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13화 (313/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13화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장악한 탈레반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소식통에 의하면 자신들의 재집권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사우디와 UAE에 대해 외교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수사를 동원해 비판을 가했다고 알려졌으며…….]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서는 오늘 원인 모를 차량 폭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24명의 인명 피해가…….]

[탈레반은 UAE에서의 테러와 자신들의 연관성을 극구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설치되어 있던 CCTV를 분석한 결과 해당 현장에서 수상한 행적을 보인 사내들 중 일부가 탈레반 소속 전사들임이 밝혀졌고, 그로 인해 현재 UAE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재집권을 전면 부정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사우디 정유 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이 시도되었습니다. 다행히 현지에 배치 중인 비호복합에 의해 모두 격추되기는 했지만, 일부 드론들에 의한 비핵심 시설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탈레반에 의한 중동의 혼란은 점점 더 심화되어 갔다.

예정했던 반 탈레반 연합의 결성이 이루어진 것은 당연한 순서.

약속대로 재우PMC의 일부 대원들 역시도 사우디를 향해 출발했다.

“네, 현재로선 다수의 병력들보다는 중장갑 위주의 병력들만 보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사실 재우PMC의 역할은 전면에서 전투를 치르는 것이 아니니까요. 일단 도착해서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

그새를 못 참은 대통령은 재우PMC의 파견 병력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아무리 민간 업체라고는 해도 우리 국민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야 신경이 쓰이는 것이 당연한 일일 터다.

“어지간히도 신경이 쓰이시는 모양이군요. 그나저나 그 친구. 정말 믿을 만한 겁니까?”

전화를 끊곤 넌지시 옆자리에 있던 안 실장을 향해 물었다.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음에도 용케 의미를 알아들은 안 실장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믿을 만합니다. 말이 일본인이지, 일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니까요. 왜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꽤 많지 않습니까. 겉만 한국인이고 속은 오히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같은.”

“뭐, 그렇기는 하지만…….”

잠시 반박을 하려다가 되삼켰다.

그래도 핏줄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 해도 해 둘 것은 확실히 해 두자는 생각에 몇 번이고 확인을 거듭하자 안 실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우지시마 그 친구, 아내가 한국계입니다. 게다가 부모님들 역시 일본이라는 나라의 병폐에 이골이 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케이스고요. 결정적으로 그 정보는 다중 정보채널을 통해 교차검증을 끝낸 것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야 뭐. 그런데 이민자 출신이 용케 총리공관의 관리자로 발탁이 됐군요.”

“그거야 국정원의 공이 컸죠. 모르시나 본데 국정원도 꽤 유능한 집단입니다.”

안 실장은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런데 그걸 알까?

지금이야 세상이 변해서 국정원이 그렇듯 유능한 집단으로 거듭났지만, 회귀 전에는 꽤 비리가 많았던 곳이었음을.

“그건 그렇고, 정보습득에 사용된 장치가 발각될 가능성은 없겠죠?”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친구 보직이 바로 관저 관리니까요. 뭐, 장소가 장소다 보니 내각조사처의 검사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 타이밍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바로 관리원이라는 직책 아니겠습니까?”

웃음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어느새 차량은 청와대로 진입한 상황.

마침 외부 회의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본관 앞에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있었고, 그들 사이로 대통령의 모습도 보였다.

“어서 오세요.”

뜰을 걷고 있던 대통령은 내 차량을 보자마자 반색하며 다가왔다.

뒤로는 줄줄이 청와대 참모진들을 달고 있던 상태.

불현듯 생뚱맞은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일본 총리 공관에도 우리 측 정보원이 있는 판국에 이쪽에도 일본 프락치가 없다는 보장은 못 하지.’

가뜩이나 우리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 시기라면 더더욱.

“웬일로 밖에 나와 계십니까.”

잠시 들었던 생각을 떨쳐 내고 대통령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이미 머리에 박힌 의심 때문일까, 눈이 계속해서 참모진들을 향해 돌아간다.

“하도 날이 좋아서 오늘은 밖에서 회의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들어가십시다.”

“아니요, 기왕이면 저도 오늘은 밖에서 대화를 좀 나눴으면 싶군요.”

관저로 이끄는 대통령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내 눈빛에서 뭔가를 읽은 걸까, 대통령은 두말없이 길잡이를 자처했다.

“혹시 대화가 새 나갈 것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한창 정원으로 향하는 도중 대통령의 질문이 날아왔다.

이미 참모진들과의 거리는 꽤 떨어져 있던 터.

슬쩍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대통령님께서도 국정원의 보고를 받으셨지 않습니까. 일본 총리 공관에서 정보가 새 나올 정도면 우리라고 그렇지 말라는 법은 없죠.”

“하긴, 나도 소식을 듣고 처음에 그 생각부터 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 참모진들 중에 설마 그런 인물이 있겠습니까?”

“글쎄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죠. 그건 그렇고, 오늘 찾아뵌 것은 대통령님의 의중을 확인하고 싶어서입니다.”

대통령은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이내 뒤따라오던 참모진들을 향해 손을 뻗은 그는 저들과의 거리를 잠시 가늠하곤 다시 나를 쳐다봤다.

“내 의중이야 변함이 있겠습니까. 기회가 된다면 이제 일본의 지긋지긋한 억지에서 벗어나고 싶죠.”

그 말은 곧 일본을 향한 무력시위에 여전히 동의함을 뜻했다.

뭐, 그 계획은 애초부터 대통령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니 이제 와서 바뀔 이유는 없겠지.

사실 미국이 일본과의 무력분쟁을 용인했던 날, 누구보다 앞서 그 의사에 환영의 뜻을 밝힌 것이 바로 대통령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결정에 반대한 인물들이 저들 중에도 꽤 있군요.”

물론 그 결정에 모두가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아무리 국지적인 무력분쟁이라고는 해도 전쟁은 전쟁.

그걸 한마음으로 환영한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뭐, 대통령님과 가장 가까운 비서실장님 역시도 처음엔 반대파 중 하나였죠.”

하지만 지금에 와서 반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미스비씨를 향한 압류결정에 대응하여 자국 내 한국 자본을 압류해 버린 저들의 태도.

그리고 끝내 위안부. 아니, 성 노예 사건을 부정하며 전 세계에 조작된 여론을 조성하는 저들의 파렴치함에 학을 뗀 거지.

결정적으로 일본은 이제 미국과 우리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상황.

이제까지처럼 신사적으로 대해 줄 이유가 없다는 점이 생각을 고쳐먹는 것에 일조했을 거다.

“한 실장이야 워낙 평화주의자니까요. 그나저나 일본이 이란을 이용해서 위기를 벗어나려는 생각을 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먼 산을 바라보던 대통령은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하긴, 이건 자칫 일본의 명줄을 아예 끊어 놓는 결과까지 야기할 수 있으니까.

막말로 이란까지 중동 사태에 끌어들이면 미국이 다시 재진출을 해야만 하는 건데.

그 상황에서 미국이 과연 그 원흉인 일본을 가만히 두겠는가.

“그만큼 다급했다는 거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이해도 간다.

일본은 지금 단순히 코너에 몰렸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상황.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 오히려 합당할 정도로.

그 경우 나조차도 찍소리 정도는 내고 싶을 것이고, 뒷감당을 생각하는 것은 사치라고 여길 거다.

“맞아요, 다급하기도 했겠죠. 믿었던 미국이 결국엔 자신들을 버렸으니까. 그나저나 이제 어쩌면 좋겠습니까. 일본의 공작이 성공하여 이란이 이번 중동 사태에 관여하면, 문제가 우리 생각처럼은 안 풀릴 것 같은데.”

“당연히 막아야죠.”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구체적인 설명을 원하는 눈빛.

워낙 중대한 문제였던 터라 난 조용히 대통령의 귓가에 속삭였고, 이후 대통령은 부릅떠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란을 포섭한다고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이미 미국과는 협의가 끝난 상황이니까요.”

“흠…….”

대통령의 표정은 한층 밝아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내 한참을 허공만 쳐다보던 그가 넌지시 물었다.

“명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비록 앞뒤가 잘려 나간 말이었지만 뜻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결국 내 계획이 성공하여 우리 군이 굳이 중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면 일본을 응징하는 것을 미루지 않아도 될 터.

그럼 이제 어떤 식으로 그들을 엮을 거냐는.

막 대꾸를 하려는 차에 대통령의 말이 한발 더 빨리 튀어나왔다.

“미리 말하지만, 과거 일본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억지를 부리는 방식은 곤란합니다.”

“그야 당연합니다. 명분 없는 싸움은 결국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게 만드니까. 사실 저 역시 그 부분이 가장 골칫거리였는데, 다행히도 그걸 일본이 해결해 준 셈입니다.”

대통령은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히죽 웃어 보이곤 국정원 보고서의 내용 일부를 언급하자 그가 뒤늦게 이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군요.”

“뭐 이란을 포섭해야 한다는, 그리고 그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전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게 힘들지는 않을 겁니다. 이란도 결국 상황판단을 못 하는 바보는 아니니까요.”

“…….”

***

그로부터 며칠 후, 난 전용기를 통해 이란에 도착했다.

이란 정부와는 꽤 오랫동안 관계가 소원해져 있던 터라 중재자로 푸틴을 내세웠던 상태.

그나마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한 이란 대통령은 흔쾌히 나와의 만남에 동의한 상태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오는군요.]

첫인사를 건네는 호매니 대통령의 눈에선 불똥이 튀었다.

이해 못 할 바도 아닌 것이 과거 이란의 핵 과학자 몇몇이 나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으니까.

뭐, 겉으로야 나와의 연관성은 없다지만 이란 같은 나라에서 그걸 모를까.

아마 나를 상대하는 것은 꽤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을 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탈레반과의 협력을 중단해 주십시오. 그럼 이란을 향했던 모든 제재가 풀릴 겁니다.]

[제재를 푼다?]

호매니는 예상과는 달리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그간의 경험. 즉 그동안의 약속을 몇 번이고 뒤엎었던 미국의 태도로 인해 그들을 향한 믿음이 사라져 버린 거지.

[이번 약속은 믿을 만합니다. 그 첫 번째 증거가 앞으로 중동 문제에서 완전히 발을 빼는 거죠. 그건 이스라엘도 이젠 이란에 대한 적대적 행위를 중단해야 함을 의미하는 건데, 그 정도면 믿을 만한 약속 아닙니까?]

[뭔가 착각하시나 본데, 미안하지만 미국이 없다고 이스라엘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은 개가 웃을 일이외다.]

사실 나도 전에는 그걸 확신하지 못했었다.

애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미국의 눈치를 보는 국가가 아닌 마당에 과연 미국이 없다고 그 독불장군식 정책을 그만둘까 싶은.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지금처럼 미국 내 유대세력까지 미국 위주의 정책으로 돌아서 버린 현실 앞에선 이스라엘도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이미 변화는 진행 중이다.

‘그나저나 그 부분은 솔직히 좀 이해가 안 가네.’

이스라엘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미국 내 유대세력들이 왜 갑자기 미국 위주의 정책에 동의한 것인지.

[모르시나 본데, 현재 이스라엘은 사우디 연합과 손을 잡고 있습니다. 그 연합에는 시리아도 간접적으로 관여를 하고 있죠.]

잠시 들었던 생각을 떨쳐내며 뱉은 말에 호매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무리 간접적인 참여라지만 시리아가 참여한 그룹에 이스라엘이 협조한다는 것은 물이 기름과 어울렸다는 것과도 같으니까.

쐐기를 박기 위해 말을 이었다.

[그 말인즉, 이슬람을 향한 그들의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호매니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눈은 연신 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상태.

머릿속에서 셈을 하는 중인 모양인데, 예상처럼 눈빛이 확 바뀌며 되묻는다.

[제재를 푼다는 것은, 과거 미국이 동결했던 석유수출대금도 회수할 수 있음을 의미하겠죠?]

난 속으로 헛웃음을 뱉었다.

이렇게까지 저울추가 쉽게 기울 줄은 몰랐거든.

뭐, 현재 이란의 상황을 보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온갖 제재로 피폐해져 버린 경제.

그리고 좀처럼 빛이 보이지 않는 미래.

[그야 당연하죠. 더불어서 미국과 한국. 그리고 러시아를 아우르는 3국 연합과 새로운 미래를 그려 갈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순간 호매니의 입가에 미소가 내비쳐졌다.

하긴, 우리와 적대적 관계를 해소한다는 것만큼 저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또 어디 있을까.

물론 우리로서야 저들의 핵개발 재시도 가능성이 골칫거리가 되겠지만, 당장은 그런 무리한 짓은 하지 못할 거다.

같은 길을 가던 북한의 결말이 어땠는지는 누구보다 그들이 더 잘 아니까.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난 그 타이밍에 다시 운을 띄웠다.

잔뜩 좁혀진 호매니의 눈이 나를 향하고, 난 마지막 문제 해결을 위한 화두를 던졌다.

[미국이 제재를 푸는 것은 한 달 후쯤이 될 겁니다.]

[한 달 후? 굳이 그렇게 시간을 두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는 묻지 마시고, 그사이 일본으로부터 약속받은 제재대상 물품들을 예정대로 수입하시죠. 참고로, 그게 밝혀져서 잠시 이슈가 되더라도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어차피 미국은 그 책임을 이란에게 묻지 않기로 약속되어 있으니까요. 아니, 단순히 책임을 묻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곧바로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공표할 겁니다.]

[그건 또 무슨…….]

호매니는 당황하는 눈빛을 보였다.

방금 내 말은 평화 협정을 앞두고 느닷없이 범죄를 저지르라는 말이니 당연히 이해를 못 할 수밖에.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긍정적인 결과는 늘 그 이전에 발생한 문제를 덮고 넘어가기 마련.

쉽게 말해서 이란과의 평화적인 분위기 조성이 이루어지면 그 전에 저지른 자잘한 실수야 굳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일본은 상황이 다르지만.’

[대체 왜 그런……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우리가 일본에서 제재대상 물품을 수입할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은 또 어떻게 알았습니까?]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방금 제가 했던 말은 꼭 지켜 주셔야만 합니다.]

암, 지켜 줘야 하고말고.

기껏 우리가 일본을 때릴 제대로 된 명분을 얻었는데, 그걸 날릴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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