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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12화 (31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12화

끼익!

2015년 7월 8일.

도쿄 나가타초에 위치한 총리 관저엔 오늘따라 꽤 많은 수의 차량이 몰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났나?”

몰려든 사람의 대부분은 내각의 핵심 관료들.

사전 연락도 없이 우르르 몰려든 국가의 주요 인물들로 인해 관저 관리자들은 잔뜩 긴장의 빛을 내비쳤다.

“총리께선 안에 계신가?”

가장 먼저 차량에서 내린 이는 아소 부총리였다.

특유의 거만한 표정.

지금과 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계급주의에 사로잡혀 남을 깔보는 그의 태도는 관리자들에겐 늘 불평의 대상이었다.

“네, 아직 내실에 계십니다.”

“쯧쯧, 기껏 관료들을 죄다 불러놓고 아직도 내실에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아소의 거만함은 총리를 상대로도 마찬가지였다.

무리도 아닌 것이 아소는 집안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의 산 역사이자 우익들의 정점에 선 인물.

게다가 스스로 총리의 자리를 거부할 뿐, 실질적으로는 일본정치계의 우두머리 격인 존재가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뭐 하고 있어! 올라가서 우리가 도착했다고 알리지 않고.”

아소의 호통에 관리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제 30대 초반에 불과한.

그것도 미국에서 무려 20년 이상을 유학하고 돌아온 젊은 공무원인 우지시마로서는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이런 일본 관료들의 고루하고 시대에 뒤처진 면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밝히며 아소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

“이렇게 관저로 모이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뒤늦게 집무실로 들어선 아베는 곧장 자신의 의자로 향했다.

때마침 총리석의 옆에 자리하고 있던 아소의 굼뜬 엉덩이가 들썩였고, 두 사람은 짧은 눈인사와 함께 각자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오늘 모이시라고 한 것은 최근 내각조사처를 통해 조금 심각한 정보가 입수되었기 때문입니다.”

“…….”

관료들은 그 말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처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일본의 상황에서 더 안 좋은 소식이랄 것이 뭐가 있느냐는 양.

우습게도 그건 아소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최근 들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은퇴 요구를 수습하기에도 바쁜 그로서는 지금 어지간한 소식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입에 올리기는 좀 뭣하지만, 아무래도 미국이 우릴 한국의 식민지쯤으로 만들 생각인가 봅니다.”

그때, 아베가 폭탄 같은 말을 던졌다.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무슨…….”

“우리가 고작 한국 따위의 식민지가 되라니. 양키 놈들이 지금 제정신인 겁니까?”

놀란 관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을 뱉어 냈고, 그제야 눈이 초롱초롱해진 아소 역시도 자세를 가다듬은 채 되물었다.

“확실한 거요?”

아베는 그 말에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아소의 눈빛.

아베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내각조사처가 운영하는 각종 정보처들의 데이터와 미 정부 곳곳에 심어 둔 우리 측 정보원들의 조사 결과가 거의 일치합니다. 하니 확실하다고 할 수 있죠.”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세요.”

아소는 이제 사태 파악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일본이 한국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처분될 대상이 바로 아소의 가문이니까.

어디 아소뿐일까, 현재 회의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지.

그럼에도 먼저 나서지 않는 이유는 아소의 다급함이 그들보다 앞서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만큼 우리가 자신들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에 분개하고 있다는 증거겠죠.”

“그거야 각오했던 문제고, 그렇다고 우리를 한국의 밑으로 들어가게 만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죠. 어차피 과거 우리 역시도 미국에게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것을 인정받았던 전례가 있으니까. 물론 이 시점에서 식민지라는 표현은 전적으로 제가 한 것입니다만, 결국 의미는 같지 않겠습니까?”

“…….”

“아무튼,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미국이 예상보다는 훨씬 강력한 대처로 우릴 몰아세울 모양인데, 그렇다고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소는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미국의 반격이야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이건 지나치게 과격한 조치가 아니던가.

각오했던 일본산 자동차들에 대한 제재나 여타 경제적인 압박 따위와는 비교조차도 되지 않는.

“중국에서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까?”

아소는 생각의 끝에 되물었다.

뭔가 소득이 있었던 걸까, 순간 아베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내비쳐졌다.

“다행히 중국과는 협의가 됐습니다. 해서 조만간 베이징에서 비공식 회담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말에 아소가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곧 표정이 굳어진 이유는 일이 이렇게까지 악화되게 만든 한국에 대한 근본적인 분노 때문.

그들만 아니었다면 일본이 이렇게까지 몰락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며, 결국 미국을 등지는 황당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빌어먹을 조센징들 같으니. 진즉에 싹을 밟아 버렸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뭐 하겠습니까.”

나지막이 뱉어 내던 불평은 아베에 의해서 가로막혔다.

힐끗 아소의 시선이 아베에게로 향하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해서 제가 과거에도 그토록 한국제재를 주장하며 발버둥을 쳤었지만, 결국 일본 정치계는 오히려 나를 몰아내기에 바빴죠.”

아소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과거 아베가 정책 실패로 내각에서 쫓겨날 당시 그 역시 방패가 되어 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다.

미국의 압력은 둘째 치고, 온 국민들이 한국의 경제공격에 몸서리를 쳤었기에.

“지나간 이야기는 또 왜…… 아무튼, 미국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더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소이다. 더군다나 국민들도 이젠 미국의 일방적인 한국 편향에 지쳐 있는 상태고.”

“그게 핵심이죠. 이제 일본 국민들도 미국이 더는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살길은 우리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아베는 그 말에 동의하곤 웃어 보였다.

마주 미소를 내비치려던 아소는 또 뭐가 생각난 건지 퍼뜩 표정을 바꾸며 묻는다.

“그나저나 한국의 공세를 막아 낼 수 있기는 한 거요? 막말로 경제계 곳곳은 이미 재우에게 점령당한 지 오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소부장 분야도 한국과 기술 수준이 동등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건 둘째 치고, 미국이 묵인을 한 마당이면 자칫 무력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만 곤란해지지 않겠소?”

아소는 한국과의 무력 분쟁결과를 확신하지 못하는 투였다.

아무리 그 분야에 대해 모른다 해도 그가 한국을 상대로 큰소리를 치던 시절과 지금은 엄연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기에.

그때, 아베가 그의 기를 한층 더 꺾어 놓는 말을 뱉어냈다.

“당연히 곤란해지겠죠. 국지전은 물론 전면적인 무력 충돌에서 우리가 한국을 이길 가능성은 없으니까. 그건 제 말이 아니라 자위대의 막료장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입니다.”

“설마.”

아소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한국의 군사력이 발전했어도 일본은 한때 아시아를 주름잡는 해군력과 공군력을 갖추었던 국가인데, 그리 쉽게 당할 리가 없지 않던가.

하지만 이어진 아베의 말은 그의 기대를 무참하게 무너트렸다.

“심한 경우 불과 3시간 만에 자위대의 핵심시설들이 궤멸적인 타격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럼 어찌 대처할 생각이오.”

아소는 마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기세였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그의 당황하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관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해 쏟아졌지만, 정작 아소는 그런 시선들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다는 겁니다. 아니, 미국이 의도치 않게 우리를 돕고 있는 거죠.”

아소와 관료들은 동시에 아베를 쳐다봤다.

순간 뒤를 쳐다본 아베는 마침 대기 중이던 자신의 비서에게 무언가를 건네받았고, 이내 그것을 관료들에게 전달했다.

“내각조사처의 분석에 따르면 현 중동사태는 중국과 유럽을 견제할 목적으로 미국에 의해 계획된 것이며 그들의 전략대로라면 향후 장기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아소를 비롯한 관료들은 보고서의 내용을 살피며 그의 말을 경청하는 중이었다.

시간을 주려는 듯 아베는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고, 이후 유독 심각한 얼굴로 보고서를 탐독 중이던 아소가 부정적인 투의 말을 던졌다.

“미안하지만 총리께선 지금 중동 사태로 인해 한국이 우리와의 무력 분쟁을 일으킬 여력이 없음을 강조하고 싶은 모양인데, 이 보고서에 따르면 그건 오판이외다. 사우디와 UAE. 그리고 이라크가 협력하는 상황이면 설사 중국이 관여한다 해도 힘의 균형은 팽팽할 테니까.”

“그렇죠.”

“답답하기는, 그건 곧 미군과 한국군까지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론적으로 한국이 중동 문제에 매몰되어 우리에게 시선을 돌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거요.”

아베는 그 말에 지긋이 미소 지었다.

“정확한 분석이십니다. 물론 재우PMC가 파견되기는 하지만 그게 한국군의 관여는 아닌 만큼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우리를 공격할 여유가 생기죠.”

“내 말이 그거요. 그럼 이게 어떻게 하늘이 우릴 돕는 것이 되느냐는 말이외다.”

가뜩이나 지렁이 같았던 아소의 눈은 한껏 더 가늘어졌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비친 아베가 또 다른 보고서 한 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탈레반을 돕는 것이 중국만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예를 들면 대페르시아의 후손들이 탈레반과 손을 잡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란?”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힘의 균형은 단숨에 무너지고 한국은 물론 미국도 중동 땅에 다시 발을 들여놔야 할 겁니다. 이란은 그리 만만한 전력을 가진 국가가 아니니까. 하면 당연히 한국이 우리와 무력 분쟁을 시도할 여력은 없어지는 것이고, 우린 그사이 살아남을 길을 찾는 거죠.”

아소와 관료들의 눈은 동시에 부릅떠졌다.

제일 놀란 것은 역시나 아소 부총리.

그는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결과를 떠나서 이란이 대체 왜요?”

“그야 당연히 중동 땅에서 이란만큼 반미를 추구하는 나라는 또 없으니까요.”

“허어.”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 기회는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걷어 낼 수 있는 기회이자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보장받을 수도 있는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이란이 놓칠 것 같습니까? 물론 지금이야 침묵하고는 있지만 누군가 옆구리를 조금만 찔러 줘도 움직일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

아소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움직였다.

가능성과 결과를 가늠하는 모양새.

그때 아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아무튼, 현재 내각조사처는 이미 이란과 접촉을 시도 중입니다. 뭐 저쪽에서 무리한 요구가 있기는 했지만 그거야 당장 닥친 위기 상황에 비하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아니죠.”

“무리한 요구라니?”

“제재대상 물품 말입니다. 각종 공작기계류나 무기개발에 전용 가능한 물품들을 비밀리에 조달해 주기를 원하더군요.”

“맙소사! 그걸 응했다는 말입니까?”

아소는 기함을 토했다.

후에 감당해야 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

하지만 정작 아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총리, 지금 제정신입니까? 아무리 우리가 미국에게 등을 돌렸다곤 해도 선이라는 것이 있는 겁니다. 미국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일본의 운명은 정말로 끝장난다는 걸 모릅니까?”

“그렇겠죠. 한데 잊으셨습니까? 이미 미국은 우릴 버렸다는 사실을? 아니 단순히 버린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그저 소모품쯤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죠.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 남은 운명은 먹히느냐 먹느냐 뿐입니다.”

아베는 재빨리 아소의 말을 반박했다.

그게 통한 건지 아소의 입이 다물어졌고, 기세를 탄 아베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난 일본이 영영 한국의 속국이 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멸망을 택하겠습니다.”

“…….”

***

“자네 뭐 해?”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우지시마를 향해 동료 관리인이 물었다.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우지시마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대꾸했다.

“아! 그냥 좀 생각할 일이 있어서.”

“싱겁기는. 그나저나 오늘 회의가 유독 길어지는 것 같지 않아?”

“뭐, 할 말들이 많은 모양이지. 우리 같은 말단 공무원들이 상관할 일은 아니잖아?”

우지시마는 괜한 일에 관심을 갖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지금은 누군가와 잡담 따위를 나눌 상황이 아니기에.

아무리 작다 해도 귀에 꽂혀 있는 리시버를 들키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야말로 끝이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동료는 그의 어색한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고, 연신 시답지 않은 농담만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자네 처제 말이야. 조선인치고는 대단한 미인인 것 같던데, 내게 소개해 줄 생각 없어?”

“무슨 소리야? 자넨 이미 결혼했잖아.”

우지시마는 황당한 마음에 반박했다.

그럼에도 끝내 고개는 돌리지 않은 상황.

여전히 그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채지 못한 동료는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이 친구, 시대에 뒤처진 소리 하고 있네. 연애와 결혼은 별개의 문제라는 거 몰라?”

“…….”

“솔직히 그 정도 미모의 처제를 그냥 보고만 있는 자네가 이상한 거야. 나 같으면 벌써…… 에이, 됐다.”

우지시마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삼켰다.

괜한 논쟁으로 일을 망칠 수는 없으니까.

눈치를 보던 동료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 친구, 뭘 그런 눈으로 쳐다봐? 솔직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결혼한 우리 또래들 중 그런 경험 있는 놈들이 꽤 많을걸?”

동료는 천륜을 저버리는 짓을 별스럽지 않은 일인 듯 말했다.

하지만 저건 강간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분 받지 않은 사실을 술자리에서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는 동료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

다들 본심을 숨기고 있어서 그렇지, 꽤 많은 수의 일본인들에게 도덕심이라는 것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것을 그는 진즉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긴, 자네는 외국에서 워낙 오래 살다 와서 우리 문화에 대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겠군. 아무튼 그 문제는 이따가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대화를 좀 해 보자고.”

동료는 웃으며 돌아섰다.

긴 한숨과 함께 재빨리 리시버를 꺼낸 우지시마는 멀어지는 동료의 뒤통수를 향해 중얼댔다.

“대체 이 나라는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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