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70화
[스마트 원자로는 거래 대상이 아니다? 그럼 우리가 얻는 건 뭐요. 아무리 뒷방에 처박아둔 것이라지만 그 정도 원잠들을 타국에 넘기는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한지는 진 회장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야 물론입니다. 하지만 말이 원잠이지, 지금은 그야말로 고철에 불과하죠.]
순간 푸틴의 얼굴이 꿈틀했다.
상관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걱정하시는 것처럼 그 칼이 러시아를 향해 돌아서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막말로 현재 러시아와 우리의 관계는 가히 동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가 그럴 이유가 있기나 하겠습니까?]
[흠······.]
푸틴은 그 부분만큼은 인정한다는 듯 넌지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 상황.
난 재빨리 준비해온 후속 조건을 언급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의 표정은 밝아졌다.
[인도가 정말 800대에 달하는 MI28N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는 거요?]
[단지 제 생각이 아니라 의향서가 날아왔으니 가능성은 크다고 봐야죠. 게다가 현재 그들의 경제력을 생각하면 딱히 무리는 아닙니다.]
[그럼 차라리 한국이 만든 포사를 도입할 것이지 왜······.]
[인도가 그걸 생각 안 했겠습니까. 문제는 포사 같이 비싼 물건으로는 필요수량을 다 채우지는 못한다는 거죠. 해서 핵심 전력은 포사로. 그리고 나머지는 MI28N으로 구색을 갖추겠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나저나 800대라면······ 한국이 도입 예정인 물량까지 합해서 총 1300대가 되는 건가?]
연신 중얼 거리던 그의 눈동자는 순간 크게 흔들렸다.
말이 1300대지.
그로 인해 얻어질 이익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
이후 표정이 확 밝아진 그는 금세 스마트 원자로에 대한 미련은 버린 모양새다.
[좋소. 우리야 어차피 차기 핵잠수함 건조계획으로 인해 고철이 될 운명이었던 물건들인 마당에야······ 그나저나 정말로 스마트 원자로를 제공할 의향은 없는 거요? 만약 그걸 제공하겠다면, 달리 원하는 것이 뭐든 들어줄 용의가 있소.]
아······ 아니구나.
하긴, 그걸 그리 쉽게 포기할 인물이 아니지.
뭐 사실 나 역시 저런 성격을 알기에 굳이 그걸 입에 올렸던 거고.
어쨌건 대화의 흐름은 나쁘지 않다.
저렇듯 애가 닳으면 닳을수록 상황은 내게 유리해지니까.
-명심하셔야 합니다. 진 회장님의 꿈처럼 탄도미사일을 공중발사 하려면. 해서 우리가 전략 폭격기를 보유하기 위해선 반드시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해요.
그때, 며칠 전 대통령이 내게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원잠도 원잠이지만 전략 폭격기가 주변국들에게는 더 공포의 대상이기에 러시아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때문에 난 지금 우리가 러시아의 오랜 꿈인 스마트 원자로를 수출해주는 대가로 그걸 용인 받으려는 거고, 이젠 그걸 대화로 끄집어낼 때가 되었다.
벌떡!
막 입을 열려는 차에 갑자기 푸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뭣 때문인가 싶은 마음에 쳐다보자 그가 잔뜩 찌푸려진 표정으로 말한다.
[쯧, 진 회장은 다 좋은데, 앞뒤를 너무 재는 것이 문제요.]
[······.]
[내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뭔지는 차차 이야기 하고 일단은 갑시다.]
[어딜 말입니까?]
[물건을 거래할 거면 실물을 봐야 할 것 아니오. 그래야 나중에 하등 쓸모도 없는 고철을 줬느니 뭐니······ 그딴 소리들이 안 나오지.]
[······.]
***
“이거야 뭐······.”
도착한 조선소엔 거대한 잠수함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아직 완전히 분해가 이루어 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
뭐 비록 손은 좀 많이 가겠지만, 어차피 개수는 필수.
이제 저 물건이 우리가 만든 원자로를 싣고 대양을 누빌 생각을 하니 절로 숨이 가빠진다.
“응?”
그때, 저편에 있던 함정 하나가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레이돔을 선체에 얹고 있는.
혹시나 싶어 안력을 높이자 마침 그 모습을 본 푸틴이 설명을 잇는다.
[우랄이요. 키로프급 순양함을 기반으로 한 정보습득함. 저것 역시 해체를 기다리고 있죠.]
사실이라면 원 역사와는 맞지 않은 결과였다.
내가 아는 사실에 따르면 우랄은 2000년 초반 이미 경매를 통해 해외로 팔려 나갔어야 정상이었으니까.
한데 그게 여태 러시아에 남아 있다니.
그것도 제법 온전한 형태로.
이 만남. 어쩌면 또 하나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저건 또 뭐야······.’
당황스러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우랄의 곁에서 한창 개수 작업이 진행 중인 또 한 척의 거대한 함선.
아무리 봐도 저건 키로프급 함이었다.
‘이것 봐라?’
순간 제법 그럴듯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만약 우리가 저 두 척의 함선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싶은.
‘가능하다면 우랄은 개수를 통해 광대역 대공 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것에 써먹을 수 있을 테고, 키로프급의 경우는 KDD4 에 탑재할 스마트 원자로의 시험함으로 써먹기에 가장 적합하지 싶은데.’
어차피 KDD4는 원자력 추진을 기반으로 가야 할 운명.
하면 그것 역시도 시범함의 필요성은 있으니까.
아! 생각해보니 이점은 또 하나 있다.
우린 지금 가뜩이나 넘쳐 나는 미사일들의 발사 기지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
한데 저 거대한 키로프 급 함을 우리 입맛대로 개수한다면 어느 정도는 그 문제를 상쇄할 수 있지 않던가.
즉, 저게 아스널쉽의 역할을 할 수가 있다는 거지.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오?]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푸틴의 말이 들려왔다.
못 봤다면 모를까, 이미 내 기대감을 잔뜩 올려놓은 물건이 눈에 들어온 터.
난 즉시 그에게 말했다.
[우리······ 아까 못다 한 이야기를 해야 할 시간인 듯싶군요.]
[······.]
***
[무슨······ 잠수함만이 아니라 한국이 전략 폭격기를 보유하는 것도 용인해 달라고요?]
[그렇습니다. 더불어서, 아까 보았던 두 척의 폐함선도 넘겨주시죠.]
[이거 농담이 심하군.]
[제가 언제 빈말을 입에 담는 것 보셨습니까?]
[······.]
푸틴의 턱이 그 말에 한껏 부풀었다.
잔뜩 힘을 준 결과.
이제야 말로 아껴두었던 큰 돌을 던질 때다.
[그럼 러시아가 개발 중인 차세대 핵잠수함에 탑재할 스마트 원자로를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안전하고 사고 따위는 발생할 수가 없는 물건으로. 솔직히 러시아도 다시 원자로로 인한 잠수함 침몰사고를 겪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다행히도 그게 내가 찌르고 들어간 팩트. 즉 예전 러시아가 겪었던 침몰사고에 대한 기억 때문은 아닌 느낌.
하면 역시나 전략 폭격기가 문제라는 건데, 딱히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전략 폭격기의 존재감이란, 그만큼 어마어마하니까.
게다가 이미 우리가 핵보유국임을 인지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더더욱.
[······.]
고민의 시간은 길어졌다.
문제가 문제인 터라 나로서도 입이 바짝 마르는 상황.
그때, 푸틴의 시선이 힐끗 나타샤를 향하더니 긴 한숨을 뱉어낸다.
[빌어먹을. 결혼선물 치고는 지나치게 손해 보는 느낌인데······.]
[저도 그걸 결혼선물로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넌지시 그의 말에 대꾸했다.
고까웠던 걸까, 그가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그럼 대체 결혼선물로는 또 뭘 달라고 하려고.]
[글쎄요 그거야 차차······.]
[아무튼 그렇게 합시다. 그래도 설마 처가에 핵을 뿌려대는 짓은 안 하겠지.]
무슨 황당한 말이 나올까 싶었던 듯 그가 재빨리 내 요구를 수용했다.
웃음으로 대꾸를 대신하자 뭔가 또 의문이 남는 듯한 표정이 되어 되묻는다.
[그나저나 한국에 전략 폭격기로 활용할 만한 기체가 있기는 한 거요?]
공교롭게도 그건 핵심을 짚는 말이었다.
더불어 그가 결심을 굳히는 것에 일조할 내 수단이기도 하고.
난 잠시 물을 들이켜곤 말했다.
[우린 특별히 전용 폭격기를 운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
[막말로 그럴만한 여유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으니까요. 해서 기왕이면 수송기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태로 가면 어떨까 싶더군요. 예를 들면······ AN-225 MRIYA 같은.]
순간 푸틴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한 말은 명백히 이율배반적이거든.
말로는 여유가 없어 따로 폭격기만의 임무를 가진 기체를 운용할 생각은 없다면서 러시아도 고작 2기만 보유 중인 고가의 기체를 운운했으니까.
하지만 나로서는 진심이다.
AN-225 MRIYA.
비록 거대하고 비싸긴 해도 그건 확실히 수송기와 폭격기의 역할을 모두 감당할 만한 물건인 것은 사실이지 않던가.
[그 말인 즉, 나보고 지금 우리도 고작 2대뿐인 MRIYA를 내놔라?]
[그럴 수야 있나요. 단지 추가 생산을 통해 구매를 하겠다는 거죠. 아!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차라리 이 기회에 제가 소유한 모터시치 사와 안토노브 사가 협력을 해 보는 것.]
[······.]
[쉽게 말해서 두 회사가 제2의 MRIYA를 공동 개발하여 내놔보자는 거죠.]
푸틴의 눈은 빛을 발했다.
하지만 곧 고개가 갸웃해진 이유는 아마도 내가 보잉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럼 보잉은 어쩌려고요.]
[보잉은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새로운 MRIYA의 사용 국가는 우리와 러시아. 그리고 옛 소련 연방 국가에 한정 될 테니까. 설마 4킬로미터에 달하는 활주로를 필요로 하는 거대기체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갈 거라는 상상을 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시죠?]
푸틴은 그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름대로 기대는 한 듯한 모양새.
하지만 그건 어불성설이다.
이착륙거리는 둘째 치고 대부분의 활주로가 무게를 감당하지도 못할 항공기를.
그렇다고 범용성이 확실하게 검증되지도 않은 것을 대뜸 도입할 서방의 항공사들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 해도 한국군이 최소 10여 기 이상은 도입할 테고······ 그거 꽤 구미가 당기는군.]
역시나 푸틴은 결심을 굳힌 듯한 말을 뱉었다.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의 효과.
난 속으로 한껏 소리를 질렀다.
‘마더 러시아!’
***
[그럼 결혼식장에서 봅시다.]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푸틴은 내 손을 유독 힘주어 잡았다.
최근 들어 유독 장난기가 심해진 느낌.
웃으며 돌아서려는데, 전용기 앞을 진 치듯 서 있는 사내들과 여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
의아한 마음에 다시 푸틴을 쳐다봤다.
여전히 미소 띤 얼굴이던 그는 당황스러운 말을 툭 뱉어낸다.
[내 딸이 언제까지고 진 회장의 경호를 맡을 수는 없지 않소. 아니, 이젠 오히려 경호를 받아야 할 입장이지. 그건 진 회장도 마찬가지고.]
[······.]
황당한 마음이 절로 표정에서 드러났다.
내 의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걸까, 다시 이어지는 그의 말에선 고집스러움이 절로 묻어나왔다.
[내 사위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정적이 생긴다는 의미요. 때문에 내 입장에선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고. 참고로 어제 한국 정부에는 미리 협조를 구해놨소.]
[하지만 전 이미 충분한 경호 인력들을 보유 중입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잘 아시는 강채훈 소령이 이번에 새로운 경호 실장으로 임명된 상태이기도 하고요. 결정적으로, 기밀을 지킬 수 있는 자들이 아니면 제 경호를 맡을 수 없습니다.]
[호오······.]
푸틴은 강채훈이라는 이름을 듣자 탄성을 뱉었다.
하긴, 자신의 숨겨둔 딸을 구해줬던, 은인과도 같은 존재인 마당에야.
하지만 곧 도리질을 하며 말을 잇는다.
[그렇다 해도 저들을 보내는 것은 이미 결정 난 사안이오. 진 회장의 경호를 맡을 수 없다면 나타샤의 경호에라도 활용하시오.]
아무래도 저 고집은 꺾을 수 없을 듯하여 결국엔 수긍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로 나타샤와 작별의 인사를 나눈 그는 뭐가 생각났는지 다시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나저나 난 언제까지 사위에게 존대를 해야 하는 거요?]
[······.]
[젠장, 됐으니 그냥 하던 대로 합시다. 그렇다고 진 회장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닌데.]
욱하는 마음에 반발하려다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그때, 맥락도 없이 대뜸 떠오른 생각 하나가 돌아서던 발길을 붙잡는다.
[참······.]
고개를 갸웃하는 푸틴을 향해 다가섰다.
이후 주변을 한번 살피고 속삭인 말은 중국에 의해 만들어진 바이러스에 관한 것.
내내 웃음기 가득하던 그의 얼굴이 대번에 확 변한다.
[그걸 왜 이제야······.]
[막상 생각은 났어도 전해야 할지 고민이었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러시아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서 하는 말입니다.]
[흠······.]
푸틴은 연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당장 해결되는 것은 없는 상황.
보다 구체적인 대화는 차후 내 결혼식 때로 미루자는 말을 하려는 차에 그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던진다.
[실은 우리도 전에 의심스러운 일을 겪었소.]
[······.]
[예전 야말반도에서 돌았던 독감 말이오. 굳이 발표는 안 했는데, 그게 사실 단순한 독감은 아니었더군.]
[전 그런 보고는 전혀······ 아니 당시 그곳엔 제 형님도 있었습니다.]
[진 회장의 형님은 다행히 그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었소. 해서 사태가 커지기 전에 우리가 핑계를 대고 다른 곳으로 잠시 이동 시켰었고. 하지만 3공구에 있던 인부들 중 3분의 2는 증세를 드러냈고, 그 탓에 전원 격리조치 했었소.]
[그래서요. 결국 통제에 성공한 겁니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소동이 없었던 것으로 봐선 그게 분명했다.
아니었다면 지금쯤 러시아 전체가 난리가 났겠지.
그런데 푸틴의 표정이 왠지 이상했다.
[통제에는 성공했소. 다만, 희생이 커서 그렇지.]
[······.]
[우리 연구진들의 말에 의하면 워낙 감염력과 전파력이 커서 그냥 두면 어떤 방식으로든 급격히 퍼져 나갈 거라고 하더군. 해서 난 아예 3구역 자체를 4개월간 봉쇄해 버렸소. 그 어떤 외부와의 접촉이 불가능하게끔.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이 뭔지 아시오? 아무리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는 해도 결국 살아남은 인부들의 수가 불과 40%를 넘기지 못했다는 거요. 고작 호흡기 질환 따위로 인해서.]
[······.]
[그래요, 그 표정 이해합니다. 방치나 다름없었던 내 결정이 진 회장으로서는 고깝게 들리겠지. 하지만 난 이 나라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었고, 그걸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소. 그나마 병이 퍼진 곳이 외진 야말반도였기에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지금쯤······.]
뭐라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일이 벌어졌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그의 과격한 조치가 당황스러울 뿐.
스스로도 자신이 내렸던 과거의 조치에 자괴감이 드는 듯 그는 이를 갈며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중국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면······ 난 절대로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