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03화
치직!
-알파 송신. 여우 몰이가 시작됐다. 찰리는 현 위치를 고수하라.
몰이조의 지휘를 맡았던 강 소령으로부터 무전이 날아왔다.
대기조. 정확히는 도주하는 마약 조직들의 퇴로를 막아서는 임무를 맡은 민유환과 차지환은 긴장감이 최고조로 오른 상태.
하긴 대기조라고 해 봐야 고작 그들 둘뿐인 마당에야 마음이 무겁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다.
위잉!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긴장을 할 이유는 없다.
지금처럼 뒤를 받쳐 주는 확실한 카드가 존재하는 마당에는.
스윽.
차지환은 뒤편에서 이미 가동을 시작한 다각 전차를 힐끗 쳐다봤다.
이번 작전을 통해 성능 테스트를 진행 중인 재우의 새로운 무기.
소문에 의하면 최근까지 무려 300여 개에 달하는 오류를 잡아냈고 그로 인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AI시스템을 갖추었다고는 하는데, 그렇다 해도 평소 기계에 대한 불신이 강한 차지환으로서는 영 가까이하기가 껄끄러운 물건이었다.
“니미럴, 근데 왜 하필 내 명령을 듣게 만든 거이가?”
기잉!
무심코 불평을 쏟아 내는 순간, 다각전차가 갑자기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기동 방식을 변화시켰다.
놀란 차지환은 후다닥 뒤로 물러나며 전차를 노려봤고, 조금 후 민유환의 웃음 섞인 말이 날아들었다.
“쫄기는. 이 친구야 매뉴얼도 못 봤어? 반경 수 킬로미터 내에 수상한 움직임을 탐지하면 자동으로 전투모드로 변환을 한다잖아.”
“기럼 주변에 적이라도 나타났다는 겁니까?”
“무전에 의하면 마약조직들이 이쪽으로 향했다고 하니까 아무래도 그들일 가능성이 크겠지. 그나저나 이 전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험지도 아닌 곳에서 바퀴가 아닌 다리를 이용한 기동 방식을 선택하다니.”
민유환은 대꾸를 내뱉음과 동시에 다각전차를 쳐다봤다.
삐빅!
순간 그들의 팔목에 장착된 스크린에 뜬 붉은빛의 경고 문구.
그건 한창 주변을 탐색 중이었던 다각전차의 AI가 그들에게 보내는 정보들이었다.
“적들이 몰려오는군.”
민유환은 메시지와 함께 전달된 영상신호를 보며 차지환에게 손짓했다.
하지만 차지환 역시도 이제 정보 시스템을 다루는 것쯤은 이미 익숙해진 상태.
자신을 뭘로 보냐는 듯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차지환은 곧 뒤편에 있던 다각전차를 향해 뜬금없는 말을 뱉어 냈다.
“간나 새끼. 거, 실수로라도 우릴 쏘는 일이 벌어지면 고철상에 팔아먹어 버릴 줄 알라.”
위잉!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각전차가 자신의 무장을 활성화했다.
미니건을 비롯하여 30밀리 주포. 그리고 몸 안에 숨겨져 있던 40밀리 유도미사일 터렛까지.
깜짝 놀란 차지환은 서둘러 손사래를 쳤지만, 다행히도 그의 말에 대한 반응은 아니었던 듯 총구의 방향이 숲 저편을 향하고 있었다.
“그 동무래 까칠하기는. 거,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고만 기래.”
차지환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곤 다시 숲 저편에 대한 감시에 나섰다.
우웅!
때마침 등장한 전투차량들은 콜롬비아 정부군과 경찰특공대들의 것.
힐끗 다시 다각 전차를 향해 시선을 준 차지환이 불평을 쏟아 냈다.
“뭐이래. 거, 아군하고 적군도 구분 못 하는 거가?”
“구분을 못 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함께 정황을 살피던 민유환이 그 말에 즉시 대꾸했다.
의아한 듯 차지환의 고개가 갸웃해졌고, 이후 민유환은 손목에 있던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들을 적으로 규정했었다면 전차가 이미 공격 의사를 우리에게 전달했겠지.”
작전 투입 전에 받았던 교육에 의하면 그 말이 맞았다.
AI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교전을 막고자 최종적인 교전 허가를 반드시 운영자에게 묻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
하지만 정작 저 차량들이 등장했을 당시 전차에선 아무런 대응 요청이 없었고, 그걸 염두에 둔다면 오류가 일어난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럼 그렇지.”
그때, 민유환이 다시 자신의 손목에 있던 스크린을 가리키며 실소를 내뱉었다.
그 덕에 차지환의 시선 역시도 자신의 손목 스크린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곧 또 다른 신호들이 전해져 오고 있음을 발견했다.
“저들 뒤편으로 대략 1킬로미터쯤 후방에 또 다른 움직임이 잡히고 있어. 아마 그게 강 소령에게 쫓겨 도주 중인 마약 조직들일 거야.”
차지환은 순간 탄성 어린 눈빛으로 전차를 쳐다봤다.
착각이었을까, 얼핏 놈의 몸체 상단에 달려 있던 탐지 시스템의 반사경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만 같은 느낌.
왠지 그게 꼭 ‘이제야 내 능력을 알겠느냐’는 의사 표현인 것만 같았다.
“간나 새끼 우쭐대기…… 어라? 지금 저거이 무슨 상황이가?”
놈을 향한 불평을 토하는 와중 갑자기 콜롬비아 군과 특공대원들 사이에서 수상한 움직임 감지됐다.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던 터라 자세히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아무리 봐도 내분이 일어난 느낌.
혹시나 싶어 쳐다본 민유환 역시도 같은 느낌을 받은 듯, 말을 뱉어 냈다.
“이거 상황이 골 때리게 돌아가는데?”
“아니, 저것들은 왜 갑자기 같은 편끼리 총구를 겨누고 지랄인 겁네까?”
“그야 나도 모르지. 그런데 대체 강 소령님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예견한 거지?”
그 말에 차지환의 뇌리를 스친 것은 임무 투입 전 강 소령이 했었던 말이었다.
퇴로 차단 작전이 시작되면 반드시 콜롬비아 군과 경찰들 사이에서 배신자가 나올 거라는.
당시엔 설마 싶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뚜렷한 근거를 두고 했었던 말이었지 싶다.
“대장님은 어디선가 미리 정보를 들은 모양이디요. 그나저나 이제 어캅니까?”
“어떻게 하긴, 일단 우리가 나서야…….”
대답을 뱉어 낸 민유환은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전차에 의해 전달된 정보가 진동으로 손목을 울린 탓.
즉시 스크린을 쳐다본 그는 차지환을 향해 적의 등장을 예고하는 손짓을 해 보였다.
“준비해, 예상보다 큰 규모의 적들이 몰려오고 있다.”
부우웅!
순간 저편에서 정말로 다수의 전투차량들이 등장하며 정부군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지휘관의 목숨이 담보로 잡혀 있던 정부군들로서는 사면초가인 상황.
애꿎게도 그때 경찰특공대원으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가 자신의 동료들. 즉 배신자들을 향해 악다구니를 치는 것이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꼴을 보아하니 저 두 사람은 변절자들이 아닌 모양인데, 공격 목표에서 제외시켜야 하는 것 아닙네까?”
차지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당연하다는 듯 민유환의 고개가 끄덕여졌고, 이후 차지환은 재빨리 다각전차에게 다가가서 놈의 전투정보 시스템에 접속을 시도했다.
삑삑!
고작 며칠에 불과한 교육이었지만 운용시스템을 다루는 차지환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했다.
전투복을 판별 수단으로 하여 정부군을 공격 목표에서 제외하는 작업. 그리고 지속적인 추적관리를 통해 배신행위에 참여하지 않은 두 명의 특공대원 역시 공격 대상이 아님을 인식시켜 주는 작업까지.
작업에 무리가 없었던 걸까. 이후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던 그는 뭣 때문인지 휙 하고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댄다.
“귓구멍 활짝 열고 잘 들으라. 내가 쏘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절대로 총질부터 해선 안 되는 기야. 알간?”
“자네 지금 뭐 해?”
차지환의 기행을 보다 못한 민유환이 혀를 차 보였다.
[다들 총 버려!]
순간 저편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다급함을 느낀 민유환은 재빨리 다시 차지환을 쳐다봤지만 이미 어느새 그는 저편을 향해 튀어 나가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Hey!”
순간 대치 중이던 두 그룹의 시선이 일제히 차지환과 민유환에게로 향했다.
“간나 새끼들. 개판이구만 기래.”
곧바로 차지환의 조소가 이어졌고.
[저건 뭐야?]
동시에 마약 조직들이 무어라 소리치는가 싶더니 저들의 총부리가 일제히 그들에게로 향했다.
“간나 새끼. 뭐 하니? 날래 쏘라우.”
탕!
순간 떨어진 차지환의 명령에 다각전차가 반응했다.
퍽!
의외인 것은 날아간 총탄이 딱 한 발뿐이었다는 것.
처음부터 노리기라도 했던 듯, 그건 정확히 정부군 지휘관을 위협하던, 경찰특공대원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풀썩!
탕 탕 탕!
이후 다각 전차는 적이 미처 상황 파악을 끝마치기도 전에 연속해서 저격을 시도했다.
풀썩!
이번에도 바닥을 뒹군 것은 정부군 지휘관을 포위 중이던 경찰특공대원들.
자체적인 상황 판단에 따라 우선적인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는 다각전차의 판단에 따른 결과다.
[빌어먹을! 저격병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약조직원들과 변절에 가담한 경찰특공대원들은 재빨리 차지환이 있던 방향을 향해 응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숲으로 몸을 날린 이후.
쿵!
그제야 다각전차는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 기동을 시작한다.
[저건 또 뭐야…….]
뒤늦게 다각전차를 발견한 저편에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형태의 무기였을 테니까.
제법 거리까지 있었던 탓에 아마 저들에게는 놈이 마치 괴물과도 같이 느껴졌을 거다.
쿵쿵쿵!
놈은 덩치에 걸맞지 않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조직원들과의 거리를 좁히며 총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필 선택한 무장은 미니건.
위이이잉!
두두두두두!
[뭐야!]
놈의 엄청난 화력에 놀란 마약조직원들은 혼비백산하며 엄폐물을 찾아 숨어들었지만, 그사이 벌써 수십에 달하는 조직원들이 피륙이 되어 땅을 나뒹굴었다.
[차량 뒤로 피해!]
개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명령은 제법 현명한 판단이었다.
저들이 타고 왔던 전투차량은 어지간한 총탄쯤은 너끈히 견디는 MRAP이었으니까.
과거 중동전쟁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암시장으로 흘러들어 간.
예상대로 그건 방탄 능력 하나만큼은 발군의 성능을 발휘했고, 그 탓에 미니건의 총탄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슈욱!
[미사일이다! 피해.]
하지만 다각 전차의 무장은 미니건이 전부가 아니었다.
사용된 무기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AI가 빠른 판단으로 무장을 40밀리로 교체.
이후 순식간에 날려 보낸 유도미사일에 의해 MRAP들이 허공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퍼버벙!
[응사한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정부군들도 전투에 뛰어들었다.
덕분에 무려 200에 달하던 조직원들은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 가는 상황.
[젠장, RPG 어디 있어!]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느낀 마약조직원들은 어떻게든 문제의 괴물을 제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었고, 그건 곧 RPG를 활용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이거나 먹어라. 이 빌어먹을 괴물아!]
쐐애액!
다각전차를 향해 날아간 RPG는 무려 3발이었다.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직격당한다면 전차도 생존을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
[있는 대로 쏟아부어!]
그럼에도 조직원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후속 RPG를 챙겨 들기 바쁘다.
쾅쾅쾅!
그때, 예상을 빗나간 결과가 발생했다.
[무슨…….]
잘 날아가던 RPG들이 허공에서 폭발해 버린 것.
자신을 향한 공격을 감지한 다각전차가 빛과 같은 속도로 능동 방어 장치를 가동한 결과다.
[빌어먹을!]
조직원들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RPG의 재장전에 나섰다.
쾅!
하지만 그들을 향해 날아든 40밀리 유도미사일이 한발 더 빨랐던 상태.
결국 RPG 사수들은 짧은 비명조차도 남기지 못한 채 순식간에 살과 뼈가 분리되어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퉁 퉁 퉁!
이어진 다각전차의 반격 수단은 30밀리 포탄이었다.
스스로에게 위협이 될 만한 무장전투차량들은 이미 제거가 끝났기에 더 이상의 유도미사일 낭비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
하긴, 이제 남은 것은 고작 기관총이나 대물저격총을 든 인간들뿐인 마당에야 사실 30밀리도 과한 무력 투사다.
쾅! 쾅쾅!
날아드는 30밀리 포탄에 의해 적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 갔다.
어느덧 남은 적들은 변절한 경찰특공대원들 일부가 전부였을 정도.
그게 우연인지. 아니면 다각전차의 의도에서 비롯된 결과인지는 판가름할 방법이 없다.
위잉!
목표를 재설정한 다각전차는 이번엔 상부에 설치되어 있던 소총을 제압 수단으로 설정했다.
그 역시 이유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
[쏘지 마!]
마음이 다급해진 변절자들은 재빨리 세바스찬과 앤더스를 방패막이로 삼아 소리쳤고, 그걸 인식한 다각 전차의 총구가 하늘로 방향을 바꾼다.
[우릴 쏘면 이들도 죽는다.]
그 모습을 본 변절자 중 하나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소리를 높였다.
탕!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의해 무너진 변절자.
어느새 숲을 돌아 놈들의 뒤편을 점거한 차지환과 민유환이 나선 거다.
[무슨…….]
놀란 다른 변절자들은 다급히 차지환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하지만 그건 튀어나온 쥐로 인해 정작 눈앞에 있는 호랑이에게서 시선을 뗀 것과 마찬가지의 행위.
탕 탕 탕!
기회를 포착한 다각전차의 재빠른 조준사격에 무려 다섯이 넘는 변절자들의 몸이 순식간에 꼬꾸라졌다.
[이런 미친…….]
[이게 다 무슨.]
내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던 인질. 즉 세바스찬과 앤더스는 멍한 얼굴로 중얼댔다.
스윽!
순간 무심히 그들을 지나쳐 가는 누군가.
고개를 돌리자 예의 그 빼빼 마르고 왜소한 체격의 동양인 사내가 잔뜩 흥분한 태도로 괴물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어 내기 시작한다.
“간나 새끼, 방금 전에 분명 내 가랑이 사이로 총탄이 지나가써. 너 일부러 그런 거 아니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