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93화
“알 라무드가 일본에 나타났다?”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것은 알 라무드의 행적이 밝혀졌다는 소식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정말로 나타샤를 목표로 삼았을 줄이야.
물론 그녀가 놈 따위에게 당할 염려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 물었다.
“그래서, 나타샤는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현재 사모님의 상태는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알 라무드는 알파 그룹에 의해 처리가 된 상태라고 하더군요.”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우스운 것은 알파 그룹을 언급하는 강 소령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는 것.
혹여 이런 상황에서도 호승심을 느끼는 걸까.
나로선 저 세계의 인물들을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 사모님이라는 호칭. 나타샤 앞에서는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꽤 민감하거든요. 그나저나 뒷일이 걱정이군요. 놈이 일본을 저렇듯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으니.”
“네, 말씀처럼 한동안은 시끄러울 겁니다. 일본 경찰이 아니라 하필 사모님. 아니, 나타샤 씨를 경호 중이던 알파 그룹이 놈을 처리해 버리는 바람에 더더욱.”
생각해 보니 그 부분도 골치가 아프긴 했다.
생포를 해서 일본 경찰 측에 넘겨줬다면 모를까, 범인이 이미 시체가 된 상태면 여러 가지 면에서 일이 복잡해지거든.
물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터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핑계가 될 수는 있지만, 문제는 현 자민당 정부의 습성이 지독할 정도로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있다.
어떻게든 꼬투리만 잡으면 물어뜯어 대는, 그 비열한 습성.
“뭐, 그렇다 해도 정작 범인을 죽인 것은 나타샤가 아닌 알파 그룹이기에 문제 될 일은 없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넌지시 뱉어 낸 혼잣말에 강 소령이 뭘 안다는 듯한 투로 대꾸했다.
힐끗 쳐다보자 그가 어색한 표정과 함께 말을 잇는다.
“만약 일본 정부가 굳이 시시비비를 따지겠다면 푸틴 대통령이 등장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나타샤 씨의 경호 임무에 그들을 동원한 것은 푸틴 대통령이니까요.”
제법이다 싶은 생각에 웃음을 내비쳤다.
끼익!
때마침 도착한 알렉세이의 차량.
오늘따라 마중이 늦은 것으로 봐선 뭔가 문제라도 생긴 모양인데, 그게 일본에서 벌어진 일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이거 급하게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요.]
[혹시 알 라무드의 일 때문입니까?]
[진 회장님도 벌써 소식을 들으셨군요.]
역시나 그 일로 인하여 러시아도 시끄럽기는 한 모양이었다.
대처를 물으려 다시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더 이상의 설명은 푸틴에게서 들으라며 다급히 우릴 차량으로 안내했고, 결국 난 궁금함은 잠시 접어 두고 크램린 궁으로 향했다.
[어서 오시오.]
도착한 궁에선 푸틴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반가운 태도로 나를 맞이했다.
내 표정에서 조급함을 읽은 걸까, 이후 그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는 사이 내가 궁금해하던 것들을 죄다 풀어놨다.
[방금 일본 정부로부터 항의 전화가 왔었소. 왜 러시아의 특수부대가 일본까지 와서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더군.]
[살인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기분은 나쁘더군.]
[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로선 이후 그의 대응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라면 그건 누가 봐도 의도된 발언.
푸틴이 그걸 고스란히 받아 줄 존재는 아니거든.
씩 웃으며 뱉어 내는 그의 대처 방법은 역시나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일단 알렉세이가 일본 정부에게 경고의 신호를 보냈소. 계속해서 헛소리를 지껄이면 일본 영공에 꽤 볼만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
[참, 그 말도 했다더군. 알파 그룹이 일본에 있는 이유는 내 딸의 경호를 위해서라고. 때문에 그들이 저 라무드를 처리한 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내 딸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방어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사고라고.]
[나타샤의 정체를 밝혔다는 말입니까?]
의외의 결과였던 터라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두 사람의 관계를 비밀로 해 왔던 건 알려지는 경우 발생할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
한데 그걸 밝혔다는 것은 이젠 그 점을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그게 일을 쉽게 해결하는 제일 확실한 방법 아니겠소?]
하지만 푸틴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젠 주변에서 그의 권력을 위협할 만한 정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음을 감안한 걸까.
그나저나 이 사태로 인해 나타샤의 정체가 만천하에 알려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
일본 정부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우리 언론의 반응이 새삼 궁금해진다.
[아무튼 난 속이 다 시원합니다. 그 빌어먹을 놈을 결국엔 내 손으로 처리하게 됐으니까.]
푸틴은 후련하다는 표정과 함께 자리를 권했다.
뭐 어차피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이제부터는 나도 러시아에 온 목적을 해결해야 할 상황.
화두를 돌리기 위해 기회를 잡던 중 마침 그가 찻잔을 집어 드는 틈을 이용하여 질문을 던졌다.
[흠흠, 그나저나 최근 러시아의 전력 사정은 좀 어떻습니까.]
푸틴은 갑자기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쳐다봤다.
그도 잠시, 뭔가를 눈치챈 듯 다시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는 대꾸를 뱉어 냈다.
[전력 문제야 최근 들어선 당연히 문제가 되고 있소. 러시아 곳곳에 세워지기 시작한 3국 공유 플랫폼 공장들을 비롯하여, 재우가 설립한 각종 군수산업기반 부품 공장들 그리고 상업용 공장 시설들의 폭발적인 증가로 안 그래도 민간에선 전력 공급에 위협을 받을 정도외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좀 우습지 않소?]
[뭐가 말입니까?]
[세계 최대의 에너지자원 부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전력 부족을 겪고 있다는 사실 말이오.]
[그거야 자원은 많아도 정작 그 자원을 활용한 전력 생산 시설들이 부족하니까요.]
난 웃으며 대꾸를 뱉어냈다.
우연찮게도 대화의 흐름은 내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제가 굳이 그 말을 꺼낸 건, 앞으로는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향후 재우에선 원가 절감을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과 러시아에 군수공장을 확대할 예정인데, 아시다시피 그쪽 시설들이 전력을 꽤 필요로 하는 업종 아닙니까. 게다가 테슬라 역시도 유럽 시장 장악을 위한 교두보로 러시아를 점찍어 두고 있는 마당이니 전력 사정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겠죠.]
순간 푸틴이 반짝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건 전력 부족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러시아가 북한에 이어 전 세계의 산업기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에서 오는 반응인 느낌.
하지만 전제는 역시나 전력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뒤늦게 그걸 떠올린 듯 푸틴의 미간에도 슬쩍 주름이 잡힌다.
[하면 어쩌면 좋겠소.]
[방법이라면 당연히 전력 생산 시설을 확충하는 것뿐이죠. 그리고 제가 날아온 목적 역시도 그걸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이었고요.]
[말씀해 보시오.]
푸틴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재촉했다.
경험상 그가 저런 태도를 보일 때는 어지간히도 속이 타고 있다는 뜻.
난 속으로 웃으며 말을 뱉어 냈다.
[저희 연구소의 분석 결과대로라면, 러시아의 전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원자력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물론 남아도는 천연가스를 이용한 발전 시설들을 해결 방법으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비용적인 측면에서 별로 유리한 편이 아니죠.]
[하지만 실질적으로 따져 보면 원자력도 그다지 효율적인 에너지원은 아니라는 것쯤은 진 회장께서도 잘 아실 텐데요.]
[그야 물론입니다. 특히나 보편적으로 쓰이는 경수로 방식의 경우 관리 비용은 물론 폐기물 처리 비용 그리고 차후 원전 해체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을 모두 감안해야 하니까. 해서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당장이야 이익인 듯해도 차후 손익계산을 해 보면 확실히 원전이 천연가스에 비해 고비용인 것이 맞습니다.]
[그게 의아한 거요. 누구보다 그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는 진 회장이 갑자기 천연가스 부국인 우리에게 원전을 주장하는 이유가 뭐냐는 말이오.]
[그거야…… 스마트 원전은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스마트 원전?]
[그렇습니다. 재우가 개발한, 현존하는 가장 안전하고 효율성 높으며 폐기물 처리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원자로 말입니다. 그에 더해 차후 해체 과정에서 발생할 비용까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는 어떤 발전 방식보다 저비용으로 전력 생산이 가능하죠.]
[해체 과정에서 발생할 비용을 줄일 수가 있다고?]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재우는 현재 미생물을 이용한 방사능 물질 제거 기술을 실용화 단계까지 완성한 상태기에 원전 해체 비용을 기존보다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습니다.]
순간 푸틴의 눈매가 꿈틀했다.
그제야 내 의도를 확실히 이해한 듯.
이후 한참을 자신의 찻잔만 노려보고 있는 그의 눈매가 찌그러진 이유는 아마도 손익계산을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일 거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재우 연구소에서 내놓은 분석 결과대로라면 우리가 몇 기의 원자로를 확보해야 하는 겁니까.]
[대략 통일 한국이 진행 중인 확보 사업의 3배 정도라고 짐작됩니다.]
푸틴은 그 말에 기함을 토했다.
하긴, 우리 물량의 3배면 얼추 비용만 수백 조에 달하는 상황.
물론 그 비용이 한 번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지금의 러시아가 원 역사와는 달리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룬 상황이라고 해도.
[미안하지만 진 회장께선 지금 러시아에 그럴 만한 돈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역시나 푸틴은 그 부분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내가 그 대처도 없이 이런 제안을 할까.
나 역시 재빨리 자세를 바꾸며 말을 이었다.
[돈이 왜 없습니까. 러시아는 한국으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약속받은 상태인데.]
[…….]
[10년간 오천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 말입니다.]
[그걸 잊을 리가 있나. 한데 그 말은 지금 한국에선 그 돈을 러시아의 전력 사업에 죄다 쏟아붓겠다는 겁니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셈이죠.]
푸틴은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이면에 숨겨진 내 의도. 아니 우리 정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한 눈빛.
이내 잔뜩 입매가 뒤틀리는 것으로 봐선 대충 눈치를 챈 모양이다.
[그게 정말 한국 정부의 생각에서 나온 것은 아닐 테고, 아무튼 진 회장은 진짜 속에 구렁이가 백 마리쯤은 들어 있는 모양이군.]
[…….]
[어차피 스마트 원전을 건설하게 되면 결국 비용의 대부분은 재우가 가져가게 되는 것 아니오. 그럼 결국 한국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약속했던 투자금을 고스란히 회수하는 결과가 되는 거고.]
정확한 판단이었다.
만일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스마트 원자로야 당연히 우리가 제공하게 되는 거고, 터빈을 비롯한 주요 부품과 자제들 역시 우리가 제공할 수밖에 없다.
그럼 건설 비용의 대부분은 재우의 몫이 되는 것.
결과적으로 한국의 대러시아 투자금을 우리가 재흡수하는 것이며, 그건 자본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던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자본이 회수된다 해서 그게 우리 정부에게 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우리 정부의 입장에선 이 프로젝트가 그리 득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하지만 내 제안대로면 얘기가 달라진다.
난 그렇게 회수한 돈을 바탕으로 통일한국 인프라 건설 사업에 민간 투자자로 참여할 예정이고, 그건 곧 정부의 부담을 줄여 주는 결과를 낳을 테니까.
‘쉽게 말해서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숨통이 트여서 좋고, 난 또 내 나름대로 가진 자본을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좋고.’
물론 내 입장에선 많은 자본이 묶이는 결과를 보겠지만 그거야 어차피 이자가 붙어 회수가 될 자금들.
하등 아쉬워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게다가 결국 정부는 그렇게 아낀 돈으로 새로운 사업들을 발주할 수 있게 될 터.
그걸 다시 재우가 흡수할 경우엔 그야말로 판을 두 배로 불리게 되는 거지.
[허허…….]
푸틴은 대번에 긍정을 표한 나를 기가 차다는 듯 쳐다봤다.
이내 몇 번이고 다시 생각에 골몰하던 그는 어느 순간 긍정의 답을 뱉어 냈다.
[하긴, 지금의 러시아의 현실에서한국의 투자를 유도할 만한 것이라고는 자원 개발과 산업 시설들의 유치뿐인데, 그보다야 차라리 부족한 에너지 생산 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로서도 이득일 수 있지.]
말투와는 달리 난 그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그가 이런 식으로 그냥 일을 마무리할 인물이 아님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거든.
예상처럼 다시 열린 그의 입은 곧 숨겨진 핵심을 거론한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가 얻는 이익은 너무 적다는 생각 안 듭니까? 뭐가 됐건 결국 한국은 투자금을 회수하려 할 테고 그건 곧 발전소의 운영권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 빤하지 않소. 그럼 결국 우린 뭐가 남는 거요.]
그야 당연한 수순이었다.
투자는 차관을 빌려주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문제.
한국 정부로서도 당연히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당연히 일정 기한 동안의 운영권 확보로 귀결되어질 테니까.
그럴 경우 러시아 정부는 한동안은 그 막대한 사업을 벌려 놓고도 정작 이익이랄 것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 점을 고려하여 우리 정부가 제안하는 것은 전력 공급 비용을 최대한 인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면 러시아는 한동안 안정된 금액에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이후 운영권이 다시 넘어가면 발전소는 고스란히 러시아의 몫이 되는 거죠.]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푸틴은 어림없다는 듯 혀를 찼다.
하긴, 먼 미래에나 가능할 이익이 현재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
이미 예상해 둔 바였기에, 나 역시 준비한 카드를 꺼내 보였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앞으로 10년 후, 정확히는 러시아의 발전소 건설 사업이 모두 끝난 후에 스마트 원자로에 대한 기술을 제공해 드리는 것. 그렇게 되면 이후에 진행될 유럽 스마트 원전 건설 사업 진출에 러시아도 재우와 협력하는 것이 가능해질 겁니다.]
[유럽 진출?]
[그렇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대규모 스마트 원전 건설로 저가의 에너지 생산이 가능해지면, 유럽 또한 너도 나도 스마트 원전 건설에 뛰어들 거라는 점은 잘 알고 계시죠?]
푸틴의 얼굴이 순간 화색을 띠었다.
이후 들려온 말은 정말로 기술 이전이 가능하냐는 질문.
어차피 현재의 스마트 원자로는 과도기적인 물건이고 그때쯤이면 차세대 스마트 원자로가 다시 개발 완료되었을 시기.
재우로선 하등 손해 볼 것이 없기에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그사이 러시아 역시 스마트 원자로 개발에 성공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으니 미리 선심을 쓰는 셈이 되는 건가?
씨익.
[뭐, 그 정도는 저도 감수해야죠. 그래도 명색이 제 장인어른이신데.]
[하하하!]
푸틴은 호탕한 웃음을 뱉어 냈다.
마치 내가 우리 사이의 관계를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라도 한 듯.
타이밍은 좀 그렇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겠다.
[참! 지난번 제안했던 것에 대한 답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만.]
[제안이라니. 뭘 말하는 겁니까.]
[근거리 방어시스템. 그리고 MI-24를 비롯한, 러시아에서 현재 남아도는 잉여 군수물자들과 질화갈륨기반 모듈의 교환 건 말입니다.]
[……이런 젠장.]
***
찰칵 찰칵!
인천 공항에 도착한 나타샤를 향해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계속됐다.
일본 정부의 발표로 테러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그녀의 정체마저도 만천하에 공개되었기 때문.
우스운 것은 막상 카메라 셔터는 눌러 댔어도 이러다 할 질문 세례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 그건 아마도 이젠 기자들로서도 그녀의 존재감이 남달리 느껴졌기 때문일 거다.
“푸틴 대통령과 정말로 부녀 사이십니까?”
물론 개중 용기가 가상한 기자들 도 있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그동안 그녀를 괴롭혀 왔던 어용 언론사에 속한 자들.
이때다 싶었는지 순간 나타샤의 고개가 휙 하고 그들에게 돌아갔고, 그 탓에 기자들은 움찔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동양신문 기자시네요?”
그녀의 한국말은 제법 유창하고 예의가 발랐다.
그에 용기를 얻은 듯 마침 그녀의 시선을 받았던 기자가 화색을 밝히며 대꾸한다.
“그렇습니다, 동양신문의 조동환이라고 합니다.”
“난 동양신문사 별로 안 좋아하는데.”
“…….”
“거긴 한국 신문사인지 일본 신문사인지 정체성이 애매하잖아요.”
기자는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따지고 들려는 순간, 턱 하고 누군가의 손 하나가 그의 머리에 올려진다.
스윽.
기자의 눈이 향한 뒤편에선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그를 보며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인간에게서 이렇게까지 공포를 느낄 수도 있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기자의 뇌리를 스칠 때쯤 나타샤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조심하세요. 그 친구 알파 그룹 내에서의 별명이 오리지널 러시아 불곰이에요. 손에 잡히는 족족 찢어 버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