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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75화 (275/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75화

휘이잉!

보름간의 여행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인천 공항에는 그룹 임원들로 가득했다.

단순히 우리의 귀국을 맞이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면 호통을 쳤겠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닌 상황.

VIP실을 빠져나오자마자 내게 들이밀어진 것은 그간 한국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에 대한 보고서였다.

[그럼 전 부모님께 먼저 인사드리러 가볼게요.]

이미 사정을 알고 있던 나타샤는 본가로의 이동을 택했다.

미안한 마음에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허공으로 향한다.

“흠흠.”

뒤늦게 평소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음을 깨닫곤 헛기침을 뱉었다.

이후 김영기 실장을 향해 시선을 주자 그가 길잡이를 자처하며 보고서의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현재 S&U는 그룹 전체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룹의 공식적인 입장인데, 이사회에선 엔진기술 유출 문제가 전적으로 문지훈 대표의 독단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히 말이 안 되죠. 해서 열 받은 청와대가 이번엔 S&U 전체의 세무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세무조사까지 가는 지경이면 그룹의 피해는 보통이 아닐 거다.

막말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은 없고, 뭐 하나라도 걸리는 순간이면 그게 치명적인 칼이 될 테니까.

예상컨대 S&U의 미래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봐야 한다.

“터키는 반응이 없습니까?”

난 그게 가장 궁금했다.

물건을 훔친 놈도 나쁘지만 그걸 사주한 놈 역시도 나쁜 것은 마찬가지.

하필이면 그 대상이 터키였다는 것이 나로서는 더 입이 쓴 상황이다.

회귀 전, 우리와 터키 사이에 얽혔었던 자주포 및 전차 수출문제 역시도 그리 깔끔하지만은 않았거든.

“아직까지 공식적인 반응은 없습니다.”

물론 그때야 우리 잘못도 있었다.

그저 어떻게든 수출을 해보겠답시고 발등을 찍을 조건들까지 들어주었던 것은 분명 우리의 실수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실수는 되풀이 된 적이 없는 세상.

그럼에도 또 터키와 이런 식으로 엮이는 것이 나로선 영 못 마땅하다.

“반응을 할 입장이 아니겠죠. 당장 우리가 따지고 들면 불리한 것은 터키니까. 그렇다 해도 청와대에선 뭔가 조치가 있었을 텐데요?”

“조치가 있기는 했습니다. 뚜렷한 해명과 재발 방지 약속. 그리고 기밀 유출에 따른 손해배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향후 터키로의 모든 군수물자 수출금지.”

“수출금지요?”

“네, 뭐 어차피 재우야 터키와의 교역은 없으니 상관은 없다지만, 그 때문에 LIC를 비롯한 다른 방산 업체들이 불똥을 맞아 버린 상황입니다.”

의외로 강력한 대처지 싶었다.

역시 현 대통령을 향한 내 판단은 틀리지 않은 거지.

마침 도착한 차에 몸을 싣자 김영기 실장의 첨언이 이어졌다.

“문제는 청와대가 S&U만으로 끝낼 것 같지가 않다는 겁니다.”

그것 역시 내가 예견했던 부분이었다.

통일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해가는 기업들에 대한 적절한 관리 감독은 전혀 없었던 상태.

그게 투명경제를 추구하는 대통령으로서는 늘 걱정거리였을 테고, 이 기회에 그걸 점검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것.

문제는 그 불똥이 어디까지 미치느냐는 건데, 사실 재우로서는 그다지 염려할 것이 없지 싶다.

‘우리야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날을 대비하여 늘 철저한 재무관리를 해왔으니까.’

[국세청은 오늘 S&U에 이어 로이 그룹과 오성 그룹에 대한 전면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무심코 틀었던 라디오 뉴스에선 김 실장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음을 알려왔다.

이 사태가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두 그룹 모두 일본과 깊은 연관이 있는 기업들이었고, 난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재빨리 김 실장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압니다. 하지만 딱히 일본과 연관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저들이 저지른 일이 그만큼 괘씸했기 때문에 타겟이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뭘 어쨌기에 말입니까?”

“로이 그룹은 전쟁 통에도 불법자금을 조성해서 일본으로 유출했답니다. 오성 그룹도 마찬가지고요.”

“허어.”

사실이라면 아마 두 그룹도 온전치는 못할 거다.

평소였다 해도 그 정도 사안이면 국민들의 눈이 무서워서 그룹 회장이 구속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사안.

그런데 통일 특별법이 적용되는 시기에 그게 밝혀졌으니…….

“그런데 제 예상과는 다른 기업들이 먼저 칼을 맞는군요.”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김 실장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힐끗 쳐다보자 들고 있던 보고서 한 장을 다시 들이민다.

“이틀 전, ST 그룹도 분식 회계를 자행한 사실이 밝혀졌거든요. 사실 전 여기가 먼저 털릴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 이거야 원.”

워낙 총체적인 난국인 탓에 갈등이 찾아왔다.

이대로 회사로 가는 것보다는 대통령을 만나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하지만 나 역시 경제인 중 하나.

그랬다가 괜한 시빗거리가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를 털어냈다.

우웅!

그때,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발신자는 청와대 비서실.

재빨리 통화버튼을 누르자 저편에서 잔뜩 들뜬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방금 도착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래,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난 애써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나 또한 기업가인 마당에 이 상황에서 태연한 목소리를 내비칠 수는 없으니까.

이후 목적을 물으려 다시 입을 열려는데, 저편에서 먼저 말이 이어진다.

“오랜 여행길에 피곤하시겠지만 지금 혹시 청와대로 들어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대통령님께서 중요한 내용을 상의하고 싶어 하십니다.”

“…….”

***

“이거 피곤하신 분을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하군요.”

도착한 청와대엔 비서진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었다.

비상사태임을 드러내듯 표정들이 하나같이 썩어 있는 상태.

그들을 뒤로하고 다가온 대통령은 이후 나를 한적한 뒤뜰로 이끌었다.

“소식은 들으셨죠?”

“네, 도착 이후로 계속해서 보고를 받았습니다.”

“하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아시겠군요.”

말투에서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차마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기 직전인 것만 같은 표정.

아니나 다를까, 곧 그의 입에선 제법 껄끄러운 말들이 들려왔다.

“실은, 최근 청와대의 행보를 두고 이곳저곳에서 말들이 꽤 많아졌습니다. 말로는 경제계에 대한 전면적인 감시감독이라면서 왜 특정 기업에 대해선 조사를 하지 않는 것이냐고.”

“그 특정 기업은 당연히 재우를 말하는 것이겠군요.”

대번에 상황을 이해하곤 대꾸했다.

어색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스치고, 난 별스럽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당연히 우리도 조사를 받아야죠.”

미처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던 듯, 대통령의 눈이 한껏 치켜 떠졌다.

하지만 나로서야 이미 예견했던 문제.

흐트러졌던 타이를 고쳐 매며 다시 말했다.

“아시다시피 재우는 이 나라 최대 재벌기업입니다. 그 마당에 조사를 피해간다면 말들이 많아질 것 아닙니까. 하니 필요하다면 당연히 조사에 응하겠다는 겁니다. 비단 재우만이 아니라 삼정과 현우까지도. 참고로 이건 오는 동안 두 그룹 대표들과 협의를 한 끝에 드리는 말입니다.”

“하지만.”

한껏 염려스럽다는 시선이 꽂혔다.

역시나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기업이 없음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난 그 정도 먼지쯤은 충분히 감내할 자신이 있고, 내가 미처 몰랐던 먼지가 존재했다면 이 기회에 털어낼 생각이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혹시라도 실수한 것이 있다면 응당 처분에 따를 것이며 설사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이 생긴다 해도 기꺼이 따를 예정입니다.”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통령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저 말을 꺼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나저나 제가 비행기에서 보낸 전문은 살펴보셨습니까?”

분위기 전환을 위한 것치고는 화두가 꽤 무거운 편이었다.

하지만 기왕 청와대에 들어온 김에 해결을 보는 것이 나로선 편하니까.

슬쩍 나를 향해 시선을 준 대통령의 입에서 헛웃음이 뱉어진다.

“진 회장님은 당최 이해가 안 가는 분이군요.”

“…….”

“이런 상황에서도 기껏 하고 싶은 말이 그것뿐입니까?”

“뭐 저야 굳이 불안해할 것이 없으니까요.”

그 말에 대통령의 눈이 빛을 발했다.

뒤이은 허탈한 웃음 끝에 그가 내린 결정은 결국 내가 제시한 화두에 매몰되는 것이었다.

“리암이 제시했다는 3국 동맹협의체 구성 문제에 대해선 안 그래도 이미 백악관은 물론 크렘린궁과도 대화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해서 아마 다음 달쯤이면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지 않을까 싶군요.”

“그거 잘 됐군요. 그렇게만 된다면 가뜩이나 쪼들리고 있는 무장 재정립 부분에선 엄청난 비용 절감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난 진심을 다해 말했다.

힐끗 다시 시선이 돌아오는가 싶더니 이후 그의 입에선 정작 내가 꺼내야 할 다음 문제가 거론됐다.

“그런데, 항모 문제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듣자 하니, 제대로 된 전단을 구축하자면 비용이 그야말로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더군요.”

“맞습니다. 해서 저도 굳이 당장 항모를 보유하기보다는 우리도 대형 강습상륙함을 먼저 손대면 어떨까 싶습니다.”

“…….”

“예를 들면, 아스프 급이나 아메리카 급 같은. 그게 타라와 급과는 거의 비슷한 배수량을 가진 상륙함이기에 국민들이 받을 상대적 박탈감만큼은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즉, 일본의 상륙함 보유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든다는 거죠.”

“그렇다곤 해도 우린 정작 해상에서 운용할 전투기가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렇죠. 때문에 당분간은 헬기 모함으로 사용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차후, KF-02를 기반으로 한 함상형 전투기 개발이 이루어지면 그때 가서 해당 상륙함을 개조하는 걸 고려하면 됩니다.”

“…….”

“아! 물론 형평성 문제는 재기 될 겁니다. 말이 상륙함이지 일본은 그걸 항모로 운용하는 마당에 우린 대체 뭐냐…… 하고. 하지만 그건 일부에서 제기되는 주장일 뿐,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다지 염려하지 않을 겁니다.”

“…….”

“이미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설사 일본이 항모를 운용한다 해도 그게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쯤은 다 아니까요.”

“하긴, 극초음속 대함미사일이 이미 배치 완료된 상황이면 뭐. 그건 둘째 치고 공중발사 대함탄도미사일의 존재만으로도 항모가 얼씬 거릴 엄두를 못 낸다죠?”

대통령은 웃으며 말을 뱉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걸리는 것이 있는 듯 금세 표정을 바꾸며 되묻는다.

“문제는 그 대형 상륙함 건조비용도 우리에겐 부담된다는 겁니다. 지금 벌여놓은 사업들만 해도 사실상 부담은 크니까요.”

난 그 말에 가만히 대통령의 얼굴을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친 그가 고개를 갸웃했고, 난 오는 동안 고민해봤던 것을 넌지시 제시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업들 말입니다.”

“…….”

“추징되는 금액들이 만만치 않겠죠?”

대통령은 의미를 이해 한 듯 대번에 뜨악 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관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직 이 나라는 대통령님의 권한이 강력한 시기라는 겁니다. 해서 의회만 협조한다면 그 추징금들을 국방비로 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

“아마 의회도 끝내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의 군비 확장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의원들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아니 보다 현실적인 면을 대자면 그게 세금을 더 걷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

“게다가 지금은 여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니 그게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겁니다.”

***

“후우.”

본가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앞서 출발했던 나타샤는 지금쯤 식구들과 이미 인사를 나누었을 터.

그사이 또 나타샤의 엉뚱한 면으로 인한 좌충우돌이 벌어지지나 않았을 지가 걱정이다.

“어서 와!”

하지만 정작 들어선 집안 분위기는 평온했다.

아니, 평온한 것을 넘어 이상하리만치 화기애애한 느낌.

그러고 보니 전과는 달리 나타샤를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 역시도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뭐랄까, 마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딸을 대하는 느낌?

그때, 나를 힐끗 쳐다본 아버지가 갑자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나타샤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며늘아기야. 애는 몇이나 나을 거라고?”

난 그 말에 즉시 나타샤를 쳐다봤다.

반짝 눈을 빛내며 펼쳐진 그녀의 손가락은 별이 다섯…… 아니 다섯 개.

절로 헉 소리가 나오려는 차에 그녀가 완벽한 한국말을 구사했다.

마치 이런 상황을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그것도 평소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게 몸을 배배 꼬면서.

“회장님. 아니, 이이가 힘을 낼 수 있는 한은 애써볼게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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