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04화 (30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04화

콜롬비아 나리노 외곽.

“조금 더 왼쪽으로!”

무려 2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대지를 갖춘 재우PMC의 임시거점에선 며칠째 신입 대원들의 훈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현재 작전에 투입된 강 소령 휘하의 대원들과는 달리 이제 막 PMC에 뽑혀 교육을 이수 중인 인원들.

‘신입’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한국과 미국의 특수부대 출신들이었던 터라 사실상 전투교육보다는 장비 운용에 대한 교육이 주를 이뤘다.

“흐음…….”

장비교육 담당 수석교관 직을 맡은 장동건은 온갖 장비들을 호기심 어린 태도로 만지작대는 대원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이젠 선임 중에서도 까마득하게 높은 위치에 오른 그로서는 저들의 열정이 그저 부러울 지경.

사실 이번 임무에 굳이 자원한 것도 그 열정을 다시 불살라 보기 위함이었건만, 안타깝게도 그의 희망은 강 소령에 의해 접어야만 했다.

-자네, 그 심하게 떠는 손 말이야. 아무래도 외상 후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은데, 한동안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싶어.

처음 강 소령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었다.

그 누구보다 냉정하게 적을 사살해 왔던 그가 고작 외상 후 스트레스 같은 의지박약의 증거를 앓게 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진단 결과는 결국 강 소령의 예측과 일치.

때문에 한동안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현장투입이 아닌 후속지원 담당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번 작전에서도 제외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거참, 희한하지…….”

생각의 끝에 내려다본 그의 손은 전혀 떨림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들고 있던 커피잔 속의 내용물이 전혀 요동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희한하게도 전투와 같이 긴장감이 올라오는 순간이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손 떨림 현상.

이건 아무리 봐도 단순 외상 후 스트레스라고 지칭하기엔 좀 애매한 증상 같았다.

‘하지만 의사의 진단이 그랬으니, 뭐.’

부우웅!

한참 생각에 빠져 있을 무렵, 캠프 입구 쪽에서 제법 배기량이 큰 디젤엔진의 소리가 들려왔다.

“차지환 팀이 먼저 도착한 모양이군.”

워낙 기계를 만지는 것에는 도가 튼 인물이었던 터라 엔진 소리만 들어도 차량의 정체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상황.

“그럼 그렇지.”

곧이어 건물을 향해 다가오는 차량은 예상대로 퇴로 차단을 담당했던 차지환 팀의 트럭이었다.

“어? 여기서 뭐 하십네까?”

하차 중 장동건을 발견한 차지환은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대답 대신 힐끗 트럭의 뒤편에 실려 있는 다각전차를 한번 쳐다본 장동건은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을 되돌렸다.

“어땠어?”

“저 간나 새끼야 성능 하나는 두말하면 잔소리디요. 이건 뭐 꼭 사람이 타고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니 어떤 면에서는 사람보다 상황판단 능력이 더 빨랐습네다.”

매번 구박하던 것과는 달리 다각전차를 향한 차지환의 칭찬은 쉽게 그칠 줄을 몰랐다.

현장에서 그걸 직접 보지 못한 장동건으로서는 아쉬움이 더 커지는 순간.

애써 표정을 감춘 채 이번엔 강 소령의 부재를 묻자 제법 호기심 돋는 대꾸가 날아들었다.

“대장님께선 지금 콜롬비아 정부군과 후속 조치에 대해 논의 중이십네다. 현장 상황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는 바람에.”

“무슨 소리야? 현장이 예상 밖으로 흘러가다니.”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되묻는 말에 이번엔 민유환이 나섰다.

이후 그의 입을 통해선 이번 작전에서 발생했던 돌발변수들이 주룩 나열되었고, 한참을 듣고 있던 장동건은 어느 순간 슬쩍 입매를 뒤틀었다.

“결론적으로 대장님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군.”

“…….”

“그랬으니 굳이 자네들에게 퇴로 차단 임무를 맡기지 않았겠어? 아무튼, 수고들 많았고. 다각전차는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좀 진행해야 하니까 정비실로 옮겨 주게.”

“시스템 업그레이드요?”

이어진 장동건의 말에 차지환이 동그란 눈을 하곤 의문을 표했다.

때마침 돌아섰던 장동건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본사에서 특별 수송기 편으로 시스템 업그레이드 킷을 보냈어. 하니 테스트를 해 봐야 하지 않겠어?”

“아니, 저 간나 새끼래 지금도 재주가 차고 넘치는 마당에 또 뭘 더한다는 말입네까?”

차지환은 연속해서 의문을 표했다.

뭣 때문일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인 장동건이 잔뜩 입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AI에 목소리를 부여했다더군. 지금처럼 텍스트와 영상만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건 비효율적이라나?”

“…….”

***

“고조…… 전차가 말을 하면 기분이 좀 꼬롬하지 않겠습네까?”

한창 장동건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차지환이 곁에 있는 민유환을 향해 불평을 토했다.

말의 의도를 왜 모를까, 민유환은 연신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대꾸했다.

“왜, 이젠 자네가 욕이라도 하면 저것도 같이 욕하면서 맞받아치기라도 할까 봐?”

“그런 것도 가능합네까?”

차지환의 눈이 순간 화등잔만 해졌다.

정말로 그걸 믿기라도 하는 건지 얼굴엔 수심이 가득한 상태.

장난기가 발동한 민유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의 등을 탁 하고 내리쳤다.

“가능하지 않을까? 원래 AI라는 것이 지속적인 학습을 하게끔 만들어진 물건이니까. 그동안 자네를 통해서 보고 들은 것들을 이미 데이터화하여 학습에 참고했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

“…….”

“이 친구야, 그러게 좀 적당히 했어야지. 매번 그렇게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 버리면 대체 저게 뭘 배우겠어.”

“…….”

차지환의 얼굴은 이제 거의 흙빛에 가까워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작업을 지켜보는 와중 드디어 장동건이 작업 완료 소식을 전해 왔다.

“자, 그럼 어디 목소리 좀 들어 볼까?”

꿀꺽.

차지환은 마른침을 삼키며 시스템 가동 버튼을 누르는 장동건의 손을 쳐다봤다.

놈에게 욕을 듣는 것이야 상관은 없다만, 정말로 저 AI가 욕을 해 버리면 그건 학습 방향을 잘못 이끈 그의 책임이 되는 거니까.

그때, 가동을 시작한 AI가 드디어 첫마디를 뱉어 냈다.

[반갑습니다, 재우PMC 대원 여러분. 전 미래형 전투보조시스템인 ‘에바’라고 합니다.]

“…….”

“…….”

장동건과 민유환은 당황스러움에 일순 서로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당황한 것은 차지환.

그는 손으로 연신 다각전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 저거이…… 간나 새끼가 아니라 에미나이였습네까?”

***

[지금 보시는 것은 재우PMC 대원들이 콜롬비아 정부군과 함께 마약조직 소탕 작전을 진행 중인 장면입니다. 재우는 이번에 공중투하가 가능한 중장갑을 선보였으며…….]

콜롬비아에서 시작된 마약조직 과의 교전 장면은 미국의 언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화면의 역동성 때문일까, 교전 장면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

그게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듯 각종 포털의 반응에서도 영화를 운운하는 단어들이 꽤 많았다.

“저 위험한 작전을 끝까지 뒤따라 다녔다니, 저 기자도 참 어지간하군요.”

사실 나로선 정작 교전에 참여한 우리 대원들보다는 그걸 끝내 뒤쫓는 기자의 열성이 더 대단해 보였다.

어디에서 눈먼 총알이 날아올지 모를 상황.

그럼에도 저렇듯 끝까지 뒤를 쫓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이번 작전 뒤에 숨겨진 내막을 몰랐으니 가능했던 거겠죠.”

김 실장은 혀를 차며 대꾸했다.

저 장면을 기자의 열성보다는 만용으로 받아들이기라도 한 듯.

하긴, 막상 생각해 보면 저 기자에게는 행운이 따른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우리가 모사드를 비롯하여 러시아 첩보기관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해서 경찰 수뇌부와 마약조직 간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빨리 얻어 내고 대처하지 않았다면 아마 저 기자도 지금쯤 시체가 되어 있었을 테니까.

“그나저나 현지 작전지휘관도 모르게 한 것은 좀 너무한 처사 아니었을까요?”

“아니요, 투입된 경찰특공대 대부분이 마약조직의 하수인들이었던 상황이면 군도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마당에 미리 정보를 알린다면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이것 참, 무슨 나라가 그렇게까지 개판인지 원.”

김 실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긴 한숨을 뱉었다.

아마도 그 한숨 속에는 우리의 처지가 저들과 같지 않다는 것에 대한 위안도 포함되어 있을 거다.

“그나저나, 콜롬비아 정부에서는 이번에 연루된 경찰 중간 간부들을 시작으로 경찰 수뇌부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을 실시할 예정이랍니다. 그걸 시작으로 향후 전 기관에 걸쳐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군요.”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의지 하나만큼은 대단하군요.”

나로선 미심쩍은 태도를 보일 수밖에는 없었다.

막말로 콜롬비아 같은 나라에서 어디 그게 쉬운 일일까.

자칫하면 대통령조차도 길거리에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을 정도로 치안에 문제가 있는 나라인 마당에.

그럼에도 끝내 개혁을 진행한다는 점에 응원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문제는 어제 늦은 저녁 대통령 측근을 향한 암살 기도가 있었다는데, 그 때문에 대통령도 현재 집무실에만 칩거 중이랍니다.”

이어진 김 실장의 말에 절로 눈매가 좁혀졌다.

혹여 내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에.

거리 한복판에서 총격을 당하는 대통령의 모습.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우리로서는 첫술도 제대로 뜨기 전에 상이 엎어지는 건데,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재우PMC가 대통령의 경호를 맡을 수도 없고.”

문제는 그 점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 경호를 타국에서. 그것도 용병들이 맡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능력 여부는 둘째 치고, 일단 대외적인 이미지 제고 때문에라도 그런 결정을 내릴 이유는 없지 않던가.

“안 그래도 저쪽에서 그 부분에 대한 제안을 해 왔습니다.”

순간 김 실장에게서는 예상을 빗나가는 대꾸가 들려왔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쳐다보자 그가 조금은 안타까운 사실을 전달한다.

“현재 콜롬비아 대통령은 누구에게 경호를 맡기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마약조직은 물론 현 대통령의 정적들과 아무런 이해타산이 없는 재우PMC에게 맡기는 것이 낫겠다 싶은 거죠.”

“이것 참…….”

***

[일본 고베 제강이 무려 40년 넘는 세월 동안 제품 시험 성적서를 조작해 왔다는 사실이 내부자에 의해 폭로됐습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전면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베 제강에 이어 이번엔 일본 다카다 에어백의 품질 조작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다카다는 그동안 안전기준 미달 제품들을 도요타 자동차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공급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로 인해 현재 미국 정부는 정밀조사와 함께 리콜 명령을 고려 중인 것으로…….]

[도요타 자동차는 다카다 에어백의 품질 미달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로 인해 최악의 경우 미 법무부로부터 천문학적인 징벌적 배상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2014년 4월.

고베제강으로부터 시작된 일본 제품들의 품질조작 사태는 전 산업계로 그 파장이 커져 나갔다.

그 탓에 해당 제품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간 국가들의 수는 점점 늘어갔고, 그동안 장인정신을 무기로 최고의 품질을 갖췄다고 자부하던 일본 제품에 대한 신뢰도는 점점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에 문제가 된 업체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관리를 예고했습니다.]

물론 일본 정부도 마냥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향후 정부가 해당 업체의 제품들에 대한 신뢰도를 직접적으로 챙기고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음은 물론 향후 해당 업체가 생산한 제품들의 품질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경우 배상에 대한 보증을 떠맡겠다는 의지표명까지.

이건 뭐 한마디로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건데, 대체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저렇게까지 나설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긴급 뉴스입니다. 일본 정부는 오늘 돌연 한국산 철강 제품과 화학제품 중 일부 품목에 대에 상계관세를 부과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2014년 5월.

일본으로부터 들려온 소식은 우리나라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우리 정부의 업계 보조금으로 인해 자국의 제품들이 공정한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핑계에서 나온 조치.

하지만 그게 우리의 ‘작전’을 눈치챈 저들의 대응책이라는 것쯤은 우리 정부도 인식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 역시 본격적인 일본과의 관세전쟁을 예고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젠 무역수지가 역전된 상황이니 그쯤은 주저하지 않겠다는 건가?’

하긴, 이젠 우릴 상대로 한 해 꼬박 200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보고 있는 입장이니만큼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대처긴 하다.

‘뭐, 그래 봐야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지들이겠지만.’

막말로 일본이 우리를 상대로 무역적자폭을 키운 이유는 반도체 관련 부품들 때문.

한데 그에 대한 관세를 높인다는 것은 결국 저들의 완제품 가격 또한 상승한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아니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저들은 한결같이 생각의 깊이가 부족한 느낌이다.

[오늘 오전 대통령님을 비롯한 경제계 주요 인사들이 미국에서 열리는 G8 회의 참석을 위한 출국 길에 올랐습니다.]

2014년 6월.

대한민국의 G8회의 참석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무리도 아닌 것이 6.25를 겪는 과정에서 모든 산업기반이 박살 났던 국가가 불과 수십 년 만에 아시아의 실질적인 맹주로 거듭나고 있는 상황이니까.

사실 나 역시 처음 회귀를 했을 때만 해도 작금의 결과는 예상치 못했었다.

[반갑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한 대통령 부부는 주최국인 미국의 대통령과 반가운 악수를 나누었다.

어느 정상들을 대할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톰의 모습.

덕분에 중계 중이던 카메라들 역시 한참을 두 정상에게만 집중했고, 애꿎게도 바로 직전에 도착했던 유럽의 정상들은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맞았다.

“쯧쯧.”

순간 내 눈에 뜨인 것은 역시나 아베였다.

마치 똥이라도 씹은 듯한 저 표정.

오랜만에 속이 절로 시원해지는 장면이었다.

[하하하!]

그런데 그때, 아베가 유럽의 정상들과 격의 없는 웃음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워낙 영어가 딸려 통역을 동원하기는 했지만, 뭐 어쨌건 현 상황에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다.

‘흠.’

이거 어쩌면…….

‘사태가 정말 내 예상처럼 흘러갈지도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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