열도를 향후 100년간 대한민국과 미국이 공동 관리 한다는 것에 동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즈에다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참아 왔던 인내심이 폭발한 걸까, 얼굴이 마치 불타는 고구마같이 타오르는 상황.

하지만 한껏 날이 선 내 시선과 마주치자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주저앉으며 묻는다.

“한국이 굳이 오키나와를 욕심낼 이유는 없었을 테고, 혹시 미국의 뜻입니까?”

“미국의 뜻이 많이 반영된 것은 사실입니다.”

난 힐끗 저편에서 참관 중인 미국 대표들을 한 번 쳐다보곤 말했다.

오키나와를 거론 중인 것을 눈치챈 걸까, 마주친 그들의 시선에서 강한 욕망 같은 것이 느껴졌다.

뭐랄까, 그 부분만큼은 반드시 관철해 주기를 바라는 듯한.

뭐 마음 같아선 내가 왜 굳이 미국의 몫까지 챙겨 줘야 하는지에 대해 따지고 싶지만, 그건 애써 묻어 뒀다.

어차피 일본의 핵 개발 시도로 미국 역시 파이에 욕심을 낼 빌미는 주어진 상태고, 그걸 고작 오키나와 분할 관리 정도로 틀어막은 것만도 내겐 다행이니까.

“잔혹하군요.”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즈에다의 말이 들려왔다.

잠시 들었던 생각들을 떨쳐 낸 채 다시 말을 이었다.

“잔혹하다? 대체 그 자기합리화 에 따른 일방적인 피해의식은 언제쯤에나 고쳐질지 의문이군요. 여태 자신들이 해 왔던 것은 까맣게 잊은 채 엄살만을 피우는, 그런 태도 말입니다.”

“…….”

“뭐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시시콜콜한 문제들을 들먹이는 것은 괜한 시간 낭비일 테고. 아무튼, 오키나와 문제는 엄밀히 말하자면 두 나라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어차피 미국이나 우리나 향후 대중국 전략에 있어서 오키나와는 지리적으로 막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참고로, 이건 거부권이 없습니다. 그 부분은 미국에서 워낙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는 문제인 터라서.”

반발하던 즈에다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이내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참관 중이었던 미 정부 관계자들.

우습게도 그들은 즈에다와 시선이 마주치자 하나같이 딴청을 부렸다.

“마지막으로 사인하셔야 할 협정서에는 향후 일본의 핵 재처리를 불허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부분은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넌지시 이어진 내 말에 즈에다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협정서.

아니, 협정서를 가장한 항복 문서에 사인을 했고, 외신기자들은 정신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

[오늘 오전 일본에서는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전 내각 주요 인사들과 사회 각층의 인물들에 대한 전범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2015년 12월.

한일 간에 발생했던 전쟁에 대한 뒷정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우리보다는 일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큰 것은 당연한 상황.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점점 현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한동안은 그럴 겁니다. 당장 파괴된 산업기반들로 인해 삶 자체가 막연해져 버린 저들로서는 일본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은 사치니까요.”

함께 TV를 보던 김영기 총괄실장이 넌지시 말했다.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말이 계속된다.

“그나저나 앞으로가 문제군요. 우리가 워낙 확실하게 기반을 무너트려 놔서 재건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뭐 해외에 뿌려 둔 자본들이 어마어마하다지만, 그동안 쌓인 빚도 장난이 아닌데, 이 상황이면 그걸로 10년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10년이야 버티겠죠. 그 이후엔 평범한 중진국 수준으로 하락할 테고.”

무심히 말하곤 그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김 실장이 머쓱한 표정을 짓는 사이 난 살펴보고 있던 서류철을 닫곤 다시 말했다.

“한데 그건 애초 작정했었던 부분 아니었습니까. 일본이라는 나라를 절대 힘 있는 나라로 두어서는 곤란하다는 것.”

“그렇기는 하죠. 역사적으로도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면 어떻게든 주변국들에 눈을 돌리는 것이 습성인 나라였던 만큼. 문제는 일본이 그렇게까지 무너지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이 장난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장 지금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한일 간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이 컸던 것은 사실이었다.

처음엔 전쟁 자체에 대한 공포심에 의해 전 세계 주가가 대폭락.

이후 신흥국 중 일부는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인해 한시적으로 주식시장의 문을 닫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전쟁은 고작 보름 만에 끝이 났고, 덕분에 회복심리는 다시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너무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우리야 피해가 전무하다시피 한 터라 세계 경제에 영향을 주는 반도체 및 여타 핵심 수출품들은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으니까.”

김영기 실장은 지나치게 태평한 내 대꾸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뭘 걱정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던 상태.

난 의자에 한껏 등을 기댄 채 그를 향해 말했다.

“일본이 아니면 해결이 안 되던 분야가 걱정이신 겁니까?”

“맞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본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던 소재 분야가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죄다 파괴된 마당이면…….”

“누가 그럽니까. 그게 죄다 파괴되었다고.”

“…….”

김 실장은 불쑥 되묻는 말에 눈을 끔뻑였다.

이내 옅은 웃음이 맺힌 내 입을 본 그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난 그 타이밍에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정부가 바보도 아니고 설마 훗일을 생각 안 했겠습니까. 게다가 특수 소재 분야는 이미 재우가 꽤 많은 지분을 가진 상황인데, 그런 곳을 폭격한다는 것은 무리죠.”

“그럼, 그 업체들은 살아남았다는 겁니까?”

김 실장은 순간 안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무슨 생각에선지 곧 머쓱해지는 그의 얼굴.

역시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넌지시 말을 이었다.

“그 표정, 이해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일본을 완전히 몰락시키고 싶지만, 또 현실을 보면 곤란하죠.”

“이율배반적이긴 하지만 사실 기분은 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시적일 뿐이니 너무 실망하실 건 없습니다.”

“…….”

“우리가 괜히 기술 자료들을 빼 왔으며 엔지니어들을 빼돌렸겠습니까. 지금이야 비록 어쩔 수 없기에 살려 두기는 했어도 불과 1, 2년 후면 이 땅에서 자체 생산이 가능해질 테고, 그럼 일본은 남아 있던 희망도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뭐 이후 농업국가가 되건, 아니면 평범한 중진국 수준의 공업 국가로 남게 되건 그거야 저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고.”

김 실장의 입매가 그 말에 잔뜩 위로 치솟았다.

얼핏 그의 뒤로 보이는 시계는 어느새 약속 시간을 불과 한 시간 남겨 두고 있던 상태.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자 김 실장이 의아한 표정을 묻는다.

“저녁에 스케줄 없으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무슨 급한 약속이라도 생기신 겁니까?”

“네, 청와대에서 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요.”

웃으며 대꾸하곤 슈트를 집어 들었다.

여전히 의아하다는 눈초리를 보이고 있는 김 실장을 뒤로하고 TV를 켜자 마침 해당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긴급 속보입니다. 재건위원회는 오늘 일본 극우단체들의 한국 정치권 및 각 단체를 향한 불법로비 자료들을 입수했음을 밝혔습니다.]

김 실장은 휙 하고 나를 쳐다봤다.

저게 무슨 의미냐는 듯한 눈빛.

하지만 난 여전히 TV에만 시선을 꽂고 있었고, 이후 뉴스에선 내 청와대행을 설명할 만한 소식들이 들려왔다.

[재건위원회는 그간 이루어졌던 국가 주도 핵심 사업들의 방해공작과 자금의 연관성을 확인했으며 이를 근거로 해당 리스트에 올라 있는 정 재계 및 언론인들의 긴급 체포에 나섰습니다.]

“맙소사! 불법로비를 받고 국가 주도 사업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면 저건 간첩 행위로도 엮일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놀란 김 실장은 말끝을 흐리곤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줬다.

뭐, 지금은 아직 전시특별법이 적용되는 시기니만큼 그렇지 않을까?

웃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체포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

“말씀처럼 아직은 전시특별법이 적용되는 시기고, 덕분에 그 후처리가 전처럼 말랑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 중요하죠. 더군다나 빼도 박도 못할 증거까지 생긴 마당이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