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07화 (307/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07화

[일본 내각은 오늘 미스비씨를 상대로 한 우리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해 현재까지 아무런 논평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2014년 8월 1일.

아베 내각은 미스비씨를 상대로 한 우리 법원의 최종배상판결에 대해 꽤 충격을 먹은 태도를 보였다.

하긴, 저들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니까.

사실 그동안 우리 사법부에 뿌리내려 왔던 친일 세력이 얼마나 광범위했으며 그들을 통한 이익 실현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통일 이후 지속되어 왔던 정부의 개혁은 결국 사법부에까지 그 영향이 미쳤고, 이번 판결에서 그 영향이 드러났다.

[미스비씨 측 변호인단인 법무법인 율상은 오늘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그게 사법부 개혁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법원 내에서는 아직도 판결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렇고.

여전히 친일 계열의 법무법인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사법부 전체의 분위기가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은 사실.

단지 시간이 문제일 뿐, 이제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또는 맹목적인 친일 세력들은 점점 더 사라지게 될 거다.

[대법원은 오늘 구체적인 배상 기한을 명시했습니다. 또한 명시된 기한까지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통일 한국 내 미스비씨의 자산을 강제 집행 할 것을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국민들의 지지에 힘을 얻은 대법원은 이후 압박의 강도를 더해 갔다.

그로 인해 내내 침묵하던 일본 내각 역시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게 자기반성적인 측면의 반응은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미스비씨의 한국 내 자산동결이 시행될 경우 일본 내 한국 기업들에게 자산압류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이로써 양국 간의 관계는 또 다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뭐, 예상대로의 반응이군요.”

들려오는 뉴스를 한 귀로 흘려 넘기며 올라온 보고서에 집중했다.

일본도 일본이지만, 현재 나로선 유럽이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시도한다는 사실도 꽤 중요한 문제였거든.

막말로 동아시아에서 우리와 일본이 이렇듯 극단적인 감정싸움을 하는 와중 중동사태가 다시 심화되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일은 또 없지 않던가.

더군다나 우린 이미 무력 분쟁마저도 감안하고 있는 상황에서.

“젠장, 유럽은 왜 하필 이런 시기에 문제를 일으키려는 건지 모르겠군요.”

곁에서 함께 뉴스를 지켜보던 김 실장이 넌지시 말을 뱉어 냈다.

왜였을까, 갑자기 그의 마지막 말이 유독 귀에 꽂히며 자연스레 고개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그건 좀 이상하군요.”

“네?”

김 실장은 뜬금없는 내 반응에 눈을 끔뻑였다.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은 채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시기가 공교롭지 않습니까. 하필 우리와 일본의 감정싸움이 극을 향해 치닫는 와중 유럽이 중동 땅에서 문제를 일으키려 한다는 것이. 이건 꼭 미국과 우리의 중동 개입을 막아서기 위한 꼼수 같지 않습니까?”

“…….”

“생각해 보세요, 현시점에 중동 땅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미국이건 우리건 개입하는 것은 힘듭니다. 아무리 유럽에게 기득권을 내어주는 것이 싫다지만 정작 미국은 이미 철수한 중동 땅에 다시 군을 파견하는 것이 부담되는 상황이고, 우린 또 일본과의 충돌 가능성으로 인해서 부담이 심하죠.”

“에이, 그건 좀 과한 생각 같은데요?”

김 실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끝내 표정을 풀지 않자 퍼뜩 상체를 끌어당기며 앉는다.

“하지만…….”

김 실장은 차마 말을 뱉어내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렸다.

떠오른 것은 많지만 뭐부터 꺼내야 할지를 모를 때의 표정.

난 끝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결국 조금의 텀을 둔 끝에 튀어나온 그의 말은 제법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럽이 왜요?”

“그거야 애초의 목적을 확실하게 이루기 위해서겠죠. 미국이나 우리의 개입이 없는 상태에서의 확실한 영향력 행사.”

“…….”

“한데 사실이라면 그 계획이 유럽이 홀로 계획한 것은 아닐 거라는 말입니다.”

“유럽의 독단이 아니라면…… 설마 중국이 뒤에 있다는 말입니까?”

난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당황한 듯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김 실장이 다시 반론을 재기한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중국이 어떻게요? 막말로 그건 우리와 일본의 무력 분쟁을 확신하고 있을 경우에나 가능한 시나리오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는 유럽이나 중국이 일본을 향한 우리와 미국의 헤게모니를 눈치챘다는 건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사실 그 부분이 나로서도 걸림돌이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우리와 일본의 무력 분쟁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다른 걸 떠나서 미국이 두 동맹의 무력 분쟁을 용인하지 않는 다는 것이 그동안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정보가 유출되었다면 모를까, 그걸 미리 알고 일을 꾸민다는 것은…….

‘게다가 시간표도 안 맞고.’

아니, 만의 하나 정보가 유출되었다 해도 걸림돌은 남아 있다.

내가 유럽의 중동개입의지를 전해 들은 것은 미국 정부와의 회의가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는 것.

이후 라이언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 말인즉, 유럽의 중동사태 개입계획이 한미 간 회의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는 건데, 그럼 시간표상 문제가 있지 않던가.

“쯧. 아무래도 내가 과한 상상을 한 것 같군요.”

난 결국 뱉어 냈던 주장을 철회했다.

하지만 왜일까, 이렇게까지 뒤끝이 남는 이유는.

‘혹시 역사와는 달라진 중국의 행보 때문일까?’

마치 재갈량이라도 되살아온 듯, 최근 들어 호락호락하지 않게 변해 가는 중국의 변화 때문에.

“그나저나 일본 내각이 돌아오는 8월 15일에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 방문을 계획 중이라는군요.”

생각이 깊어질 무렵 김 실장이 소식을 하나 더 전해왔다.

그냥 흘려듣기엔 예사롭지 않은 소식이었던 탓에 난 퍼뜩 정신을 차리곤 그를 응시했다.

“정부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랍니까.”

“정부에서는 그동안의 관례대로 대사초치 및 강력한 항의문 발표를 예정 중입니다만, 대통령님께서 뭔가 강력한 한 방을 더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

“예를 들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 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에게 뭔가 어필할 만한 것들을 공개한다던지.”

“흠,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있죠.”

***

[미스터 장?]

LA에 도착한 장동건과 차지환 일행들은 스타필드 영화사 소속 직원의 안내에 따라 세트장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된 그들로서는 모든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상황.

특히나 압권이었던 것은 수만 평에 달하는 세트장의 규모였는데, 각 세트장마다 영화의 스토리 연출을 위한 시설들이 각기 다르게 갖춰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고작 영화 하나 찍자고 저 많은 돈을 땅에 퍼붓는 겁네까?”

차지환은 수백억에 달하는 돈을 단지 세트장 꾸미는 것에 소모하는 미국의 영화 시스템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 CG 작업에 소모되는 돈은 그 몇 배에 달한다는 소식에 불만의 크기가 더 커져 갔다.

“니미럴, 그 돈이면 불쌍한 인민들의 배에 소기름을 잔뜩 들이붓갔고만요.”

“이봐, 지금 통일이 된 지가 몇 년째인데, 아직도 고난의 행군 시절을 입에 올리고 그래. 원래 영화 산업이라는 것은 들인 돈의 규모가 클수록 성공 확률이 높은 거야.”

“그거이 자본주의의 문제라는 겁네다. 무작정 돈부터 퍼붓고 보는 거. 아니 그랬다가 쫄딱 망하기라도 하면 책임은 누가 지는 겁네까?”

듣고 있던 민유환은 넌지시 자신의 생각을 뱉어 내곤 장동건을 쳐다봤다.

마치 동의를 바라는 눈빛으로.

하지만 뭣 때문인지 장동건의 시선은 내내 세트장에만 꽂혀 있었고, 그의 입에선 곧 후우 하는 긴 한숨이 뱉어졌다.

“팀장 동지는 왜 아까부터 표정이 썩어 있는 겁네까?”

차지환이 순간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스윽.

말없이 그런 차지환을 쳐다본 장동건의 입에선 자조 섞인 대꾸가 들려왔다.

“자네들, 연기 해 본 적 있어?”

“…….”

“오면서 들은 바에 따르면 우리가 직접 중장갑을 착용하고 연기를 해야 한다더군. 그거 감당할 자신 있냐고.”

“아니, 우리가 왜 그런 걸 합네까?”

차지환으로서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 그런 조건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순간 다시 그를 향해 꽂히는 장동건의 시선 속에선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묻어 나왔다.

“쯧, 그나마 민 대원과 난 얼굴이나 가릴 수 있으니 다행이지. 자넨 아마 그 얼굴이 그대로 노출될 거야.”

“……내가 와요?”

장동건은 대답 대신 손으로 뒤편을 가리켰다.

마침 거대한 트레일러에 실려 세트장으로 들어서는 것은 차지환의 단짝인 다각전차.

히죽 미소를 지어 보인 장동건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거 운용자가 자네잖아. 이제 와서 운용자 세팅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원활한 촬영을 위해선 결국 자네도 출연해야 한다는 것이 영화사 측의 주장이었어.”

“오오! 그럼 차지환이가 이번에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데뷔하는 겁니까?”

듣고 있던 민유환이 부러움의 말을 던졌다.

순간 히죽 미소를 내비친 장동건의 입에선 의미심장한 말이 뱉어졌다.

“데뷔는 데뷔지. 좀 심하게 분장이 필요해서 그렇지.”

“…….”

“스토리에 따르면 자네는 인류의 최후 문명인 중장갑과 다각전차를 상대해야 하는 외계인 역할이거든.”

“아니, 와 나만 외계인 입네까?”

“그야 다각전차를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자네뿐이니까. 그렇다고 통제도 못 하는 연기자를 다각전차와 대치시켰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할 건데.”

“이런 니미럴거…….”

***

분장을 시작한 지도 꼬박 6시간째.

차지환은 점점 변해 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몇 번이고 한숨을 내뱉었다.

하필이면 외계 종족의 역할을 맡았다 보니 어쩔 수는 없다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인간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으니까.

더 열 받는 것은 이렇듯 엄청난 시간을 들여 행한 분장이었음에도 정작 영화에 출연하는 시간은 1분 남짓.

대사 역시도 영화사에서 지시해 준, 무의미한 괴성 몇 마디가 전부였다는 거다.

“그 점은 자네가 이해해야지. 막말로 자네가 전문 영화배우도 아니고, 그나마 에바 때문에 출연하게 된 거잖아.”

“누가 뭐랍니까? 그래도 그렇디. 고작 비명 몇 마디 내지르고 뒈지는 역할은 좀 너무하지 않습네까.”

차지환은 다독이는 장동건의 말에 잔뜩 입술을 내밀었다.

그 탓에 가뜩이나 분장으로 인해 인간 같지 않던 그의 얼굴이 더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되었고, 마침 그 모습을 본 감독이 촬영 내내 그 모습을 연출해 주길 요구하는 터라 차지환의 불만은 더해 갔다.

“오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세트장이었다.

꽤나 세련된 분위기.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에서 등장하던 한국의 왜곡된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긴, 설정에 따르면 이 중장갑 자체가 한국에서 만들어 낸 무기로 나오니까. 그런 첨단 기술을 가진 한국의 거리가 허름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

장동건은 흐뭇한 미소로 중얼대곤 중장갑의 기동시스템을 가동했다.

철컥! 위잉!

곧이어 들려오는 기계음과 육중한 걸음걸이에 스태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덕분에 시선을 받은 대원들 모두의 얼굴에는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미스터 장!]

그때, 출연 배우들을 모니터링 중이던 감독이 갑자기 장동건을 향해 다가왔다.

이내 한참을 장동건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던 감독은 의외의 제안을 뱉어 냈다.

[우리 대본을 좀 바꿉시다.]

[…….]

[아무리 봐도 당신 마스크와 체격 조건은 일회성으로 소모하기엔 아까워요.]

[…….]

***

쾅!

이후 시작된 촬영에서 장동건은 기대 이상의 장면들을 만들어 갔다.

워낙 중장갑에 익숙했던 터라 감독이 요구하는 수준의 역동적인 장면 묘사쯤은 그에겐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오케이!]

덕분에 감독의 입은 시간이 지날수록 찢어져 갔고, 애초의 시나리오와는 달리 장동건은 이제 주인공의 제1 보조 역할까지 꿰어 찬 상태다.

[미스터 차! 준비하세요.]

촬영은 어느덧 차지환의 순서까지 돌아왔다.

그사이 시나리오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심각한 얼굴로 다가온 감독은 차지환을 향해 이런 저런 주문을 해 대기 시작했다.

[저 다각전차는 인류가 외계문명과 맞서기 위해 만든 AI시스템이에요. 때문에 좀 기계적인 멘트가 필요한데, 설정에 따르면 저걸 만든 것은 한국인들이니 당연히 한국말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거이 뭐가 대수라고. 원래 에바는 한국어로 의사소통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으니까니 그 부분은 일없습네다.”

통역을 전해들은 차지환은 손사래를 치며 대꾸하곤 다각전차를 향해 다가갔다.

뒤이어 그가 한 행동은 에바에게 현 상황에 대해 인식시켜 주는 것.

다행히도 ‘영화’라는 것에 대한 전체적인 지식을 미리 교육해 왔던 덕분에 이 상황이 그 영화 촬영을 위한 것임을 시스템에 인식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필요한 동작들과 이동 동선을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귀찮은 점도 많았다.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전차가 이동해야 할 동선을 제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느 시점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일일이 알려 줘야 한다는 점.

하지만 역시나 AI는 AI.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에바의 구분 능력은 확실했다.

[자! 촬영 시작합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감독은 드디어 에바의 첫 등장 신이 촬영 될 것을 알렸다.

차지환의 명령에 따라 예정된 자리로 이동한 에바는 시나리오에 충실한 동작들. 즉, 각종 무장을 활성화하는 장면들을 자연스레 연출해 나갔고, 이제 조금 후면 등장할 차지환과 교전에 임하는 장면이 연출될 타이밍이었다.

<전투시스템 가동.>

첫 시작은 좋았다.

차지환. 아니 외계인이 보유한 막강한 무기로 인해 인간들이 먼지로 변해 갈 때쯤 등장한 에바가 마치 실제 교전에 임하기라도 하듯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줬기에.

덕분에 감독의 눈이 잔뜩 빛을 발했지만, 하필 그때 예상 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예정에도 없던 에바의 멘트로 인해서.

<너희 별로 돌아가라. 이 간나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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