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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77화 (277/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77화

“총리실의 전언에 따르면 이번 궈타이밍의 한국 방문은 대만 정부의 특사 자격이라더군요.”

김 실장은 정부 청사로 향하는 길에 설명을 이었다.

어느 정도 예견은 했으나 그가 직접 한국을 찾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상태.

난 연신 입가를 삐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대만이 어지간히도 똥줄이 탄 모양이군요.”

막상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일견 이해는 갔다.

폭스콘의 매출 절반은 애플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현실.

또한 그 폭스콘의 매출은 대만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커다란 기둥이기도 하고.

때문에 TSMC에 이어 폭스콘마저 휘청거릴 경우 대만은 그야말로 망국의 길을 가게 되는 형국이고, 그게 고집스러운 그 늙은이를 움직이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을 거다.

‘궈타이밍이라.’

원 역사에서의 그는 대단한 반한주의자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마저 한국을 망하게 해야 한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을 정도.

알려진 원인은 주로 삼정과의 악연 때문인데, 비록 역사가 꽤 많이 바뀌었다곤 해도 애초 중화사상이 머리에 박혀 있는 그라면 달라진 것은 그다지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여간 본토인이나 섬나라 중국인들이나, 다를 것은 별로 없다니까요.”

“네, 저도 그래서 대만이 썩 정이 가는 편은 아닙니다.”

김 실장은 무심코 뱉어 낸 말의 의미를 용케 알아듣곤 반응했다.

무리도 아닌 것이 한때 그는 대만의 이중적인 태도를 누구보다 꿰뚫어 보고 있던 위치. 즉, 군의 수장 중 하나였으니까.

장작 자신들이 필요로 할 때는 분단의 아픔을 공유하는 국가라며 군사적 협력을 제안하고선, 사정이 나아지면 또 대번에 돌변하는.

사실 그래서 나 또한 이번 사태를 저들의 버릇을 고칠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며, 그게 미국의 우려를 사는 와중에도 끝내 저들을 몰아붙이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어서 오십시오, 진 위원님.”

공관에 도착하자 총리가 웃으며 나를 맞았다.

그사이 두 사람 간의 대화에서 꽤 소득을 얻기라도 한 듯.

아니나 다를까, 찡끗 하고 한쪽 눈을 감으며 다가온 총리는 제법 고무적인 결과를 내 귀에 속삭였다.

“대만 정부가 반한 정서를 담은 프로그램들을 전면 중지하겠다는군요. 또한 미국과 우리가 주도하는 반중 라인에 적극 참여의사를 밝히겠다고 합니다.”

스윽.

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궈타이밍을 향해 다가갔다.

내내 나를 주시하고 있던 그는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표정을 밝히며 손을 내민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진현승 회장님.]

[네, 저도 반갑습니다.]

비록 눈으로는 웃고 있지만 그의 이마엔 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다.

내키지 않은 상대를 대할 때 드러나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의 표현.

속으로 혀를 차곤 자리를 권하자 그가 너스레를 떨며 말을 잇는다.

[이거 화면상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젊어 보이시는군요.]

[맡겨진 책임이 워낙 크다 보니 체력 관리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요.]

무심히 대꾸하곤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평소와는 달리 약간은 각도를 튼 상태.

상대가 보기엔 자칫 거만함의 표현으로 보일 수도 있을 자세였다.

[흠흠, 바쁘신 분의 시간을 많이 뺏을 수는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TSMC와 폭스콘을 향한 제재를 멈춰 주십시오. 그럼 조만간 총통께서 미국과 한국이 주도하는 대중 정책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겠다는 발표를 할 것입니다.]

힐끗 내 자세를 불편한 눈으로 쳐다본 그가 본론을 꺼냈다.

짜증스러웠던 점은 그게 부탁이 아니라 마치 통보를 하는 듯한 말투였다는 것.

난 순간 다리를 한껏 꼬며 그를 향해 말했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대만 정부의 대중 정책이 다시 중국을 향해 돌아서지 않는다는 확고함을 우리에게 인식시켜 줄 방안은요?]

궈타이밍은 순간 미간을 잔뜩 좁혔다.

비록 빙 돌려서 한 말이었음에도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알고 있는 거지.

매번 손바닥 뒤집듯 하는 대만의 태도를 꼬집고 있다는 걸.

아니나 다를까 그가 발끈하고 말을 이었다.

[한미 주도의 정책에 참여하겠다는 공식적인 언급보다 확실한 의지 표명이 또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우린 한번 뱉어 낸 말을 번복하는 옹졸한 집단이 아닙니다.]

‘흥.’

대놓고 비웃음을 날렸다.

외교적으로 보면 크나큰 결례.

순간 궈타이밍이 안색을 붉혔고, 총리마저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스윽.

그 타이밍에 주머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이후 그걸 총리와 궈타이밍에게 전달하자 잠시 후 두 사람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이, 이게 사실입니까?”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총리였다.

하긴, 이 정보는 아직 국정원에서도 통보가 가지 않은 것이니까.

혹시나 싶어 살펴본 궈타이밍의 안색도 파리하다 못해 거의 탈색이 되어 있었다.

[이, 이걸 어떻게…….]

궈타이밍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동안과는 달리 표정을 확 바꾸자 그가 움찔하고 쳐다본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 텐데요?]

[…….]

[TSMC가 비밀리에 중국 SMIC에게 기술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것도 미국이 중국의 화웨이 제재를 시작하고 있는 판국에. 이게 대외에 밝혀질 경우 대만이 어떻게 될지 상상은 해 보셨습니까?]

[…….]

[이런 상황에서! 즉, 대만이 겉으로는 백기를 든 척하면서 뒤로는 또 중국과 여전히 줄을 대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보고 대만의 장담을 믿으라는 겁니까?]

절로 치솟은 목소리에 그가 다시 몸을 움찔했다.

하긴, 이 사실이 알려지면 우린 둘째 치고 미국이 어찌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

아마 지금쯤 마음이 지옥문 앞에 가 있을 거다.

[참고로 미국이 이걸 모를 거라는 상상은 안 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 정보는 모사드로부터 비롯된 것이니만큼 미국에게는 직통으로…….]

[미국을 좀 만류해 주십시오.]

말이 채 맺기도 전에 그가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불과 몇 분 전의 그 거만한 태도와는 완벽히 달라져 있는 상태.

대체 왜 저런 부류들은 꼭 힘의 우위를 보여 줘야만 허리를 꺾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만류할 수는 있습니다. 단, 이미 말했듯 대만의 조치가 확고해지는 경우에만.]

[당장 총통께 사실을 알려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궈타이밍은 대답과 동시에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뒤이어 들려온 통화 내용은 당장 SMIC와의 관계는 물론 현 대만 정부가 중국과 지속해 오던 대화 채널들의 폐쇄에 대한 논쟁.

이후 궈타이밍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고, 내내 그걸 지켜보던 난 팔짱을 낀 채 넌지시 말을 뱉었다.

[난 대체 대만이라는 나라가 이해가 안 갑니다.]

궈타이밍의 시선은 다시 나를 향해 돌아왔다.

마치 또 무슨 당황스러운 말이 나올까 싶은 표정.

여전히 잔뜩 내리깔린 눈을 하곤 말을 이었다.

[현재 대 중국 연합을 결성한 국가들의 면면을 보고도 끝내 중국과의 끈을 버리지 못하는 그 태도 말입니다.]

[…….]

[여기서 한 가지만 묻죠. 만약 3국 연합이 주도하는 대중 정책이 성공할 경우 대만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대륙 진출의 꿈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매번 고춧가루를 뿌려 대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궈타이밍은 입술만 우물거릴 뿐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못했다.

하긴, 내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겠지.

뭐, 나 역시도 정말 저들의 의중을 몰라서 물었던 것은 아니었다.

결국엔 저들 역시도 중화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족속들.

때문에 정작 본토가 갈기갈기 찢는 것은 원하지 않고, 그로 인해 미국 주도의 강경책보다는 최대한 양안의 협력하에 통일을 이루기 바라고 있다는 걸.

[여하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입장 정리를 하셔야 할 겁니다.]

최후통첩을 하곤 일어섰다.

힐끗 쳐다본 궈타이밍은 여전히 멍한 얼굴인 상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를 뜨자 총리가 재빨리 다가와 묻는다.

“정말로 대만이 중국과의 단절을 실행할까요?”

“아무리 중국의 돈이 좋다곤 해도 결국 미국이 돌아서면 끝이라는 것을 저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니 일단 최소한의 제스처는 취하겠죠.”

총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나를 쳐다봤다.

뭔가 또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새.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그가 넌지시 말을 잇는다.

“그런데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TSMC의 저런 이중적인 태도를 보고도 말입니다.”

“당장은 가만히 있을 겁니다.”

“…….”

워낙 확고한 태도로 내뱉은 말이었던 터라 총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걸음을 재촉하며 말을 덧붙였다.

“실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 리암과의 통화를 통해서 미 정부의 양해를 받아 뒀거든요. 지금은 미국까지 나설 때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그러다 대만이 또 은밀히 중국과 손을 잡으면 어쩌려고요? 한 번 했던 도둑질 두 번은 못 하겠습니까? 지금은 몰라도 차후엔…….”

그 말에 문득 걸음을 멈췄다.

다행히 복도엔 아무도 없던 상황.

잔뜩 입매를 뒤튼 채 말했다.

“그땐 TSMC도, 그리고 폭스콘도 진정한 종말을 맞겠죠.”

“…….”

“해서 TSMC의 경우 결국엔 미국 마이크론에 흡수가 될 테고.”

“…….”

“총리께서는 모르셨겠지만 실은 미국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바로 그겁니다. 때문에 내 제안을 굳이 거부하지 않은 거죠.”

총리는 그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듯 입을 벌렸다.

힐끗 다시 주변을 살핀 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이었다.

“실은 미 정부는 더 이상 대만을 믿지 않습니다. 해서 이번 기회에 반도체 업계의 전면 재편을 준비 중이죠. 우리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아니,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린 겁니까?”

“표면적인 이유야 대만은 물론 중국의 첨단산업 기반까지 무너트리겠다는 거지만, 그보다는 이제 미국도 안정적인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싶어서라 봐야 합니다. 또한 중국에게 붙어먹기 시작한 유럽을 길들이기 위해서기도 하고.”

“유럽을 길들여요?”

“한미 양국이 반도체를 손에 쥐고 있는 한 유럽은 결국 우리에게 굽히고 들어와야 합니다. 하면 그것보다 확실한 회초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허어.”

총리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 또 무슨 생각이 난 건지 고개를 갸웃하곤 되묻는다.

“그럼, 차라리 지금 그걸 실행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가능했다면 그랬겠죠. 하지만 지금 미국은 아직 반도체 업계를 재편할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막말로 공장 하나 짓는 것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본이 투자되어야 하는지는 총리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긴…….”

“게다가 지금 그걸 실행하면 유럽도 태도를 바꾸기보다는 즉각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살아남을 궁리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즉, 당장이라도 중국의 자금을 받아들여 반도체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

“그에 더해서, 지금 제재가 가해지면 대만 역시도 그 커넥션에 합류할 가능성이 큽니다. 막말로 구석에 몰린 쥐가 무슨 짓을 못 하겠습니까.”

“…….”

“그렇게 되면 결국 저들에겐 자본과 기술, 그리고 수요까지 갖춰지는 건데, 그건 오히려 우리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맞게 되는 거죠.”

“…….”

“쉽게 말해서, 미국과 난 지금 외통수를 칠 때를 기다리겠다는 겁니다.”

총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마치 대만이 이 상황에서 또 뒤통수를 치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듯.

난 즉시 그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총리께서도 방금 우려하시지 않았습니까. 대만이 또 뒤통수를 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냐고.”

“그랬……죠.”

“저 또한 그럴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아니, 확신하고 있죠. 어차피 대만은 중국 자본에서 발을 빼기엔 늦은 상황이거든요.”

“…….”

“아무튼 그 경우 우린 계획을 실행할 테고, 그건 믿지 못할 우방에 대한 가장 확실한 회초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

***

[대만 정부는 TSMC를 향한 중국의 기술 유출 사태를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또한 향후 미국과 한국을 주도로 한 대중 정책에 적극 협력하기로…….]

그로부터 보름 후, 대만은 공식적으로 한미러 3국의 대중국 정책에 공조를 피력했다.

저들이 내세운 핑계는 중국의 스파이 행위로 인한 TSMC의 기술유출의 심각성.

우스운 것은 중국은 정작 그런 누명을 쓰고도 사실에 대한 논평은 자제한 채 대만의 친미정책에만 비난을 퍼부었다는 건데, 난 이로써 대만과 중국이 차후 얼마든지 다시 붙어먹을 가능성이 있음을 확신했다.

뭐랄까, 이건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인 느낌?

솔직히 중국이 대만과 완전히 돌아서려 했다면 과연 그 누명을 쓰고도 가만히 있었을까?

차라리 사실을 죄다 까발리고 대만을 고립시키는 쪽을 택했으면 모를까.

이미 미국도 그걸 눈치채고 있을 터. 이로써 대만의 운명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다.

[정부는 오늘 사학재단들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또한 비리가 밝혀질 경우 해당 사학재단을 전면 공익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정부의 경제계 개혁은 이제 사회개혁으로까지 번져갔다.

어디 그것뿐이랴, 그동안 각종 비리로 재산을 축적했던 사회 지도층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까지.

그로 인해 현재까지 추징된 금액만 무려 수십 조에 달할 정도라는 소식은 그동안 이 사회에 얼마나 비리가 만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단면일 거다.

‘그나저나 일부 추징금에 대한 국방비 전용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면 그나마 무기 도입 문제에 있어서 숨통은 좀 트이겠군.’

우습게도 내 머릿속을 장식한 것은 온통 국방비의 증가뿐이었다.

무리도 아닌 것이, 나라가 힘을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바로 자주국방이라는 것이 평소 내 지론이었으니까.

한동안은 그 막대한 추징금으로 시작할 수 있을 사업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즐겁기가 그지없다.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나타샤의 구령 소리가 들려왔다.

결혼 이후 매일 밤 이어지고 있는 개인 PT도 이것으로 벌써 한 달째.

오늘도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올라온다.

[수고하셨어요.]

소파에 축 늘어진 내 어깨를 툭 건드리는 나타샤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빌어먹을, 내가 몸짱이 되려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이거 원.

오늘만큼은 불평을 토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입을 열려는데, 그녀가 갑자기 요염한 표정과 함께 선수를 친다.

[그럼, 저 먼저 씻고 올게요.]

[저, 저기 나타샤?]

씻다니? 왜?

당신은 여태 구령만 외치느라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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