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83화 (283/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83화

쿠구구궁!

필리핀 남부에서 이루어진 마약 소탕 작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10여 개에 달하는 거점들이 완전이 밀려 버린 상태.

이제 필리핀에 남은 삼합회의 거점이라면 고작 5개소에 불과한 마당이기에 조직들로서도 사활을 걸어야만 하는 입장이고, 그로 인해 저항은 점점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43거점 인근에 대전차 미사일을 준비하시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최근 중국 공산당 산하의 군벌들 일부가 은밀히 지원을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한국 경찰 병력의 장갑차량들을 상대하기 위한 대전차 미사일을 비롯하여, 혹여 있을지 모를 공습에 대비한 휴대용 대공미사일.

그리고 일부 특수군 병력들의 신분을 위장하여 교육 및 작전 지휘대원으로 투입하기까지.

하긴, 이곳에서 나오는 자금 중 상당수가 군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주요 수단이기도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명령을 전달했소이다. 그나저나 양 췐 장군께는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오.”

삼합회 필리핀 지부에서도 남부 최대의 거점을 이끌고 있는 리신은 오늘따라 그답지 않게 잔뜩 주눅이 든 표정이었다.

하긴, 상대는 무려 중국인민해방군 특수군 소속 중교의 계급을 가진 존재.

“수고했소.”

억울한 것은 상대 역시도 그런 리신의 태도를 즐기고 있는 느낌이었다는 건데, 당장 아쉬운 건 자신이었던 터라 그로선 따지고 들 여력이 없었다.

“그나저나 대체 부하들이 얼마나 오합지졸이기에 고작 필리핀군 따위에게 당한다는 거요?”

내내 작전 지휘를 주도하던 장준걸 중교는 그동안의 피해 상황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치솟는 반발을 간신히 삼킨 리신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대꾸했다.

“그건 중교께서 당해 보지 않아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필리핀군은 그렇다 쳐도 한국 경찰 병력들의 무장과 화력은 그야말로…….”

“나도 들어서 알고는 있소. AI의 통제를 받는 40밀리 주포가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적을 찾아내서 포격한다고 하더군. 하지만 그것도 결국엔 한계가 있을 거요.”

리신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멀뚱히 그를 쳐다봤다.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이 날아오는가 싶더니 장준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예를 들면 사방에서 동시에 대전차 미사일 공격을 쏟아붓는다거나. 그런 상황에선 아무리 반응속도가 빠른 사격 통제장치라도 그걸 막아 낼 수는 없을 것 아니오. 아니, 어쩌면 판단에 혼란이 와서 아예 사격 자체를 못 할 수도 있겠지.”

“무슨 말씀인 줄은 압니다만, 그건 단지 가설일 뿐이지 않습니까. 만약 그 가설이 틀렸을 경우 노출될 조직원들은 그야말로 총알받이가 되는 건데, 누가 그 명령을 따르겠습니까.”

리신은 욱하는 마음에 반박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경멸의 눈초리뿐.

뒤이어 장준걸의 입에선 차가운 선언이 이어졌다.

“그게 조직원 전체가 몰살을 당하는 것보다야 낫지.”

“…….”

“하니 지금부터는 각 조를 10명 단위로 나누어서 작전을 펼치도록 하시오. 해서 그 AI기반 장갑차량이 나타나는 경우 1개 또는 2개 조가 동시에 한 차량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갑니다.”

리신은 차마 대답도 못한 채 눈살만 찌푸렸다.

애초 그의 반응 따위는 상관없었던 걸까, 장준걸은 비릿한 미소를 내비치며 중얼 댄다.

“아무튼, 이번엔 내 명령을 따르시오. 내가 온 이상 쥐똥만 한 나라의 경찰 병력들에게 밀리는 일이 발생해서는 곤란하니까.”

순간 리신의 뇌리엔 불안감이 엄습했다.

40의 나이에도 여태 그가 이 험난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상대를 얕보다가 당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

하지만 지금 눈앞의 중교는 그걸 깡그리 무시하고 있지 않던가.

‘빌어먹을. 이거 아무래도 지뢰를 밟은 느낌인데.’

***

쿠르르르릉.

오늘로써 토벌 작전도 벌써 10차에 이르렀다.

그동안의 작전에서 희생된 병력들은 전무한 상황.

하지만 남부 최대의 거점을 정벌하는 이번 작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성이 크기에 민유환 경사의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경사 동무. 거, 표정이 왜 그리 개가 씹다 뱉은 거적때기 같습네까?”

쿨럭!

그나마 긴장을 풀어 주는 것은 동승 중인, 옛 북한 특수부대 출신 차지환 경장의 너스레였다.

비록 체구는 작지만 날다람쥐 같은 움직임과 꽤 대단한 전투력을 보여 주고 있는 인물.

성격 또한 제법 유쾌한 편이라서 출신 따위는 관계 유지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면 지금처럼 뱉어 내는 말이 지나치게 격하다는 건데, 뭐 그거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부분이다 보니 굳이 마음에 담아 둘 일까지는 아니었다.

“정보에 의하면 중국인민해방군 소속의 병력들이 위장조직원으로 파견되었다는 소문이 있어. 쉽게 말해서 단순히 뽕쟁이들만 상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 하니 긴장이 될 수밖에.”

“뽕쟁이들 판에 중국군 아새끼들이 끼어들었단 말입네까?”

순간 차지환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왠지 단순한 호승심은 아닌 느낌.

민 경사는 의아한 마음에 그를 빤히 쳐다봤고, 그때 차지환이 이를 빠득 갈며 말을 뱉어 냈다.

“고거 잘됐구만요. 안 그래도 언젠가 해방군 짱깨 새끼들을 만나는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판에.”

“중국군을 만나기를 기대하다니. 뭣 때문에?”

민 경사는 즉시 질문을 뱉었다.

돌연 차지환의 얼굴에 다시 분노의 표정이 스치는가 싶더니 그가 씹어뱉듯 말한다.

“통일 전에 해방군 짱깨들하고 국경에서 한판 붙은 일이 있었디요. 그때 내 부하들이 짱깨들 몇몇을 조져 놨는데, 아 글쎄 이 아새끼들이 복수를 한답시고 야밤에 도강을 해 와선 우리 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습네다. 그 때문에 제 부하들 여럿이 죽어 나갔디요.”

“중국군이랑 충돌이 있었다고?”

민 경사로는 생경한 소식일 수밖엔 없었다.

중국과 북한.

그로서는 혈맹이나 다름없는 그 두 나라 사이에서 혈투가 벌어지는 일 따위는 상상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때, 차지환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경사님은 잘 모르시갔디만, 우리도 짱깨새끼들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해서리 왕왕 부딪치는 일이 있기도 하디요. 꼴 받는 것은 우리가 피해를 본 마당에도 중앙에선 이렇다 할 조치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겁네다.”

말투에선 불만이 가득 묻어 나왔다.

그럼에도 끝내 백두혈통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은 주저하는 느낌.

그건 아마도 그동안의 철저했던 사상교육의 뿌리가 아직 채 걷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아니, 그보다는 불만을 토로함으로써 뒤따르던 그동안의 불이익이 아직도 그의 행동을 옥죄는 것일지도.

“젠장, 아무튼 그 빌어먹을 돼지 집구석은 죽어서도 사람을 괴롭히는구만요.”

생각이 그에 미치던 차에 갑자기 차지환의 입에서 김정은 일가에 대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놀란 마음에 쳐다본 그의 얼굴엔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까지 지어져 있던 상태.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던 민 경사는 어깨를 으쓱하곤 마주 웃어 보였고, 이후 봇물이 터진 차지환의 입에선 김정은 일가에 대한 비난이 끝없이 이어졌다.

“응?”

그때, 탐지 시스템에 무언가가 잡히기라도 한 듯 스크린 곳곳에서 붉은빛이 깜빡였다.

놀란 민 경사는 재빨리 주변 차량들을 향해 무전을 날렸고, 이후 들려온 지휘차량의 응답은 전 차량의 화력 통제 시스템을 링크로 통합 가동하라는 주문이었다.

-아무래도 위험인자의 수가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다. 작전 교리에 따라 모든 차량의 AI시스템을 통합 관리한다.

툭!

민 경사는 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크린상의 한 지점을 클릭했다.

순간 커다란 파노라마 스크린 중 절반이 분할되나 싶더니 작전 중인 10여 대의 차량이 비추고 있는 화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기 다 뭡네까?”

차지환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되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는 붉은 신호들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민 경사는 그저 한 차례 손을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분위기를 파악한 차지환은 다시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간다.

윙!

그때, 위에서 갑자기 포탑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화면에 잡힌 것은 사방에서 각종 대전차 무기를 조준하고 있는 마약 조직원들.

워낙 많은 수가 한 번에 공격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인지, 미처 순번을 정하지 못한 탐지 시스템이 정신없이 화면 사방을 찍어 대며 난리를 피워 댔다.

“빌어먹을!”

민 경사는 아차 싶은 마음에 재빨리 무전기를 들었다.

이 상태라면 AI가 적을 포격한다 해도 그사이 날아들 대전차 미사일이 존재할 터.

대책을 떠나 탈출을 감행해야 하는 것이 아닐지를 타진하려는 의도였다.

틱틱!

그런데 그때, 링크로 연결된 모든 차량의 AI가 지휘차량 AI의 명령에 따라 타겟을 재분배하기 시작했다.

소요된 시간은 고작 1초.

퍼버버버벙!

두두두두두두!

이후 지휘차량의 명령을 받은 각 차량의 화력제어 시스템은 40밀리는 물론 보조 무장인 기관총까지 동원하여 동시에 목표를 제거해 나갔고.

펑!

무려 10대에 달하는 장갑차량이 퍼붓는 동시 공격에 그 많던 마약 조직원들은 변변한 반격도 못 해 본 채 제압되어 갔다.

위이이잉!

위험요소를 모두 제거한 AI는 다시 탐지 모드에 돌입했다.

하나의 AI가 화력을 통제하는 덕분에 화력투사가 멈춰진 것도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상태.

사방은 다시 고요해졌고, 스크린에 비춰진 것은 처참한 학살의 현장 그 자체였다.

꿀꺽!

민 경사는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에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나마 그는 양반인 상황.

뒤편에서 내내 화면을 주시하고 있던 차지환의 경우는 아예 넋을 내려놓은 채 말을 더듬고 있었다.

“이게 뭔 일입네까? 아니 고작 콤퓨타가 어떻게 이런…….”

피식.

민 경사는 자신이 처음 AI를 경험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차지환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다.

괜히 으쓱해지는 기분에 한마디를 보태려는 차, 갑자기 스크린을 향하고 있던 차지환의 눈빛이 확 돌변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문 좀 열어 주시라요. 아무래도 경사님 말씀처럼 중국 해방군 아새끼들이 약쟁이들을 돕고 있는 것 같습네다.”

순간 민 경사의 시선 역시 스크린으로 향했다.

이후 그가 발견한 것은 부상을 당한 채 바위 뒤에서 꿈틀대며 기어가고 있던 몇몇 사내들.

그 엄청난 화력 투사에서도 살아남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차마 믿겨지지 않았다.

“미친,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자가 있다고? 아니 그런데 자넨 대체 뭘 보고 저들을 중국군이라고 규정하는 거야?”

“척 보면 모르십네까? 저리 바닥을 기면서도 소총을 파지하는 자세가 안정되지 않았습네까. 어지간한 군사교육을 받은 것들이 아니면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힘들지요.”

차지환은 민 경사의 질문에 웃으며 대꾸하곤 문을 향해 다가갔다.

사족은 그만 달고 어서 문이나 열어 달라는 재촉의 의미.

하지만 민 경사는 절차에 따라 재빨리 지휘 차량에 먼저 무전을 날렸고, 이후 지휘부의 허락을 받고 나서야 도어를 개방했다.

“조심해.”

민 경사는 혹시 있을지 모를 위협을 경고했다.

하지만 충고가 무색할 정도로 재빠르고 안정적인 차지환의 움직임.

이후 재빠르게 도주 중인 적들이 있는 곳까지 도달한 그는 순식간에 놈들을 제압하여 무장을 해제시켰고, 이후 고작 1분여의 시간이 지난 후엔 차량에 무전을 날리는 여유까지 보여 줬다.

치직!

-아아, 보이십네까? 여기 이 검은색 모자를 쓴 간나새끼래 중국군 중교랍니다.

“무슨…… 그 짧은 사이에 그걸 제 입으로 불게 만들었다고?”

민 경사는 황당한 마음에 되물었다.

그사이 대체 무슨 악독한 고문이라도 한 걸까 싶은 마음이 들려는 차, 차지환의 무전이 다시 날아든다.

-내가 나발을 불게 만든 것이 아니라 지들끼리 씨부리더만요. 이 아새끼들이래 내가 중국말을 못 알아듣는 줄 안 모양입네다.

“…….”

***

끼익!

작전을 마치고 복귀한 한국 특공대들은 필리핀 군부대에 중국군의 개입 사실을 알렸다.

비록 상태는 좋지 않지만 3명에 달하는 생존자를 확보한 상황.

놈들은 인계받은 필리핀군은 추후 심문을 목적으로 놈들을 다시 병원으로 이송하여 치료를 시작했고, 혹시 있을지 모를 자해를 막기 위해 철저한 감시에 돌입했다.

“이거, 앞으로 볼만하겠군.”

놈들의 인계를 마친 민 경사는 특공대들의 거점인 경찰서를 향해 다시 차를 몰았다.

곁에는 여전히 차지환이 동승을 하고 있는 상태.

낯에 있었던 작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듯 차지환의 얼굴은 아직도 잔뜩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콤퓨타 말입네다.”

불현듯 차지환이 AI를 거론하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또 뭐가 궁금한 걸까 싶은 민 경사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고, 차지환이 입에선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뱉어졌다.

“그거 꽤 비싸갔디요?”

민 경사는 황당한 마음에 헛웃음을 뱉어 냈다.

이내 뭐가 웃기냐는 듯 따지고 드는 차지환을 향해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응?”

그의 눈에 왠지 수상쩍은 장면 하나가 포착됐다.

끼익!

다급히 차를 세운 민 경사가 다가간 곳엔 한국인 신혼여행객으로 보이는 듯한 남녀가 현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난 마약 같은 거 안 합니다. 그 봉지가 왜 내 주머니에서 나온 건지 모른다고요. 와! 답답해 죽겠네. 이거 뭐 말이 통해야…….”

이후 들려오는 외침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할 만한 것.

“어이!”

민 경사는 즉시 현지 경찰을 향해 소리치며 다가갔고, 그를 발견한 현지 경찰들은 순간 흠칫하고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이런 짓을. 컴 히어. 못 알아들어? 그거 이리 내보라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