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25화
“뭐 하고 있어? 서두르지 않고.”
미와사 미술품 거래소의 히로 회장은 안 그래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직원들을 계속해서 재촉했다.
쿵!
그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실수들의 연발.
벌써 유물을 옮기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정신 안 차려! 그게 너희들 목숨보다 비싸다는 것 몰라?”
들려오는 호통에 직원들의 인상은 잔뜩 일그러졌다.
당장 직장이 사라지는 상황인 마당에 저렇듯 인격을 모독하는 말까지 들어야 하나 싶은 심정.
결국 끝내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듯 직원 중 하나가 하던 일을 멈추곤 히로를 쳐다봤다.
“뭘 그렇게 쳐다봐? 빨리 움직이지 않고.”
“회장님이 직접 하시죠.”
히로는 그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던 탓일까, 직원의 대꾸는 이후로도 거침이 없었다.
“아니다. 차라리 이것들은 그냥 두고 몸부터 피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듣자 하니 한국군이 밀반출됐던 자국 문화재 회수 협조에 불응하거나 이렇듯 몰래 빼돌리다가 걸리는 자들을 싹 잡아들이고 있는 중이라는 소문이 있다는데 말입니다.”
“저런 미친…….”
쨍강!
막 분노를 표출하려던 히로의 입은 들려오는 파열음에 즉시 멈춰졌다.
전과는 달리 이번엔 무언가 확실하게 부서지는 소리였기에.
눈을 돌리자 마침 조선시대 화가의 액자를 옮기던 직원들 몇몇이 그걸 바닥에 내동댕이치곤 전시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노한 히로가 소리쳤다.
하지만 끝내 그를 무시하곤 문을 열고 나가 버리는 직원들.
“그 말이 사실이면 괜히 우리까지 연루되어 끌려갈 이유가 없지.”
당황스러운 것은 이후 대부분의 직원이 소문에 동조하여 자진 퇴사를 선언해 버렸다는 거다.
“빌어먹을…….”
홀로 남은 히로는 즉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와는 친분이 있던 다른 거래소에 도움을 청하려는 의도.
하지만 불행하게도 연결이 되는 거래소들은 없었다.
“벌써 한국군이 들이닥친 건가?”
생각이 그에 미치자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그럼에도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는 법.
그는 도주를 택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하나의 문화재라도 더 옮기려 홀로 끙끙댔다.
쾅!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시관의 문이 부서져 나갔다.
철컥, 철컥!
이후 들어선 것은 안면까지 가려진 검은 헬멧을 쓴 무장군인들.
놀란 히로는 즉시 뒷걸음질 쳤지만, 하필 그곳에 세워져 있던 유물에 발이 걸려 흉물스럽게 나동그라졌다.
“쯧쯧, 남의 문화재를 그렇게 함부로 다루면 쓰나.”
들려온 것은 한국말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저들 모두가 한국군이라는 의미.
다급해진 히로는 번쩍 손을 들고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 냈다.
“가, 가져가시오. 건물 뒤편에 있는 차량에도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뭐라는 거야?”
지휘관으로 보이는 한국군은 고개를 갸웃하곤 히로를 지나쳤다.
곧 품에서 종이뭉치를 꺼낸 그는 전시관 곳곳에 있던 전시품들과 서류 속 사진을 대조하는 작업을 시작.
이후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자 뒤편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병력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우르르.
신호를 받은 병력들은 빠르게 유물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것은 직원 4명이 달라붙어도 옮기기 힘들었던 것을 마치 종잇장을 들 듯 가볍게 짊어지고 나가는 중이라는 사실.
군사 분야에 전혀 지식이 없던 히로로서는 그저 신기한 장면일 뿐이었다.
스윽.
한창 작업 중이던 병력들을 지켜보던 지휘관은 갑자기 허리를 굽혀 넘어져 있던 히로와 눈높이를 맞췄다.
휙!
이내 안면 가리개를 위로 들어 올린 그는 짧은 영어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운 좋은 줄 알아.]
[…….]
[단순히 밀거래에만 관여한 자들의 경우 압수조치만 하라는 명령이거든.]
***
부우웅!
일본 최대의 극우단체인 사사키 재단의 2대 이사장 사사키 치히로 회장은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재단의 주요 간부들은 이미 한국군에게 잡혀간 지 오래.
이후 연락이 죄다 두절된 것으로 봐선 처분을 당한 것이 분명한데, 같은 처지가 되지 않기 위해선 한시라도 빨리 이 중부 지역을 벗어나야만 했다.
“부디 훗카이도까지만 무사히…….”
그곳에 무사히 도착만 하면 살 가능성은 컸다.
안 그래도 인적이 드문 훗카이도의 산속 깊숙한 곳에 마련해 둔 안전가옥만 해도 무려 3곳.
비록 평생을 숨어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겠지만 그편이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던가.
“그동안 사사키 재단이 해 왔던 일들의 전모를 알고 있다면 나를 절대로 살려 둘 리가 없지.”
그건 당연한 순서일 거다.
다방면을 통한 로비로 한국 정치계를 혼란하게 만든 주범.
아니. 그건 단지 애교 수준에 불과하고, 한국 내에 있는 친일세력들과의 공조를 통해 반일주의자들을 탄압했었던 단체의 장을 살려 둘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예전 러시아에서 있었던 진현승 암살미수 사건의 최후의 배경도 결국엔 사사키 재단.
만약 저들이 그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면 더더욱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
“젠장…… 사무실 금고가 털렸다면 이미 지금쯤이면 재단의 모든 뒷거래들과 전횡을 알았겠지.”
짧은 불평을 내뱉은 치히로는 슬쩍 보조석을 쳐다봤다.
무려 세 개의 가방을 꽉 채운 것은 전부 1만 엔권 고액지폐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사무실 금고에 남아 있을 막대한 현찰 때문이다.
무려 수십억 엔에 달하는, 피 같은 그의 돈.
“하필 한국군이 거기부터 들이닥칠 줄이…… 응?”
한창 불평을 뱉어 내던 와중 무언가 수상쩍은 장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외곽 도로였던 탓에 늘 한적하기만 하던 곳이 차량들로 가득 들어찬 것.
즉시 상황을 눈치챈 치히로는 재빨리 방향을 틀어 산길로 접어들었고, 이후 한참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37번 국도였다.
“하긴, 북부로 향하는 길을 통제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래도 여긴 모를 거다.”
그가 37번 국도를 선택한 이유는 도로가 가진 독특한 특성 때문이었다.
주변이 온통 울창한 숲인 터라 조금만 멀어져도 도로가 존재하는지조차도 발견하기 힘들 정도.
그건 설사 하늘에서 봐도 마찬가지였는데, 유독 일본에 많이 심어진 삼나무들이 도로가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것이 원인이었다.
위이이잉!
그때, 어디선가 웬 모기가 날아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싶어 창문을 연 치히로는 사방을 둘러봤고, 곧 소리가 하늘 어딘가에서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억!”
눈을 들자 발견한 것은 그의 차량과 불과 수 미터 떨어진 상태로 비행 중인 드론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형태의 드론과는 다른.
혹시나 싶어 속도를 줄이자 드론 역시도 감속하며 여전히 그의 차량 위를 점하고 있었다.
“무슨…….”
치히로는 불길한 예감에 즉시 차에서 빠져나왔다.
이내 숲으로 도주하려던 그는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재빨리 보조석으로 돌아갔고, 곧 무거운 돈 가방들을 꺼내어 짊어졌다.
위이이이잉!
그때, 갑자기 드론의 모터 소리가 커졌다.
놀란 치히로가 재빨리 고개를 든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 곳곳에 엄청난 수의 무언가가 파고든다.
“쿨럭!”
쓰러진 치히로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피거품만 게워 냈다.
뒤이어 엄습한 것은 온몸을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
차라리 단숨에 숨이 끊어졌다면 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끄윽”
살려 달라는 외침도 나오지 않았다.
하긴, 지나치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소리쳐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더군다나 지금은 살려 달라는 것보다는 차라리 빨리 죽여 달라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바람일 거다.
“끄윽.”
벌써 두 번째 피거품이 게워졌다.
차라리 자결을 해 버릴까 싶은 생각과 동시에 떠오른 것은 보조석 사물함에 숨겨 두었던 권총.
“으윽!”
하지만 당장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에선 그것도 무용지물이다.
“으으.”
순간 그의 뇌리를 점령한 것은 이 상황에 대한 의문이었다.
차라리 죽일 거라면 그냥 깔끔하게 폭사를 시켜 버리면 그만인 것을 왜 이렇듯 숨만 붙어 있는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인지.
그렇고 보니 폭발력도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이 확신을 더해 준다.
어쩌면 저들은 자신이 편하게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
“끄룩…….”
***
[오늘 오전 한국 정부는 그동안 미뤄 왔던 종전 협상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내각에 전달했습니다. 구체적인 내역에 대해서는 내각에서 함구하고 있는 관계로 아직은 밝혀진 바가 없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배상 금액만 3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배상 규모가 늘어난 이유를 2차 대전 이후 부정확했던 배상 규모에 대한 재산정 결과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양국 정부 간 이루어진 이면합의 내용인데, 이후 현물보상이 추가로 이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긴급 뉴스입니다. 얼마 전 사이타마 외곽에서 발생한 산불이 아직도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화재의 진원지는 국가 정책 연구소이며 원인 모를 폭발로…….]
공항에서 요코하마항으로 가는 사이 들려온 일본 뉴스에선 꽤 다양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데이터 센터의 붕괴 소식을 비롯하여 곧 거행될 종전 합의에 대한 추측성 내용들까지.
놀란 것은 배상금의 액수를 제법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건데, 아마도 그건 즈에다 내각의 언론 플레이가 아닐까 싶다.
[현재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 곳곳에서는 배상금의 액수가 지나치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3조 달러의 금액은 한 해 일본 국민 총생산 규모의 절반을 넘어서는 것이며…….]
“전후 독일은 총생산의 두 배를 지불했었던 마당에 무슨.”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힐끗 곁에 앉아 있던 총리의 시선이 꽂히는가 싶더니 넌지시 대꾸가 들려왔다.
“지금의 일본으로서는 과한 것이 사실이죠. 독일의 경우는 피해당사국 전체에 대한 배상금이었고, 일본은 단지 우리에게만 지불하는 것이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도 액수를 그렇게 책정한 거죠. 과거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수탈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전 솔직히 그것도 성에 차지 않습니다.”
총리는 뒤이은 내 대꾸에 옅은 미소를 내비쳤다.
잠시 간의 침묵이 흐르고, 난 넌지시 말을 이었다.
“아니, 그렇고 보니 좀 과하기는 하군요.”
“…….”
“배상금 지불 조건 말입니다. 향후 20년에 걸쳐 3조 달러를 분할해서 지불해야 하는데, 그사이 붙는 금융이자. 그리고 혹시라도 연체를 하게 되는 경우 발생할 추가적인 이자 비용을 염두에 둔다면 실질적으로는 그 배에 달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전적으로 내 주장에 의해 관철된 것이었다.
난 일본이 쉽게 이 망국의 늪에서 벗어나는 꼴은 못 보겠거든.
두고두고 우리를 수탈했던 그 빌어먹을 역사를 되돌려 주기 전에는.
아마 그 많은 액수의 배상금들을 전부 갚아 나가려면 일본은 거의 반세기 가까이를 뼈가 빠질 것이고, 재건은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게 될 거다.
나라를 일으켜 세울 기반도 죄다 무너져 버린 이 상황에서는.
“…….”
순간 느껴지는 시선에 총리를 쳐다봤다.
마주친 눈빛에선 의미를 알 길이 없는 빛이 스쳐 갔고, 이내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문득 생각이 난 건데, 앞으로 몸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군요.”
“무슨 말씀입니까?”
“솔직히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진 회장님이 얼마나 원수 같겠습니까. 그러니 좀 조심하셔야죠.”
그 말에 헛웃음을 뱉었다.
농담만은 아니었다는 듯 미간을 좁힌 총리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아!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
“사사키 재단의 사무실을 점거했었던 해병대가 그곳에서 금융 내역들을 습득했는데, 그것들을 분석하는 와중 진 회장님과 연관되어 보이는 거래 내역 하나를 찾았답니다.”
“나와 연관이 되었다니요?”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 제가 표현을 잘못했군요. 정확히는 사사키 재단이 그동안 내각 조사처의 공작금 일부를 지원한 증거 자료들입니다. 문제는 그 자료 중 과거 러시아에서 진 회장님을 습격하려 했었던 인물의 이름이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순간 눈이 절로 번뜩였다.
그러다 문득 다시 든 생각은 단지 자료에 해당 정보원의 이름이 있다 해서 그걸 러시아의 사건과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
그때, 총리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코드상으로 보면 러시아 사건을 지원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코드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었다.
“그런 기밀 자료에 지원 목적을 있는 그대로 기명하겠습니까. 때문에 암호처럼 코드를 사용했는데, 반복되는 코드를 분석한 결과 그자의 이름 앞에 러시아를 의미하는 코드가 붙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기가 찰 일이었다.
고작 민간단체 따위가 정부 정보기관과 손을 잡고 암살까지 주도한다는 것은 나로선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 현실이었으니까.
물론 우리 정보기관 역시 민간인에 불과한 한 회장 같은 존재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제거하는 것에까지 이용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도 저들을 탓할 이유는 없구나.
나 역시 결국엔 민간인 신분에 불과함에도 한때 이란 과학자 암살 작전에 관여했었으니까.
“그나저나 일이 정리되면 국내도 꽤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총리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 슬쩍 고개를 돌리자 그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사사키 재단이 국내 친일세력들에게 지원한 자금 내역도 습득했거든요. 문제는 그게 주로 국가의 핵심 사업 방해를 위한 로비 자금이 대부분인 터라 경우에 따라선 간첩행위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럼 당연히 손을 봐야죠. 어차피 지금이 절호의 기회가 아닙니까.”
“그렇기는 한데, 하필 로비 대상자들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겁니다. 각 분야에 걸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사이 어느덧 차량은 종전 협상장에 거의 도달한 상태.
난 짧은 대꾸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차라리 잘 됐는지도 모르죠. 종전 협상과 전후 처리가 끝나는 대로 제가 대통령님과 논의를 해 보겠습니다.”
그래,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기왕 정리하는 판국이면 그동안 내부를 갉아먹던 벌레들도 쓸어 버리는 편이 나을 테니까.
게다가 구체적인 명단까지 나온 상황.
어쩌면 이 기회가 지긋지긋했던 잔재들을 털어 버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끼익!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목적지인 요코하마 항구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위용을 뽐내며 접안되어 있던 이순신함이었다.
“하필 항복문서를 받는 곳이 이순신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