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06화
역대 가장 치열한 선진국들끼리의 설전과 대립이 오갔던 G8회의가 끝났다.
“그럼,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귀국길에 오르는 대통령과 경제인단과는 달리 나는 미국에 한동안 남기로 한 상태.
그건 여태 소홀했던 라이언과의 만남을 비롯하여 미국에서 벌여 놓은 일들을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귀국 즉시 대화 좀 하죠.”
대통령은 아쉬운 눈빛을 남기고 비행기에 올랐다.
워낙 다채로운 일들이 많았던 회의였던 덕분에 우리 역시도 나눌 대화가 꽤 많았으니까.
뭐, 마음이 급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기에 어쩔 수 없다.
끼익!
이후 도착한 곳은 워싱턴에 있는 재우 인베스트먼트의 본사 사옥이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라이언은 이미 입구에서부터 대기 중이었고,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여!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자넨 여전하군.]
빈말이 아니라 그의 외모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보편적인 미국인들이 고작 몇 개월만 못 봐도 체형 자체가 달라져 있는 것과는 달리.
그만큼 체력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건데, 한 회사의 CEO로서는 합격점을 줄 만한 자기 관리다.
[잽들과의 관세전쟁은 좀 어때?]
사무실에 들어선 라이언은 대뜸 한일 간의 경제전쟁에 관심을 보였다.
좀처럼 인종 차별적인 단어를 쓰지 않던 그로서는 의외인 단어를 동원하면서까지.
아마 그건 꼭 자신이 내 편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일본의 본질 자체를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로서의 자연스러운 태도였을 거다.
[관세전쟁이야 뭐 결론은 빤하지. 문제는 정작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야.]
[알아, 백악관에서 이번에 큰 결심을 했다지?]
무심히 대꾸하는 그의 말투는 의미심장했다.
마치 백악관의 은밀한 계획을 알고 있는 느낌.
그럴 법도 한 것이, 최근 그의 정보력은 그야말로 국가 기관을 능가하는 정도까지 발전했으니까.
결국 돈은 정보를 기초로 움직이고, 그 정보 역시 돈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금융가의 법칙인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못 본 사이 자네도 사업가가 다 됐군.]
웃음과 함께 말을 뱉어 내곤 그가 내민 술잔을 받아 들었다.
끝내 정보의 출처를 따지지 않는 내 태도가 의외였을까, 라이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주 앉았다.
[이 생활도 벌써 10년이 넘었잖아. 그나저나 자네는 내가 어디에서 그런 정보들을 얻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내가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다고.]
[그래도 혹시 내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입수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자네까지 곤란해지는 거잖아.]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자네를 고용한 것은 나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지는 것이 당연하니까.]
[…….]
그 말에 라이언의 눈빛이 흔들렸다.
따지고 보면 방금 내가 한 말은 그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내는 거였으니까.
어색한 마음에 기어이 한마디를 보탰다.
[다 떠나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아.]
[쯧, 그 말은 좀 재수 없었어.]
라이언은 자칫 오글거릴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을 분위기를 농담으로 넘겼다.
옅은 웃음으로 대꾸를 대신하려는 차, 그가 갑자기 진중한 표정이 되어 다시 말한다.
[정치권 반응을 주시하고 있자니 백악관에서는 이번 도요타 사태를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부활의 기회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테슬라는 영향을 안 받으려나 모르겠어.]
[테슬라야 어차피 명목상으로는 미국 업체인 마당에 무슨 상관이 있겠어. 다만 쌍웅자동차가 조금은 영향을 받겠지.]
이후 이어진 대화는 예정대로 미국 내에 벌여 둔 사업체들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뤘다.
미국 정부가 일본제품들의 품질문제를 시발점으로 자국 자동차 산업의 부활을 꿈꾼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빛을 잃어 가던 자국 산업계 자체를 일으켜 세울 의도가 보인다는 것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뒤늦게 시차에 의한 피로감이 몰려들 때쯤 라이언이 생뚱맞은 말을 하나 툭 던졌다.
[참! 최근 우리 정보부서에서 좀 수상쩍은 소식이 하나 잡혔어.]
[정보부서라면 미 정부기관을 말하는 거야?]
[이 친구야 내가 설마 미 정부기관을 상대로 ‘우리’라는 표현을 썼겠어? 재우 인베스트먼트의 정보부처를 말하는 거지.]
[재우 인베스트먼트에 정보부처도 있었어?]
되묻는 말에 라이언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농담임을 표현하려 손사래를 치자 그제야 눈을 흘기며 말을 잇는다.
[아무튼, 최근 중동에 파견 나가 있던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가 조만간 중동에서 일을 칠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군.]
[프랑스가 중동에서 일을 치다니. 무슨 일을?]
[리비아. 아무래도 프랑스가 카다피를 노리고 있는 모양이야.]
이건 또 웬 황당한 소린가 싶었다.
원 역사와는 달리 아직도 그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 새로 씌워진 역사.
그건 중동 사태가 워낙 급변했었던 영향을 받은 덕분이었는데, 그로 인해 난 그 역사만큼은 지워져 버린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프랑스가 카다피를 노린다?
대체 왜?
[이유가 뭐지?]
[이유야 당연히 석유 자원 때문이겠지.]
[…….]
[우습게도 현실 상황이 유럽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이 사실이잖아. 사우디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들은 미국의 손아귀에 있고, 유럽의 에너지 생명줄 중 하나인 러시아 역시도 이젠 완벽하게 미국의 편이고. 하니 유럽도 나름대로 에너지 확보를 위해 나서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어? 특히나 미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선 더더욱.]
이유야 물론 이해는 간다만 그게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나토조차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유럽이 대체 무슨 수로 중동에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말인가.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중동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건가?
[미쳤군.]
[맞아, 미친 거지. 더 심각한 문제는 프랑스가 내세우고 있는 명분이야. 독재자들에 의해 억압받는 군중들의 편에 서겠다는. 현재 중동 땅의 분위기를 보면 그게 어마어마한 시한폭탄이라는 것쯤은 자네도 잘 알지?]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했다.
독재자들로부터 억압받는 군중들의 반란을 유도하는 것.
그건 원 역사에서 벌어진 아랍의 봄 사태와 일맥상통하거든.
원래는 2011년에 이미 일어나야 했지만, 역시나 우리와 미국에 의해 주도된 중동의 격변으로 인해서 역사에서 밀려났었던.
결국 그것 역시도 다시 재연되는 건가.
왠지 섬뜩한 기분에 목을 축이려는 차에 라이언이 화두를 돌린다.
[뭐, 그거야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 벌써부터 걱정할 것은 아니고, 그나저나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어.]
부탁이라는 단어는 그처럼 능력이 출중한 친구에게서는 듣기 쉽지 않은 단어였다.
덕분에 머리를 휘젓던 프랑스의 삽질 문제는 저만치 날아가고, 이젠 호기심이 그 뒤를 대신했다.
[어디 들어 보지. 자네 같은 친구가 그런 표정까지 지으면서 내게 할 부탁이 뭔지. 아! 혹시라도 결혼을 고려 중이고, 그에 대한 내 조언을 바라는 거라면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어.]
라이언은 그게 웬 헛소리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나치게 앞서나갔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그가 툭 하고 서류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게 뭐야?]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마이클 감독이 내게 제안을 해 온 거야. 이번에 미래 전쟁에 대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영화를 기획 중인데, 좀 더 현실감 넘치는 장면 연출을 위해 CG보다는 실제 소품이 될 만한 것들을 동원하고 싶다더군.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재우의 중장갑 같은 것?]
재빨리 말을 받아 내자 라이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긴 한숨을 뱉어 내곤 서류를 툭 하고 그에게 다시 건넸다.
[어젯밤에 나타샤도 같은 말을 하더군. 그 마이클인가 뭔가 하는 친구 수완도 수완이지만, 꽤 집요한 구석이 있어. 나타샤에 이어 자네까지. 내게 가장 가까운 인물들을 앞세우는 것을 보면.]
[원래 좀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 그래도 원칙은 확실하게 아는 친구 같아.]
[…….]
[어차피 중장갑이야 미군들도 보유 중인 마당이니 그가 마음만 먹으면 출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잖아? 그럼에도 끝내 자네 허락을 바라는 것은 그만큼 원칙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
[그건 그렇군.]
슬쩍 긍정을 표했다.
기회라 여긴 걸까, 라이언이 화색을 띠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히 알아 둘 것은 그 친구가 원하는 것이 단지 중장갑만은 아니라는 거야.]
[…….]
[다각전차 말이야. 가능하다면 그것도 출연 여부를 타진해 달라고 하더군. 참고로, 보안에 대한 염려는 할 것 없어. 만약 허락만 한다면 재우PMC 대원들이 직접 관리 및 감시 감독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니까.]
사실 보안에 대해선 염려할 부분이 없다.
그것들은 설사 통째로 훔쳐 간다 해도 카피를 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물건들이니까.
하드웨어의 기술적 난이도와 극악에 이르는 소재 기술도 그렇고, 이미 양자암호화된 소프트웨어도 그렇고.
더군다나 내가 최악의 순간을 예상하지 않고 그걸 만들었을까?
예를 들면 적의 손에 그게 넘어가게 되는 상황 같은.
‘쾅!’
아마 그런 상황이 오면 그걸 시도한 자들에게는 정작 후회할 일만 남게 될 거다.
“흠.”
그럼에도 고민은 됐다.
무기란 엄연히 살상을 위한 도구.
그걸 과연 영화에 등장시켜 그 근본적인 역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희석시켜도 되는 것인지로 인해서.
[오버하고 있네]
뒤이은 내 설명에 라이언이 혀를 찼다.
술이 들어갔기 때문일까, 그동안 나타샤의 권고로 내내 자제해 왔던 담배가 갑자기 미치도록 당긴다.
[그래, 자네 말대로 오버일 수도 있지. 어차피 F22도 살상 무기고, 구축함도 살상 무기지만 아이들은 그걸 기초로 한 프라모델에 열광하는 세상이니까. 뭐, 좋아. 자네 체면도 있으니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지.]
***
[일본 정부는 오늘 인도네시아와 8척의 2,400톤급 잠수함 수출 계약을 맺었음을 발표했습니다. 일본 역사상 잠수함의 해외 수출은 처음 있는 일로써…….]
G8회의에서 돌아온 것도 어느덧 두 달이 지났다.
찌는 듯한 여름도 짜증 나는 판국에 들려온 더 짜증 나는 소식은 우리를 향한 일본의 공작이 보다 노골적이 되었다는 것.
솔직히 인도네시아가 재정적인 여유가 넘치는 나라도 아니고 무려 8척이나 되는 2,400톤급의 잠수함을, 그것도 가뜩이나 단가가 비싼 일본제를 무슨 수로 도입하겠는가.
아마도 저건 사실상 일본이 차관을 제공하여 이루어 낸 것일 테며, 그걸 통해서 동아시아를 포용하려는 우리의 정책을 훼방하려는 의도일 것이 분명하다.
[일본 정부는 오늘 미얀마와 베트남에 대략 1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무기 공여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후로도 일본의 움직임은 활발했다.
하지만 불안해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어차피 인도네시아나 미얀마 그리고 베트남은 이미 우리로서는 버렸던 패인 마당에.
아직은 당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정작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실질적인 면면을 알게 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거다.
[대법원은 오늘 미스비씨를 상대로 했던 김영술 씨의 배상청구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무렵, 2차 대전 당시 일본에 징용공으로 끌려갔던 김영술 씨의 배상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회귀 전에도 한일 간에 가장 치열했던 외교 분쟁의 씨앗이 발아한 것.
예상처럼 아베 정권은 격하다 못해 온갖 망언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고, 그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반응 역시도 극을 향해 치달아 갔다.
“차지환 대원과 장동건 대원이 방금 LA로 향하는 수송기 편에 올랐답니다.”
한참 관련 뉴스를 보고 있던 와중 김영기 실장이 소식을 하나 전해 왔다.
결국엔 영화 출연을 허락한 중장갑과 다각전차가 운용 요원들과 함께 LA로 향했다는 것.
끝내 갈등했었던 문제였음에도 결국 허락한 이유는 스토리 때문이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옳은 결정이었지 싶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과할 정도로 설정된, 그 당황스러운 스토리.
물론 감독이 내 허락을 유도하기 위해 꼼수를 피운 거겠지만, 어쨌건 그게 한국을 제대로 알릴 기회가 될 수 있지 않던가.
‘솔직히 서구권에서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
일본과는 달리, 우린 아예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정도로.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거다.’
내가 국가 이미지 제고의 중요성에 눈을 뜬 이상, 앞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나라를 제대로 알릴 테니까.
“영화가 성공하면 그동안 일본이 망쳐 놓은 이미지 복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군요.”
생각이 깊어질 무렵, 들려온 김 실장의 말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도, 그동안 저들이 한국의 이미지를 망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벌써 20년 전부터였다는 사실은 꽤 충격이었거든.
아무리 마음을 열고 봐주려고 해도 저들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겠죠. 반대로 일본의 이미지는 바닥을 기게 될 테고.”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저들과 같은 수법을 쓰시려고요?”
“그럴 리가요. 굳이 그런 비열한 방법이 아니라도 저들의 추악함을 알릴 방법이야 얼마나 많은데요.”
“…….”
“뭐, 예를 들면 우리가 이번에 협조하기로 한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를 동원하는 것도 좋겠죠.”
“…….”
김 실장은 내 태도 변화가 생소하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건 내가 관심조차도 주지 않았던 분야니까.
웃으며 다시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런 분야가 진실을 알리기엔 최고겠더군요. 다른 걸 떠나서 감정선이 자극된 상태에서의 사실 전달은 어지간한 조작에는 흔들리지 않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