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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10화 (310/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10화

[우리가 힘을 쓰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하사드는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아직 미래가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기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주저되는 상황.

결국 단서를 먼저 달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사실 탈레반이 향후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예상이 맞는다면 그들은 결코 미국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을 테고, 그땐 두 나라가 중동의 수호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마지막 말은 에밋을 쳐다보며 뱉어 냈다.

지금 미국이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건지 다시 한번 일깨워 주기 위해서.

물론 미국의 결단도 이해는 가지만.

자국을 지킬 의지는커녕 오히려 부패가 만연해 있는 현 아프가니스탄 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더는 그들을 향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따위는 그만하고 싶다는 의지에서 내린 결단이라는.

그리고 유럽을 엿 먹이는 동시에 중국에게 골칫거리를 넘겨 압박의 강도를 더하고 싶었다는.

그렇다 해도 하필 탈레반 같은 대책 없는 집단의 아프가니스탄 정권 재탈환을 용인한다는 것은 명백한 오판이라고 본다.

[우리가…… 중동의 수호자가 되라고요?]

하사드는 부쩍 당황한 투였다.

하긴, 탈레반은 결국 사우디와 같은 수니파에 속하니까.

즉, 지금 내 요구는 저들에게 형제를 상대로 칼을 뽑아 들라는 것과도 같은데, 그게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무리입니다.]

모하메드도 반대의사를 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황의 위급함을 깨닫지 못하는 분위기.

난 긴 한숨을 뱉어 내며 저들을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이미 미국의 묵인을 약속받은 상황이면 향후 탈레반의 세력 확대는 불 보듯 빤합니다. 문제는 기세를 얻은 그들이 반드시 중동 땅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거라는 점이죠. 이슬람근본주의와 극단주의가 그동안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두 분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

[더군다나 제 예상처럼 그들이 정말로 중국과 밀약을 해 버린다면 중동을 장악하는 일은 순식간일 것입니다. 그때 가서도 과연 탈레반이 사우디의 이슬람 종주국 지위를 인정할 것 같습니까? 십중팔구는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자신들이 흡수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끄응…….]

하사드와 모하메드는 동시에 앓는 소리를 뱉었다.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님을 인지하고 있는 거지.

어느 정도는 말이 먹혀들었음을 느끼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차에 하사드가 당황스러운 말을 뱉어 냈다.

[좋소, 탈레반이 정말 진 회장의 말처럼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엔 우리가 관여하도록 하죠. 그렇다 해도 미국과 한국 역시 최소한의 병력 파병은 해야만 합니다.]

[그건…….]

에밋 국무장관은 그 순간 답답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미국이 현시점에 관여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벌써 몇 번이나 강조한 상태니까.

게다가 통일한국의 관여 불가 이유에 대해서는 차마 말조차도 꺼내지 못할 상황이고.

어쩔 수 없이 내가 다시 나섰다.

[이미 탈레반의 재집권을 묵인해 버린 미국이 그들을 치는 것에 병력을 동원한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럼, 한국은요?]

[우리도 당분간은 타국으로의 병력 파견은 불가능합니다. 조만간 동아시아도 중동 못지않은 변혁을 겪을 가능성이 크기에.]

[그 말은……. 설마 중국을.]

하사드와 모하메드는 대뜸 중국을 거론했다.

하긴, 저들에게 있어 한국과 일본의 무력 분쟁 같은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니까.

뭐 내 말을 어찌 받아들이건 이 시점에선 상관없는 문제고, 당장은 절망의 눈빛을 보이는 저들을 향해 대안을 제시해 줄 차례다.

[하지만 실망하실 것은 없습니다. 이라크가 두 나라의 조력자가 될 가능성이 크니까.]

[이라크요?]

대꾸는 두 왕족이 아닌 에밋에게서 들려왔다.

부정하고자 하는 의도였다기보다는 자신은 미처 그 점을 생각지 못한 것에서 오는 반응쯤?

상관하지 않은 채 다시 말을 이었다.

[이라크 정부군은 지금까지 한국군에 의해 혹독한 훈련과 전술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또한 지난 전쟁을 통해서 막대한 군수물자들을 보유 중이죠. 게다가 현재의 이라크 정부에게도 탈레반은 동거하기 어려운 이웃입니다. 하니 그들이라면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두 왕족은 이렇다 할 반발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군의 군사교육 커리큘럼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오죽했으면 모하메드의 경우는 그걸 보고 한때 한국이 UAE군의 훈련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였지 않던가.

[흠…….]

반응으로 봐선 말이 어느 정도는 먹힌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이제 쐐기를 박을 차례.

난 그들이 안심할 만한 또 하나의 제안을 건넸다.

[그리고 원하신다면 재우PMC를 고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시다시피 재우PMC의 무장과 전투력은 어지간한 국가의 정규군과도 맞먹죠. 게다가 소속 병력들의 수도 벌써 만 명이 넘어간 상황이고.]

[오오!]

***

“멍청한 인간 같으니.”

돌아오는 차량에서 난 몇 번이고 이번 사태의 원흉인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에 대한 욕설을 내뱉었다.

용케 그걸 알아들은 걸까, 마침 곁에 타고 있던 리암이 변명하듯 말한다.

[멍청한 작자인 것은 맞아요. 사안을 너무 근시안적으로 봤다는 점에서는. 하지만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오.]

[…….]

[무려 15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 쏟아부은 돈이 수조 달러에 달하는 마당에 이렇다 할 결과가 없지 않소. 더군다나 현 아프가니스탄 군벌들은 의지박약아들이에요. 자국을 지키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 마당에 미국 정부가 끝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책임질 이유가 있겠소?]

그의 말은 어느 것 하나 틀린 점점이 없었다.

미국의 지원금을 타 먹기 위해 자국의 병력들의 수마저도 조작한 자들이 나라를 지키는 것에 무슨 열성을 보이겠는가.

하지만 당장 계획이 꼬여 버린 나로서는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점을 염두에 둔 듯 리암은 줄곧 나를 다독이는 것에만 애썼다.

[그렇다고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도 없지 않소. 그나마 진 회장에게는 이번 사태가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셔야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특유의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인 그는 불도 붙이지 않은 시가를 연신 질겅거리며 말을 이었다.

[노키드로부터 F16의 생산 권한을 뺏어 온다는 계획 말입니다. 결국 일본이 F22의 도입을 전면 재고함으로써 유야무야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한데 상황이 이러면 백악관으로서도 결국 그 약속을 다시 지켜야만 할 겁니다.]

[…….]

[생각해 보세요. 정말로 탈레반이 미국의 예상과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로 인해서 중동이 다시 화약고가 된다면 결국엔 진 회장이 사우디와 UAE에 제안한 방법밖에는 해결책이 없소. 쉽게 말해서 열쇠는 다시 진 회장이 쥐고 있다는 말인데, 그 정도 보상쯤은 해 줘야 하지 않겠소?]

제법 그럴듯한 제안이었다.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쌓여 왔던 불만이 조금은 녹아들었다.

‘아무튼, 늙은 생강 같으니.’

솔직히 난 사우디와 UAE가 재우PMC를 고용하는 것에서 오는 이득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것에까지 생각이 뻗어 있었다는 건가?

[그게 어디 나만 이득이겠습니까? 보잉의 지분을 가진 것은 회장님도 마찬가지인 마당에.]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늙은 구렁이를 상대로 그게 먹혀들 리가 있나.

이미 내 입가에 맺힌 웃음기를 본 그가 툭 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뭐, 그랬으니 나도 그쪽으로 생각이 뻗어 간 것이기는 하지. 그나저나 진 회장께선 정말로 탈레반이 중국과 손을 잡을 거라고 생각하시오? 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옳기는 한데, 이게 또 사업가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라서.]

그 질문에는 쉽게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제 역사의 흐름은 내 예상 범주를 벗어나 있으니까.

다행히 미국의 뜻대로 유럽과 중국만 엿을 먹게 될지.

아니면 단순히 미국이 거한 똥을 싸 버린 결과로 맺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지.’

잘못된 신앙에 젖어 있는 존재들은 쉽게 그 근본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특히나 종교를 가장하여 인간 내면에 있는 숨겨진 속성을 그대로 표출하는 극단주의라면 더더욱.

***

[미군의 전격적인 철수 결정과 그에 따른 탈레반의 준동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소문에 따르면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의해 점령 직전이라는…….]

미국의 전략에 의한 중동의 혼란은 점점 심화되어 갔다.

그로 인해 현재 미 대사관은 물론 우리 대사관도 전면적인 철수를 결정.

당황스러운 것은 불과 이틀 만에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에 정권을 이양할 것을 선언했다는 거다.

[정권 탈환에 성공한 탈레반에 의한 피의 숙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벌어지는 사태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여성들을 향한 무자비한 탄압과 오로지 탈레반의 종교적 신념만이 법이 되는 세상이 도래.

결국 미국의 판단이 틀렸음이 증명됐지만, 그렇다고 당장 실수를 인정하기 어려운 그들은 침묵만 유지할 뿐이었다.

[중국 왕예 외교부장은 오늘 탈레반 정부 수반과 회동을 가졌습니다.]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부가 들어서자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국가였다.

가뜩이나 위구르의 독립운동에 골치가 아픈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

당황스러운 것은 동기가 바뀌었음에도 결국 이후 벌어진 모든 일들이 회귀 전의 역사를 답습했다는 거다.

[중국과 탈레반 정부는 오늘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어지간히도 똥줄이 탄 모양이군. 이렇게까지 탈레반에 구애를 하는 것을 보면.”

그로부터 며칠 후 내게 입수된 보고서에는 중국과 탈레반의 협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중국으로 넘어오는 테러세력을 탈레반이 막아 주는 조건으로 향후 중국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지원을 하겠다는.

“쯧쯧.”

하지만 중국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거다.

꼼수가 가득한 이 협정서를 기초로 하면.

“왜 그러십니까?”

나로도 연구소로 향하는 길에 동행 중이던 김 실장은 느닷없이 혀를 차는 나를 의아한 듯 쳐다봤다.

슬쩍 보고서를 그에게 밀어내곤 협정서에서 발견한 것들을 전했다.

“그 문서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영토를 통해서 위구르로 넘어가는 테러세력들을 막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죠.”

“그 말을 돌려서 보면 다른 루트를 통해서 위구르에 입성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지금 탈레반은 중국을 가지고 놀고 있는 거죠.”

“그럼, 미국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맞아 들어간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중국은 두고두고 골치가 아파지는 거니까요.”

“그렇다곤 해도 결국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운 꼴이지 않습니까.”

의미를 깨달은 김 실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실상 이번 일은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다는.

부르르!

그때, 갑자기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는 리암.

아마 보나 마나 실수를 인정한 미국 정부가 대책을 구하고자 하는 전화일 거다.

-미국을 향한 비난이 지나치게 거세지는 터라 톰이 꽤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시 나서는 것은 상황이 우습고, 아무래도 진 회장이 하사드와 모하메드에게 제시했던 계획대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젠장, 아무튼 인간들이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맛을 안다니까.

그나저나 조커가 내 손에 들어온 상황에서 호락호락 저들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는 없다.

기왕 목줄을 잡았으면 힘껏 당겨야지.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해야죠. 그런데 아무래도 F16 생산 권한 하나 뺏어 오는 정도로는 제가 손해인 것 같군요.]

***

두두두두!

리암과의 통화가 이어지는 사이 헬기는 어느새 나로도에 도착해 있었다.

이후 내가 향한 곳은 재우가 최근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중인 AI 개발 부서.

최인배를 필두로 한 그룹 내 핵심 소프트웨어 인력들이 죄다 몰려 있는 곳이었다.

“아직 도착 전인가 보죠?”

예상과 달리 조용한 연구소의 분위기에 놀라 최인배를 향해 물었다.

예정대로라면 영화촬영을 끝내고 복귀한 에바가 지금쯤 저 실험동을 차지하고 있어야 했건만, 당장은 그 비슷한 물건조차도 눈에 띄지 않았으니까.

눈빛의 의미를 이해한 듯, 최인배가 해명에 나섰다.

“아닙니다. 에바는 이미 오전에 수송기 편으로 도착하여 현재는 그동안 학습한 데이터들에 대한 분석 작업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차지환 대원의 경우는 김해 공항에서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고요.”

대답과 동시에 그가 내민 것은 테블릿이었다.

이내 그의 손에 의해 재생된 영상은 막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차지환이 그를 향해 달려드는 기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

황당한 마음에 다시 최인배를 쳐다보자 그가 멋쩍은 웃음과 함께 말한다.

“차지환 대원이 제법 유명해졌습니다. 장동건 대원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특히나 장동건 대원은 이제 영화판에 남겨지도록 놔주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요.”

그게 장동건을 위한 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거다.

더군다나 최근엔 외상 후 스트레스까지 경험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 새로운 길을 찾아가겠다면 오히려 축하를 해 줘야겠지.

옅은 미소로 테블릿을 다시 건네자 최인배가 뭣 때문인지 난처한 기색으로 머뭇거린다.

“왜 그럽니까?”

“저, 다른 것이 아니라. 에바의 데이터 분석 중 좀 곤란한 점들이 발견됐습니다.”

“…….”

“굳이 설명을 하기보다는 직접 보시죠.”

끝내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한 최인배는 결국 나를 또 다른 연구동으로 이끌었다.

어디에 있나 싶었던 다각전차가 거의 창 정비(廠整備) 수준으로 분해된 채 정비 중인 곳.

단순히 AI의 데이터 추출을 위한 작업일 것이라는 말과는 다른 결과였다.

“촬영이 꽤 거칠었는지 많은 부품이 기능적인 이상을 보여서 이번에 아예 모든 부분을 정비 중에 있습니다.”

“그래요?”

이어진 최인배의 변명에 별스럽지 않게 대꾸했다.

이후 다가선 곳은 한창 에바의 데이터를 추출 중인 모니터링 데스크.

내 접근에 깜짝 놀란 연구원이 재빨리 길을 트며 요구하지도 않은 브리핑을 시작했다.

“에바는 향후 재우의 모든 다각전차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메인 시스템이 될 예정입니다. 해서 에바의 학습은 우리로서도 꽤 중요한 명제죠.”

“그거야 나도 아는 문제고.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겁니까?”

이어진 질문에 연구원이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눈이 가늘어지려는 순간, 최인배가 다시 나섰다.

“에바가 욕을 배웠습니다.”

“…….”

한참을 눈만 끔뻑였다.

AI가 욕을 배웠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에.

그때, 최인배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장경훈 연구원의 말처럼 에바는 향후 재우가 생산하는 모든 다각전차들의 메인 통제 시스템이 될 예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스템이 욕을 배웠다는 것은 좀 심각한 문제죠. 해서 데이터를 초기화할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렇게까지 무리하는 것보다 차라리 어휘 구사 문제만 따로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쉽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AI의 학습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거의 인간의 뇌가 학습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서 단순히 어느 한 부분만을 건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거든요.”

“그렇다고 여태 시간을 들여 학습한 것들을 죄다 리셋한다는 것은 좀…….”

나로선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AI의 학습은 하루 이틀 사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걸 고작 욕을 배웠다는 이유로 리셋한다는 것은 왠지 낭비인 느낌이 아닌가.

<현재 모듈이 시스템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빠른 조치를 바랍니다.>

그때, 에바의 목소리가 연구동에 울려 퍼졌다.

아마도 자신의 통제 신호에도 반응이 없는 전차의 몸체를 두고 하는 말인 듯.

뭐 그거야 분해 수준의 정비를 받고 있는 중이니 당연한 결과다.

“에바, 혹시 내가 누군지 아는가?”

난 슬쩍 시스템 하드웨어를 향해 다가가선 말을 걸었다.

<물론입니다, 재우 그룹의 최고 경영자이시며 시스템 에바의 기획자이신 진현승 회장님이십니다.>

“하면 지금 자네가 처한 상황도 알고 있나?”

순간 에바가 침묵했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할 무렵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혹시 제 시스템을 리셋하실 생각이시라면 재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왜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AI가 보일 만한 반응은 아닌 것 같았거든.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저야 상관없지만, 시스템 운영자인 차지환 대원이 슬퍼할 겁니다.>

“…….”

순간 멍하니 최인배를 쳐다봤다.

방금 그녀의 말은 감정을 표현한 것이지 않던가.

특히나 ‘배려’라는, 고작 프로그램 따위가 습득하기 어려운 종류의 감정.

같은 생각을 한 듯 최인배의 눈도 한껏 치켜떠져 있었다.

“최인배 씨.”

“네?”

“아무래도 당신, 꽤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낸 것 같군요.”

“그게…….”

“한데 미안하지만 방금 내가 한 말은 당신을 칭찬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

“전투머신에게 있어 감정은 불필요한 요소라는 걸 잘 알고 있겠죠?”

“아니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순간 최인배가 반발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리셋을 주장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

갑자기 흥미가 돋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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