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85화
[그 문제는 군과 협의를 해 보겠소.]
리암은 먼저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우리도 좀 생각을 해 봐야겠군.]
기회를 포착한 듯 푸틴 역시도 시간의 여유를 달라는 태도를 취한 상황.
어차피 나도 당장 결정이 내려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문제였던 터라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리암의 질문이 다시 날아든다.
[그런데 대체 이 일로 재우가 얻게 되는 것은 뭐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국 정부는 몰라도 재우가 얻는 건 그다지 없는 상황 같아서 하는 말이오.]
그 질문에는 대한 대답은 해 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막말로 ‘당장은 내가 손해인 게 맞지만 차후 반도체 산업의 재편에 있어서 삼정. 아니 재우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그의 면전에서 어찌 할 수가 있겠는가.
결국 개량 사업 과정에서의 이익.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로의 부품 공급을 통해 얻어지는 막대한 수익을 핑계로 대려는데, 갑자기 푸틴이 전에 없던 말투로 나를 부른다.
[이보시오, 사위.]
[네?]
놀란 마음에 절로 몸이 경직됐다.
젠장, 막상 저 호칭을 듣고 보니 우리가 가족 관계로 엮여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거든.
하지만 쫄 이유는 없다.
말이 가족 관계지, 아직은 그게 영 실감이 안 나······.
[요즘 내 딸은 잘 지내고 있소?]
······기는 개뿔.
아주 확실하게 실감 난다.
[네.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그러고 보니 나타샤와 통화를 해 본 지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오늘은 부녀 사이에 오붓한 대화를 해 봐야 할 것 같소이다.]
[그러시지요. 안 그래도 나타샤 역시 대통령님과의 통화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으니까요.]
[나와의 통화를 기대한다? 왜요?]
푸틴은 순간 의아한 눈초리를 내비쳤다.
슬쩍 입매를 뒤틀곤 말했다.
[아직 못 받은 결혼 선물을 언제 주실지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있거든요.]
[쿨럭!]
***
[유럽 연합과 중국은 올해 말 무역협정을 체결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해당 협정이 체결될 경우 유럽은 13억이 넘는 중국 시장으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2013년 10월.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중국과 밀착하는 모습을 내비치던 유럽이 본격적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협정이 맺어질 경우 유럽으로서는 단순히 시장 확대를 넘어서 무지막지한 투자유치 및 이익창출의 기회를 잡은 셈.
어디 유럽뿐일까.
중국의 경우는 그동안 미국의 견제로 인해 제약이 따랐던 각종 기계류와 산업기반 설비들의 수입 문제에서 숨통을 트는 쾌거를 이루었다.
[중국은 독일로부터 면허 생산을 계획 중인 Pzh2000의 수량을 총 5천여 대로 확정했습니다. 또한 향후 부족한 산업설비들을 대부분 독일을 통해 조달하기로······.]
“미친, 그 비싼 자주포를 5천대나······이거 아무래도 우리 k9을 견제하려는 것 같은데, 상황이 이러면 유럽에 항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함께 뉴스를 지켜보던 안 실장이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나 역시 걱정스럽긴 마찬가지.
중국이 역사와 달리 신뢰도 높은 무기로 무장을 확대하는 것도 문제지만, 최근 유럽의 움직임도 지나치게 상식 밖이다.
‘뭐랄까, 이건 꼭 옛 유럽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느낌?'
문제는 역시나 중국의 그 음흉한 속내를 유럽에서 모를 리가 없다는 점인데, 만약 중국이 정말로 변화를 내비쳤다면.
쉽게 말해서 원 역사와 달리 정말로 유럽과의 진정한 공존 및 합리적인 관계 구축 의지를 인정받았다면 사실상 그것도 꿈만은 아니라는 거다.
“아무래도 중국이 유럽의 신뢰를 얻을 만큼 확실한 무언가를 제시한 모양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한데 그게 뭘까요?”
“글쎄요, 단순히 무기수입이나 유럽을 향한 막대한 투자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지금으로서는 저도 영 감이 잡히지 않는군요.”
안 실장은 어깨를 들썩이며 뱉어 낸 내 대꾸에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제법 빠른 두뇌회전의 소유자였지만 끝내 촉이 오는 부분은 없는 듯.
이내 부르르 머리를 털어 낸 그가 다시 질문을 잇는다.
“그나저나 미국이 아직도 가만히 있는 것이 왠지 수상쩍습니다.”
“원래 그게 미국의 방식 아닙니까. 불필요하게 상대의 경계심을 줄 잔 펀치보다는 크게 한 방을 내지르는 것. 겉으로는 조용해도 아마 조만간 뭔가 제스처를 취할 겁니다.”
연이은 안 실장의 우려에 대꾸하곤 서류철에 시선을 줬다.
최근 이북 지역으로의 출장이 잦았다 보니 결재해야 할 서류들이 잔뜩 밀려 있는 상황.
절로 한숨이 나오려는 차에 이번엔 옆 나라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이 귀에 꽂힌다.
[그간 무능한 행정으로 비판을 받아 왔던 일본 민주당 정권이 결국엔 무너졌습니다.]
“흠.”
그동안 내세우는 정책마다 실패를 거듭하던 민주당 정권이 결국엔 붕괴된 모양이었다.
소문이야 진즉부터 있었지만 이렇듯 빨리 무너질 줄은 몰랐던 상태.
더 당황스러운 것은 그로 인해 다시 총리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 하필 아베라는 건데, 이로써 거의 숨이 끊어질 것 같았던 국우들도 슬금슬금 다시 머리를 들어 올리기 시작할 거다.
“첩첩산중이구만.”
연이은 속보를 지켜보던 안 실장이 탄식을 하며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내 의견을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별스럽지 않다는 표정으로 일관하자 답답하다는 투의 질문이 날아든다.
“회장님은 걱정도 안 되십니까? 아베가 정권을 잡게 되면 또 무슨 생지랄을 할지 모르는 마당에.”
“그렇다 해도 지금에 와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다고요.”
지나가듯 말하곤 다시 결재 서류에 집중했다.
여전히 날아드는 따가운 시선.
결국 탁 하고 서류철을 덮곤 그를 쳐다봤다.
“어차피 일본은 지금 고자나 다름없습니다.”
순간 안 실장이 풋 하고 입을 가리며 웃었다.
저 기분 나쁜 웃음의 의미는 뭐지?
왠지 그냥 넘어가기엔 찝찝한 마음에 따지고 들려는데 그가 선수를 친다.
“흠흠, 갑자기 고자 소리를 듣고 나니 예전에 회장님께서 한때 아버님의 결혼성화 때문에 고자 행세를 하시던 것이 잠시 생각났을 뿐입니다. 말씀 계속하시죠.”
“별걸 다······. 아무튼, 일본은 현재 절름발이나 다름없습니다. 바닥을 친 신용으로 인해 경제는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자위대는 미군과 우리 군의 통제를 받고 있으니까. 좀 미안한 표현이긴 하지만, 미국도 이제는 일본을 ATM기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이죠.”
사실 일본이 다시 일어서지 못할 이유를 따지자면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과도한 군비 지출 구조를 만들어 준 덕분에 경제 투자는 더 위축될 테고, 그 와중에도 한쪽으로만 편중된 군비는 자위대의 불균형을 더 심화시킬 거다.
‘게다가 막대한 F35의 운용비는 물론 미국으로부터 인수한 구축함과 무장들의 운용 유지비가 목을 조르겠지.’
아마 이대로 몇 년이 지나면 아베가 아니라 아베 할아버지가 온다 해도 일본에 드리운 망조의 기운을 거둬 낼 수는 없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아베가 워낙 음흉한 인물 아닙니까. 뒤에서 또 무슨 꼼수를 계획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하는 말이죠. 솔직히 전 2020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아베가 일조를 했다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그 부분에 있어선 사실 나도 의외긴 했다.
이대로 영영 역사에서 사라져 버릴 줄만 알았던 아베가 어느 날 갑자기 2020년 하계 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 위촉되더니, 불과 한 달 전에는 끝내 도쿄를 개최지로 만드는 기함을 토하기까지.
뭐 그 부분이야 원 역사에서도 그랬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만, 그게 아베가 정치무대에 복귀하는 발판이 될 줄은 몰랐다.
“흠, 그러고 보니 확실히 아베의 정치무대 재등판은 좀······.”
“네?”
무심코 내지른 중얼거림에 안 실장이 반응했다.
손사래를 치곤 다시 산처럼 쌓인 결재 서류에 시선을 주려는 차.
똑똑!
마침 2차 필리핀 출장을 떠났던 김 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귀국 사실을 알려 왔다.
“다녀왔습니다, 회장님.”
“벌써 도착하셨습니까?”
“네, 다행히 상습적이던 연착을 피했거든요.”
그새 까무잡잡해진 김 실장은 지친 표정으로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누가 앙숙 아니랄까 봐 이후 내가 서류에 마저 사인을 하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선 유치한 말다툼이 이어졌고, 결국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고서야 출장 보고가 시작됐다.
“필리핀 정부에서 KF-01의 수입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또한 동력형 외골격에도 욕심을 내비치더군요.”
“KF-01은 몰라도 외골격은 안 됩니다.”
난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그 중요한 물건을 필리핀 같이 보안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 수출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이미 짐작한 반응이었던 듯 즉시 고개를 끄덕인 김 실장은 이후 조금 생뚱맞은 소식을 하나 전해 왔다.
“그리고 참! 오는 길에 마이클 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장님과는 영 통화 연결이 안 된다고 불평을 하더군요.”
“그랬을 겁니다. 이틀 전쯤 실수로 마이클과의 직통 전화기를 욕조에 빠트렸거든요.”
“욕조요?”
무심코 뱉은 대답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꽂혔다.
실수였던 거지.
다급히 변명을 내뱉었다.
“상상하시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니 그런 눈으로 보실 것 없습니다. 그나저나 마이클이 뭣 때문에 전화를 한 겁니까?”
“그가 전화한 이유야 빤하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탐나는 먹잇감을 발견한 거죠.”
“······.”
그 말에 문득 뇌리를 스친 것은 AI 기반 전투차량이었다.
정확히는 AI가 지배하는 화력 통제 시스템 기술.
아니나 다를까, 곧 김 실장의 입에선 예상을 증명하는 말이 뱉어졌다.
“AI 시스템 말입니다. 샘플을 보내 줄 수 없냐는 의사를 전달해 왔습니다.”
“샘플이야 얼마든지 제공 가능하죠. 그나저나 상황이 이러면 단가하락의 가능성은 이로써 확실해졌군요.”
“그렇다고 봐야 할 겁니다. 미군이 정식으로 채용한다면 필리핀 수준과는 규모가 다를 테니까요. 조만간 육군 장관과 함께 방문하겠다는 것으로 봐선 채용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김 실장은 기대감 가득한 투로 대꾸했다.
육군 장관까지 한국을 방문한다?
왠지 판이 커질 모양새라 나까지 기대감이 든다.
“저······.”
그때, 김 실장이 뭔가 할 말이 남은 듯 다시 운을 띄웠다.
무심히 시선을 주자 그가 들고 왔던 가방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내 보이며 말한다.
“이건······.”
“기억 안 나십니까? 예전 회장님의 제안에 따라 우리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물건들입니다만.”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뜬금없이 이걸 왜 거론하시냐는 말이죠.”
김 실장은 되묻는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답지 않은 음흉한 미소.
순간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자 그의 말이 이어진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필리핀에서의 전투는 우리의 AI 기술을 전 세계에 공표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해서 말인데, 기왕 일이 이렇게 된 마당이면 이것들도 죄다 공개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서요.”
“······.”
“어차피 이것들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않으면 세상의 빛을 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회장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죠. 제작 단가가 워낙 높다 보니.”
“그러니 이 기회에 파이를 키우자는 겁니다. 더불어서 제품의 완성도도 높일 기회도 잡고.”
뭣보다 귀에 꽂힌 것은 ‘완성도’라는 단어였다.
하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족한 완성도를 높이는 것.
이게 공개될 경우······.
“흠.”
***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이틀 후, 예고 없이 연구소를 방문한 나를 희원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잠시간의 사적인 대화 끝에 그를 이끌고 간 곳은 AI 자동화 전투 시스템 개발 부서.
평소와는 달리 일체의 농담을 뱉어 내지 않는 내 태도가 의아했던 듯, 놈은 내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흠.”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않은 채 바삐 움직이고 있는 연구원들을 주시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내 무언가에 열중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최인배가 퍼뜩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달려온다.
“언제 오셨습니까?”
“수고가 많아요.”
한때 고스트이글의 전투체계 개발책임자였던 최인배는 대략 4년 전쯤부턴 AI 기반 전투 시스템에 대한 개발책임자를 맡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최근 필리핀으로 보냈었던 AI 기반 자동화 전투 시스템.
사실 오늘 이곳에 들른 목적은 뛰어나다 못해 완벽한 그의 창조물들이 낸 결과에 대해 칭찬을 해 주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또 다른 임무를 부여해 주기 위해서다.
“우리 이제 본격적으로 AI 시스템을 개발해 봅시다.”
“네?”
최인배는 이건 또 무슨 부담이 절절 흐르는 말인가 싶은 표정이었다.
하긴 지금도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저들의 입장에서야 당연한 반응.
게다가 만성적인 전문 인력 부족 문제도 여전한 상태였으니 더더욱 반발심이 드는 말이었을 거다.
“절 죽이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안 그래도 저 혼자 동분서주하고 있는 건 회장님께서도 잘 아시잖아요.”
“물론 인력 부족은 해결해야겠죠. 해서 말인데, 조만간 재우 자체적으로 방위산업 전시회를 개최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네? 아니 방위산업 전시회와 인력난 해소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요.”
난 그 말에 빙긋이 웃어 보였다.
이후 그가 여태껏 만지작대고 있던 물건 앞으로 다가서선 툭 하고 손을 얹으며 말했다.
“만약 이 물건들이 대중 앞에 공개될 경우,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상상이나 해 봤습니까?”
“······.”
“아마 전 세계에서 제법 실력이 있다는 관련 엔지니어들. 특히나 돈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학문적인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에 목숨을 건 진짜 인재들은 눈이 뒤집혀서 죄다 한국으로 몰려들 겁니다. 하면 우리로서는 손 안 대고 양질의 인력 풀을 확보하게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