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80화 (280/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80화

“맙소사! 저게 대체 다 얼마나 될까요?”

필리핀 현지에서 전해져 오는 뉴스를 지켜보던 김 실장과 나. 그리고 안 실장은 동시에 턱을 떨어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화면에 비친 것은 거대한 지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달러 뭉치와 금괴들.

불과 이틀 전 필리핀군과 우리 경찰병력들이 마약 조직을 급습하여 압수한 것들이라는데, 그 규모가 족히 수십억 달러는 넘어 보이지 싶었다.

[난 우리 정부에 마약과의 전면적인 전쟁을 선포해 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이후 화면에 등장한 것은 두테르테였다.

현재 다바오시의 부시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원 역사와는 달리 제법 이른 시간에 필리핀 정가 중심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그 원인은 저들의 심각한 사회 문제인 마약에 대해 유독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두테르테라는 인물, 여간내기가 아닌 모양입니다.”

한창 카메라를 향해 떠들고 있는 두테르테를 주시하고 있던 차에 안 실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무심히 지나치기엔 꽤 의미심장했던 말투.

힐끗 쳐다보자 그가 조금은 흥분한 듯한 눈빛과 함께 말을 잇는다.

“필리핀 정부를 향해 이번에 압수한 마약 자금들과 금괴들을 처분한 돈으로 대한민국의 무장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답니다. 뭐, 어차피 우리 역할도 톡톡했으니 보응을 하자는 말 같은데, 그렇게 되면 우리로서야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황 아닙니까?”

얼핏 가능성이 있는 의견이지 싶었다.

어차피 저 막대한 불법 자금들은 저들의 국고로 회수될 예정.

그걸 어디에 쓰건 결국엔 저들 마음이니까.

게다가 우리 경찰병력도 금괴와 달러를 찾아낸 것에 일조한 마당이면 눈치를 봐서라도 빈손으로는 돌려보낼 수는 없을 터.

내심 기대감이 솔솔 올라온다.

“그게 아니면…… 우리가 보냈던 전투차량들과 AI 기반 시스템의 장갑차량들에 대해 욕심이 난 걸 수도 있죠.”

하지만 난 그게 더 큰 이유지 싶었다.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매번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

즉, 우리가 개발한 RCWS와 AI 기반 자동화 전투 시스템이 탐이 난 거라는.

“그렇다 해도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군도 워낙 단가가 비싸서 고작 수십 대만 시범 운용 중인 물건인 마당에.”

곁에서 듣고 있던 김영기 실장이 넌지시 반론을 제기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만, 난 왜 그럼에도 필리핀이 저걸 구매할 가능성에 자꾸 마음이 쏠릴까.

뭐, 조만간 알게 될 일이다.

“참! 그나저나 워싱턴에서 열리는 3국 정상회담에 회장님께서도 참여하신다면서요.”

때마침 안 실장에 의해 전향된 화두로 인해 퍼뜩 생각의 고리가 끊어졌다.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인해 준비할 것이 많았던 상태.

마침 잘됐다는 의미의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 3국 경제협력에 대해 꽤 많은 주제들이 오갈 겁니다. 하니 안 실장님께선 제가 뽑아 놓은 목록들에 대해 미, 러의 시장 동향을 철저하게 조사해 주세요.”

“예? 제가요?”

안 실장은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어쩌랴.

바로 그 목적을 위해 그를 본사로 불러들인 건데.

전에는 몸이 피곤했다면 앞으로는 마음이 피곤해질 거다.

“왜요, 또 짬밥 운운하고 싶으십니까?”

“에이, 무슨 말씀을…….”

따지고 드는 내 말에 재빨리 손사래를 친 안 실장의 시선은 애꿎은 김영기 실장에게로 향했다.

이후 그들 사이엔 한참 실랑이가 오갔고, 난 그 모습을 보며 내심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젠 나도 나이를 먹기는 한 모양이군.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2013년 10월 5일.

대통령과 경제인단은 드디어 한미러 3국 정상회담을 위한 비행길에 올랐다.

동행하는 경제인 연합회 회원들의 수만 무려 100여 명.

한동안 불어닥쳤던 경제 및 사회개혁 탓인지 분위기는 아직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 착 가라앉아 있었다.

“오오! 진 회장님, 어서 오세요.”

물론 그 분위기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도 많았다.

여태 양심을 지키며 기업을 운영하다가 이제야 빛을 본 기업들.

그다지 큰 비리는 없던 탓에 영향을 덜 받은 곳들 역시도.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바로 지금처럼 나를 향해 손을 흔든 오로라 식품의 회장이었는데, 사실 그의 청렴함은 꼭 이번 사태가 아니었어도 재계에선 꽤 유명한 편이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난 그에게 슬쩍 눈인사를 건네곤 곧장 내 자리를 찾아갔다.

나도 눈치가 있는 마당에 초상집 분위기에서 홀로 춤을 출 수는 없으니까.

한데 그때, 저편에 있던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급히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대통령의 전언을 전달했다.

“대통령님께서 출발 전에 잠시 시간을 내 달라고 하시는군요.”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곤 그를 따라갔다.

이후 도착한 집무실엔 국방부 장관도 함께 있던 상태.

그의 표정이 한껏 밝은 것으로 봐선 내게 할 말이라는 것이 그리 부정적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앉으세요.”

표정이 밝은 것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궁금한 마음에 재빨리 자리에 엉덩이를 걸쳤고, 이후 장관이 다시 말을 이었다.

“소식 들으셨는지는 몰라도, 필리핀이 대략 한 달여의 작전 기간 동안 압수한 금괴와 달러가 무려 1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100억 달러요?”

미처 예상치 못했던 금액이었다.

하긴, 산처럼 쌓여 있던 금괴의 양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겠지.

그나저나 그 자금의 출처는 분명 삼합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얼굴이 갑자기 눈에 선해진다.

“어지간히도 쌓아 놨었군요. 그나저나 상황이 이러면 필리핀 정부로서도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요?”

무심코 뱉어 낸 말에 대통령이 반응을 보였다.

짧은 시간 필리핀 마약조직들과 삼합회의 관계. 그리고 또 그들과 중국 공산당 간부들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자 비로소 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결국 중국 정부로서는 필리핀을 향해 시위에 나설 수도 있다는 소리군요.”

“필시 그럴 겁니다. 아니면 아직 남아 있는 마약조직에게 은밀히 군사적인 지원을 한다거나요.”

대통령의 얼굴이 꿈틀했다.

단순히 군사적인 지원 문제가 거론되어서는 아닌 것 같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싶어 쳐다본 순간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자칫 대리전 양상으로 사태가 뻗어 갈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우린 필리핀군을 지원하고 있는 상태니까. 게다가 경찰병력 중 일부가 현장에서 직접 놈들을 상대하고 있기도 하니, 사실상 한국과 중국의 숨겨진 전쟁이라고 보시는 것이 옳을 겁니다.”

그의 의중을 캐치하곤 재빨리 대꾸했다.

더더욱 심각해진 얼굴.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싶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렇다 해도 너무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어차피 상대는 불법 조직들. 아무리 중국이라도 그들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는 없을 테니까요. 기껏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장 지원과 교육 지원 정도?”

“흠…….”

“뭐, 최악의 경우 몇몇 위장한 중국군이 조직에 가담할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고, 설사 그들을 제거한다 해도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없습니다. 중국 입장에선 자신들의 지원 사실을 밝힐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대통령은 그제야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다시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표정을 바꾸며 날 부른 근본적인 목적을 꺼내 놨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진 회장님을 부른 이유는 필리핀 정부가 이번에 압수한 금괴들과 달러로 재우의 전투차량들과 장갑차들을 구매할 의향을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돈을 전부 말입니까?”

놀란 마음에 되묻자 대통령의 고개가 즉시 가로저어졌다.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정부 재정도 허덕거리는 나라가 그 돈을 죄다 무기 구매에 쏟아부을 리가 없지.

조급했던 스스로를 질책하며 다시 물으려는데 대통령의 대답이 먼저 뱉어졌다.

“10억 달러. 그걸 오로지 AI 자동화 전투 시스템이 탑재된 장갑차량을 구매하는 것에 쓰겠다는군요.”

“…….”

그것만도 엄청난 금액이었다.

차량과 탑재 무장. 그리고 여유 탄약까지 해서도 백오십 대 가까이 구매가 가능할 정도의.

그 정도면 사실 필리핀군으로서는 자국 지상군 상당수를 무장시킬 수 있는 분량인데, 어지간히도 성능에 반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결과다.

‘가만, 그런데 사태가 그렇게 흘러가면…… 이거 뭔가 형평성에 안 맞는 건데.’

우리 군은 아직 보급도 못 한 물건을 필리핀 같은 국가가 전면 도입하는 결과를 낳는 거잖아.

힐끗.

혹시나 싶어 대통령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나 같은 생각을 한 듯 연신 입맛을 다시던 그는 눈이 마주치자 너털웃음을 지어 보인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압니다만. 그거야 어쩔 수 없죠. 그렇다고 우리 군도 도입을 하자니 이미 저질러 놓은 사업들로 인해 비용 감당이 안 되니까요. 막말로 우리 군에 그걸 도입하려면 필리핀에 비해 몇 배의 예산이 필요할 텐데, 당장 통일 비용에도 허덕이는 처지로서는 무리 아니겠습니까.”

난 그 말에 동조하려 머리를 끄덕였다.

우연이었을까, 순간 오늘 내가 이 비행기에 탄 목적이 떠오르며 제법 그럴듯한 생각 하나가 스쳤다.

“어쩌면 단가를 절반 이하로 떨어트리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면 우리 군의 도입도 아주 배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군요.”

“…….”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그 말에 눈을 번뜩였다.

때마침 안내 방송에서 비행기가 곧 이륙할 것을 알려 왔고, 난 재빨리 안전벨트를 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전에 미국과 러시아에 제안했던 공용 플랫폼 말입니다. 그걸 보다 확대하는 거죠. 그 경우, 러시아를 통한 생산이 가능해지기에 단가는 기적적이라 할 정도로 떨어질 겁니다.”

“…….”

“아실지 모르겠지만 러시아는 이미 RCWS 분야에 있어선 손꼽히는 강국입니다. 우스운 것은 우리가 필리핀으로 보냈던 RCWS를 러시아가 제작할 경우 그 가격이 1억 선까지 떨어진다는 거죠.”

“허어…….”

“하면 남은 문제는 AI 자동화 사격 통제 시스템인데, 그거야 모듈 형태로 이식하는 것이기에 차량을 다시 한국으로 들여와서 작업하면 그만입니다. 하면 그 부분에 대한 기술 유출은 걱정할 필요가 없죠.”

“그러다 만약 미국과 러시아가 아예 그 사업을 공동으로 하자고 하면요.”

국방장관은 넌지시 우려를 표했다.

씨익.

그거야말로 오히려 내가 바라던 일.

잔뜩 입매를 뒤틀어 보이곤 말했다.

“그럼 단가 하락은 더 기적적으로 이루어지겠죠.”

“…….”

“생각해 보십시오. 러시아와 미국은 도입 수량이 우리와는 수준이 다릅니다. 그리고 무기는 100개를 제작할 때와 10,000개를 제작할 때의 가격이 천지 차이고요. 아마 그렇게 되면 우리 군에 전면 보급까지는 어려워도, 핵심 전투 집단만큼은 보급이 가능할 수준으로까지 떨어지지 않을까 싶군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되면 기술공개 요구가 뒤따를 텐데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때문에 일부 알고리즘 정도는 제공을 해야겠죠. 하지만 하드웨어는 어차피 반도체가 주를 이루는 터라 기술 제공이 불가능하고 그건 저들도 알기에 무리한 요구는 하지 못할 겁니다.”

“흠…….”

“뭐, 쉽게 말해서 뭐가 됐건 우리로선 손해 볼 일은 없다는 소리죠. 아니, 막대한 부품 수출로 인해 손해는커녕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길 것이며 그게 제가 3국 연합 플랫폼 공유화를 주장한 근본적인 이유였기도 합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호흡이 가빠졌다.

기대를 버렸던 우리 군의 AI 기반 무장 도입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로서도 흥분되는 일이니까.

그때, 머리를 스치는 또 하나의 생각에 퍼뜩 다시 두 사람을 쳐다봤고, 눈이 마주친 대통령이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뭐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필리핀으로 보낼 후발대 말입니다. 그 규모가 어느 정도로 정해진 겁니까?”

“글쎄요, 필리핀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자면 최소 5백 명 이상은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사실 저도 지금 그 문제로 골치가 아픕니다. 말이 5백 명이지, 우리 경찰에 그 정도 특수병력이 어디 있습니까.”

대답은 역시나 내 추측대로였다.

들려오는, 비행기가 일정 고도에 진입했다는 방송을 뒤로하고 난 떠올랐던 생각을 뱉어 냈다.

“그럼, 이번 기회에 북한 특수부대 출신들을 다수 고용하여 파견하시죠.”

“……네?”

“그들이라면 전투력 면에선 나무랄 것이 없으니 얼마든지 필리핀이 요구하는 지원 병력의 숫자를 감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게다가 그들을 최대한 중무장하여 투입할 경우, 뭐 예를 들면 외골격을 채워 보내도 상관은 없겠죠.”

“…….”

“아무튼 그 경우 작전 효율은 훨씬 커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마약조직들이 숨겨 둔 자금을 더 수월하게 그리고 더 많이 찾아내게 될 테고, 그건 곧 우리에게도 혜택이 돌아오는 결과를 맞을 겁니다. 아! 결정적인 이점이 또 하나 있군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돈줄을 그만큼 더 많이 잘라 낼 수도 있다는 점.”

“……!”

말이 끝나자, 듣고 있던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웃음을 내비치곤 내 자리를 찾아 가려는 차, 문득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군요. 필리핀 내에서 우리 교민들이 당하고 있던 각종 불이익과 사건사고.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안일했던 대처에 대한 사과. 이거, 꽤 중요한 문제라는 건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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