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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91화 (291/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91화

“이봐, 동건이. 아무리 봐도 놈들의 본진이 여기 어디쯤인 것 같은데?”

“지도상으로 보면 그렇군.”

필리핀군과 합류하는 것에 성공한 장동건 일행은 이후 본격적으로 반군의 본진정리를 위한 걸음에 나섰다.

조금 이상한 점은 정보와는 달리 여태 중국인이라 짐작되는 존재들과의 전투는 없었다는 것.

때문에 민유환을 비롯한 장동건의 팀은 혼란 속에서 탐색을 이어 가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회장님께선 뭐라 그러셔?”

장동건은 이어진 민유환의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알 라무드의 행방에만 정신이 팔려 있던 그는 때마침 전력을 다 소모한 배터리를 교체하며 대꾸했다.

“일단 사실 여부가 확실한지 파악하고 난 후에 다시 연락을 취하라고 하시더군.”

“하긴, 아직까지 본진을 정리하지 못한 상황이니 그런 주문을 하실 법도 한데, 난 이상하게도 아까 그 반군 놈이 한 말에 왠지 믿음이 간다는 말이야. 솔직히 그 정도 고문을 버텨 가며 거짓말을 할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거든.”

장동건도 그 점에 대해선 동의했다.

사로잡은 반군에게 가했던 차지환의 고문은 놈의 입에서 몇 번이고 알라를 향한 맹세가 튀어나오게 만들었을 정도.

신을 향한 맹세를 허투루 하지 않는 것이 저들의 종교적 특징인 점을 감안하면 그게 영 거짓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럼 대체 라무드 놈은 어디로 간 걸까.

“그럼 대체 놈은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속으로 불평을 내뱉는 순간, 민유환이 그의 생각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는 말을 뱉어 냈다.

웃으며 배터리 교체작업을 끝낸 장동건은 다시 중장갑의 전원을 켜며 말한다.

위잉!

“그야 나도 모르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로선 놈이 필리핀에 남아 있기만을 바라야 한다는 거야. 그럼 어떻게든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또 해외로 도주라도 한 거면 사태가 꽤 복잡해지거든. 아무튼, 한시라도 빨리 본진 정리를 끝내자고.”

민유환은 그 말에 수긍하곤 곁에 있던 차지환을 쳐다봤다.

마침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던 차지환은 불과 몇 시간 전에 보여 준 잔혹한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갑자기 사람을 보고 실실 웃고 기랍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야.”

민유환은 어색한 마음에 변명하곤 재빨리 선두로 나선 장동건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사이 대열의 흐트러짐 없이 일사불란하게 장동건을 뒤따르는 PMC 대원들의 모습은 그 어느 현역 특수부대원들보다 날 선 기세를 보여 주고 있었고, 덕분에 민유환은 재우 PMC가 왜 그토록 세간에 명성이 자자한 건지가 이해됐다.

“쉿!”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앞서가던 장동건이 주춤하며 팀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후 그는 뭣 때문인지 연신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자신의 헬멧을 툭툭 치는 행동을 해 보이더니, 곧 대원들을 향해 섣부른 움직임을 자제하라는 듯한 신호를 보냈고, 덕분에 팀원들은 물론 뒤따라오던 필리핀군들까지 잔뜩 긴장한 채 사주경계를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탐지에 방해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이쪽으로 전진을 하면 할수록 노이즈가 생겨.”

조금 후 들려오는 장동건의 말에 민유환과 차지환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뭘 상상한 건지 이후 확 뒤바뀐 차지환의 표정.

이내 그는 민유환이 채 만류하기도 전에 장동건이 있던 방향으로 달려가선 되묻는다.

“혹시 탐지 교란을 받고 있는 중입네까?”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당장 긴장할 만큼 가까운 곳에서 보내는 교란 신호는 아닌 모양이야. 영향을 미치는 구간이 딱 이 근처에서 끊어지는 것을 보면.”

“…….”

순간 차지환의 표정에 이채가 어렸다.

의아한 마음에 장동건이 이유를 물으려는 차, 그의 입에서 제법 의미심장한 말이 튀어나온다.

“중국 놈들 소행이갔디요?”

“…….”

“막말로 기껏 밀림에서 풀이나 뜯어 먹고 사는 반군 찌끄레기들이 지금 대장님이 착용하신 고도의 장비를 훼방할 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않습네까?”

그건 왠지 일리가 있는 말 같았다.

필리핀 촌구석에 짱박혀 있는 반군들 따위가 최첨단 탐지 장비를 훼방할 만한 장비를 소유하고 있지 않을 것은 사실.

그에 반해 꾸준히 한국의 기술을 주시하고 모방하며 대책을 세워 나가는 중국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그때, 차지환의 뜬금없는 제안이 이어졌다.

“지금부터는 제가 선두에 서도 되갔습네까?”

“자네가?”

장동건은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생각을 눈치챈 듯 차지환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 교란 장치인지 뭔지가 정말로 중국 아새끼들이 동원한 물건이면 이곳에 결국 중국군 놈들이 있다는 소린데, 이 자리에서 저보다 더 중국 아새끼들의 전투방식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 제가 선두에 서는 것이 옳디요.”

“…….”

“제 걱정은 마시라요. 한때는 공화국에서 수출하는 전투군 양성 교관으로 안 돌아다닌 곳이 없고, 특히나 이런 밀림에서의 전투는 이골이 났으니까니.”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했다.

더군다나 차지환이 갖춘 무장 수준은 어지간한 저격이나 급습 따위에 당할 정도는 아닌 상태.

뭐 중장갑을 갖추고 있는 그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실해 보일 뿐이지, 사실 저 정도면 어지간한 전투부대에서는 당연히 선두 자리를 맡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수준이 아닌가.

“하긴, 당장 눈이 가려진 상황이면 상대를 경험해 본 자의 지혜가 필요하기는 하지. 게다가 탐지 장치가 이상을 보인다면 조준 장치까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데, 지금으로서는 내가 선두에 서는 것이 의미가 없지 싶군.”

장동건은 결국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대체 이런 상황이 뭐가 그리 즐거울까.

히죽 미소를 내비친 차지환은 순식간에 선두를 점하곤 마치 날다람쥐처럼 사방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스윽!

그로부터 대략 2시간쯤 후, 내내 별문제 없이 앞서가던 차지환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손을 흔들었다.

혹시나 싶어 장동건은 즉시 탐지 센서를 확인했지만 여전히 신호는 교란 중.

“젠장, 이런 상황이면 확실히 조준시스템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건데, 대체 중국 놈들 주제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답답한 마음에 짧은 불평을 뱉어 내는 순간.

휙!

갑자기 사방을 망원경으로 주시하던 차지환이 이쪽을 뒤편을 향해 다시 수신호를 보냈다.

스윽.

저건 분명 다수의 숨어 있는 적을 발견했다는 의미의 신호였다.

아니나 다를까, 차지환은 이번엔 무전을 통해서는 대책을 요구했고, 보고를 받은 장동건은 즉시 사방을 돌아보며 적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젠장,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정작 주변에서 아무런 낌새도 채지 못한 장동건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댔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추적보다 무장 운용에 특화된 자신의 특기가 원망스럽다는 것.

하지만 어쩌랴.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신은 여태 무장 운용이 담당이었던 것을.

결국 그는 상한 자존심을 뒤로하고 차지환을 향해 되물었다.

“파악된 적의 위치와 규모를 보고하라.”

“3시에 한 무리. 그리고 9시 수풀 안쪽에서 수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새끼들이 숨어 있습네다.”

틱!

그 말에 장동건이 다시 무장시스템을 조작해 봤다.

하지만 여전히 탐지 및 조준시스템은 혼란을 겪고 있는 상태.

사실 무시하고 전투에 임한다면야 못할 것도 없지만 자칫 발생할지 모를 아군의 피해가 그의 판단을 주저하게 했다.

‘만약 적이 운용하는 교란 장비 중 DIRCM마저 존재한다면 발사한 40밀리 유도 미사일이 허공에서 맴돌다 오히려 아군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까.’

치직!

-알파 송신. 인근 지대에서 지향성 교란 신호가 감지됐다. 혹시 모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공중 지원을 실시하겠다.

때마침 본부에서 들려온 소식은 그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다.

탐지가 힘든 상황에서 지상 전력만으로 놈들을 상대하는 힘겨운 과정은 그나마 피하게 됐으니까.

하지만 곧 떠오른 것은 지원에 동원될 무인공격헬기라고 교란 신호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은 생각.

퍼뜩 무전을 통해 의문을 제기하자 저편에서 의미심장한 대꾸가 들려왔다.

-재우 엔지니어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자면 지금 투입하는 무인공격헬기는 교란 신호 따위에 헤맬 물건이 아니라는군. 아! 미안하지만 그 중장갑이 갖추고 있는 시스템보다 몇 세대쯤은 안정화된 물건이니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언이다.

끝에 들려온 말은 마뜩지 않았지만 그나마 안도할 만한 상황이었다.

만약 이 교란 신호가 정말 중국의 소행이라면 향후 중장갑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지는 결과를 맞을 텐데, 다행히도 대책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그럼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분산되어 있는 적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점.

순식간에 생각을 정리한 장동건은 차지환을 향해 무전을 날렸다.

“다수의 인원이 숨어 있다는 9시 방향은 나와 2조가 맡을 테니 3조는 차지환과 함께 3시 방향을 맡는다.”

-접수했습네다. 그럼 제가 먼저 침투하갔으니 3조대원들께서는 저를 뒤따라오시라요.

차지환은 짧은 대꾸를 끝으로 맹렬한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

순간, 그를 향해 날아드는 총탄들.

하지만 이미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덕분에 3조는 당황하지 않고 그를 엄호하며 뒤따랐고, 그 모습을 본 장동건은 다시 자신의 대원들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교란에 영향을 받는 것은 유도무기들뿐이다. 하니 일단은 내가 가용수단을 동원하여 쥐새끼들을 굴에서 빼내겠다.”

위이이이잉!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그의 옆구리에 있던 미니건이 9시 방향을 향해 불을 뿜었다.

날아드는 수천 발의 총탄이면 당연히 반응쯤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 행동.

예상을 증명하듯 초토화가 되어 가는 숲 안쪽에서 곧장 반격의 총탄들이 날아왔고, 심지어는 RPG의 공기 찢는 소리마저도 들려왔다.

“젠장!”

쾅!

다른 건 몰라도 RPG만큼은 장동건도 기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특히나 탐지와 조준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AI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지금은 더더욱.

물론 엄폐물이 꽤 많은 숲이라는 점 때문에 그나마 그와 대원들에게는 그게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방호 수준이 부실한 필리핀군의 피해가 점점 무시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젠장, 이런 식의 전투는 곤란한데.”

장동건은 대책을 마련하려 분주히 머리를 굴렸다.

투투투투!

그 순간 하늘에서 들려오는 로터 소리.

저건 필시 본부에서 보낸 무인공격헬기가 도착했음을 의미하는 걸 터다.

철컥!

저게 모습을 드러냈다면 더 이상 걱정할 문제는 없었다.

우려했던 탐지 및 조준 교란에서 자유로운 상황이면 더더욱.

그래도 혹시나 싶어 하늘을 쳐다본 장동건은 마침 떠 있던 공격헬기에서 수백 개의 드론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았고,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목표가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드론들을 쏟아 내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에.

“자, 그럼 우린 본격적인 쥐새끼 사냥을 시작한다.”

위잉!

말을 뱉어 내기 무섭게 드론 몇 대가 장동건과 그의 대원들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

이후 그 드론들은 나무를 교묘히 피해 가며 탐지와 대조 과정을 거쳐 목표로 삼은 반군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쾅!

폭발과 동시에 쓰러진 반군은 미동조차도 없었다.

비록 손바닥만 한 드론이라고는 해도 살상력만큼은 확실하다는 의미.

대원들은 순간 눈빛을 반짝이며 숲 안쪽을 주시했고, 이후로도 그곳에선 폭발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저 드론 말입니다. 혹시라도 우릴 공격하는 일은 없겠죠?”

대원들 중 하나가 그 모습에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하긴 자칫 오판에 의해 드론이 아군이라도 덮치면 곤란한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미 저 시스템에 대해서 익숙한 장동건은 괜한 걱정이라는 듯 말을 뱉어 냈다.

“걱정할 것 없어. 작전에 임하기 전에 이미 우리와 필리핀군의 전투복에 심어 둔 RFID칩이 드론의 공격 목표에서 제외시켜 주니까.”

대원은 그 말에 아!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전투에 참여하는 모든 병력들에게 재우의 엔지니어가 쌀알 크기의 RFID칩을 지급했었던 상태.

당시엔 왜 그토록 신신당부를 하며 분실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건만,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굳이 RFID칩이 아니라도 저 드론은 대상이 소지한 무장의 종류를 구분할 줄 알아. 그리고 이번에는 필리핀 정부로부터 입수한 일부 반군들의 신원 정보들도 대조 수단이 된다더군. 자, 그럼 이제 전투에 집중해.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으니까.”

타탕!

웃으며 부연 설명을 다시 남긴 장동건은 마침 숲에서 튀어나온 반군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가했다.

상황이 이러면 이제 그들의 임무는 드론에 쫓겨 도주하는 적들을 처리하는 것.

그제야 대원들은 장동건의 입에서 뱉어진 쥐새끼 사냥이라는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것 같았다.

휙!

“자, 다음 쥐새끼 등장하시고.”

타타당!

위이이이잉!

***

“이거…… 무시무시하군.”

드론에 의해 정리가 끝난 9시 방향 숲 안쪽에 진입한 장동건은 처참한 현장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온전히 살아남아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

특이한 것은 이렇듯 울창한 숲에 참호를 비롯하여 주거공간까지 제법 그럴듯하게 갖추어져 있었던 상태라는 점인데, 그로 인해 장동건은 이곳이 이번 토벌 목표의 본진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치직!

“브라보 송신. 찰리 응답하라.”

-말씀하시라요, 대장 동지.

혹시나 싶어 날린 무전에선 차지환의 건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과는 달리 드론의 지원을 받지 못한 탓에 걱정이 되었던 터.

하지만 저쪽에서의 피해는 없는 듯했고, 덕분에 장동건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말했다.

“여긴 적들이 전멸해 버린 상황이라서 심문을 할 만한 인원이 남아 있지 않다. 혹시 그쪽은 상황이 어떤가.”

-여긴 일 없습네다. 두어 놈 살려 둔 상태니 날래 오시라요.

장동건은 그 말에 즉시 차지환 일행이 전투 중이었던 곳으로 달려갔다.

이내 도착한 곳에서는 민유환이 웬 기계 장치를 만지작대고 있었던 상태.

희한한 것은 그가 기계에 손을 댈 때마다 장동건의 탐지 장치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는 거다.

“그게 문제의 교란 장치였던 건가?”

장동건은 눈을 빛내며 장치에 다가갔다.

[크악! 그냥 죽여 이 개새끼야!]

하지만 그때, 막 차지환에 의해 심문을 받던 사내 하나가 중국어로 욕설을 뱉어 냈고, 순간 소리가 귀에 꽂힌 장동건은 즉시 관심의 대상을 사내에게로 돌렸다.

“그 친구 중국인인가?”

“기렇습네다. 이 간나 새끼들이 말하길 반군 지도자 놈은 여기에 없는 것이 확실하답네다.”

“알 라무드 말인가?”

“기렇습네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

“그거이, 아무리 쥐어짜도 같은 말만 지껄이는구만요. 지들도 속았다고.”

“속다니? 뭘?”

“그 불알인지 알 뭐시긴지 하는 놈 말입네다. 그놈이 막상 이 짱깨 놈들에게 역할만 분담하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답니다. 기래서 지금 이놈들은 내빼지도 못하고 있던 상황이라는구만요.”

“…….”

***

휘이이잉!

고베에서의 일을 마치고 도쿄에 도착한 나타샤는 삼엄한 경호 속에서 차량에 올랐다.

예정대로라면 곧장 호텔로 향했겠지만, 진현승으로부터 걸려 왔던 전화는 그녀로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

결국 그녀가 방향을 튼 곳은 예약했던 호텔이 아닌 경매 진행이 예정된 장소였다.

“하필 이런 시기에 그놈의 행적이 묘연하다니. 이거 큰일이네. 이번에 고쿄 경매장에 꽤 많은 수의 한국 문화재가 올라온다고 했는데.”

최근 그녀가 전념하고 있는 일은 과거 한국 땅에서 일본으로 불법 유출된 문화재급 유물들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그건 비단 진현승의 부탁도 있었지만, 그간 침대에서 진현승에게 받아 온 역사 교육을 통해 일본의 만행에 대한 분노를 품게 된 결과.

물론 꽁꽁 숨어 있는 유물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녀는 충분히 유능했다.

유물 소유자를 온갖 방법으로 찾아내고 압박하여 종국에는 경매시장에 물건을 내놓도록 만든 것.

“한심하네…….”

생각의 뿌리는 어느덧 일을 진행하는 와중 겪었던 일들에까지 미쳤다.

누구 하나 제 조상의 범죄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이는 없었던, 짜증 나는 유물 소유자들과의 실랑이 경험들.

그 탓에 나타샤는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일본의 현 위기 상황에 대한 동정심을 완전히 버릴 수가 있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절대로 바뀌지 않아.’

위잉!

생각이 깊어지던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요란한 진동을 했다.

발신자는 그녀의 경호 책임을 맡은 알파그룹의 대장.

통화 버튼을 누른 순간, 저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지금 경매장으로 가시는 중이십니까?”

“맞아요.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요?”

“방금 나타샤 님께서 묵으실 호텔을 점검 중이던 우리 대원에게 전화가 왔는데, 호텔에서 세 블록쯤 떨어진 지하철역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답니다. 혹시 모르니 이쪽으로 아직 이동하시지 말라는 권유를 하려 전화한 겁니다.”

“……지하철역이 폭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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