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00화
[이거 듣고 있자니 당황스럽군. 지금 나를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시도가 먹힌 모양이었다.
내내 평정심을 잃지 않던 그가 저토록 당황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하긴, 아무리 잘 눌러놓는다 해도 스스로를 왕으로 자처하던 자들의 자존심은 그리 쉽게 눌러지지가 않는다.
더군다나 아직까지도 고지식함이 남아 있는 남부 출신인 그로서는 더더욱.
[당장 내 목에 칼이 들어올 상황이라면 협박이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하죠.]
이어진 대꾸에 그의 눈매가 좁혀졌다.
우습게도 그 순간 난 뒤이어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뭔지를 가늠하는 것이 가능했고, 이후 정말로 그는 내 예상과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은 말을 뱉어 냈다.
[지금 하고 있는 말. 내가 카길 가문의 가주라는 사실 정도는 감안하고 하는 거겠지요? 미국 정치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미국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는 것이 가능한.]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게 더 불을 지른 걸까, 그의 얼굴에 순식간에 피가 몰리며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오만한 태도로군. 아무리 당신이 미국에 대한 영향력이 대단하다 해도 정말로 미 정부가 끝내 당신의 편을 들어 줄 것 같소? 뭐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을 떠나서 미 정치권에 쏟아붓고 있는 자금의 규모 차이 때문에라도 애초 당신과 난 싸움이 안 된다는 말이요.]
듣자 하니 유치함에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막말로 철없는 부잣집 자식들끼리의 논쟁도 아니고 느닷없이 이건 웬 돈을 앞세운 시위인가.
하지만 어찌 보면 그게 오히려 편하다.
권력과 돈이라면 나도 내세울 만큼은 가지고 있으니까.
[카길의 한 해 매출이 대략 천억 달러가 조금 넘는다지요?]
[…….]
데이빗은 뜬금없이 뱉어진 내 말에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아직은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느낌.
하지만 그와는 달리 리암의 입꼬리는 잔뜩 올라갔고, 난 슬쩍 그와 눈을 맞춘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미국산 농산물의 경우 워낙 대규모화되고 기계화가 잘 되어 있어서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카길사의 순이익도 그야말로 턱이 떨어질 정도이겠군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요.]
발끈한 데이빗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움켜잡았다.
어지간히도 성격이 급한 모양새.
상관하지 않은 채 다시 말을 이었다.
[뭐, 최소한으로 잡아도 한 해 대략 400억 달러쯤은 순이익으로 돌아올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그 정도는 저도 벌어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더불어, 정말로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점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돈으로만 싸움을 시작하자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도. 아! 설마 미국 대부분의 상위 기업들이 제 지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시지는 않겠죠?]
[…….]
순간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렇듯 많은 수의 미 정부기관을 장악하고 있다는 그가 정말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테고, 아마도 내가 대놓고 돈 싸움을 하자는 식으로 맞받아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에서 나온 반응일 거다.
[재우가. 아니, 당신이 대단한 자본가인 것은 인정하지. 솔직히 그 점이 아니었다면 애초 그런 오만한 태도로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했을 거고.]
뱉어 내는 말투가 조금 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정말로 우리 둘이 진심을 다해 돈 싸움을 하는 경우 발생할 후폭풍을 떠올린 거겠지.
사실 나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와 나의 충돌이 현실이 되면 미국은 그야말로 재앙을 맞을 테니까.
[저도 이런 식의 대화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뭐 상황이 상황인지라.]
중얼거리듯 대꾸를 뱉어 냈다.
상황이 이쯤이면. 즉, 내가 어느 정도의 각오로 대화에 임하고 있는지를 눈치챘다면 이젠 숙이고 들어와도 좋으련만, 그는 끝내 분에 겨운 투의 말을 던진다.
[힘으로 나를 찍어 누르겠다? 그렇게 끝내 싸움을 걸 생각이라면 각오 정도는 해야 할 거요. 카길은 마음만 먹는다면 단숨에 세계 곡물시장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고 종자를 무기로 얼마든지 한국 정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니까. 단순히 돈만이 내가 가진 무기는 아니라는 걸 기억하라는 거요.]
그건 나름 먹혀들 만한 경고였다.
막말로 카길 정도의 회사가 곡물시장에서 분탕질을 치기 시작하면 골치 아픈 것이 사실이니까.
게다가 저들은 종자산업 분야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상황.
실제로 그의 고집이 실행되면 그동안 종자 산업을 지켜 내는 것에 무심했던 우리 정부로서는 타격이 만만치 않을 거다.
[쯧, 이래서 내가 한때 카길을 욕심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 협박도 내겐 통할 만한 것이 아니다.
자고로 협박이란 상대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을 때나 먹히는 법인데, 지금은 모든 면에서 내가 우위에 있거든.
[카길을 욕심냈다고?]
데이빗은 황당하다 싶은 표정이었다.
하긴, 규모가 워낙 거대해서 설사 공개된 기업이었다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가진 역량을 죄다 동원한다면 딱히 무리는 아니다.
[사실입니다. 한국이 통일되고 식량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난 가장 먼저 카길에 눈을 돌렸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카길은 공개기업이 아니었고, 그 탓에 지금과 같은 우려했던 상황을 맞은 거죠. 식량이 무기가 되는, 이 빌어먹을 상황.]
[…….]
[하지만 꼭 카길만이 답은 아니죠. 해서 전 회장님께서 끝까지 나와 척을 지겠다면 그 대응책으로 공개된 곡물기업 중 적당한 곳을 하나 인수할 생각입니다.]
[그래 봐야 고만고만한…….]
비웃듯 대꾸하던 그는 어느 순간 아차 싶은 표정과 함께 나를 쳐다봤다.
슬그머니 미소를 내비치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설마 지금 몬산토를 인수하겠다는 거요?]
[뭐, 카길에 비한다면야 규모는 작지만, 몬산토가 가진 종자 분야 파이프라인도 꽤 대단한 편이니까요.]
그 말에 비로소 데이빗의 눈동자가 떨려 왔다.
쐐기를 박겠다는 의미로 기어이 말을 더 보탰다.
[만약 제가 몬산토를 인수하면 앞으로 곡물시장에 꽤 심한 지형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걸쳐서. 참고로 전 여태 ‘적당히’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기에 뭐든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봤고, 그 결과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
[왜요, 불가능할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제겐 그만한 자본은 물론 뒷받침해 줄 기술들이 충분하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군수기업이 가진 기술 중엔 농업 분야의 발전에 쓰일 만한 것들이 꽤 많거든요.]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빠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끝내 이렇다 할 반발이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봐선 그게 빈말이 아님은 눈치챈 느낌.
비로소 대화의 주도권은 내게로 넘어왔고, 그럼 이제 당근을 제시할 차례다.
[하지만 저와 손을 잡는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더불어서 저와의 협력으로 인해 카길의 미래는 더더욱 밝아지겠죠.]
예상처럼 잔뜩 찌푸려져 있던 그의 눈이 한순간 이채를 발했다.
그동안 보였던 거만한 자세와는 달리 잔뜩 상체를 끌어당기며 쳐다보자 그의 반응 또한 달라진다.
[어디 구체적으로 말해 보시오. 그 협력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에 대해서.]
[카길은 자체적으로 기상 관측 위성을 쏘아 올리고 있죠.]
웃으며 서두를 꺼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주제였던 듯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데 만약 거기에 우리가 개발 중인 AI가 탑재된다면 분석 정확도와 예측 수준이 아마 지금과는 전혀 달라질 겁니다.]
[AI?]
[그렇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AI는 단순히 군수분야를 넘어서 산업계는 물론 농업분야에서도 활용성이 뛰어나죠. 그건 대규모 경작을 위한 기계화와 자동화 시스템 구축에서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광활한 경작지를 가진 미국이 그걸 도입하게 된다면 아마 생산성이 지금에 비해 최소 30% 이상은 향상이 될 겁니다.]
[30%?]
[뭐 말이 30%지. 한해 천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가진 카길이 그 런 대규모의 생산성 향상을 이루기는 쉽지가 않죠. 그게 과연 일본이 약속한 200만 톤의 판매처 보장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데이빗의 눈동자는 또 한 번 흔들렸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엔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는 것.
절반의 성공을 예측하려는 찰나, 그가 갑자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허, 이제야 알겠군. 에밋이 왜 그토록 당신을 꺼려 하는지.]
[…….]
[이건 뭐 단순히 내 마음만 돌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나를 상대로 장사까지 해 먹자는 수작 아니오.]
그 말에 휙 하고 곁에 앉아 있던 리암이 나를 쳐다봤다.
마치 저건 또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
그저 어깨만 들썩여 보이려는데 데이빗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만약 내가 그 조건에 동의하면 결국 우리가 가진 농업장비들은 죄다 새로 갖추거나 개량을 해야 할 텐데, 그로 인해 투입되는 자본의 규모만도 수십억 달러. 아니, 족히 백억 달러에 달할 거요. 그리고 그건 결국 재우가 차지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향후 우린 재우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되겠지.]
부정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순간 곁에 있던 리암에게선 허어 하는 탄성이 들려왔고, 데이빗은 여전히 찌푸려진 표정과 함께 말을 이었다.
[한마디로 이건 지금 나보고 달콤한 독 사과를 먹으라는 건데, 짜증스럽게도 굉장히 유혹적이군.]
여전히 웃음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고민이 깊은 듯 한참을 심각한 표정을 짓던 데이빗은 뭣 때문인지 갑자기 자신이 쥐고 있던 지팡이를 나에게 건넨다.
[무슨 의미입니까?]
[받으시오. 명색이 아프리카산 상아와 순금으로 제작된 지팡이외다. 우리가 손을 잡는 기념선물로 드리지.]
순간 리암이 툭 하고 턱을 떨어트렸다.
저 고집스러운 영감이 한순간에 마음을 바꾼 것에 충격을 받기라도 한 듯.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 새삼 이 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피어났고.
과연 그는 정말로 나와 척을 지려 했었던 걸까?
어쩌면 나와의 이런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계획된 사태가 아니었을까?
스윽.
생각을 뒤로하고, 건네진 지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드는 엉뚱한 생각.
그건 이걸 과연 받아도 되는 걸까 싶은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저 노인에게는 보행 보조 수단인데, 그걸 선물이랍시고 받아도 되는 건가 싶은.
스윽.
그때, 데이빗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술을 전시해 둔 진열장으로 걸어갔다.
예상과는 달리 전혀 거동에 불편함이 없는 모습.
당황스러운 마음에 힐끗 지팡이를 쳐다보자 웃음기 가득한 데이빗의 말이 날아든다.
[그건 지팡이를 가장한 칼이오.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봤다면 아주 생소한 것은 아닐 텐데?]
들려오는 말을 뒤로하고 슬쩍 손잡이를 당겨 봤다.
정말로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잘 벼른 날을 가진 칼이 삐죽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나저나 상황이 이러면 리암 저 친구와도 이젠 앙금을 풀어야 한다는 건가?]
그사이 술을 가져오던 데이빗은 대뜸 걸음을 멈추곤 불만을 표했다.
상황이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은 리암도 마찬가지였던 듯 그의 표정 역시 잔뜩 썩어 있었고, 난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두 분이 끝내 물어뜯어 가며 싸우실 생각들이라면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게 피해가 오는 경우 저도 응분의 조치쯤은 취하겠죠.]
두 노인은 순간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얼핏 들려오는 말은 서로의 출신을 향한 비하 발언들.
하지만 단어 선택에 제법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봐선 서로의 기분마저 상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닌 듯 보였다.
[좀팽이 유대인 같으니.]
[뭐라는 거야 저 좁쌀만 한 양키 놈이.]
***
휘이잉!
밤새 술독에 빠졌던 여파는 무려 이틀이나 지속됐다.
비록 속은 울렁거렸지만 일이 해결된 것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그걸 상쇄하고 있던 상태.
하지만 정작 난기류에 요동치는 전용기 탓에 결국엔 몇 번이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쯧쯧, 그러게 적당히 드셨어야죠.”
곁에서 지켜보던 김영기 실장은 연신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꾸할 기운도 없던 터라 손사래를 치며 의자를 기울이려는데, 그걸 또 가만히 두질 않는다.
“위구르 민족해방전선에서 벌써 4번째 수용소 기습에 성공했답니다. 그 탓에 지금 중국 정부는 위구르 자치구를 향해 대규모 병력 파견을 검토 중이라는군요.”
“민족해방전선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겠답니까.”
“당분간은 대응을 자제하고 숨어들 예정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대규모 병력들과 정면충돌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대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말을 뱉어 낼 기운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렇다 해도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까지 그냥 넘길 생각은 없다.
“도착 즉시 청와대로 갑시다.”
“청와대는…… 이번 출장에 대한 보고를 하실 요량이면 그냥 하루 정도는 쉬시고 들어가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김 실장은 내 몸 상태를 고려한 듯 휴식을 권유했다.
슬며시 얼굴을 덮고 있던 수건을 걷어 내곤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요, 대중전략의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죠.”
“쯧, 그게 문제군요. 아무튼 일본은 참 답이 없는 집단입니다. 대체 언제쯤 우리가 자신들의 아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려는지 원. 뭐 수십 년간을 지배해 왔던 식민지가 이젠 자신들보다 앞서간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 해도 일본 극우들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는 어제 리암이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뱉어 냈다.
한데 그 문제에 대한 답이야 빤하지 않을까.
웃으며 말을 던졌다.
“그 해답은 이미 미국이 보여 줬죠.”
“…….”
“그들이 더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차이를 보여 주거나 또는 무력을 통해 철저하게 짓밟아 주는 것. 사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두 번째죠.”
김 실장의 눈이 그 말에 크게 흔들렸다.
위험한 발언이라는 듯.
하지만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임은 아마 그도 맘속으로는 인정하고 있을 터, 난 내 주장에 힘을 더하려 넌지시 현 일본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얼마 전 일본 극우성향의 방송에서 자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보셨습니까?”
“…….”
“대부분의 일본 시민들은 자위대와 우리 군이 충돌할 경우 자위대의 필승을 장담하더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들은 눈도 없고 귀도 없답니까. 지금껏 우리가 이루어 온 것들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요?”
“아쉽게도 모릅니다. 어려운 자국 상황에 대해 실망감을 주지 않으려 내각이 펼친 우민화 정책 때문이죠. 아마 어지간한 자극이 아니면 지금의 일본 국민들은 현실을 깨우치기 힘들 겁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무력에 대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든지……. 뭐, 사실 그게 우리로서도 확실하게 일본을 굴복시킬 방법이기도 하죠.”
꿀꺽.
김 실장은 내 태도가 우려스럽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끝내 그것이 농담만은 아니라는 미소를 내비쳤고, 이내 수건을 다시 얼굴에 덮으려는 찰나에 지금까지의 대화와는 상관없는 주제의 말이 날아들었다.
“참! 혹시 소식 들으셨습니까? 출발 직전에 들은 소식인데, 이동욱 전 국방장관이 오늘 자로 완치 판정을 받았답니다.”
이동욱 전 국방장관은 현 국방장관인 김태익 장관과 함께 내게는 아주 의미 깊은 인물이었다.
회귀 이후 나와 함께 비리 없는 군대를 꿈꾸었었던 존재.
하지만 갑작스레 췌장암 판정을 받았고, 그 길로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번의 수술과 항암 치료 끝에 기적적으로 생존.
이후 현 정권 들어서는 주미대사로 지명되어 활동 중이었는데, 결국엔 그 빌어먹을 암을 극복해낸 모양이다.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워낙 희소식이었던 덕분에 불편하던 속이 싹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보고의 전부는 아니었던 걸까, 잠시 웃음을 내비친 김 실장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한다.
“그런데 그가 좀 의외의 소식을 하나 전하더군요.”
“듣고 있습니다, 말씀 계속하세요.”
“이번에 새로 교체된 콜롬비아 정부가 이동욱 전 장관. 아니, 대사를 찾아와선 회장님과 다리를 좀 놔 달라고 했답니다.”
“무슨?”
“신정부가 주도하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재우 PMC의 도움을 받고 싶다더군요. 아마도 필리핀에서 진행 중인 우리 경찰 특공대의 활약을 눈여겨본 모양인데, 사실상 재우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다른 걸 떠나서 우리 군이나 경찰병력의 도움을 바란 것이 아니라 민간 군사업체인 PMC와의 협력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하긴, 정작 군이나 경찰의 도움을 바란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들어줄 수 없는 것이 현실.
그들도 나름대로는 머리를 쓴 모양이다.
“단, 조건이 붙었습니다.”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순간 김 실장의 말이 다시 날아들었다.
하필 조건이라는 단어에 눈썹이 절로 올라가려는 순간, 그가 의외의 말을 뱉어 냈다.
“현재 콜롬비아의 경제 상황이 워낙 어려운 탓에 대금 지불이 힘들다고 합니다. 해서 대신 소탕 작전에서 압수한 불법자금들을 우리에게 넘기겠다는군요.”
제법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필리핀의 경우로 봐선 제법 굵직한 자금을 발견할 가능성이 크니까.
마약조직들 대부분이 주로 현찰을 쌓아 놓고 있는 것이 특징인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정해진 금액을 받고 투입하는 것보다야 나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할까요?”
김 실장은 대답을 재촉했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 봐도 이건 손해날 이유가 없는 제안.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떻게 하긴요. 당연히 응해야죠. 차라리 잘 됐습니다. 어차피 최근 개발된 무장들을 실전에서 테스트할 기회도 주어진 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