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09화
[JW엔터테인먼트사, 소니픽쳐스 전격 인수.]
2015년 2월.
나타샤가 대표를 책임지고 있는 JW엔터테인먼트는 다국적 미디어 지주회사인 소니픽쳐스를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 정부의 집요한 훼방이 있었던 것이야 당연한 과정.
하지만 기업은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법이고, 가뜩이나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던 소니의 체질개선의지로 인해 결국 일은 성사됐다.
[JW엔터테인먼트. 소니가 소유했던 저작권 파이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사업 확대 시사.]
이후 나타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그동안 소니픽쳐스가 보유 중이던 저작권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었다.
영화 및 드라마를 비롯하여 애니메이션까지.
특히나 마블사로부터 인수했던 일부 캐릭터들을 활용한 영화제작에 유독 집중했는데, 목적은 물론 한국의 이미지 쇄신에 있었다.
전 세계인들에게 이미 익숙한 캐릭터들을 기반으로 한.
[일본 정부는 반일 성향이 확실한 재우그룹의 적극적인 미디어 분야 진출로 이어질 자국 이미지 왜곡 가능성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로 인해 향후 JW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제작물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거칠 것을 예고했으며…….]
우리의 전략을 눈치챈 일본 내각은 아직 시작도 안 한 재우의 행보에 대해 벌써부터 부정적인 여론 조성을 시작했다.
심지어는 법적인 분쟁에 휩싸일 수 있을 수를 동원하면서까지.
오죽했으면 그렇게라도 해서 우리의 문화 침탈을 막아 내고 싶었겠냐만, 그건 사실상 또 하나의 자충수였다.
막말로 민주국가에서 정당한 저작물에 대해 검열을 시도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단지 ‘반일성향’만을 핑계로 국가가 한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스운 일이니까.
“일본이 만약 정당한 이유 없이 JW의 제작물에 대한 자국 수입을 방해한다면 정식으로 국제기구에 제소하겠어요.”
나타샤는 일본 내각을 향해 엄중한 경고를 했다.
하지만 일본은 끝내 JW가 기획 중인 영화들에 대해 사전 수입 금지조치를 취하는 상식 밖의 태도를 보였고, 그 문제는 결국 국제무역기구의 제소로 이어지는 결과를 야기했다.
“이번 기회에 각 분야의 국제기구에 뿌리내리고 있는 일본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이 좋을 듯하군요.”
안 그래도 각종 국제지구를 향한 일본의 영향력 제거를 노리고 있던 나로서는 그게 오히려 호재가 되었다.
어디 나뿐일까, 가뜩이나 일본의 뒤통수에 분개하고 있던 미국에게는 응징의 단초를 제공해 준 결과.
때문에 미국 정부는 속전속결로 각 국제기구 집행부를 향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고, 결국 WTO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에서는 유례없는 대혼란이 시작됐다.
[유럽은 미국이 제기한 WTO와 WHO 사무총장 불신임 의견에 대해 반대합니다.]
물론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자고로 국제기구의 수장을 끌어내리고 재선출하는 문제는 세력의 크기에 의해 좌우되는 것.
중국과 유럽. 그리고 그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국가들의 연합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체들과 힘의 균형을 이루었고, 그 균형은 쉽사리 깨어지지 않았다.
[사우디와 UAE는 오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기구들의 개혁의지에 동참할 것을 밝혔습니다.]
해답은 중동에서 나왔다.
사우디와 UAE. 그리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친미. 그리고 친한 국가들의 표가 우르르 몰린 것.
결국 WTO의 수장 자리는 한국의 몫으로 돌아갔고, WHO 사무총장자리는 미국 CDC 출신 전염병 전문가에게 돌아갔다.
뿌우웅!
그로부터 2개월 후인 2015년 4월.
나로도 우주센터에서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행사가 열렸다.
러시아 우주왕복선 부란이 바지선에 실린 채 입성한 것.
그건 한때 내가 푸틴과의 딜로 얻어 낸 성과 중 하나였는데, 향후 대략 6개월간의 재조립 과정을 거쳐 재우의 위성들을 띄울 수단이 될 예정이다.
“13호 위성부터는 줄곧 부란을 이용할 생각이라고요?”
정부 측 참관을 위해 파견된 김태익 국방장관. 아니 이제는 청와대 안보수석이 된 그는 잔뜩 들뜬 표정으로 물었다.
무리도 아닌 것이 이번 13호 위성의 경우는 대구경 광학 렌즈를 탑재한 본격적인 정찰 위성이니까.
지름만 해도 무려 2미터.
현재 미국이 자랑하는 키홀. 그것도 KH-13급의 정찰 위성에 버금가는 성능을 가진 터라 정부로서도 기대감이 꽤 클 거다.
“13호가 띄워지면 아마 웬만해서는 그것의 감시망을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
“그렇겠죠. 해상도가 무려 3센티미터급에 이르니까. 사실 그 정도면 차량의 번호판 구분은 물론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미국이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재우가 개발한 AI시스템까지 탑재하는 상황이면 뭐.”
넌지시 뱉어 낸 말에 안보수석이 흥분한 투로 대꾸했다.
하지만 곧 어두워지는 그의 얼굴.
그건 아마도 위성의 소유권이 국가가 아닌, 일개 기업에게 있다는 사실 때문일 거다.
“그렇다 해도 주 사용처는 정부인 마당에 뭐가 그리 불만이십니까.”
웃으며 그의 등에 손을 댔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그의 표정.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나 싶은 생각을 들 무렵 그가 생뚱맞은 말을 뱉었다.
“사용료가 비싸잖습니까.”
절로 헛웃음이 뱉어졌다.
뒤늦게 그가 손사래를 치며 농담임을 표했지만, 왠지 그게 꼭 농담 같지만은 않아 보인다.
“뭐, 방법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비용을 내신다면 얼마든지 소유권 인수를…….”
따르릉!
나 또한 넌지시 농담을 걸던 와중 갑자기 안보수석의 전화가 울렸다.
어디선 걸려온 전화일까.
순간적으로 표정이 바뀐 그가 다급히 손짓하곤 통화버튼을 누른다.
“어. 그래.”
이렇다 할 대꾸도 없이 다시 전화를 끊은 김태익 안보수석은 난처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더더욱 궁금증이 몰려드는 상황.
눈매를 슬쩍 뒤틀자 그가 혀를 차며 말한다.
“프랑스가 기어이 일을 쳤답니다.”
“…….”
“외인부대를 동원한 기동타격대가 조금 전 카다피를 제거하는 것에 성공했다는군요. 그로 인해 현재 리비아가 거의 무정부 상태가 된 모양입니다.”
아! 이런 빌어먹을.
***
“백악관으로부터 긴급 다자간 회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중동에서 들려온 소식은 곧장 청와대를 움직였다.
그리고 청와대는 다시 재건위원회 국방위원장인 나와 안보수석에게 회의 참석을 일임.
이후 난 가장 먼저 리암에게 전화를 걸었고, 결국 워싱턴에서의 만남이 제안됐다.
휘이잉!
최근 들어 잦은 미국 방문길로 인해 이젠 시차 적응도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몸은 결국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
나와는 달리 김태익 안보수석의 눈은 내내 충열된 상태다.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사실 이번엔 우리가 한국으로 갔어야 옳은 건데, 보시다시피 맞아야 할 손님들이 또 계셔서.]
도착한 에밋 국무장관의 집무실에는 하사드와 모하메드가 선객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어디 그들뿐일까, 이스라엘의 총리까지도 비공식적인 방문을 한 상황.
이유는 둘째 치고, 이거 왠지 일이 필요 이상으로 커진 느낌이다.
[오랜만입니다, 진 회장님.]
이스라엘 아무드 총리는 나와는 구면이었다.
내 결혼식 참석을 핑계로 한국을 방문한 이후 벌써 세 번째.
첫 만남은 역시나 비공식적인 그의 한국 방문 때였는데, 당시 이스라엘은 유일하게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는 공식적인 발표를 함으로써 내 관심을 잔뜩 끌었었다.
[이 조합은 왠지 익숙하지 않군요.]
짧은 농담과 함께 총리와 악수를 나누곤 곧장 하사드와 모하메드에게로 향했다.
이어진 셋의 포옹은 마치 친형제들끼리 우정을 나누는 듯한 모습이었을 터.
예상처럼 여기저기서 부러움의 시선들이 날아든다.
[사우디와 UAE에선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우리야 안방에서 벌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죠.]
뱉어 낸 질문에 하사드가 대꾸했다.
하긴, 리비아의 무정부 사태는 두 나라로서도 그냥 넘기기엔 힘든 명제긴 하지.
얼굴 한편에 그늘이 잔뜩 드리워져 있는 것으로 봐선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의 뜨뜻미지근한 대처에 꽤 불만이 쌓인 느낌이다.
[미국은 대체 어쩌려고 일을 이렇게까지 키운 겁니까.]
이어진 회의에선 하사드의 불만이 연신 터져 나왔다.
‘이렇게까지?’
의미심장한 그 단어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곤 국무장관을 쳐다보자 그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사실 하나를 내게 전했다.
[아, 실은 진 회장님께서 미국으로 오시는 동안 백악관에서 모종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무슨…….]
[결단이라니, 그사이 또 무슨 일을…….]
나와 안보수석은 동시에 대꾸하곤 서로를 쳐다봤다.
그때, 잔뜩 미간을 좁힌 하사드가 국무장관을 대신하여 말했다.
[미국이 탈레반의 수장들과 모종의 협의를 했습니다.]
[탈레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던 터라 재빨리 국무장관을 쳐다봤다.
아니, 프랑스의 카다피 제거 문제로 모인 자리에서 난데없이 탈레반이 왜 튀어나온다는 말인가.
하지만 정작 에밋은 입술만 짓씹고 있었고, 역시나 대답은 하사드에게서 들려왔다.
[프랑스. 아니 유럽의 중동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집권을 용인했답니다.]
[…….]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지그시 고개를 끄덕이는 국무장관의 태도로 봐선 허튼소리는 아닌 모양새.
황당함에 절로 언성이 올라갔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미국은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에만 수천 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밑밥일 터.
인내심을 가지고 쳐다보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쉽게 말해서 미국은 이제 자신들의 나라를 지킬 의지도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현 정부를 끝까지 책임질 생각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유럽이 우리의 텃밭에 씨를 뿌리려고 하죠. 하니 우리로선 유럽에게 현실을 일깨워 주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니겠습니까?]
[…….]
[생각을 해 보세요. 만약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재집권하면 그들이 유럽의 중동 진출을 용인하겠습니까?]
그의 마지막 말에 비로소 미국의 의도를 이해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유럽에게 중동 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탈레반을 통해 느끼게 해 주겠다는.
해서 중동 땅을 아예 개판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스윽.
그게 사실이면 사우디의 격했던 반응도 이해는 간다.
그나마 잠잠하던 중동에 탈레반이 재집권하면 그 결과야 빤하니까.
물론 탈레반이야 사우디와 같은 종파에 속하기에 그들과 큰 분쟁을 겪을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간신히 평화를 찾은 중동 땅에 탈레반 같은 극단주의 적이고 외골수적인 면을 지닌 세력이 재등장하는 것만큼은 껄끄럽지 않겠는가.
[대체 누구의 생각입니까? 고작 유럽을 엿 먹이자고 양 무리에 사자를 풀어놓겠다는 멍청이가.]
잠시 떠올랐던 생각을 정리하고 국무장관을 향해 물었다.
다행히 그의 머리에서 나온 대책은 아니었던 듯, 정작 대꾸를 하는 그의 표정도 사태를 탐탁지 않아 하는 느낌이다.
[백악관 안보수석의 제안이었습니다. 그걸 톰이 인가했고.]
[그러니까, 정말로 단순히 유럽을 엿 먹이자는 목적 하나만으로 탈레반 같은 위험한 조직과 손을 잡겠다고요?]
[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잡았습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잔류 중인 미군병력들의 철수가 1시간 전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이런…….]
사실이라면 이미 물은 엎질러진 거다.
머릿속으로 이후 벌어질 사태에 대한 추론을 시도할 무렵 에밋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한 가지 염두에 두실 점은 탈레반의 재집권을 허용한 것이 단지 유럽을 엿 먹이기 위함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쳐다봤다.
여전히 미간을 잔뜩 좁힌 국무장관은 확신이 없는 투로 말을 이었다.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잡게 되면 향후 위구르 분리주의 단체 중 하나인 동투르키스탄 세력과 연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위구르 독립운동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중국은 더더욱 곤란해지죠.]
[흠…….]
긴 한숨을 뱉어 냈다.
제법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전략이긴 하지만 그건 변수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거니까.
시선이 몰려드는 사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그렇다고 탈레반 같은 극단주의자들을 용인한다면 차후 아프가니스탄의 미래야 불 보듯 빤할 텐데, 그때 가서 쏟아질 미국을 향한 세계의 비난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둘째 치고,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 재집권하는 것이 정말로 중국을 곤란하게 할 것인지조차 의문이군요.]
[그건 또 무슨…….]
[만약 미국의 예상을 깨고 중국과 탈레반 사이에 밀약이라도 이루어진다면. 그땐 어쩔 생각이냐는 거죠.]
에밋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당장 위구르의 독립 세력으로도 골치 아픈 중국이라면 향후 그 독립 세력의 조력자가 될 탈레반을 회유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 아닐까?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그 점을 강조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중국 입장이라면 당연히 탈레반 정부와의 접촉부터 시도할 겁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정말로 밀약이 성사되면 백악관의 계획은 휴지 조각이 되는 거죠. 그걸 떠나서, 탈레반은 중앙아시아를 끼고 있는 러시아에게도 골칫거리가 됩니다. 그건 염두에 두신 거겠죠?]
[설사 사태가 진 회장님의 말대로 흘러간다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아무리 중국과 탈레반이 밀약을 해도 결국 탈레반이라는 존재 자체가 중국에게는 두고두고 불안요소가 될 테니까. 그리고 러시아에게는 당연히 양해를 구했으니 그 점은 염려 안 해도 됩니다.]
들을수록 답답함이 몰려들었다.
그러니까 저 말은 고작 중국의 옆구리를 찌를 바늘 하나를 던져 주자고 중동 땅에 가시덤불을 뿌렸다는 거잖아.
뭐 그건 그렇고, 러시아를 설득한 것만큼은 천만다행이다.
만약 그들과 협의도 하지 않은 채 탈레반의 재집권을 허용했다면 자칫 미러 동맹의 기초까지 흔들릴 수도 있었을 테니.
‘젠장, 생각해 보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결국 중동이 또다시 화약고가 되는 마당에.
해서 미국의 생각과는 달리 결국엔 그들도, 그리고 우리도 다시 중동에 진출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일본 응징이 미뤄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가만.’
그때, 제법 그럴듯한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될 근거와 이유.
그게 현실이 되면 일본 응징에 대한 우리의 계획을 굳이 미루지 않아도 된다.
[하사드 전하.]
불현듯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란 하사드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잠시 숨을 고르곤 이번엔 모하메드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모하메드 전하. 아무래도 이번 사태에서는 두 분이 힘을 좀 써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