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15화
두 선박은 서로를 향해 밀어내기를 하는 중이었다.
비록 한국 해경함이 본격적인 전투함이 아니라고는 해도 덩치만큼은 비슷한 상태.
그 때문인지 충돌에 의한 굉음은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수송선까지 전달됐다.
“대체 왜 이런…….”
히로토는 짧은 탄식과 함께 선장을 쳐다봤다.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은 선장도 마찬가지.
아무리 한국 해경이 강압적인 정선 명령과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는 해도 국제법상 그게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게다가 여긴 일본보다는 한국 해역에 더 가깝기에 한국 해경의 조사는 당연한 것.
선장으로서는 이게 단순한 시위성 행동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 같다고밖에는 판단할 수 없었다.
쿵!
그사이 다시 시작된 밀어내기에 의한 충격음은 전보다 한층 더 컸다.
들이받힌 함의 안전이 걱정될 정도.
아니나 다를까, 한국 해경함의 옆구리가 길게 찢어지며 불길이 치솟는다.
“맙소사!”
키에노 선장은 즉시 해상자위대 호위함의 상태를 확인했다.
선수가 움푹 찌그러진 함에서는 역시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재다! 빨리 두 함선에 배를 가까이 붙이고 소방호스를 전개해.”
다급해진 키에노 선장은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히로토.
그는 선장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곤 득달같이 선박의 이동을 위해 운항실로 내달렸다.
“차량 부품들에 제재대상 물품들이 섞여 있다고?”
워낙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던 터라 선장은 얼이 빠졌다.
이내 무심코 자위대 호위함을 향해 시선을 돌린 순간, 그는 분위기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화재와는 상관없는 자신의 배가 이토록 난리법석인 마당에 정작 제 배에 붙은 불을 꺼야 할 자위대 호위함에선 함포가 움직이고 있는.
“뭘 하려는 거지?”
더 당황스러운 것은 함포의 조준방향이 한국 해경선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향하고 있었다는 거다.
설마 했던 것도 잠시, 그는 단숨에 생각을 날려 버린 채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피해!”
뿌우우!
그때, 저편에서 갑자기 커다란 경적이 들려왔다.
반응을 보인 것은 호위함도 마찬가지.
이쪽으로 향했었던 함포가 재빨리 방향을 틀어 다가오는 또 한 척의 군함에게로 향했다.
“한국군인가?”
함에서 펄럭이는 국기를 보면 틀림없었다.
절로 새어 나오는 안도의 한숨.
순간 선장은 허탈한 표정이 되어 중얼대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엿 같은 상황이지?”
일본국민을 지켜야 할 해상자위대가 왜 자국의 배를 향해 포를 조준했다는 말인가.
펑!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호위함이 다가오던 한국군 구축함을 향해 포를 발사했다.
“미친!”
놀란 키에노의 시선은 즉시 목표가 되었을 한국군의 구축함을 향해 돌아갔지만, 단순히 위협사격이었던 듯 바다에서 물기둥이 솟았다.
“후우.”
키에노는 또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명중이라도 했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도 하기 싫은 결과로 이어졌을 테니까.
그런데 그때, 저편에 있던 한국군 구축함에서 연속해서 함포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호위함의 선체가 몇 번이나 들썩였다.
쿠궁!
“맙소사! 조준사격을 해 버린 거야?”
선장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피해가 컸던 듯 호위함 곳곳에선 난리가 난 상태.
만약 이 상황에서 한국군의 공격이 계속된다면 호위함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을 거다.
“…….”
하지만 다행히도 한국군 구축함은 이후 거리를 둔 채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완전한 격침을 의도한 것은 아닌 듯.
그 순간 키에노 선장의 뇌리에 상상하고 싶지 않은 가설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굳이 격침까지 시킬 의도는 없었다는 건가? 그럼 설마 저쪽에서 우리 호위함의 의도를 알고 끼어들었다는…….’
머릿속이 온통 엉망이 느낌이었다.
“선장님! 아무래도 자위대원들 중에 사상자가 꽤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뒤이어 들려오는 히로토의 보고.
하지만 선장은 정작 아비규환이 된 호위함을 쳐다만 볼 뿐, 구출을 위한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
도쿄.
“그게 무슨 소리야!”
자신의 집무실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아소는 턱을 한 자나 떨어트린 채 비서를 향해 되물었다.
고함 소리에 놀란 비서는 두서없는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 호위함이 먼저 한국 해경 선을 들이받았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한국 해경도 밀어내기를 시도했습니다. 그 와중 두 함선에서 화재가 났고요.”
“그건 나도 알아! 대체 군함도 아닌 해경함이 왜 공해상까지 기어 나왔었던 것인지를 묻는 거잖아. 이건 정보가 새 나간 것이 아니라면……. 젠장, 그건 됐고. 그 이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교전 상황까지 간 거야?”
“아! 그 이후, 한국 구축함 한 척이 현장으로 접근하여 우리 호위함을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사했답니다. 때문에 해상자위대는 경고와 방어적 차원에서 위협사격을 실시했는데, 저편에서는 오히려 조준사격을 가한 거죠.”
“그러니까, 한국 구축함에서 먼저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사한 것은 확실한 거지?”
아소로서는 그게 중요했다.
무력분쟁의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에선 시작이 누구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하지만 안도감이 드는 것도 잠시, 비서가 현실을 깨우치는 말을 건넸다.
“죄송하지만 한국 해경이 MTL호에서 밀수출 중이던 제재 품목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결국 한국군의 손에 넘어갔고요. 현재 그 문제로 인해 수상관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따르릉!
비서의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그의 책상 위에 있던 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발신자는 수상 관저.
잠시 눈을 뒤룩거리던 아소는 턱을 앙다물곤 수화기를 들었다.
-대체 누가 한국 구축함을 향한 발포 명령을 내린 겁니까?
“…….”
아소는 다짜고짜 날아드는 아베의 짜증스러운 말투에 기가 찼다.
자신이라고 그런 명령을 내렸을 리가 있나.
더군다나 자위대의 최종 명령권자가 수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방금 전 그의 말은 책임소재를 미루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걸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건가?”
아소의 말투는 하대에 가까웠다.
직위를 떠나 실질적인 일본 내 정치권에서의 위상차를 강조하려는 의지.
뜨끔했던 듯, 그제야 아베의 말투가 조금은 평정심을 찾았다.
-아무튼, 당장 책임자를 문책하세요. 난 분명 해당 수송선을 뺏겨서는 안 된다고 했지 발포하라는 명령을 한 적은 없습니다.
“저쪽에서 먼저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사했다고 하지 않나. 그럼 우리로서야 경고사격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
-…….
“게다가 비상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송선을 뺏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린 것은 총리 아니었던가? 최악의 경우엔 수송선을 침몰시켜서라도.”
-그거야…….
아소는 대답을 머뭇거리는 아베의 태도에 비로소 분을 눌렀다.
그러자 미뤄 뒀던 문제들이 봇물처럼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
긴 한숨과 함께 다시 말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쩔 생각이오. 이미 사고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았고, 한국에선 어떻게든 이번 교전을 빌미 삼아서 무력행사를 시도하려 할 텐데.”
-…….
아베는 여전히 침묵을 유지했다.
막상 묻기는 했지만 아소라고 대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모를까.
사과를 하고 머리를 숙이느냐.
아니면 무력으로 맞서느냐.
하지만 어느 것도 성에 차지 않았던 아소는 먼저 의지를 드러냈다.
“난 죽어도 한국에게 사과 따위는 못하외다. 솔직히 사과를 한다 해서 그들이 쉽게 넘어갈 리도 없고.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아소는 들려오는 대꾸에 입술을 짓씹었다.
둘의 의견이 한결같다면 남은 것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한국과의 무력 대결뿐.
문제는 한결같았던 막료장들의 조언이었다.
지금 한국과 전쟁이 벌어지면 승산은 없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우리가 한국을 상대할 방법은 없는데, 어쩔 생각이오. 이 상황에서도 끝내 숨기고 있을 겁니까?”
말을 뱉어 낸 아소는 힐끗 비서를 쳐다봤다.
이런 중대한 대화를 듣는 귀가 많으면 곤란하기에.
눈빛을 이해한 비서는 재빨리 방을 빠져나갔고, 아소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총리도 여태 ‘그것들’을 믿고 있었던 것 아니오?”
-…….
아베는 여전히 침묵만을 유지했다.
답답함에 속에서 불이 치솟아 오르려는 찰나, 결국 아베의 대꾸가 들려왔다.
-맞아요, 솔직히 그것들이 없었다면 애초 한국과 대적하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죠. 안 그래도 미스비씨에는 이미 연락을 해 두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육상 자위대에 물건들을 인계하라고.
기대했던 대답이었음에도 아소는 표정을 풀지 못했다.
비록 한국을 상대할 수단은 마련됐으나, 그것 역시 밝혀지면 국제사회에서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일으킬 테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살아남아야만 뒷감당을 해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수량은 충분합니까?”
-현재 기 생산된 수량은 충분합니다만, 효과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한국이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 부분은 부총리께서 힘을 좀 써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소는 그 말에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저 말은 자신으로 하여금 직접 한국과의 대화에 나서 앞으로 일본의 대처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달라는 의미였기에.
뭐,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여태 한국과 대립각을 세우던 그가 직접 나서는 것은 그만큼 일본이 사태해결에 적극적이라는 의미고, 그럼 한국도 섣부른 행동을 먼저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 해도 자신이 직접 그 빌어먹을 한국 땅을 밟아야 하는 것만큼은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합시다.”
하지만 아소는 결국 수긍했다.
몇 번을 생각해도 그게 앉은자리에서 당하기만 하는 것보다는 낫겠기에.
삐이!
아베와의 통화를 끝낸 아소는 다시 비서를 불러들였다.
이내 한국과의 직접적인 대화 의지를 밝히자 비서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어. 난 무릎 따위를 꿇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적을 속이기 위해 가는 거니까.”
“…….”
***
[우리 구축함과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호위함 간에 벌어졌던 교전으로 인한 양국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두 정부 사이에선 벌써 며칠 동안이나 설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우습게도 일본은 언론을 통해 보이는 태도와는 달리 물밑으로는 특사를 파견한 상황.
청와대는 특사와의 대화 상대로 국방위원장인 나를 지목했다.
“네, 지금 안 그래도 청와대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통화 상대는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하필 특사로 온 자가 아소 부총리라는 사실에 당황한 듯 목소리가 심하게 흥분된 상태였다.
끼익!
청와대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곳은 별관 접객실이었다.
현 상황을 대변하듯 잔뜩 굳어 있는 대통령과 아소의 표정.
분위기만 봐선 대화가 그리 깊이 오고간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재건위원회 국방위원장 진현승입니다.”
“내각 부총리 아소요.”
대화는 통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가관인 것은 어물쩍 엉덩이를 드는 아소의 태도였는데, 나를 향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겠다는 의지 같았다.
“혹시나 싶어서 미리 하는 말인데, 우리가 사격 통제 레이더를 조사한 것은 당시 우리 경비함의 상황이 누가 봐도 위태로웠기 때문입니다. 즉, 그걸 이유로 이번 교전의 책임을 우리에게 미룰 생각은 마시라는 거죠. 더군다나 그 원인이 UN결의를 무시한 일본의 행위에서 비롯된 거라면 더더욱.”
굳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즉시 반발이 날아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소는 침묵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구축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서 좀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었다고 하더군요.”
난 그 시점에 슬그머니 우리 구축함으로부터 보고받았던 내용을 언급했다.
“무슨?”
비로소 눈을 번뜩이는 아소의 태도.
속에서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참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사하기 직전 자위대 호위함의 함포가 이상하게도 자국의 수송선을 조준하고 있었다고 하던데, 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영 이해가 안 가더군요.”
말을 뱉어냄과 동시에 슬쩍 아소의 표정을 살폈다.
늙은 너구리 같으니.
정작 내가 그 의미를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일체의 표정변화가 없다.
“심한 오해를 하신 것 같군요. 당시 자위대 호위함은 선수에서 일어난 화재가 함포 내의 포탄들에 옮겨붙을 것을 예방하기 위해 작업 중에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오해를 부를까 싶어 함포의 방향을 틀었던 것이죠. 실 상황에서 함포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쯤은 진 회장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흠칫!
무심히 뱉어 낸 말에 아소가 놀란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상관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듣자 하니 당시 자위대 호위함에서 일어난 화재는 충돌에 의해 발생한 스파크가 잔류 유막에 옮겨붙어서 난 것이라고 하던데, 고작 그 정도 화재가 함포의 격실을 위협하는 것이 그리 쉬울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몇 시간 이상 불길이 확산되던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그건 나도 자세한 보고를 받은 것이 없어서 대답을 드리기가 곤란하군요. 아무튼 지금은 그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내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깊이 통감하며 향후 UN에서의 제재 역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거죠.”
아소는 은근슬쩍 저자세를 보이며 말을 돌렸다.
이미 저들의 목적을 빤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
이번엔 슬쩍 사진 한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뭐, 좋습니다. 그 점은 차차 밝혀질 문제고. 그런데 어째 말하고 행동이 다른 것 같군요.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를 하겠다는 정부가 이렇듯 대마도에 많은 병력과 물자들을 이동 중인 이유가 뭐죠?”
“그것 역시 오해에 불과합니다. 일상적인 훈련에 불과한 것을 확대 해석하지는 마시죠.”
아소는 태연하게 말했다.
절로 뒤틀리는 입술을 간신히 다잡으며 다시 몰아붙였다.
“일상적인 훈련에 전자전을 위한 장비들이 움직인다?”
“…….”
그는 불리하다 싶은 순간이면 항상 침묵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까.
난 즉시 두 번째 사진을 내밀며 말했다.
“백번을 양보해서 그렇다 치고, 그럼 이건 뭡니까.”
사진에는 대형 트레일러들이 찍혀있었다.
무려 수십 대에 달하는.
중요한 점은 사진마다 날짜가 다 다르다는 건데, 그럼 대충 계산해도 총 이백 대가 넘는 규모였다.
“……그냥 평범한 컨테이너들 같습니다만, 이게 문제 될 것이라도 있는 겁니까?”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문제 될 것은 없죠. 하지만 이 민감한 시기에 몇 날 며칠간 군수공장에서 이런 것들이 흘러나온다면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흠흠.”
“게다가 일반적인 컨테이너의 규격은 보통 40피트를 넘지 않죠. 하지만 이건 아무리 분석을 해 봐도 50피트가 넘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소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파리해져 갔다.
아마 속으로는 꽤나 놀라고 있겠지.
하긴, 딴에는 철저한 분산 이동과 위장으로 들키지 않을 거라 자신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우리의 정찰자산은 미국과 맞먹을 정도다.
뭐 수적으로는 그들을 앞설 수야 없지만 대조와 분석 측면에서만큼은.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컨테이너에 아무리 못해도 사거리 1,500킬로미터에 달하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들이 실려 있다고 보는데, 그동안 서방과 우리 눈을 속이면서 이런 걸 만들어 내시느라 꽤 힘들었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소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어차피 탄로 난 상황이면 가릴 것이 없다고 생각한 걸까, 이내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더니 말투 또한 특유의 것으로 돌아가 있었다.
“상상이 지나치시군. 명색이 일국의 특사 자격으로 온 사람에게 하는 말투치고는 지나치게 무례하고.”
“내가 한 말이 상상인지 아닌지는 조만간 보면 알 일이겠죠. 그리고 난 지금 최선을 다해 예를 지키고 있는 겁니다.”
아소의 얼굴이 꿈틀하고 일그러졌다.
이내 무어라 반발하려는 듯 그의 입술이 다시 움직이려는 차.
갑자기 대통령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선전포고도 없이 상대의 뒤통수를 때리는 그 못된 버릇은 안 고쳐질 모양이군.”
아소는 나보다 더 예의를 무시한 대통령의 태도에 눈을 부라렸다.
시선을 무시한 대통령은 대뜸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내 그를 향해 선언했다.
“숨겨 두었던 탄도미사일까지 꺼내 들었다는 것은 전쟁을 각오했다는 건데, 좋소. 일본의 의지가 그렇다면 우리도 받아들이지. 가서 전하시오, 현 시간부로 통일 한국은 일본을 향한 무력 행사를 결정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