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94화
끼익.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방향을 잡은 곳은 청와대였다.
애초 출장의 목적 자체가 정부의 의사 전달도 있었던 만큼 이건 당연한 일.
결과가 궁금했던 듯, 대통령은 일체의 외부활동도 하지 않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덕분에 나 역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보고를 이었다.
“우리 측 제안은 받아들여졌습니다. 조만간 러시아 의회에 해당 안건을 통과시키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니 곧 사업이 시작될 겁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긴 한숨을 내뱉은 대통령의 얼굴은 한결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약속한 러시아 투자를 어길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생각 밖으로 증가하는 통일 비용으로 인해 그 정도 자본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
때문에 내가 제안했던 투자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자본회수가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건만, 그게 해결되었으니 안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나저나 재우에게는 정말 빚이 많습니다.”
그건 아마도 재우의 민간 사회간접망 투자를 두고 하는 말일 터다.
정확히는 러시아로부터 회수한 자본을 바탕으로 민간 투자 인프라 건설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내 제안.
물론 재우로서야 손해 볼 일은 코딱지만큼도 없지만, 애초 민간 투자 인프라 건설 사업이라는 것은 막대한 금액의 자본이 수십 년 가까이 묶이는 일.
때문에 대통령으로서는 마음의 부담이 될 것은 당연한 거다.
“재우는 꼭 그 돈이 아니라도 자금이 넘쳐납니다. 하니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게다가 이로써 여유가 생긴 정부 측이 발주하는 사업들을 노릴 기회가 주어졌지 않습니까.”
의도와는 달리 부담을 주는 말일 수도 있었다.
방금 그 말은 얼핏 정부에게 빚을 안긴 재우를 한 번쯤은 생각해 달라는 투로 들렸을 수도 있으니까.
다급히 말을 고치려는데, 대통령의 농담이 날아든다.
“허허, 진 회장님께서 나를 시험하시는군요.”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사실 저로서야 굳이 정부의 지원이 없어도 그 사업들을 따낼 능력은 충분하니까요. 제가 바라는 것은 정부의 입김이 아니라 진정한 공정성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아무리 뿌리를 캐내도 어디선가 솟아나는 가라지들이 하나씩은 꼭 있거든요.”
대통령은 지그시 나를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표정.
어색함에 목을 축이려는 순간 그가 뜬금없는 말을 툭 던진다.
“말씀을 듣다 보면 진 회장님께선 나를 마치 청렴함의 대명사로 보시는 것 같은데, 이거 부끄럽군요. 따지고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
“뭐, 개인적으로야 떳떳해지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정작 나라를 운용하다 보면 결국엔 내 신념을 꺾어야 하는 일이 참 많더라는 소립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오늘따라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싶어 되물었다.
똑똑!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선 비서실장.
나를 향해 짧은 눈인사를 한 그는 이후 자신이 들고 온 서류를 재빨리 대통령에게 건네곤 다시 방을 빠져나갔다.
스윽.
대통령은 예의 그 서류를 곧장 내게로 밀어냈다.
뭘까 싶은 마음에 재빨리 살피려는 순간 그의 말이 먼저 귀에 꽂혔다.
“그건 이번에 필리핀 현지의 삼합회에게서 압수한 불법자금 계좌내역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위스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금액이 무려 오백억 달러에 달하더군요.”
“오백억 달러요?”
나도 몰래 기함이 토해졌다.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듯 대통령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다시 말을 잇는다.
“그건 일부분일 뿐입니다. 현재 필리핀 정부가 압수한 계좌에는 그 배에 달하는 금액이 예치되어 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의문이 꽂혔다.
왜 굳이 압수한 계좌를 따로 분리한 것인지.
게다가 그 일부가 왜 우리 손에 있는 건지.
이건 마치…….
“설마, 압수한 자금들을 두 나라가 분배하기로 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개정된 필리핀 법에 의하면 범죄자금을 압수한 경우 정부가 국고로 환수하여 임의처분이 가능한데, 그중 일부를 우리 몫으로 제공하겠다는군요.”
“…….”
이해할 길이 없는 처사였다.
아무리 우리의 도움이 크다고는 해도 무려 오백억 달러나 되는 돈을 쾌척하겠다는 저들의 태도.
하지만 다음 순간 콱 하고 머리에 박힌 것은 바로 자금의 출처.
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과 함께 말했다.
“필리핀 정부가 겁을 집어먹었군요.”
“그렇습니다. 삼합회의 자금이라면 응당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뒷주머니나 다름없는데, 그걸 혼자서 먹었다가 돌아올 후폭풍이 두려운 거죠.”
“해서 결국엔 우리를 방패막이 세우겠다는 건데…… 뭐, 그럼 당연히 응해 줘야죠.”
대통령은 뒤이어 뱉어진 내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마치 정말 그래도 상관이 없겠냐는 눈빛.
난 다시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와 중국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그 마당에 우리가 무서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보복을 하려 할 텐데요?”
“보복 못 합니다.”
난 계속해서 이어진 대통령의 우려에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흔들리는 눈동자.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중국은 현재 우리 교민들의 죽음에 연관된 상태입니다. 더군다나 이젠 확실한 증거까지 우리가 확보한 상태죠.”
“…….”
“필리핀에서 잡힌 중국군들 말입니다. 그 마당에 보복이 가능하기나 하겠습니까?”
“…….”
“하니 그 돈은 아무런 걱정 없이 우리가 취해도 됩니다. 뭐, 스위스 은행과의 실랑이가 좀 필요하겠지만 그거야 제가 해결하죠.”
대통령의 눈은 반짝 빛을 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백억 달러면 당장 급한 불은 일거에 꺼 버릴 수 있을 정도의 금액.
장담하건대 오늘 밤 그는 오랜만에 다리를 쭉 펴고 침대에 누울 수 있을 거다.
‘가만, 그런데 이게 이유라기엔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인데. 고작 이런 일로 신념을 운운하기엔 좀…….’
생각과 동시에 슬쩍 대통령을 쳐다봤다.
역시나 내 예상과는 달리 여전히 어두운 표정.
속을 떠보려는 차에 그가 선수를 친다.
“문제는 필리핀과는 달리 우린 이 돈을 합법적으로 취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필리핀이야 어차피 자국에서 압류한 불법자금 계좌들이라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우리가 그 돈을 가져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얼마든지 시비 걸 수 있는 문제죠. 해서 최대한 은밀하게 그리고 합법적인 돈으로 세탁을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난 그제야 대통령의 진정한 고민이 무언지 깨달았다.
저 막대한 돈을 포기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걸 취하자니 결국 불법을 경계하는 자신의 신념을 꺾어야 하고.
하지만 그건 감내해야 할 과정이지 싶었다.
그의 말처럼 한 나라를 이끌면서 끝내 손을 더럽히지 않을 방법은 없으니까.
“외람되지만 이건 대통령님께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즉, 근본적인 목적을 생각하시라는 거죠. 물론 목적이 불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국가를 운용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고, 역대 어느 대통령도 그 부분에서 자유로웠던 분은 없었습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충고는 그게 다였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위안거리가 됐는지 대통령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탁 하고 서류철을 덮었다.
“그래야겠죠. 해서 자금 세탁에 대한 적임자로는 한명호 회장을 좀 이용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한명호 회장은 과거 내가 회사 지분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할 당시 나를 도왔던 사채업자였다.
정확히는 사채업보다 부동산 투자에 집중했던.
엄살과는 달리 어느덧 아흔을 훌쩍 넘긴 그는 정권을 거치는 과정에서 내내 정부의 뒤를 긁어 주는 역할을 해 왔고, 전 정권에서는 그 공로로 일평생의 꿈이던 저축은행을 설립하는 쾌거를 이룬 상태였다.
“적당한 인물인 듯싶군요. 제가 조만간 한번 그분을 찾아뵙죠.”
대통령은 그 말에 어색한 미소를 내비쳤다.
자신이 내키지 않는 일을 남에게 떠맡기는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
하지만 나야 그를 만나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기에 상관은 없다.
한희진.
최근 그의 외동딸을 재우 홀딩스의 대표로 앉혀 둔 상태거든.
“그건 그렇고,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뭘 말입니까?”
불현듯 뱉어진 내 질문에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대통령이 다시 나를 쳐다봤다.
툭툭 하고 그가 건넸던 서류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곤 심각한 표정과 함께 말을 뱉었다.
“앞서 말했듯 중국은 우리 교민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습니다. 하니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대통령이 슬그머니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표정에선 얼핏 당황스러움이 묻어 나오고 있는 상황.
그건 아마도 그 중요한 문제를 먼저 거론하지 못했던 것에서 오는 창피함의 표현일 거다.
“쯧, 내가 돈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군요. 맞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죽음에 일조한 중국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죠. 문제는 그렇다고 당장 무력시위를 할 수는 없다는 건데, 혹시 다른 대처 방법이 있겠습니까?”
“일단은 미국을 동원하여 중국을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피의 대가로는 부족하죠.”
대통령은 깍지를 낀 손으로 턱을 괴었다.
동의한다는 의미.
난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그에게 제시했다.
“내몽골을 본격적인 분쟁 지역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위구르가 아니고요?”
대통령은 반문했다.
그동안 알려진 위구르인들의 피해와 고통을 생각하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
하지만 내 목적은 중국에게 최대한의 피의 대가를 받아 내는 거다.
“내몽골은 중국 희토류 생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또한 중국이 개발 중인 첨단 스텔스 전투기인 j-20의 공장을 비롯하여 꽤 많은 군수공장들이 집결해 있는 곳이죠. 만약 그곳에서 무력 분쟁이 발생하면 피해가 우리 예상보다도 꽤 클 겁니다.”
“흠…….”
뱉어진 그의 신음은 긍정을 표하는 것이지 싶었다.
예상처럼 곧 고개가 끄덕여지고, 다시 일어선 그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진 회장님을 현 시간부로 재건위원회 국방위원장으로 임명하죠.”
저 말은 이번 일에 대한 전권을 내게 일임하겠다는 의미였다.
현 시국에서의 재건위원회는 단순히 국책에 대한 조언만을 하는 조직이 아니니까.
다른 때 같았다면 일에 치이는 것이 싫어서 백번은 거부했겠지만, 막상 필리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갔던 교민들의 모습이 떠올라 차마 거절의 의사를 밝히지 못했다.
“수락하겠습니다.”
***
[일본 정부는 오늘 오전 자국에서 일어난 테러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안일한 출입국 관리에서 비롯된…….]
이튿날, 일본 내각은 총리를 비롯한 모든 각료들이 국민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 연출했다.
우스운 것은 후속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결국엔 대테러 기구의 설립과 함께 각종 정보 습득 수단을 확보하겠다는 것.
특히나 위성 확보에 열을 올릴 기미가 보이는데, 역시나 아베다운 꼼수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든 핑계만 생기면 그걸 자국의 군사력 증강으로 연결하려는 그 속 보이는 행동.
[미국은 필리핀에서 활동 중인 IS 잔당들과 중국의 연관성을 밝혀 줄 증거를 잡았음을 발표했습니다. 그로 인해 조만간 중국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미국은 내 예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꼬투리가 잡히기만을 바랐던 그들로서는 중국의 IS 반군 지원은 그야말로 호재 중의 호재였고, 덕분에 중국을 향한 압박은 그야말로 속전속결.
당황스러운 것은 그동안엔 최소 중립은 지키던 유럽 몇몇 국가들이 이젠 대놓고 중국의 편을 들고 나섰다는 거다.
[독일은 중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에 대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프랑스는 중국의 IS 지원 문제를 당장 제재로 해결하기보다는 다가올 G8 정상회의를 통해 논의하자는 입장입니다.]
“정신 나간…… G8 회의면 앞으로 5개월은 더 남았는데, 그때까지 그냥 묻어 두자고?”
그건 결국 일 자체를 흐지부지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 결국 우리가 먼저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인 셈이다.
“안 대표님?”
생각과 동시에 러시아에 파견 보낸 안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내몽골 독립 세력과의 접촉을 위해 안 대표를 러시아로 보내 두었던 상태.
그를 향해 긴 장문의 문자를 날리고 일어서자 마침 오늘 행사에 동행하기로 했던 나타샤가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준비되셨어요?”
그녀의 한국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창해져 갔다.
이젠 동음이의어에도 나름 조예가 깊어졌을 정도.
어젯밤 침대에서도 한국어 공부를 핑계로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지 한참을 웃어 대는 탓에 나까지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갑시다. 재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복합위성이 발사되는 날인데 늦을 수는 없지.”
그녀는 싱끗 웃음을 내비치곤 내 옷깃에 붙어 있던 먼지를 털었다.
이젠 지극히도 자연스러워진 행동.
어느새 그녀에겐 이제 내가 회장이 아니라 남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느낌인데, 난 여전히 그녀가 새삼스럽다.
다른 걸 떠나서 그토록 골치를 썩였던 알 라무드를 장난감 처리하듯 해 버릴 정도로 엄청난 여인이 내 아내라는 사실이.
그러고도 내 앞에선 이렇듯 매번 조신한 태도를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왜 그렇게 낯선 사람 보듯 하세요?”
지나치게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듯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곤 웃어 보이자 바짝 다가와 팔을 휘감은 그녀는 갑자기 의외의 말을 던졌다.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 재우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형 위성을 띄울 상황이면 부란을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부란?”
순간 멈칫하고 그녀를 쳐다봤다.
내 눈빛에서 긍정의 의미를 읽었는지 그녀는 화색을 밝히며 다시 말한다.
“러시아가 한때 개발을 진행하다가 중단했던 우주왕복선이요. 그거라면 재우의 위성발사비용이 꽤 절감되지 않겠어요?”
“그건 나도 압니다만, 그게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이오?”
“물론이죠. 제 기억이 맞는다면 꽤 건재한 상태로 보관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녀가 저토록 장담할 정도면 아마 사실일 거다.
하면 어떻게 된 걸까.
역사대로라면 소련 해체와 동시에 개발이 중단된 부란이 어떻게 지금까지.
그것도 온전한 상태로.
“저 그런데요. 이것도 동음이의어에 속하는 걸까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던 와중 그녀의 말이 다시 날아들었다.
또 뭔가 싶어 쳐다보자 그녀가 한껏 눈을 빛내며 묻는다.
“‘자위대’ 말이에요.”
“…….”
“대체 일본은 왜 자국 군대의 명칭을 그렇게 지은 걸까요? 단어에서 벌써 음란한 느낌이…….”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