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69화
“좋은 아침입니다, 회장니…….”
집 문을 나서는 나를 본 양 비서는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다간 멈칫했다.
이후 그의 시선이 꽂힌 곳은 내 뒤에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좇아 나오고 있는 나타샤.
사태를 파악한 듯 그의 입꼬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천했다.
“좋은 아침이군요.”
난 애써 표정을 굳힌 채 차에 올랐다.
습관 탓이었을까, 나타샤는 곧바로 자신의 차량을 향해 몸을 돌렸고, 난 그녀를 향해 재빨리 소리쳤다.
“그러지 말고 함께 타고 갑시다.”
“…….”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이곤 결국 내 옆자리로 향했다.
회사로 향하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녀는 나로도로 향하는 헬기에 오르고 나서야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뭘 말입니까?”
“결혼이요. 만약 매일 밤을 어제와 같이…… 그럼 전 못 버틸 것 같습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미 벽을 무너트린 상황에서도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어려웠던 듯 그녀는 가는 내내 창밖만을 바라봤고, 조종석 옆자리에 앉아있던 양 비서의 어깨만이 연신 들썩거렸다.
“양 비서.”
“네, 네 회장님.”
넌지시 부르는 소리에 그가 화들짝 놀랐다.
한동안 말없이 쳐다만 보는 내 태도가 무얼 뜻하는지 깨달은 듯 그는 재빨리 손으로 제 입에 지퍼를 채우는 듯한 행동을 해 보인다.
“뭐 어차피 결혼할 사이니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소문이라는 것이 와전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애써 변명을 뱉어내곤 다시 나타샤에게로 시선을 줬다.
여전히 발그레 해져 있는 그녀의 얼굴에 얼핏 웃음기가 맴도는 것이 보인다.
“어서 와. 나타샤 씨도 안녕?”
헬기에서 내리자 희원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나타샤를 향해 짧은 인사를 건넨 놈은 뭣 때문인지 갑자기 휙 하고 다시 돌아서선 나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본다.
“흠…….”
“왜 그래?”
놈은 되묻는 나를 여전히 가늘어진 눈초리로 노려봤다.
이내 슬쩍 내 팔을 잡아당기고는 대뜸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어제 뭔 일 있었냐?”
“뭔 소리야?”
“발뺌할 생각은 그만둬. 난 벌써 유부남 10년 차니까. 이젠 여자 얼굴만 척 봐도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는 소리지.”
아무튼 귀신같은 놈이었다.
그런데 대체 나타샤의 얼굴이 뭐가 어쨌기에?
아무리 봐도 나로선 평소와 다른 점을 찾지 못하겠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해당 연구원은 지금 어딨어?”
“쳇.”
놈은 혀를 차곤 우리를 연구소로 이끌었다.
역시나 습관처럼 문 앞에서 돌아서는 그녀.
결혼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음에도 지킬 것은 지키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새삼 대견하게 느껴진다.
“그럼 지금부터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MSR 개발에 대한 단초를 제공했다던 연구원과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이미 희원이 보낸 보고서를 통해 사전 지식은 숙지하고 있던 상태.
그래도 한동안은 내가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 주를 이루었다.
“해양용융염 원자로를 상선에 도입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렇습니다. 일단 모듈화와 소형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안전성이 뛰어나다는 점으로 인해 일반 상선에서의 운용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난 계속하라는 투의 눈빛을 보냈다.
부담스러웠던 듯 연구원은 한차례 물을 들이켜곤 말을 이었다.
“MSR이 안전한 이유는 일단 원자로 내부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액체 냉각재인 용융염이 굳어져서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지극히 낮습니다.”
“하면 어떤 종류의 핵연료를 사용하는 겁니까.”
“핵연료는 주로 토륨 테트라플로라이드나 우라늄 테트라플로라이드를 액화시킨 것을 사용합니다. 그걸 냉각제의 한 종류인 용융염에 용해시켜서 핵 연료화 하는 거죠. 그 경우, 원자로의 구조가 간소해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료 자체가 염의 특성을 지닌 터라 기화점이 극도로 높다는 거죠.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략 섭씨 800도 정도.”
그건 쉽게 말해서 과도한 수증기의 발생 확률이 그만큼 낮다는 것을 뜻했다.
하면 당연히 수증기 팽창으로 인한 폭발과 사고 확률 또한 낮아지는 거고.
난 그제야 왜 MSR이 그 어느 것보다 안전한 원자로인가를 확실히 이해했다.
“그래도 최악의 경우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용융염은 반응로에서 빠져나오는 경우 즉시 핵반응이 중지됩니다. 또한 높은 온도에 비해 낮은 압력을 유지하기에 늘 액체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건 즉, 대기 중에 방사능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죠.”
난 그 부분에서 심호흡을 했다.
다른 걸 떠나서 저런 엄청난 원자로를 개발할 단서가 지금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분되는 일이기에.
그때, 연구원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또 하나, 압력이 크지 않기에 용기의 부피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원자로의 크기를 소형화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연료 이용률이 우라늄에 비해 최고 20배까지 상승하기에 출력 또한 비교 불가 수준이며, 남은 잔여물도 적어서 핵폐기물에 대한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맞아요, 그에 더해서 반감기도 극도로 짧아 더더욱 방사능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죠.”
난 즉시 손을 흔들며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음을 표했다.
그 부분에 대한 지식은 나도 이미 보고서를 통해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연구원은 끝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아시다시피 MSR 원자로의 수명은 최고 40년에 가깝습니다. 그건 핵추진항모나 원잠. 또는 구축함에 적용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거죠.”
아마도 그건 나를 배려한 첨언이었을 거다.
MSR에 대한 내 근본적인 관심이 어디에 있는 건지를 알고 있는 거지.
말은 수익성을 따진다지만, 결국 난 그걸 통해 국방력 향상을 꾀하려 한다는 걸.
사실 MSR이 구축함에 적용된다면 전열화학포를 운용함에 있어서 전혀 어려움이 없게 되는 상황.
나로서야 그 꿈을 꾸는 것이 당연하지 않던가.
“그래서, 우리가 소 뒷걸음질 치다가 잡았다는 쥐가 대체 뭡니까?”
연구원은 그 말에 슬쩍 희원을 쳐다봤다.
놈의 고개가 끄덕여 지고, 연구원은 자신이 들고 있던 자료 하나를 내게 건넨다.
“토륨과 테트라플로라이드를 안정적으로 액화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융합재입니다. 현재까지 그 부분에 대한 개발이 미진한 탓에 선진국들이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죠.”
“흠…….”
뱉어낸 한숨은 정작 내뱉고 싶은 환호성을 대체한 거였다.
회장 체면이라는 것이 있는 마당에 대놓고 소리를 지를 수는 없으니까.
순간 희원이 놈이 나를 보며 잔뜩 입매를 뒤튼다.
“그래서…….”
“…….”
무슨 뜻인가 싶어 쳐다봤다.
여전히 웃음기 맺힌 얼굴을 하고 있던 놈은 뜬금없는 말을 던진다.
“그게 네가 자주 쓰는 말이잖아. 그래서…… 하고 사람 잔뜩 긴장시키는 거.”
“…….”
“아, 그래서 뭘 들고 왔냐고! 어라? 너 설마 그새 내 말 잊은 거냐? 난 분명 손은 최대한 무겁게 하고 오라고 말 했을 텐데?”
그 말에 헛웃음을 뱉었다.
젠장, 그나저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문제였건만.
그럴 법도 한 것이, 난 밤새…….
스윽.
결국 별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잔뜩 뒤틀리는 희원이 놈의 눈썹.
웃으며 손가락에 침을 발라 허공을 그으며 외상을 시도하자 놈이 발끈하며 연구원들을 향해 소리친다.
“얘들아! 그 자료 죄다 소각시켜라. 주인장께서 연애질에 바쁘시느라 오늘은 쥐뿔도 안 가져오셨단다.”
“…….”
***
휘이잉!
다음 날, 난 다급히 러시아로 향했다.
목적은 두 가지 선결과제를 해결하는 것.
그중 하나에 포함되었기 때문인지 가는 내내 나타샤의 얼굴엔 홍조가 띄워져 있다.
[너무 빨리 날짜를 잡는 것이 아닐까요?]
[시간을 끌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대답을 뱉어내곤 딴청을 부렸다.
아직도 그날의 달뜬 분위기가 떠오르곤 했기에.
같은 상상을 한 듯 그녀의 얼굴이 금세 붉어진다.
[그런데 각하께서 참석 하실까요?]
[참석이야 당연히 가실 테고, 난 지금 우리 결혼도 결혼이지만 푸틴 대통령에게 뜯어낼 것이 있어서 가는 겁니다.]
[…….]
순간 나타샤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우리 결혼을 이용해서…….]
말투 역시도 얼핏 기분이 나쁘다는 투였고.
오해가 있다는 생각에 다시 말을 고치려는 차, 그녀가 예상외의 말을 툭 뱉어냈다.
[기왕 저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얻어내실 생각이시라면 제대로 된 것을 요구하시죠.]
[…….]
[참고로 각하의 배포는 꽤 큰 편이라서 어지간한 것은 들어주실 겁니다.]
그 말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왜일까, 이젠 완전히 내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
하긴, 그녀가 확실한 내 편이 되었다는 사실쯤은 진즉에 확신하던 터였기에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날짜 잡혔다면서요.]
공항에서 마주친 알렉세이는 벌써 방문 목적 중 하나를 알고 있었다.
아무튼 이 놈의 집구석은 정보력 하나만큼은 알아줘야…….
웃으며 대꾸를 대신하자 그가 여전한 미소로 농담을 걸어온다.
[그래, 첫날밤은 벌써 치르셨고?]
탁!
그를 향해선 여지없이 땅콩이 날아들었다.
[크크, 내가 두 번 당할 줄 아냐?]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번엔 알렉세이도 그걸 재빨리 잡아냈다는 것.
[억!]
하지만, 한 박자 늦게 날아든 호두알만큼은 피하지 못했다.
***
[내달 15일이라…….]
소식을 들은 푸틴은 재빨리 비서를 불러 자신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곧 고개를 끄덕이는 폼으로 봐선 참석에 무리가 없는 느낌.
안도감의 표정을 짓자 그가 슬쩍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래서, 거사는…….]
휙!
난 순간 재빨리 나타샤를 쳐다봤다.
다행히 손에 호두알을 쥐고는 있지만 날려 보내지는 않은 상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재빨리 화두를 돌렸다.
[사실 오늘 방문의 주요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군. 해서 나도 지금 잔뜩 긴장하고 있는 중이오.]
[…….]
[대체적으로 진 회장이 올 때마다 터트린 일이 어디 좀 심각한 문제였어야지.]
난 웃음으로 그의 농담을 받아 넘겼다.
하지만 계속되는 그의 날 선 시선.
비로소 자세를 고쳐 앉곤 목적을 밝혔다.
[현재 러시아가 방치하고 있는 3척의 미완성 전략 잠수함들을 제게 주시죠. 정확히는 오스카급 잠수함 2척. 그리고 아쿨라급 잠수함 1척이 잠자고 있죠. 아마?]
[…….]
푸틴은 턱을 떨어트리며 기함을 토했다.
그건 나타샤도 마찬가지.
오해가 있는 듯 그녀는 연신 나를 향해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한다.
마치, ‘아무리 결혼선물이라도 그건 불가능해.’라는 의미처럼.
[지금 제정신입니까? 전략 원잠을. 그것도 3척이나 결혼선물로 내달라고? 착각하나 본데, 난 황제가 아니라 대통령이오. 엄연히 러시아에도 절차와 법이 있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될 듯싶소?]
[오해하신 모양인데, 전 결혼선물 따위를 운운한 적은 없습니다.]
[…….]
푸틴은 순간 눈을 끔뻑였다.
곧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다시 잔뜩 진중한 표정이 되어 되묻는다.
[가부를 떠나서 이유나 들어봅시다.]
[이유라면…… 아시다시피 한국도 이젠 핵잠수함 보유를 기정사실화 한 상황입니다. 그로 인해 이미 스마트 원자로의 개발도 완료한 상태고요. 여기서 문제는 시험함의 필요성인데, 앞서 말한 3척의 러시아 잠수함이 적당한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기왕이면 우리 잠수함 승조원들의 교육도 러시아가 좀 담당해 주시면 더 좋고요.]
[핵잠수함 운용 교육 문제야 뭐 얼마든지. 그런데…… 방금 스마트 원자로라고 했습니까?]
푸틴의 눈이 순간 강렬해졌다.
그래, 내 그럴 줄 알았지.
안 그래도 러시아 역시 원자로 문제로 인해 고심하고 있는 터에 해답이 될 만 한 것이 등장했으니까.
한데 이걸 어쩌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건 고작 폐 잠수함 몇 척과 바꿔먹을 만한 것은 아닙니다. 즉, 아무리 군침을 흘리셔도 소용없다는 소리죠]
[…….]
순간 그의 표정이 썩은 사과처럼 변했다.
마치 그럴 거면 왜 말을 꺼냈냐는 듯.
뭐 그거야 당연히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닐까.
자고로 상대의 애가 닳아야 차후 더 큰 돌을 던지기가 쉬워지는 법이거든.