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89화 (289/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89화

“헉헉. 찾았습니다.”

뉴스를 확인한 지 두 시간쯤 후.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차단당한 영상을 확보한 임효식 대표가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

이후 그는 내 지시가 있기도 전에 그걸 노트북에 연결했고, 마침 근처에서 서성대던 안 대표와 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트북을 향해 다가갔다.

[이건 우리의 땅에서 신의 전사들의 몰락을 야기한 한국을 응징하기 위한 조치다.]

처음 화면에 등장한 것은 두건을 얼굴에 뒤집어쓴 사내였다.

드러난 피부색과 눈매로 봐선 아랍계 인물이 분명한 상태.

이후 그는 잔뜩 분에 찬 말투로 한국을 향한 저주의 말을 몇 마디 더 퍼붓곤 곧장 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맘 단단히 먹으십시오.”

그때 곁에서 함께 지켜보고 있던 임 대표가 넌지시 경고의 말을 날렸다.

이미 그는 영상을 확인했었던 모양새.

말없이 다시 시선을 화면에 가져간 순간, 예의 그 아랍계 사내가 한국인으로 보이는 듯한 사내 하나에게 다가가선 가차 없이 목을 썰어 버리기 시작했다.

“저런 미친 새끼.”

함께 지켜보던 안 대표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나 역시 절로 욕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끝내 참아 내며 화면을 주시했고, 이후 놈이 희생자의 머리를 높이 들고 무어라 외치는 장면까지 눈을 돌리지 않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곳 필리핀에서의 한국 경찰 병력들의 완전한 철수다. 만약 그 조건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저 뒤에 있는 나머지 한국인들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며, 향후 필리핀 내에서 거주 중이거나 여행 중인 모든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할 것이다.]

탁!

영상은 주범의 경고를 끝으로 종료되었다.

하지만 난 몇 번이고 그걸 재생하여 살펴봤고, 그 모습을 본 안 대표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을 뱉어 냈다.

“회장님께선 은근 비위가 좋으시네요.”

“비위가 좋기는요. 전 길에 굴러다니는 개똥만 봐도 속이 뒤틀리는 사람입니다.”

안 대표는 그 말에 헛웃음을 짓고 다시 나를 쳐다봤다.

표정에선 그럼 왜 굳이 그걸 반복해서 보고 있느냐는 질문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태.

잠시 쥐고 있던 마우스를 손에서 놓은 채 말했다.

“주변 정황을 좀 살펴보기 위해섭니다. 즉, 영상 속에서 힌트를 얻어 낼 것이 없는지를 좀 찾아봤다는 소리죠.”

“호오.”

안 대표는 탄성을 발하곤 다시 가까이 다가섰다.

이내 나처럼 몇 번이고 영상을 되풀이해서 보던 그는 어느 순간 반짝 눈을 빛내며 옛 국정원장의 기질을 드러냈다.

“보편적인 필리핀 남부와는 달리 꽤 험난한 지형이군요.”

“맞아요. 주변이 온통 경사진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죠. 저런 지형이면 전투차량이 작전에 참여하기는 힘듭니다.”

“그렇다고 헬기를 동원해서 공중 폭격을 했다간 우리 인질도 희생될 가능성이 크고. 그럼 결국 구출 작전을 인력만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건데, 이거 자칫하면 출혈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요?”

역시나 그는 닥친 난관을 제대로 파악해 냈다.

옅은 웃음으로 대꾸를 대신하곤 다시 화면을 주시하려는데, 불현듯 생각 하나가 스쳐 갔다.

“이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이런 지형을 택하여 숨어 있다는 것은 전략 전술에는 꽤 능한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마약 조직을 비롯하여 반군들 대부분이 맥없이 당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여 대처하고 있는 셈이니까.”

“하긴, AI 기반 전투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는 곳이라면 저들 입장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쪽 지형은 어차피 저들에게 더 익숙하고, 또 게릴라전에 능통한 것이 IS의 특징이니까요. 하면 이제 어쩌죠?”

“글쎄요. 그거야 정부에서 알아서 대처하겠죠.”

난 짧은 대꾸와 함께 허리를 폈다.

솔직히 이 자리에서 아무리 떠들어 봐야 이 사안에 대한 대처와 결정은 결국 정부가 하는 거니까.

한데 그건 지나치게 나태한 생각이었을까.

순간, 노크와 함께 김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와선 소식을 전했다.

“저, 회장님. 방금 신임 총리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정부 대책회의에 참여하실 수 있는지를 여쭤봐 달랍니다.”

“신임 총리가요?”

최근 이루어진 개각을 통해 총리에 오른 인물과는 안면이 그리 많지 않았던 터였다.

그저 얼마 전 있었던 재건위원회에서 잠시간 대화를 나누었던 것과 대통령의 주도로 이루어진 식사 자리 두어 번이 전부였을 뿐.

우려되는 부분은 평생을 대학에서 교육자로만 살아왔던 존재라는 점인데, 아마도 그건 같은 학자 출신인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이번 사건에서 나는 왜 필요로 하는 거지?

“아! 총리님의 전언에 따르면 사건 자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곧 파견될 3차 후속 경찰병력들의 무장 확대 문제도 논의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잠시 들었던 의문은 김 비서의 첨언에 의해 풀렸다.

무장 확대란 아마도 본격적인 항공세력 지원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일 터.

사실 섬이 많은 필리핀 지역의 특성상 공중감시 및 지원은 필수였는데, 이제야 그걸 의결할 모양이다.

“잘됐군요. 어차피 나도 정부에 알려야 할 것도 좀 있는 상태였던 마당이니.”

***

끼익!

도착한 정부 청사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상갓집을 연상케 했다.

하긴,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그토록 잔인한 죽음을 맞은 상황인 마당에야 그건 당연하겠지.

더군다나 지금은 정부에 의해 언론들이 죄다 들쑤셔진 상황.

이때다 싶은 언론의 반격과 십자포화에 현재로선 대통령조차도 꽤 곤혹스러운 처지일 거다.

“기다렸습니다. 진 회장님.”

회의실에 들어서자 총리가 화색의 띠며 자리를 권했다.

그동안 얼마나 언론들에게 시달린 건지 얼굴이 반쪽이 된 상태.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이곤 자리에 앉으려는데 그의 말이 다시 날아든다.

“방금 영상을 분석한 군 수뇌부들이 내부회의를 한 결과 해당 지역에는 AI 기반 전투차량의 접근이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군요.”

“해당 지역이 어딘지는 알아낸 겁니까?”

짧은 대꾸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마침 곁에 있던 국방장관은 즉시 내게 눈인사를 건넸고, 나 역시 화답의 의미로 미소를 내비치곤 다시 총리에게 시선을 줬다.

“필리핀 정부가 제공한 저들에 대한 자료와 해당 영상을 근거로 하여 몇몇 가능성 있는 지역을 추려 내기는 했습니다. 현재는 위성을 통해 대조 작업 중이니 구체적인 결과가 나오겠죠. 그나저나, 끝내 전투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지형이라면 대책이 좀 필요하지 싶습니다만.”

아마 저게 나를 부른 진정한 목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긴, 현재 정부는 반격의 발톱을 그러내고 있는 언론에 의해 점점 코너에 몰려가고 있는 중.

그 와중에 정부가. 아니, 내가 주도한 동남아 원조의 결과가 우리 국민들의 대량의 인명손실로 귀결되어지는 경우 뒷감당이 힘들어질 것은 사실이니까.

그 점을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자리에 불려 온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면 정부에서 생각하는 대책은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되물었다.

이어지는 대답에선 뜬금없는 제안이 뒤따른다.

“정부에선 그렇다고 무작정 인력을 투입했다가 발생할 사고와 그에 따른 후폭풍을 경계하는 중입니다. 해서 말인데…… 이번에 재우에서 발표한 그 다각전차를 동원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당황한 총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난 슬쩍 앞에 있던 마이크를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공개한 다각전차는 미완성된 물건입니다. 그걸 무작정 현장에 투입할 수는 없다는 것쯤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재우는 전에도 종종 막 개발을 끝마친 무장들을 실전에 곧바로 투입하지 않았습니까.”

신임 총리는 뭐가 문제냐는 듯 반발했다.

나름 재우가 그동안 해 왔던 일들에 대한 공부 정도는 한 모양인데, 정작 중요한 부분에 대해선 이해가 부족하다.

“그건 인간에 의해 컨트롤되는 무장들이었을 때의 이야기고, AI는 경우가 다릅니다. 방금 말씀하신 다각 전차는 아직 충분한 데이터들을 습득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자칫 오판에 의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럼 AI 기반 자동전투 시스템이 탑재된 장갑차량은 왜 투입했었던 겁니까? 그것 역시 AI로 운용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나마 저 질문은 뼈가 있었다.

웃으며 다시 반론을 뱉어 냈다.

“그건 결국 인간이 함께 탑승하고 있지 않습니까. 설령 오판을 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소리죠. 게다가 그것 역시 현재로서는 워낙 말이 많아서 일부 시스템을 개량 중에 있습니다.”

총리는 그 말에 비로소 입을 꾹 다물었다.

막상 기대하고 있던 패가 사라져버린 탓일까, 그의 표정은 점점 더 흙빛이 되어 갔고, 난 그 타이밍에 다시 발언권을 요구했다.

“말씀하세요.”

스윽.

총리의 허락과 동시에 연단을 향해 걸어갔다.

이후 관계자를 향해 스크린에 사건 영상을 띄워 줄 것을 요구했고, 이후 화면을 장식하는 잔혹한 영상 속에서 원하는 부분을 찾아낸 난 재빨리 손을 들어 영상을 멈췄다.

“사실 제가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은 대책도 대책이지만 이걸 알려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말과 함께 뻗어진 내 손을 향해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이후 내가 손으로 가리킨 것은 건장한 IS 대원들이 주룩 도열해 있는 장면.

특히나 걷어 낸 소매 사이로 드러난 피부색이 주변 인물들과는 차이가 큰 인물들이었다.

“여기. 그리고 여기와 여기. 이 세 명의 사내들은 피부색만 보면 필리핀 현지인이나 아랍계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해서 예상컨대 중국군에서 파견된 인물들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게 무슨,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 있다 해서 그들을 무작정 중국군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질문을 뱉어 낸 이는 외교부 장관이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닌 터라 난 슬쩍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말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린 이미 필리핀 마약 조직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중국군의 개입 사실을 밝혀냈죠. 하니 이자들이 중국군이라는 짐작이 꼭 무리한 것만도 아닐 겁니다.”

“…….”

“게다가 꼭 피부색이 아니라도 두건 사이로 보이는 눈매가 전형적인 동북아시아인의 것에 가깝고, 우리 연구소의 AI도 저자들을 동북아시아인이라고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개입은 삼합회와 중국 공산당 고위간부들의 관계가 있으니 그랬을 수 있었던 거고, 지금 저들은 IS 반군 아닙니까. 중국군이 왜 득 될 것도 없는 IS 반군을 돕는다는 말이죠?”

이번엔 총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하긴, 나조차도 처음엔 바로 그 이유로 반신반의했었지.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적의 적은 나에게 우군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한 법칙.

“현재로서는 저들과 손을 잡는 것이 그나마 우리 경찰 병력들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

총리는 끝내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하긴, 밝혀지는 경우 감당해야 할 후폭풍을 생각하면 중국으로서는 쉽지 않을 선택이긴 하지.

아마도 그게 총리의 입장에서도 확신을 방해하게 만드는 장애물일 거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돈줄 지키기는 우리 생각보다 더 집요합니다.”

“…….”

“게다가 정부가 연루된 범죄 사실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두려워한 적도 없고. 아무튼 그런 상식 밖의 국가인 마당이면 이미 적국이나 다름없는 우리를 상대로 뭐든 못 할 것이 없겠죠. 마치 통일 이전의 북한처럼 말입니다.”

난 결국 그 벽을 무너트리기 위해 가장 확실한 예를 입에 올렸다.

순간 총리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이후 한참을 미간만 찌푸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그는 넋두리하듯 말을 뱉어 냈다.

“젠장, 그게 사실이면 이거 일이 더 어려워진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봐야죠. 당장 우리의 최대 이점인 전투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상황에선 결국 인력 간의 교전이 벌어질 텐데, 정작 사진상에 있는 인원이 지원군의 전부라고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만약 중국에서 지원한 인력들의 수가 예상을 넘는 수준이면 교전 과정에서 희생이 아주 없으리라고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 말에 총리의 표정이 부쩍 어두워졌다.

마치 사면초가에 몰린 사람의 그것처럼.

그나마 위안거리가 될까 싶어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생각하시는 것만큼 희생이 크지는 않을 겁니다. 적어도 우리 병력들은 전신 방탄 수트는 물론 외골격까지 갖춘 상태에서 전투에 임할 것이기에 어지간한 중화기의 공격이 아니면 사망에까지 이를 만한 상황에는 처하지 않을 테니까.”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하니 총리께서도 지나친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국방장관이 불쑥 내 말에 동조했다.

곁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기가 답답했던 듯.

아니, 정확히는 경험 없는 총리의 미숙함이 답답했기 때문이었겠지.

힐끗 나를 향해 한쪽 눈을 감아 보이는 것으로 봐선 후자가 맞을 거다.

“그나저나 진 회장님. 혹시 소식 들으셨습니까?”

미소로 응대하는 찰나 국방장관이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그가 한껏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미 정보기관과 이스라엘 정보기관들로부터 전해진 소식인데, 이번 우리 교민 살해 사건의 주범이 예전 푸틴 대통령의 딸 납치사건의 주범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크답니다. 이름은 알 라무드. 사실이라면 한국에 대한 원한이 남다를 법도 하겠더군요.”

“알 라무드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라고요?”

그게 사실이라면 생각을 달리해야만 한다.

다른 걸 떠나서 놈은 당시 구출작전에 나섰던 러시아 알파 그룹을 사로잡았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니까.

그럼 이걸 어쩐다?

스윽.

한참의 생각 끝에 시선이 총리에게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내 눈빛 변화에 기대감이 든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꿀꺽 하고 마른 침을 삼켰고, 난 턱을 앙다물며 말했다.

“하필 그런 인물이 납치세력의 주범이라면 확실히 대책을 달리해야겠군요. 더군다나 우리 국민이 죽임을 당하는 것에 일조한 중국군을 그냥 둘 수도 없고. 좋습니다, 당장 다각전차를 동원할 수는 없지만 그에 준하는 수단을 제공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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