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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84화 (28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84화

“필리핀에서 아직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겁니까?”

퇴근 무렵 김 비서로부터 전해진 소식에 들고 있던 슈트를 다시 내려놨다.

필요 이상으로 굳어진 내 표정 탓일까, 순간 김 비서의 얼굴엔 괜한 보고를 한 건가 싶은 표정이 스쳤고, 난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며 되물었다.

“우리 정부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아니, 필리핀 현지 경찰은요.”

“우리 정부에선 당연히 재발 방지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에 부응한 필리핀 경찰 측에선 해당 경찰들을 즉시 파면 조치 및 구속수사를 공표한 상태고요.”

사실이라면 필리핀 정부의 대처는 꽤 빠른 편이었다.

그동안 벌어졌었던 비슷한 사태에 대해 뭉그적대던 태도와는 달리.

그렇다 해도 그 더러운 관행. 아니 습관은 역시나 한 번에 고쳐지지는 않는 걸까.

문득, 가야 할 길이 아직은 멀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마약을 관광객들의 호주머니에 몰래 넣었다가 그걸 검문하여 적발한다…… 당하는 입장에선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겠군요.”

단순히 미치는 수준을 넘어서 지옥에 떨어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을 거다.

하필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범죄자 취급을 받는 마약소지혐의로, 그것도 타국에서 조사를 받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결백을 주장할 뚜렷한 증거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

결국엔 돈으로 해결하자는 비리 경찰들의 제안에 혹할 수밖엔 없을 테고, 그렇게 당한 필리핀 관광객들의 수만도 지금껏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한데 이번엔 어떻게 해결이 된 겁니까?”

“그게, 마침 현장을 지나치던 우리 경찰 특공대원들이 개입했답니다.”

“개입을 했다? 어떻게요.”

의아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순간 김 비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지는가 싶더니 뜬금없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한마디로 정의의 사도가 된 거죠.”

“정의의 사도?”

“네, 현지 경찰이 관광객들로부터 압수한 마약 봉투가 뭔가 수상쩍었답니다. 비닐도 아니고 웬 낡아 빠진 종이봉투 같은 것으로 뭉쳐 둔 형태의 마약을 증거랍시고 내세웠다는데, 그걸 수상쩍게 여긴 우리 경찰이 거의 반강제적으로 현지 경찰의 주머니를 뒤져서 같은 종류의 마약 봉투를 수십 개나 발견했답니다.”

“반강제적으로 주머니를 뒤졌다고요? 현지 경찰을 상대로?”

“네, 그 과정에서 북한 출신 우리 특공대원에 의해 현지 경찰들의 팔이 부러지는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했고요.”

사실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다.

결론적으로야 현지 경찰의 비위 사실로 밝혀지긴 했어도 타국 경찰에게 그렇게까지 위해를 가한 사실은 자칫 시빗거리가 될 수 있으니까.

내 염려가 무엇인지 눈치챈 듯, 김 비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행히도 현재 필리핀 정부는 우리 특공대와 현지 경찰 사이에서 벌어졌던 충돌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는 후문입니다. 어차피 우리 경찰이 파견되어 있는 동안에는 교민을 상대로 한 문제가 발생했을 시 우리에게 사건을 인계하기로 했던 협정을 근거로 한 거죠.”

“그렇다고는 해도 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텐데, 그거 꽤 고무적인 결과군요.”

“필리핀으로서는 그만큼 우리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니까요. 게다가 전적으로 자신들의 사회적 부조리가 낳은 결과기도 하고. 아! 그렇고 보니 두테르테라는 인물의 발언이 현지 정부를 고개 숙이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었지 싶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쳐다봤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던 듯, 김 비서는 재빨리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게 들이밀었다.

“현재 필리핀에선 두테르테라는 인물이 정가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지율 상승 속도를 보면 차기 대통령은 그가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흠.”

“한데 그런 인물이 한국 경찰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 자국 경찰들의 비위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는 상황인 터라 필리핀 국민들도 딱히 우리 경찰들에 대한 반감은 없는 모양입니다. 아니, 반감은커녕 오히려 자국 경찰의 비위 사실이 창피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죠.”

들려오는 그녀의 말을 뒤로하고 기사에 집중했다.

무려 68퍼센트에 달하는, 두테르테를 향한 절대적인 지지율.

원 역사에서도 그 정도 지지율을 확보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쨌건 상황이 이러면 그의 대통령 당선은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두테르테라…… 뭐, 단순하긴 해도 우리가 상대하기엔 확실히 쉬운 인물이기는 하지.’

생각과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필리핀에서 발생한 사건사고야 내가 굳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고, 당장은 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약속된 화상 회의를 위해 다시 회의장으로 가려는데, 김 비서의 말이 이어졌다.

“그나저나 관련 부처에서는 이번 사안의 발단이 된 우리 특공대원들을 징계 처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그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징계?”

“네, 결과야 어찌 됐건 과도한 폭력으로 문제를 키웠다는 거죠.”

정부의 입장에선 당연한 조치일 수도 있었다.

이유가 뭐건 현지 경찰을 폭행한 것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정말 그들에게 징계가 주어진다면 그건 또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킬 것은 물론 경찰들의 사기마저도 꺾는 일.

난 한참의 고민 끝에 해당 부처의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현승입니다. 죄송하지만 이번에 필리핀에서 문제가 된 두 경찰병력을 어떻게 처리하실까 궁금하여 전화드렸습니다. 아! 그렇다고 그들을 향한 징계를 거둬 달라는 말은 아니고, 기왕이면 아예 퇴직 조치를 취해 주시면 싶군요.”

순간 듣고 있던 김 비서가 뜨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나를 만류하려는 듯 연신 입술을 우물거렸지만, 난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그 정도 인물들이라면 재우 PMC에서도 꼭 필요한 인재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

김 비서는 이어진 내 말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관하지 않은 채 통화에 집중하며 걸어가는 와중, 갑자기 나를 앞지른 김 비서가 문을 활짝 열고는 척 하고 엄지를 치켜든다.

***

“준비 끝났습니다.”

들어선 회의장엔 이미 화상 회의를 위한 준비가 끝마쳐져 있었다.

일반적인 화상 회의와 다른 것이 있다면 보안을 위해 양자암호와 위성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

덕분에 장비들의 규모가 꽤 다양해진 상태였고, 그건 아마도 회의 대상인 미국과 러시아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아, 보입니까?]

처음으로 화면에 등장한 인물은 리암이었다.

이런 방식의 회의가 익숙하지 않았던 듯 화면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연신 갈 곳을 정하지 못했고, 이후 곁에 있던 비서의 조언이 있고 나서야 안정된 시선 처리가 가능해졌다.

[여! 이렇게 보니 또 새롭군요.]

이후 등장한 푸틴은 그래도 리암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었다.

뭐 그래 봐야 그 역시 시선이 자주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은 마찬가지.

이후 한참의 잡담을 통해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이번에 제가 두 분에게 대화를 요청한 것은 한 가지 제안을 드릴 것이 있어서입니다.]

두 인물은 그 말에 잠시 흐트러졌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앞으로 내 입에서 나올 말이 심상치 않은 주제의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는 듯.

난 웃으며 주머니에서 반도체 모듈 하나를 꺼내어 화면에 비추었고, 두 거물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질화갈륨을 기반으로 한 탐지레이더의 모듈입니다. 전 오늘 이 모듈의 제조 기술을 두 나라에 공개할 생각이죠.]

순간 둘의 눈이 동시에 커다랗게 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질화갈륨 기반 기술은 이제껏 재우가 공개하기를 극도로 꺼렸던 것이니까.

[물론 조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다.

우린 이미 단결정 방식이 아닌 수직형 적층 기술을 확보.

그로 인해 기존보다 높은 항복전압 특성을 가진 소자를 개발했거든.

어디 그것뿐일까, 그래핀 기반 소자의 개발도 이미 완성 단계에 있는 상황.

때문에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단결정 방식은 얼마든지 공개해도 상관없는 상황이 된 거다.

‘아니, 단순히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건 향후 저들이 기술적으로 우리에게 종속되는 결과를 낳게 되지.’

애초 반도체 기술 개발이라는 것은 과정을 건너뛴 자가 단숨에 첨단 공정을 구축할 수는 없는 분야.

당장이야 열매가 달콤하겠지만, 결국 수직형 적층 기술의 벽에 부딪힐 것이고, 그로 인해 차후엔 재우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질 테니까.

‘마치, 삼정이 결국엔 우리에게 기술적으로 종속되어 버린 것처럼.’

[조건이 뭡니까,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보시오.]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리암이 재촉했다.

어지간히도 애가 타는 모양새.

웃으며 머릿속을 지배하던 생각을 떨쳐 내곤 다시 말을 이었다.

[기술 이전의 대가로 반드시 재우에게 일정 부분 기술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그건 비단 군사적 목적만이 아니라 상업적 목적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겁니다.]

[그거야 당연한……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린 겁니까?]

리암은 그게 가장 궁금한 듯했다.

글쎄, 그 이유를 굳이 밝히자면 두 가지를 댈 수 있으려나?

비록 미국이 반도체산업 재편을 주도하고는 있지만 결국 시장지배력은 우리가 가져오기 위해서.

그리고 부족한 우리의 전역 방어망 구축을 위한 기반 마련.

뭐, 전자는 입에 담기 어려운 명제다 보니 결국 핑계를 댈 만한 것은 후자이지 싶었다.

[아시다시피 우린 통일 이후 지켜야 할 땅이 꽤 넓어졌습니다. 중국의 핵은 물론 여타 미사일과 방사포로부터. 즉, 전역 방공망의 구축을 좀 더 촘촘히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해서 미국에게는 현재 해상에서 운용 중인 능동 위상배열 레이더와 지상에서 운용 중인 근거리 대공방어시스템을 제공받기를 원하고, 러시아 역시도 최대한 많은 수의 근거리 대공방어차량들을 제공해 주시길 원합니다.]

[허어!]

당황한 푸틴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슬쩍 쳐다본 리암은 거의 넋을 놓고 있는 상태.

충격이 얼마나 심한 건지, 되묻는 말에서도 떨림이 느껴질 정도다.

[잠, 잠시만요. 조금 전에 분명 미군이 현재 ‘운용’ 중인 능동위상배열레이더라고 했는데. 그거 설마 우리 구축함에서 운용 중인 스파이 레이더를 뜯어 달라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굳이 콕 짚어서 말하자면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에 탑재되어 있는 레이더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군요. 그걸 좀 더 개량하여 지상형으로 탐지 시스템으로 써먹을까 합니다.]

리암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잠시 뜸을 들인 후, 난 내 요구가 그다지 무리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질화갈륨 기반 기술은 아시다시피 전략 기술 중에서도 탑 클래스급에 속하는 겁니다. 그런데 고작 그걸 내어주는 대가로 기술을 얻는 조건이라면 미국으로서도 손해는 아닐 텐데요?]

[그렇기는 하지만, 왜 하필 기존 시스템을 뜯어 달라는 겁니까.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해서 새로 제작하면 그만이지.]

리암은 재빨리 반문했다.

내가 설마 그걸 몰라서 기껏 중고를 요구하는 걸까.

난 즉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다시 강조했다.

[물론 돈으로 받아 낸다면야 더 편하기는 하죠. 하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땅은 이제 꽤 넓어졌습니다. 아무리 줄여도 최소 30기 정도는 필요할 정도로.]

[30기? 맙소사! 그 정도 수량이면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을 절반 가까이 뜯어내야 한다는 말이잖소.]

[그렇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아무리 질화갈륨 기반 기술이 대단하다 해도 미국이 그 정도 수량의 능동위상배열 레이더를 새로 제작할 정도의 금액을 우리에게 지불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죠.]

[그래서, 차라리 중고를 뜯어다가 필요한 수량을 맞추겠다?]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렬한 눈빛으로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는 리암의 모습.

난 잠시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두 나라가 질화갈륨 기반 모듈 기술을 얻게 된 마당이면 기존 탐지레이더의 교체는 정해진 수순일 텐데요? 특히나 미국의 경우는 항상 우리 구축함이 보유한 멀티밴드 AESA 기술을 원해 왔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리암은 차마 대꾸를 하지 못한 채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다 또 무슨 생각이 난 건지 휙 하고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곤 말을 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오. 이 사실을 해군이 알면 아마 당장이라도 협상에 응하라고 아우성을 치겠지. 하지만 30척이나 되는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의 레이더들을 뜯어내는 경우 발생할 전력공백은 어쩌라는 말입니까?]

[전력공백은 없을 겁니다. 상상하시는 것처럼 한 번에 뜯어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원한다면 교체 모듈의 제작은 우리가 직접 해드릴 테니까. 그 경우, 길어도 1년 안에는 모든 작업이 마무리가 될 겁니다.]

순간 리암의 입이 슬며시 다물어졌다.

하면 미국은 이것으로 패스.

이번엔 시선을 푸틴에게로 돌려 러시아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강조했다.

[러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만약 우리가 제공한 소자 기술을 적용한 대공탐지 및 조준 시스템을 얻게 된다면 러시아의 전역대공방어망이 얼마나 발전할지 상상이 가십니까? 아니, 전역 방어는 둘째 치고, 그걸 소형화하여 퉁구스카 같은 근거리 방어무장에 장착된다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푸틴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후 화면에 비친 것은 두 거물의 그 어느 때보다 고민에 빠진 모습.

뭐, 이해는 간다.

아무리 수지타산을 따져 봐도 이건 거절하는 것이 바보인 상황.

하지만 대량의 레이더 교체에 소모될 막대한 예산이 저들로서도 부담스러운 것일 터다.

‘그렇다고 안 할 나라들이 아니지.’

그동안 우리의 함대공 탐지 시스템을 따라잡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던 것이 바로 저들이었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하지만 그걸 알까?

저들이 정작 우리 수준의 탐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순간, 우린 또 한 걸음 더 발을 내디딜 거라는 걸.

KDD4를 비롯하여 지금 본격적인 건조 단계에 있는 차기 세종대왕급과 호위함들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소자들로 구성된 탐지 시스템을 갖추게 만들 예정이거든.

더군다나 이제 미국도 초기 질화갈륨 기반 기술의 개발 수준은 우리에 근접해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미리 선심을 쓰고 챙길 것을 챙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뭐, 시장지배력을 끝내 우리가 쥐고 간다는 측면에서도 그게 유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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