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11화
“시스템이 운영자에게 애착을 갖는 상황이면 전투 수행 과정에서도 운영자의 보호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인즉, 우리가 AI를 개발하기 시작한 근본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거죠.”
가늘어진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느낀 걸까, 최인배가 다시 설명을 잇는다.
“사실 우리가 AI를 개발한 이유는 아군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과 동시에 생존성을 높이기 위함 아닙니까. 그런데 시스템이 운영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목적에 부합한 결과가 아니냐는 거죠.”
“무슨 말인 줄은 압니다. 하지만 그건 반대의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죠.”
“…….”
“예를 들면, 운영자가 시스템에 지나친 애착을 가지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그렇게 되면 오히려 병사가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습니까?
순간 최인배가 우물쭈물했다.
끝내 설마 하는 표정.
하지만 난 그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인간의 애착은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하다못해 애완동물에게 쏟는 정성만 봐도 그렇죠.”
“하지만 애완동물은 생명체 아닙니까. 그것과 무생물인 컴퓨터시스템을 비교하시는 것은 좀…….”
최인배는 이어진 내 설명에 즉시 반발했다.
우스운 것은 막상 자신의 주장에 확신이 없는 표정이었다는 것.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물론 AI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과 완벽한 언어소통을 하며 쌓이는 감정의 교류는 자칫 착각이라는 것을 일으키게 만들기 쉽죠. 해서 어찌 보면 생명체를 향한 애착보다 그게 더 위험할 수도 있는 겁니다.”
최인배는 끝내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하필이면 그때, 문이 열리며 공항에서 오던 중이라던 차지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국을 신고합네다.”
상황을 모르는 차지환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곧 분해된 다각전차를 발견한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더니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전차의 부품들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이, 이 에미나이가 왜 저런 꼴로 있는 겁네까?”
“차지환 대원.”
난 최대한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 상황과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빨리 인식시켜 주기 위해서.
효과가 있었던 듯 퍼뜩 다시 시선을 내게로 향한 그는 재빨리 부동자세를 취했고, 난 그를 향해 다시 말했다.
“에바가 처음으로 당신의 말투를 따라 한 것이 언제입니까?”
상황을 눈치챈 듯 차지환은 눈을 뒤룩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뭐 잘잘못을 따진다면 애초 그에게 운영을 맡긴 내가 더 잘못이 더 크고, 지금은 그걸 따지려는 자리도 아닌 터.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이었음을 몇 번이고 강조하고 나서야 그의 대꾸가 들려왔다.
“그거이…… 첫 촬영 때부터 그랬습네다.”
“영화에서 그런 장면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나만 못 본 겁니까?”
“그게 아니라 감독이 그 장면을 삭제한 거디요. 안 그래도 그걸 써먹느냐 아니냐를 두고 스태프들끼리 꽤 말이 많았는데, 끝내는 삭제하기로 했다고 들었습네다.”
얼핏 이해가 가는 결정이었다.
분위기를 극단적으로 끌고 가야 할 외계의 첫 등장 장면에서 갑작스러운 AI의 욕설은 솔직히 좀…….
생각을 접고 다시 물었다.
“그럼 전투 과정에서는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에바에게 음성 시스템을 이식한 것은 꽤 오래전이고, 차지환 대원과의 교류 시간을 생각하면 사전에도 기미가 보였어야 정상이라서 하는 말입니다.”
“전투에서는 일절 그런 기미가 없었습네다. 오죽했으면 제가 지나치게 딱딱한 말투에 면박을 줬을 정도였으니까니.”
사실이라면 또 한 번 놀랄 일이었다.
저 말인즉, 에바가 때와 장소마저도 가린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주변 환경과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 아래 해도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있다는.
난 한참을 고민한 끝에 돌아서선 저편에서 여태 멍하니 서 있던 김 실장을 향해 말했다.
“혹시 지금 스타필드 영화사와 접촉이 가능하겠습니까?”
“지금요?”
“내 눈으로 문제의 장면들을 직접 봐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것 같아서요. 가능하다면 편집된 자료들을 좀 보내 달라고 하세요.”
김 실장은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곤 연구동을 나갔다.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기다림에 지쳐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차에 갑자기 저편에서 차지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께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네다.”
휙!
언제부터였는지 그는 분해된 전차의 부품들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표정.
절로 눈이 가늘어지려는 찰나, 그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말을 뱉어 냈다.
“혹시라도 저 에미나이를 지워 버리실 생각이시면 부디 재고해 주시라요.”
난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인배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저건 조금 전 내가 했었던 주장을 뒷받침하는 행동이었거든.
시스템을 향한 인간의 애착이 어쩌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더없이 확실한 증거를 눈으로 봤기 때문일까, 최인배가 비로소 푹 하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리셋…… 하시죠.”
“연구원 동지!”
듣고 있던 차지환은 당황하여 최인배를 향해 소리쳤다.
이건 마치 제 혈육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라도 들은 자와도 같이 격한 태도.
그때, 머릿속에서 제법 그럴듯한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지 말고 우리 연구 분야를 이원화합시다.”
“…….”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커피 대신 테이블에 있던 음료를 잔뜩 들이켜곤 다시 말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 에바의 시스템을 다각전차들의 메인 통제 시스템으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불안 요소를 달고 있는 시스템을 전투에 활용할 수는 없으니까.”
“…….”
“해서 메인 시스템은 에바의 초창기 모델에 일정한 원칙을 적용하여 다시 학습시키는 것으로 하고, 현재의 에바는 독립된 개체로 두어서 학습 방향을 지켜보자는 겁니다.”
차지환의 얼굴은 순간 화색을 띠었다.
정확한 의미는 몰라도 에바가 살아남는다는 사실쯤은 알아들은 거지.
그와는 반대로 최인배는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왜 저걸 굳이 독립 개체로 남기시려는 겁니까?”
“글쎄요, 저만한 연구 대상도 또 없지 싶어서? 솔직히 난 에바의 학습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가 궁금한데, 최인배 씨는 안 그런가 보죠?”
최인배는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연구원으로서 규격 외의 것의 등장이 궁금하지 않을 리가 있나.
한참을 멍하니 나를 쳐다보던 그는 결국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하긴, 메인 시스템과 차단된 상태면. 그리고 일정한 한계치를 두는 알고리즘만 적용된다면 저건 그야말로 말 잘하는 장난감에 불과해지죠.”
“그렇다고 장난감으로까지 추락하지는 않습니다. 갖춘 무장력이 워낙 대단해서.”
난 농담으로 그의 말에 반박했다.
이내 힐끗 차지환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분위기를 파악한 차지환은 재빨리 분해된 에바를 향해 달려갔다.
“이보라우, 에미나이. 회장님 말씀 들었네? 너 살았어야.”
난 고개를 저으며 다시 최인배를 쳐다봤다.
비록 에바의 시스템 유지를 결정짓기는 했지만, 해야 할 것은 확실하게 해야 하기에.
이후 한참을 에바에게 적용될 원칙을 논의하는 와중, 저편에서 차지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미나이 방금 뭐라고 했니? 뭐이 어드래? 지긋지긋한 간나새끼?”
“…….”
***
[속보입니다. 현지 시간 14일 새벽, 탈레반 정권은 대변인을 통해 리비아를 점령 중인 프랑스군을 향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015년 7월.
미군의 철수로 빠르게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은 드디어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작업은 역시나 유럽의 중동 진출에 대한 극렬한 거부 의사 표명.
이로써 미국의 시도가 아주 허튼 것은 아닌 셈이 됐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미국의 뜻대로만 되어 가지는 않았다.
[탈레반 정부는 향후 중동에서의 모든 외세의 간섭을 거부한다.]
이대로라면 자칫 미국의 영향력도 잃어버릴 상황으로 사태가 비화될 수도 있었다.
저들의 진정한 목적은 중동에서 외세의 간섭을 배제한 완전한 이슬람 제국의 건설인 마당에 그 기회를 놓칠까?
더군다나 현재로서는 미국의 재진출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예상하건대, 최악의 경우엔 중동은 이제 과거 영국과 미국이 석유를 두고 헤게모니를 펼치던 시대 이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석유 자원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이전의 세상으로.
‘혹시 애초부터 미국은 중동에서 발을 뺄 생각을 한 건 아닐까?’
상황이 하도 답답하게 흘러가다 보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혹여 미국은 이제 중동의 석유 자원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닐까 싶은.
하지만 미국의 기축통화 지위는 결국 달러를 통한 원유 결제에서 비롯된 것.
그걸 염두에 두면 또 지나친 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지.’
그때, 불현듯 제법 그럴듯한 생각 하나가 스쳐 갔다.
혹시라도 미국이 석유 결제를 근본으로 하지 않고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확신을 얻은 것은 아닐까, 싶은.
‘흠…….’
그게 꼭 무리한 상상이 아니라는 증거는 차고도 넘쳤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경제위기를 몇 번이나 거치면서도 건재한 미국의 현실.
사실 이제 달러는 꼭 석유 결제 수단이 아니라도 절대적인 기축통화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결과 이어진 무제한 달러 발행에 전 세계가 둔감해져 있지 않던가.
아니, 오히려 미국의 정책에만 목을 매는 상황이 되기까지.
‘이거 어째…….’
물론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몰락을 경고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아마 그런 때가 오면 미국은 또 다른 방법으로 위기를 빠져나갈 거다.
‘MMT.’
순간 자연스레 일본의 MMT이론이 떠올랐다.
기축통화국은 화폐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무제한 발행이 가능하다는 현대통화이론.
한때 난 그걸 바탕으로 한 아베노믹스가 미국의 실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상황이 이러면 틀린 생각은 아니지 싶다.
즉,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사전 점검을 함으로써 기축통화의 무제한 발행에 대한 영향력을 확인해 본 거지.
뭐, 비록 일본이야 결국 망국의 길을 걸어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MMT 이론이 틀렸다는 증거라고는 할 수 없다.
나. 아니, 우리의 경제공격과 자연재해.
그리고 미국이 엔화의 신용도 하락을 용인한 것이 원인이었지.
‘이것 봐라?’
생각이 그에 미치자 갑자기 이 현실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미국이 이토록 과감하게 중동에서 발을 빼 버린 현실.
솔직히 미련이 없어진 상황에서 굳이 중동 같은 밑 빠진 독에 더 이상 물을 붓고 싶지는 않을 것이고, 나 같아도 그런 선택을 했을 거다.
‘게다가 탈레반에 의한 중동의 혼란은 결과적으로 중국과 유럽에게 그 골칫거리를 토스하여 저들의 힘을 빼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지. 즉, 이건 일석이조의 효과를 만들어 낸다는…….’
이어진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내 상상이 맞는다면 이걸 계획한 자는 대체 몇 수를 내다본 것이라는 말인가.
다른 걸 떠나서 탈레반과 중국의 밀약까지 예상을 했다는 것은…….
아니, 그 이후 중동이 지속적으로 중국의 골칫거리가 되도록 유도하겠다는 전략은 또 어떻고.
내게 보여 주었던 그 어수룩한 태도는 단지 연극이었을 뿐, 미국은 결국 미국이었던 거다.
‘가만! 그런데 이거 어째 앞뒤가 안 맞는데?’
막말로 내가 제시한 대책이 성공하면 탈레반은 쉽게 제압되고, 그건 곧 중동을 지속적인 중국과 유럽의 골칫거리로 만들겠다는 미국의 계획에 반하는 거잖아.
‘하면 당연히 내 계획에 반대하고 나섰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똑똑!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회장님.”
생각이 도돌이표를 그릴 무렵, 노크와 함께 안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근까지 러시아에 있던 그는 불과 어제 다시 복귀를 했던 상태.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표정이 다급하다.
“왜 그럽니까?”
“이거 생각보다 중동 사태가 커질 가능성이 있겠는데요?”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하곤 그가 내민 종이를 쳐다봤다.
익숙한 글귀들.
전에 봤던 중국과 탈레반의 밀약들이 담긴 보고서였다.
“혹시나 싶어서 이번에 중국과 탈레반이 맺은 협약을 면밀히 분석 좀 해 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협약에는 숨겨진 조항들이 꽤 많더군요.”
“숨겨진 조항이요?”
“네, 분석대로라면 중국은 탈레반을 향한 경제 지원만이 아니라 군사적인 지원도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탈레반이 위급한 상황이 오면 중국도 관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거죠.”
“아니, 중국이 왜 그런 무리한 조건을 받아들였다는 겁니까?”
“욕심 때문이죠.”
“…….”
“아프가니스탄에는 엄청난 양의 희토류가 매장되어 있습니다. 그걸 중국의 채굴량과 합하면 단숨에 세계가 소비하는 물량의 80%를 장악하게 되는 겁니다. 하니 욕심 많은 중국으로서는 당연히 그걸 노릴 수밖에요.”
“해서, 중국이 그걸 공동 채굴하는 조건으로 군사적인 지원까지도 약속했다?”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며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이제야 퍼즐이 풀렸거든.
대체 왜 미국이 자칫 자신들의 계획을 망칠 수도 있었을 내 제안에 반대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해답이.
‘결국 미국은 중국이 희토류를 욕심낼 것을 알고 있었던 거군.’
그로 인해 중국이 개입하면 아무리 내 대처가 효과적이어도 힘의 균형이 그리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 거지.
“이것 참.”
생각을 지속하는 와중 갑자기 전율이 느껴졌다.
이 계획.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한 외통수였거든.
“아까부터 뭘 그리 홀로 중얼거리십니까?”
생각을 정리하던 차에 안 실장의 말이 날아들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전체적인 고찰을 하는 중이었다는 말로 얼버무리자 그가 호기심을 드러낸다.
“그래서, 회장님께서 내리신 결론은요?”
“결론이라면. 미국은 결국 미국이었다, 정도?”
안 실장은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옅은 웃음과 함께 앞서 정리 중이었던 생각을 밝혔다.
“달러 패권은 미국의 생명줄입니다. 그런데 내 예상이 맞는다면 미국은 이제 스스로가 달러 패권의 확립을 완성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중동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겁니다.”
“…….”
“그런데 기왕 발을 뺄 거라면 중국을 끌어들여 그들의 힘도 빼놓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에이, 중국이 설마 그걸 모를까요.”
“모릅니다.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상황 판단을 못 한 거죠. 그 증거가 바로 덜컥 탈레반과 협정부터 맺은 겁니다.”
“허어.”
“아무튼, 이제 사우디와 이라크를 필두로 한 아랍 연합이 결성되는 순간 중국의 개입도 기정사실인데, 그건 향후 중국을 중동이라는 늪에 빠트리게 되는 결과는 낳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 죠.”
“그렇다고 또 협정을 무효화하면 그땐 탈레반의 칼날이 곧바로 중국에게로 돌려질 겁니다. 위구르 독립 지원이라는.”
“허어.”
“게다가 중국의 개입은 결국 유럽을 곤란하게 만드는 결과도 가져옵니다. 탈레반과 유럽은 현재 일촉즉발의 상태니까.”
“…….”
“이 상황에서 중국은 탈레반을 돕는 것도, 그렇다고 유럽을 돕는 것도 불가능하죠.”
“맙소사! 그야말로 외통수군요. 대체 어느 천재가 그런 계획을 만든 겁니까?”
맞다.
이쯤이면 사실 그 백악관 안보수석이라는 자는 바보는커녕 천재라고 해야 할 거다.
이토록 탈레반의 성향과 중국의 성급함을 완벽하게 예상하고 함정을 파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나 역시 이젠 그에 대한 호기심이 솔솔 솟아난다.
‘그건 그렇고, 잘도 의뭉을 떨었겠다?’
불평의 대상은 리암이었다.
에밋 국무장관이야 그렇다 쳐도 그마저 내게 미국의 진짜 의도를 숨긴 것은 사실상 좀 문제가 있거든.
뭐, 이유를 딱히 짐작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사우디와 이라크에게 전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기에 어차피 우리의 힘이 필요했을 테니까.
그렇다곤 해도 여태껏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괘씸한 일이다.
‘상관없으려나? 이로써 받아 낼 빚은 더 커진 거니까.’
막상 그 생각을 해 보니 분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어차피 우리야 일정 부분 개입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고 중국의 힘을 빼는 것은 우리로서도 필요한 일이었던 상황.
결국 협조할 것은 협조하되 반대급부만 제대로 받아 내면 그만 아닌가.
“참, 소식 들으셨습니까?”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안 실장이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던졌다.
또 뭔가 싶은 마음에 쳐다보자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다시 말한다.
“일본에 심어 둔 국정원 프락치에 의하면 며칠 전 총리와 내각 대신들이 꽤 깜찍한 회동을 했다더군요.”
“깜찍한 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