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79화
“필리핀 정부가 요구한 지원 병력의 수는 선발대만 대략 2백여 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전투차량을 비롯한 물자들의 지원도 포함되고요. 참고로, 차후 필리핀을 확실한 우리의 그늘 아래에 두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지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이 기회가 필리핀 방산시장에 우리 기업들이 진출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요.”
총리의 정식 요청으로 다급히 올라온 정부청사에선 이미 필리핀의 지원 요청을 두고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참가 인원은 총 10명.
그중엔 경찰청장을 비롯하여 국방장관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 사실 국방장관의 참여는 조금 의외의 결과였다.
“말이 전투경찰 파견 요청이지. 저들이 원하는 무장이 특전사들의 운용 장비 수준이라 경찰에서 특별히 군에 협조 요청을 해 왔습니다.”
시선을 받은 국방장관은 변명하듯 말했다.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무장을 요청했던 걸까.
내심 치솟는 궁금함을 애써 가라앉히며 자리에 앉자 경찰청장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필리핀 정부는 현재 우리 군이 일부 시범 운용 중인 RCWS 장착형 폴라베어를 비롯하여 AI 기반 사격 통제 시스템을 갖춘 차륜형 장갑차량의 지원까지 바라고 있습니다.”
“RCWS와 AI 통제장치를 장착한 전투차량들을 지원해 달라고요?”
불현듯 드는 의문에 대꾸하곤 김 실장을 쳐다봤다.
혹여 우리가 필리핀 정부에 그것들에 대한 카탈로그를 보낸 적이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목적.
하지만 김 실장은 대번에 고개를 가로저었고, 대신 총리가 끼어들며 말했다.
“아! RCWS와 AI 기반 통제장치의 카탈로그는 정부 측에서 끼워서 보냈습니다. 혹시나 필리핀군이 관심을 가질까 싶어서요.”
당황스러운 마음에 김 실장과 난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우릴 돕겠다는 의도인 것은 이해가 간다만, 사실 AI 기반 사격통제장치의 경우는 지나치게 고가의 물건이라 저들이 구매를 고려할 품목이 아니거든.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결국 필리핀의 지원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우리로서도 나쁠 것은 없다.
앞선 총리의 말처럼 어차피 필리핀을 우리 그늘 아래 두려면 일정 부분 지원은 필수고, 방산시장 개척에도 용이하니까.
아! 그렇고 보니 삼합회를 주축으로 한 필리핀 마약조직들은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주요 돈줄 중 하나다.
그걸 끊어 놓을 수만 있다면, 향후 중국공산당을 코너로 몰아넣는 것에 일조를 하게 되겠지.
“어차피 장비 운용은 우리가 할 테고, 파견 인력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RCWS. 즉 원격 사격통제장치가 설치된 차량 지원이 확실히 낫기는 하죠. 그런데 문제는 AI 기반 자동화사격 통제장치입니다. 그걸 운용하려면 일정 기간 교육과 훈련을 거쳐야 하는데,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되겠습니까?”
“흠…….”
질문으로 끝난 내 말에 청장이 부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하면 대체 이걸 어쩐다?
AI 기반 자동화사격 통제장치의 경우 그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교육이 필요한 상황인데.
방법을 찾아 고민하려는 차, 불현듯 저편에 앉아 있던 행정자치부 장관이 툭 하고 끼어들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특전사들을 보내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어차피 그 AI인지 뭔지를 군이 시범 운용 중이라면 차라리 경험이 있는 그들을 보내는 것이 낫죠.”
답답한 마음에 한 말인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한참 도가 넘어간 주장.
난 넌지시 그의 말에 반박했다.
“그건 안 될 일입니다. 이라크야 동맹인 미군의 정식 요청이 있었기에 군을 파견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필리핀은 사정이 다르니까요. 게다가 우리가 동남아에 군을 파견하면 중국에서 당장 발끈하고 나설 겁니다. 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그건 피해야죠.”
행정자치부장관은 아차 싶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장내의 다시 시선이 집중된 곳은 내 입.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어차피 다른 방법은 없으니 일단은 필리핀의 요청을 수용하는 걸로 하시죠. AI 시스템의 운용 교육은 필리핀 현지에서 하는 것으로 하고.”
“현지에서요?”
“네, 다행히도 지금 필리핀에는 공여 무기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 우리 재우 엔지니어들이 파견된 상태거든요. 그들을 통해 교육을 진행하면 최소한의 운용은 가능할 겁니다. 물론 실사격 훈련이 충분치는 않겠지만, 그거야 실전에서 습득하는 수밖에요.”
총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것은 저들도 나름 재우를 위해 배려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
솔직히 거절하면 그만이었을 필리핀의 요구를 끝내 수용하려는 것은 결국 차후 재우의 무기들이 수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거 다행이군요. 필리핀이 최신 무장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차후 수입할 의도를 내비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정부로서야 전략물자를 제외한 무기 수출은 가능만 하다면 적극 독려해야죠.”
웃음과 함께 뱉어진 총리의 말은 내 예상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 판국에 ‘필리핀은 가난한 국가다.’라는 말로 배려에 초를 칠 수는 없는 일.
그저 마주 웃어 보임으로 고마움의 표시를 하려는데, 그가 넌지시 상체를 기울이곤 속삭인다.
“대통령님께서 진 회장님께 미안해하고 계십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에 재우가 과실에 비해 지나친 추징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영 마음에 걸리셨던 것 같아요.”
그제야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될 듯싶었다.
정부가 애써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은 무기 판매 기회를 만들어 내려는 근본적인 이유.
사실 필리핀이 무기를 도입한다면 그 대부분은 재우의 것이 될 테니, 아마도 대통령은 그렇게라도 부담을 덜고 싶었던 모양새다.
“그 점에 대해선 마음 쓰실 필요 없다고 전해 주십시오.”
하지만 그건 오해다.
내가 처분에 따르겠다는 것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
예상대로 재우는 일정 부분 책임을 짐으로써 삐딱한 시선들에서 벗어났고, 이제 재우를 향한 허튼소리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할 명분마저 확보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구태에 사로잡혀 있는 그 빌어먹을 언론들을 잡도리할 명분이…….’
***
털컹!
그로부터 보름 후.
필리핀에 도착한 대한민국 경찰 특공대들은 육중한 전투차량들을 이끌고 수송선을 빠져나왔다.
이건 말이 경찰 병력이지 군의 무장에 버금가는 수준.
덕분에 마중 나온 필리핀 경찰청장은 물론 군 수뇌부 역시도 연신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반갑습니다. KNP868 소속 김한영 경위입니다.]
파견 대원들은 현지 경찰 및 군 지휘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현지 경찰본부에서 작전팀의 운용을 시작했다.
이후 예정대로 재우에서 파견된 엔지니어들로부터 AI 시스템과 RCWS 운용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이수.
다행인 것은 그들 대부분이 한때 군에서 각종 무장들을 다루어 왔던 인물들이었다는 건데, 그 때문인지 교육 기간은 불과 사흘 만에 종료되었다.
“필리핀 정부로부터 정식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그들에게 주어진 첫 지원 요청은 예상처럼 마약 조직의 소탕 지원 작전이었다.
우려스러운 점은 첫 작전 지역이 하필 IS 출신 반군들의 거점과 중첩되어 있다는 점.
결국 위험성이 일반 마약 조직들을 소탕하는 것에 비해 몇 배는 더 증가되었다는 건데, 어차피 파견 병력들의 무장 수준이 군에 필적하는 상황인 터라 한국 정부 역시도 굳이 거부 의사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민다나오섬은 한때 중동에서 활약하던 IS 잔당의 거점이기도 하다. 하니, 이번 작전은 단순히 대테러 작전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파견대장의 당부에 대원들이 눈을 빛냈다.
특히나 이라크에서 직접 IS를 상대한 전력이 있는 대원들의 경우엔 슬쩍 입매를 뒤틀기까지.
눈이 마주친 파견대장은 거듭 우려의 말을 전한다.
“안다. 너희들 중 몇몇은 IS와의 전투 경험이 있다는 것. 하지만 자만해선 곤란하다.”
“넵!”
대원들은 복창과 함께 차량에 올랐다.
이내 팀을 이루어 달려간 곳은 민다나오섬 외곽의 광활한 수풀 지역.
역시나 IS 반군의 예상 거점과 꽤 가까운 위치였다.
“통신 확인.”
1호 장갑차량의 지휘를 맡은 민유환 경사는 목표지점에 다다르자 광학 정보위성과의 통신을 시도했다.
이윽고 화면에 뜬 것은 전체적인 수풀 지대를 공중에서 바라본 장면.
몇 번의 터치 끝에 확대를 거듭하자, 그들과 대략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의 수상쩍은 움직임이 잡힌다.
“#3845지점 확인 요망. 아무래도 마약 조직들과 IS 반군이 협력 중인 느낌이다.”
통제차량에 무전을 날린 민 경사는 즉시 자신이 포착한 화면을 주변 전투차량들에게 전송했다.
-수신!
곧 여기저기서 대꾸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3호 차량에서 분석 결과를 알려온다.
-다수의 무장차량 확인. 무장의 종류로 보아 단순 마약 조직이라기보다는 반군일 가능성이 크다. 혹시 모르니 필리핀군에 재차 확인 바란다.
민 경사는 그 말에 즉시 함께 작전 중인 필리핀군 장교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후 필리핀군 장교의 표정에선 난처함이 가득 묻어 나왔고, 그는 재빨리 상부와의 교신을 시도한 끝에 다시 민 경사를 쳐다봤다.
[수뇌부에선 상관하지 말고 작전을 실행하라는군요.]
민 경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즉각 사실을 지휘차량에 알렸다.
-필리핀 정부가 인가했다면 예정대로 간다.
이후 들려온 대꾸와 함께 모든 장갑차량들이 다시 시동을 걸었고, 곧 거침없는 진군을 시작했다.
[설마 이대로 그냥 급습하는 겁니까?]
내내 지켜보던 필리핀군 장교가 당황한 눈초리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RPG를 비롯한 전투차량들로 중무장한 병력들.
아무리 이쪽의 무장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별다른 작전도 없이 치고 들어가는 건 무모함의 극치가 아니던가.
[숲이라고는 하지만 개활지나 다름없는 지형 특성을 고려할 때 사실상 다른 작전은 무의미합니다. 그저 적이 눈치를 채기 전에 먼저 밀고 들어가는 것이 최선일 뿐.]
민 경사는 비릿한 미소와 함께 대꾸했다.
다시 반박하려는 듯 필리핀군 장교의 입술이 우물거렸지만 끝내 말은 뱉어지지 않는다.
부우우웅!
결국 필리핀군 장교의 염려 속에 장갑차량들이 목표지 인근까지 이르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위성을 통해 위치를 확인한 민 경사가 함께 작전 중이던 차량들을 향해 무전을 날렸고, 이후 사방에서 들려오던 엔진 소리가 조금은 잦아들었다.
“AI 탐지 시스템 가동.”
이후 민 경사는 절차에 따라 두 번째 모니터와 연결된 버튼들을 조작했다.
순간 앞이 환해지더니 사방을 둘러싼 파노라마 모니터가 외부의 모습을 거의 180도에 가깝게 비추기 시작한다.
[…….]
함께 타고 있던 필리핀 장교의 눈은 순간 화등잔만 해졌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장갑차량들과는 그 수준 차이가 지나치게 확연했기에.
하지만 놀라긴 일렀던 걸까.
민 경사의 다음 행동에 그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자동화 전투 시스템 가동.”
민 경사는 사전에 받았던 교육을 떠올리며 순차적으로 AI 시스템을 활성화했다.
위잉!
순간 들려오는 포탑 돌아가는 소리.
이후 파노라마 스크린엔 다수의 사각 프레임들이 생겨났고, 탐지 시스템의 신호를 받는 그 프레임들은 연신 사방으로 움직이며 목표를 찾기 시작했다.
철컥!
[헉!]
갑자기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란 필리핀 장교가 슬쩍 민 경사를 쳐다봤다.
상관하지 않은 채 스크린에만 집중하던 민 경사는 차량을 조종 중이던 운전 담당을 향해 다시 이동을 지시했다.
“뚜렷한 움직임은 탐지되지 않는다. #3894 지점으로 이동한다.”
-통신 확인. 2호 차량도 거리를 두고 이동하겠다.
이후 다시 무전을 주고받으며 차량이 움직였다.
뱉어졌던 말과는 달리 꽤 신중한 편.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화면을 주시하던 필리핀군 장교는 순간 사각 프레임이 붉은빛을 발하는 것을 보았고, 이후 늪지대 인근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반군이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민 경사의 시선도 화면에 꽂혔다.
놀라운 것은 이미 목표탐지와 분석을 끝낸 시스템이 순식간에 포탑을 움직였다는 것.
이후 정작 인간은 무언가를 할 새도 없이 40밀리가 저 혼자 불을 뿜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포연과 함께 날아간 40밀리 포탄들은 정확히 반군의 장갑차를 때렸다.
퍼버버벅!
하필 텅스텐 탄자였기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는 것은 순식간.
이후 엔진룸에 타격을 받은 적의 장갑차는 순식간에 불이 번졌고, 유폭에 의한 폭발이 연속됐다.
퍼엉!
“회피!”
민 경사는 교리에 따라 즉시 차량을 이동시킬 것을 명령했다.
신호를 받은 차량은 즉시 뒤로 물러났고, 이후 주변에 있던 차량들의 포탑에서 연속에서 불이 뿜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전방에 다수의 적 전투차량 출몰! 섬멸전을 시작한다.
그때, 지휘 차량에서 무전이 날아들었다.
섬멸전이란 말 그대로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 버리는 행위.
자칫 오인 사격으로 인한 피해가 염려되기는 하지만 이미 필리핀 정부로부터 인가는 떨어진 상태.
민 경사는 받은 교육을 기초로 추가 명령을 입력했고, AI는 그 명령에 따라 빛과 같은 속도로 사방을 탐색해 간다.
쿵쿵쿵쿵쿵쿵!
이후 AI의 지시를 받은 포탑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불을 뿜어 댔다.
그건 비단 민 경사가 타고 있던 차량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상태.
쾅쾅쾅쾅!
무려 10대에 달하는 장갑차가 뿜어 대는 화력에 숲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 가고 있었다.
“허어…….”
당황스러운 것은 그 포격이 결코 마구잡이식은 아니었다는 거였다.
포가 발사되는 것은 정확히 화면에 떠 있는 사각 프레임들이 특정 물체를 포착한 이후.
한데 그 포착 과정과 반응이 워낙 빠르다 보니 얼핏 보기엔 무차별적인 포격으로 보일 뿐이었다.
위잉!
“헛!”
놀라운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철그럭!
조금 전 모니터에 떠 있던 사각 프레임이 포착한 것은 이쪽의 화력 투사에 놀라 무기를 내동댕이친 적 병력.
위잉!
순간 붉은색이던 사각 프레임이 푸른빛으로 변했고, 이후 그 프레임은 재빨리 타겟을 인근에 있던 다른 무장 병력들을 향해 돌렸다는 거다.
-이 시스템엔 이미 필리핀 반군들의 무장 종류와 차량들에 대한 정보가 입력되어 있습니다. 해서 그 데이터에 합당한 물체들이나 그걸 사용하는 자들이 이 차량을 향한 적대적 행위를 시도할 시 AI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대응하게끔 되어 있죠. 참고로, 불필요한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 도주하는 적이나 공격 의지를 포기한 자들에 대해선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함께 그 장면을 바라보던 민 경사의 뇌리엔 며칠 전 있었던 교육 과정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사실이라면 이 시스템은 위험 인자를 자동으로 분류하여 오로지 공격 기미를 보이는 적에게만 화력 투사를 하고 있다는 뜻.
그것도 고작 기계에 불과한 것이.
여태 이런 고도의 AI 시스템을 접해 본 적이 없던 민 경사로서는 그저 기가 찰 뿐이었다.
[RPG!]
생각을 떨쳐 내려던 차에, 곁에 앉아 있던 필리핀군 장교가 화면 한 곳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위잉!
하지만 그보다 한발 더 빨리 움직인 포탑.
퍼엉!
이후 그것은 적이 미처 이쪽을 제대로 조준하기도 전에 포탄을 날렸고.
퍼벅!
이후 화면에 비친 것은 피륙이 되어 사방으로 터져 나간 적군의 모습이었다.
위이이이잉!
한참의 시간이 지난 끝에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졌다.
모든 전투장갑차량이 일제히 포격을 멈춘 덕분.
즉, 이 주변엔 이제 적으로 규정된 존재들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
초토화된 전방. 그리고 내내 이어지던 학살을 지켜보던 필리핀군 장교는 마른침을 삼키고 민 경사를 쳐다봤다.
하지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
순간 민 경사의 입에선 그가 알아듣지 못할 말이 뱉어졌다.
“그렇게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지 마쇼. 나도 놀란 건 마찬가지니까. 젠장, 방금 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